"고향의 흙냄새 맡고 싶다"비전향장기수 송환 준비위, "지금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건 '2차 송환'"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 비전향장기수 송환 20주년 기념대회 준비위원회는 10일 오후 한국기독교회관 조에홀에서 '비전향장기수 송환 20주년 기념 및 2차송환 촉구대회'를 개최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문재인 정부, 정말 왜 이렇게 둔한가. 정상끼리 합의한 것을 왜 실천하지 않는가. 인도주의 문제를 시급히 해결한다고 하지 않았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교회협) 인권센터를 비롯한 4대종단 관련 단체들과 (사)정의평화인권을위한양심수후원회 등 시민사회단체들로 구성된 '비전향 장기수 송환 20주년 기념대회 준비위원회'(송환 준비위)는 10일 오후 서울 종로5가 한국기독교회관 조에홀에서 '비전향장기수 송환 20주년 기념 및 2차 송환 촉구대회'를 개최하여 남북정상이 합의한 '민족분단으로 발생된 인도적 문제의 시급한 해결' 약속을 지킬 것을 문재인 정부에 촉구했다.

송환준비위는 먼저 지난 2000년 6.15공동선언의 약속에 따라 63명의 비전향장기수가 송환된지 20주년이 되는 뜻깊은 올해를 마냥 축하할 수만은 없는 것은 지금도 90 고령의 비전향장기수 13명이 힘겨운 투병생활을 하며 송환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 왼쪽부터 권오헌 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 한충목 한국진보연대 상임공동대표,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 박승렬 교회협 인권센터 소장.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권오헌 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은 "비전향장기수는 외세와 분단이 강제한 동족대결이 나은 결과이고, 송환이라는 개념은 역사적으로 정전협정·제네바협정에 따라 남북 포로를 서로 교환하는 차원에서 처음 나오게 된 것"이라며, "비전향장기수 송환 문제는 크게 보면 불신과 대결의 시대를 접고 화해와 단합의 시대를 이루기 위해 남북사이에 해결될 인도주의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2000년 6.15공동선언 제3항에서 '남과 북은 올해 8·15에 즈음하여 흩어진 가족, 친척방문단을 교환하며 비전향장기수 문제를 조속히 풀어 나가기로 하였다'고 약속한 것이나, 2018년 4.27판문점선언에서 '민족분단으로 발생된 인도적 문제를 시급히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기로 한 것은 모두 이런 배경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또  2000년 6.15합의에 따라 그해 9월 2일 63명의 '비전향장기수'가 송환된 것과 달리 2차 송환의 경우, 희망자 46명 중 지금까지 33명이 세상을 떠나도록 이렇다할 진척이 없는 상황에 대해 답답함을 토로했다.

앞서 '본인 의사에 반해서 강요된 전향은 인정할 수 없다'는 사회적 합의에 힘입어 통일부도 2004년 이후 2차 송환 희망자들에 대해서도 귀향 의지가 있는 '비전향장기수'로 정리하여 송환요건 중 자격문제는 일단락되었다.

또 국군포로, 납북자와 2차송환을 맞바꾸자는 이른바 '상호주의'론 역시 2004년 남북적십자회담에서 전쟁시기 행방불명자 등에 대한 공식사업으로 수렴하여 이산가족 상봉사업의 대상이 된 이후 비전향장기수 2차 송환에 걸림돌이 되진 않고 있다.

권 명예회장은 "남북 정상이 4.27판문점선언에서 합의한 '민족분단으로 발생된 인도주의 문제 해결'은 비전향장기수 2차 송환, 김련희 평양시민 송환, 12명 해외식당 종업원 진상규명과 원상회복 등을 의미한다"며, "인도주의 원칙과 인권 차원 뿐만 아니라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서라도 이 문제가 반드시 해결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충목 한국진보연대 상임공동대표는 20년전 6.15공동선언이 선포되고 합의가 이행되는 과정에서 △이산가족 상봉 △비전향장기수 송환 △금강산관광 확장 △개성공단 결실 △민간 접촉 회합 확대로 이어진 성과를 언급하고는 "실천없는 약속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 때 김대중 대통령은 6.15합의에 따라 9월 2일 63명의 비전향장기수 송환 약속을 지키고 10월 10일 당창건 55돌 행사에 남측 민간단체 대표 100여명이 공식적으로 참가할 수 있도록 했다"며, "문재인 대통령이 촛불시민과 국민을 믿고 6.15를 이어가는 4.27판문점선언, 9월 평양공동선언을 꼭 지켜나가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김동춘 성공회대학교 교수는 "세계에서 가장 긴 전쟁인 한국전쟁 발발 70주년이 되는 올해 상징적인 수준이라도 종전선언을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는 생각하지만 이는 미국과 국제사회의 협력없이는 안되는 일"이라며 "그에 비해 비전향장기수 2차 송환은 문재인정부의 재량으로 할 수 있는 일인데 너무 조심하는 듯해서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어 "6.15선언 이후 하려던 일이고 또 할 수 있는 일이니까 당연히 해야 한다"며, "보수세력의 눈치를 볼 일도 아니고 대승적 결단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또 이인영 통일부장관에 대해 "북측과 대화, 화해를 위한 적극적 의지가 있다고 본다. 비전향장기수 2차송환에 대한 결단이 이루어지길 바란다"고 하면서 "정동영 장관 시절에도 추진되던 송환이 왜 이인영 장관에서 안되겠나"고 독려하기도 했다.

박승렬 교회협 인권센터 소장은 "20년동안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선생님들에게 송구하고 하루 속히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바란다"며,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홀로된 자들을 다시 고향으로 돌려보내고 새로운 삶을 열어주었던 것처럼 비전향장기수 선생님들에게도 신의 가호가 있어서 하루빨리 돌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기도했다.



▲ 김혜순 양심수후원회 회장은 투병중인 2차송환 희망자 박종린 선생의 쾌유를 기원하는 편지를 낭독해 장내를 숙연하게 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2차송환 희망자인 김영식 선생은 하루빨리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을 밝혔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김혜순 양심수후원회 회장은 2차송환 희망자인 박종린 선생에게 북녘 딸과의 만남을 위해 기적처럼 병석에서 일어나기를 기원하는 편지(아래 전문 참조)를 낭독해 장내를 숙연하게 했다.

2000년 12월 전주 고백교회에서 '본인 의사에 반한 강제전향은 전향이 아니다'라는 최초 선언을 한 김영식 선생은 고향 산천과 부모, 헤어질 당시 2살이던 딸에 대해 이야기하고 하루 빨리 고향땅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을 밝혔다.

양희철 선생은 "50년 이상 고초를 겪으면서 늘 그랬던 건 아니지만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았다고 느꼈던 건 고향이 아니었기 때문"이라는 심경을 밝히고 '돌아가리 내 고향으로'라는 제목의 시(아래 전문 참조)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했다.



▲ 한국대학생진보연합 대학생들이 2차송환 희망 비전향장기수들을 위해 창작곡인 '우리의 소원은 통일 2'를 부르는 무대를 준비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인천 사랑병원에서 투병중인 박종린 선생님께.(전문)

선생님, 딸하고 한번 만나서 살다가 죽었으면 하는 것이 유일한 소망이라 하셨지요!

100일 된 딸아이 옥희를 두고 남으로 내려온 선생님. 선생님은 혈육 한 점 없는 남쪽에서 34년이라는 무지막지한 옥고를 치르고 1993년 성탄절 특사로 석방되었습니다. 몸무게 40키로라는 허약해진 상태로 아무런 연고도 없는 남쪽에서 병보석으로 출소를 앞두고 있을 때 무안의 한 교회 목사가 신병각서를 써주어서 무사히 출소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7년의 세월이 흘러 2000년 6월, 6.15 남북 공동선언으로 잠시 송환의 기대에 들떠 있었지만 1차 대상자 63명 명단에 선생님은 없었습니다. 출감 때 교회 측에서 대신 써 준 신변각서를 당국이 사실상의 ‘종교 전향’으로 해석해 버린 것입니다. 격렬히 항의했지만 통일부의 결정을 뒤집을 순 없었습니다.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2000년 9월 2일 서울을 떠난 63분의 선생님들이 ‘신념의 강자’를 맞이하는 격정적인 환영 인파에 둘러싸여 평양에 들어설 때 그 자리에 사모님이 계셨습니다. 신혼 14개월차에 헤어져 41년 만이니 얼마나 찾아 헤매였을까요? 얼마나 목놓아 부르셨을까요? 선생님을 찾아헤매다 오지 못했다는 소식을 듣고 사모님은 충격으로 그 자리에서 쓰러져 끝내 일어서지 못했습니다. 
 
냉전시대 행해졌던 전향공작의 망령이 2000년 남북화해시대를 살고 있는 이산가족의 삶을 산산히 부셔놓았습니다. 4년이 지나서야 중국에 있는 조카들로부터 이 소식을 듣고 선생님인들 온전했겠습니까? 이런 고통이 건강을 좀먹어 만성 위궤양과 기관지염, 당뇨, 대장암까지...몸이 아플수록 북에 두고온 가족들 생각이 나셨겠지요. 쓸쓸한 날이면 저 세상으로 가버린 사모님께 편지를 쓰고.

선생님, 참으로 어려운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하지만 한번도 흐트러지지 않고 통일일꾼으로, 통일운동의 사표로 계셨습니다. 선생님 주변에 선생님을 따르는 손자, 손녀들 많이 두셨잖아요! 34년이란 영어의 세월을 견뎌오셨는데 이쯤 병마야 대수겠어요. 이제 조금 더 힘을 내십시오. 옹알이를 하던 100일된 딸아이 옥희가 어떻게 성장했는지 한번은 보셔야지요. “딸하고 한번 만나서 살다가 죽었으면 하는 것이 유일한 소망”이시잖아요.

지난 8월 21일 강담 선생님 부음 소식에 충격을 받아 약간의 뇌출혈이 왔다는 얘길 들었습니다. 동지들 부음 소식을 들을 때마다 쌓였을 마음의 상심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그길로 병원신세를 지신 선생님은 아직 퇴원을 못하고 계십니다. 마음이 흔들릴까 봐 아예 가족 생각은 않고 건강하게 돌아갈 날을 기다리며 일편단심 살아온 박희성 선생님도 강담 선생님을 보내고는 “이제 집에 간다는 것은 틀린 것 같다.”고 약한 소리를 하십니다. 

그동안 이별이 너무 길었습니다. 쓸쓸히 맞는 명절 때문에 ‘생일이랑 명절이 제일 싫다‘하셨던 송환을 희망하는 비전향장기수 선생님들! 추석 전에 가족 품에 가실 수 있도록 노력했지만 결실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 송환추진위도 구성하고 본격적으로 싸울 테니 꼭 털고 일어나요. 일어나셔서 꿈에도 그리던 고향에 가서 따님의 생일상 한번 받는 꿈 다시 꾸어요. 선생님, 기적처럼 다시 일어나요.


2020년 10월 10일 송환20주년 기념식에서 
양심수후원회 김혜순 드림.


돌아가리 내고향으로 (전문)
<비전향장기수의 간절한 소망>

내 고향으로 날 보내주.
오곡백과가 익어가고 
흐르는 시내 멱감던 내 고향으로...

어릴 적 놀던 추억
70년 60년 지난 오늘 
엷어져 희미해라
세월이 삼켜버린 옛 생각 그 추억들

조국이 놓여진 현실은 얼음장인가 
각박한 인심, 정은 잦아들고 
껴입어도 추위는 몸서리치게 한다.

앙탈을 부리랴, 몽니를 떨랴
받아줄 이 하나 없는 허허로움 뿐
그렇다고 주저앉을 순 없지않네
수구초심인 것을
낙엽귀근임인 것을 

태어날 때 각기 받은 권리가 있다.
행복할 권리, 차별받지 않을 권리
린치나 고문받지 않을 권리
살고 싶은데 가서 살 권리

보내주오 내 고향을 
우리 단군겨레 대대로 이어받은 미풍양속
홍익인간 이화세계 
상부상조는 인권을 싸안은 자유의지

김대중 대통령, 김정일 국방위원장 두 분의 합의
그 정신의 구현 6.15를 실천하라신다.
그 때가 돌아보면 꽃피는 봄날이었을까
63명의 비전향장기수가 휴전선을 넘어가고
비둘기 날아라 평화가 올거라고.
어떤 우방도 민족보다 우선할 수 없다 하신 
김영삼 대통령 평화가 올거라며
이인모 선생을 고향으로 보냈어라.

노무현 대통령은 죽은 자에게도 덕을 베푸셨다.
돌아가신 정순택 선생을 
평양의 가족 품에 안겨주었나니
아주 작은 선한 일도 하늘이 아시거늘
사람의 소원을 풀어주는 일임이랴.

찾아야 한다. 잃은 주권을 찾아야 산다.
자주자강 부국의 길이 통일의 길 될 주권을 
평화는 갈라진 강토 하나로 될 때 온다.
우리민족끼리 힘 합쳐 통일할 때 평화는 있다.

무엇이 어려우랴 무엇이 두려우랴 
대동의 평전 평화 깃들고 
잃은 고향 되찾아 오고가고
이념이 문제랴, 제도가 막으랴.
한겨레 한식구 되는 일이사.

여기 90을 넘어 100세를 안으실 이
여기 80을 넘어 90세를 넘보는 이
아직 살아 고향을 읊조리며
눈은 침침, 귀는 먹먹한 채 
고향의 흙냄새 맡고 싶다며
오늘도 고향하늘 바라보다
망향의 정을 다독입니다.

2020년 10월 10일
비전향 장기수 삼가 양희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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