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된 조국은 산 자의 몫으로 남았으니...”


- 남민전동지회, 모란공원서 남민전 열사 첫 합동추모제 거행

마석=이병인 통신원(추모연대 홍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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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석자들은 추모제를 마치고 마석 모란공원에 안장돼 있는 네 분의 묘소를 참배했다.


‘故 이재문, 신향식, 김병권, 박석률 남민전 민족민주통일열사 합동추모제’가 남민전동지회 주관으로 13일 오전 11시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묘역 내 이재문 선생 묘역에서 열렸다.


합동추모제에는 남민전 선생들의 유족들과 정의·평화·인권을 위한 양심수후원회 권오헌 명예회장, 범민련 남측본부 이규재 의장,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장남수 회장 등 많은 단체에서 참석하였다.


특히 남민전 사건 이후 일본에서 구명‧후원 운동을 벌였던 히라노 료코 선생이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오늘 추모제는 지난 3월 이재문, 신향식, 김병권 선생의 묘소를 마석 모란공원으로 이장해 온 뒤, 남민전 사건 이후 40여년 만에 처음으로 합동추모제 형식으로 열려 각별함을 더했다.


이날 추모제는 유족 대표 4명의 헌작을 시작으로 약력 소개에 이어, 네 분의 선생 한분 한분에게 남민전 동지들이 추모사와 추모시를 낭송하고, 합동추모제에 대한 추모사를 임헌영 동지(민족문제연구소 소장), 히라노 료꼬 선생, 이규재 의장, 장남수 회장이 이어갔다.


이날 추모시 낭송은 김남주 시인의 육성 녹음을 비롯해, 선생들의 동지들이 직접 낭송했다.


최석진 동지는 이재문 선생 추모사에서 “지난 마흔해 사이 우리 백성들은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스스로 나라 임자임을 깨달아가는 먼 길을 걸어와 세 해 앞서 촛불을 들고 성큼 한걸음 내디뎠고 올해 다시 촛불을 들고 한 발짝 한 발짝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지난 촛불혁명과 최근의 검찰개혁 촛불시위를 이야기했다.


김종삼 동지는 신향식 선생 추모사에서 “긴 역사의 눈으로 본다면 우리는 그런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있으며, 하나씩 헤쳐 나가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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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오헌 (사)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이 김병권 선생 추모사를 하고 있다.


권오헌 동지는 김병권 선생 추모사에서 선생의 삶을 이야기 하고, “우리 민족이 오늘 세계사를 주도하고 있다”며 “남은 과제는 남북이 손잡고 미·일 침략외세를 몰아내고 선생님께서 꿈꾸셨던 자주통일세상을 이루는 일”이라고 통일의 과제를 강조했다.


박석률 선생 추모사를 맡은 차성환 동지는 어려운 형편에도 운동을 떠나지 않았음을 말하고, “통일된 조국은 산 자의 몫으로 남았으니 남아있는 사람들이 생명이 허락할 때까지 노력할 것”을 약속했다.


임헌영 동지는 합동추모제 추모사에서 남민전 자랑과 함께 민주화운동을 지하에서 할 수 밖에 없었던 유신독제체제를 이야기했다.


이어서 히라노 료코 선생은 남민전 사건 이후 석방운동에 애썼는데 오늘에서야 합동추모제를 하게 되어 기쁜 자리라고 했다.


또한 이규재 의장은 민족해방운동이 미국을 몰아내는 것임을 강조했다. 마지막 추모사에서 장남수 회장은 남민전 활동이 민주화운동에 기여했음에도 인정을 못 받고 있음을 안타까워했다.


참석자들은 추모제를 마치고 마석 모란공원에 안장돼 있는 네 분의 묘소를 참배했다.


마석=이병인 통신원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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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권오헌 명예회장의 추도사입니다.

[추도사-전문]

통일조국 소식만을 기다리실 김병권 선생님!
정성들인 오곡이 영글어가고 이산 저산 단풍잎 곱게 물들어가는 결실의 계절 10월입니다. 선생님께서 평생염원 보시지 못한 채 가신 지 14년이 되었습니다. 해마다 일산 청아공원 좁은 공간에서 선생님 살아오셨던 그 처절하고도 치열했던 사연들을 숨죽여 읽었지만 오늘은 마침내 확 트인 대지, 하늘 높은 가을날에 ‘남조선 민족해방전선 준비위원회’를 결성하였던 혁명전사들의 역사를 큰소리로 외치며 가신 동지들의 고귀한 뜻을 고이 기리고 영원히 이어가려 다짐합니다.
지난 3월 세 분 선생님 묘소 이장 때 보고 드렸지만 이곳은 자주통일과 평등세상을 위해 헌신하다 산화해 가신 민족민주열사·희생자들의 묘역이고 민족민주운동의 성지이기도 한 곳입니다. 특히 선생님과 특별한 인연을 맺었던 동지들이 먼저 와 자리하고 계십니다. 4.19혁명 이후 사회당을 함께 하셨던 최백근 선생님, 그리고 1960년 이후 동지관계였고 이른바 ‘남조선 해방전략당’ 사건(1969년)의 권재혁, 이형락 선생님도 이곳 열사묘역에 계십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몇 번이고 다시 태어나는 전환점을 맞는다 했습니다. 그것은 타고난 천재, 타고난 애국자, 타고난 혁명가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과정의 사회적 환경과 역사적 조건에 따라 인생의 진로를 몇 번이고 고쳐나갈 수 있다는 비유일 터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시어 초등학교를 졸업하시고 전기통신계통 일을 하시면서 전기통신, 무선통신 분야의 전문가가 되려고 일본에 건너가셨고 주경야독하며 장래를 꿈꾸는 청소년기를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뜻밖에도 천황제와 군국주의를 반대하는 양심적인 일본인 영향을 받으셨고 선생님 또한 일제의 강제징병을 피해 중국 동북지방으로 옮겨 금속제작소 등 공장 일을 하시다가 8.15 조국광복을 맞아 고국으로 돌아오셨습니다.
해방된 고국 땅에 와서 새로 맞은 상대는 이 땅을 강점한 또 다른 외세 미군이었습니다. 대구에서 <대중신문>사 기자로 활동하다가 미군정의 수탈적 하곡수집 기사가 빌미가 되어 신문사가 폐간되기도 하셨습니다. 그 뒤 10.1항쟁을 겪으시면서 우리 민족과 미 점령군과의 모순관계를 절실히 느끼셨습니다. 
선생님께선 4.19혁명을 서울에서 맞으셨습니다. 항쟁의 거리에 뛰어들지는 않았지만 수많은 청년학생들이 독재의 총칼 아래 쓰러지는 현장을 목격하셨습니다. 선생님께선 민족자주와 평화통일에 대한 신념을 굳히셨고 대구에 내려와 사회당에 입당하시어 경북도당 상무위원으로 활동하셨습니다.
1961년 5월 남북학생회담 추진 시민궐기대회를 조직하고 혁신정당들의 통합대회 참석차 서울로 오시던 중 5.16군사쿠데타 세력에 체포되어 이른바 특별범죄 처벌에 관한 임시조치법(국가보안법 변형) 위반혐의로 구속되었습니다. 그 뒤 6개월 만에 불기소처분으로 석방되었지만 이때부터 선생님이 뇌졸중으로 투병하시게 된 2003년까지 40년 넘게 선생님의 일상은 혁명적 활동, 정치수배·체포·구금, 보안감호처분·보안감찰 등 저항과 구속, 감시받는 삶을 사셨습니다. 이 긴 시간 동안 1946년 경산의 능금밭집 착한 따님과 결혼하시고 집안 살림과 4남매 키우기, 옥바라지를 부인 박윤수님이 맡아하셨습니다.
선생님께서 이렇게 저항하고 박해받으며 40년을 지내신 일은 민족자주와 평화통일, 민중생존권보장에 대한 신념의 실천자로 살으셨음을 증명합니다. 다시 그 치열했덙 과정을 돌아본다면 1964년 이른바 인민혁명당 사건에 연루, 수배생활을 하셔야 했고 진보적 경제학자 권재혁 선생님과 함께 연루된 이른바 ‘남조선해방전략당’ 사건으로 5년형을 선고 받으셨습니다.(1973년 만기 출소)
이어 1975년 사회안전법 발효로 신향식 동지와 본격적인 지하활동을 하셨고 오늘 저희들이 남민전 전사로 모시는 이재문, 신향식 선생님과 함께 세 분은 1976년 2월 29일 남민전 준비위를 결성하셨습니다. 이때부터는 지하잠행이 아니라 본격적인 박정희유신정권 타도 투쟁의 지하활동이셨습니다. 이 같은 역사적인 조직결성이 있은 지 한 달 남짓 한때 참으로 중대한 위기를 맞게 되었지요. 선생님께서 공안당국에 검거 당하셨고 소지했던 일부 남민전 결성 문건이 발각되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께서는 단호하게 혼자의 생각이었다며 조직을 살리고 선생님은 반공법으로 3년형을 선고 받으셨습니다. 
1979년 4월 출소만기일이 다가왔지만 사상전향을 거부하시어 선생님은 청주보안감호소로 이감되어 기한 없는 감옥생활을 하시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곧이어 남민전 사건이 발표되면서 선생님은 다시 이 사건으로 15년형을 선고 받으셨습니다. 이후 남민전 구속자석방운동은 당시 민주화운동과 연계되어 진행되었고 특히 유신독재에 맞섰던 유일한 저항세력이었음을, 바로 남민전 활동의 정당성이 폭넓게 공유되면서 결국 1988년 12월 21일, 사실상의 정치적 사면이었던 형집행정지로 무기형을 받았던 동지들까지 전원 석방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오랜 옥고를 치르고 나오신 선생님 연세 70이 다되었지만 민주화운동, 자주통일에 대한 열정은 식을 줄 몰랐습니다. 1989년 3월 수십년 감옥을 살면서도 자신의 정치적 신념과 양심을 지켜오고 있는 장기구금양심수들의 석방과 후원을 위한 양심수후원회 결성에 창립회원으로 참여하시어 큰 성원과 헌신을 다하셨습니다. 또한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에 가입, 재정위원장 등 주요임무를 하시면서 또다시 1995년 11.29일 범민련 대탄압 때 강희남 의장 등 전국적인 주요간부 30여 명과 함께 체포되어 반역사적이고 반민족적인 팟쇼 법정에서 3년6월 선고를 받고 1998년 8.15에 출소하셨습니다.
선생님, 말씀드리다보니 감옥 이야기만 한 것 같습니다. 선생님 생애의 대부분이 감옥과 지하활동과 수배 생활로 채워졌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선생님께서는 조국과 민족 앞에는 떳떳하셨지만 가족들에게는 충실한 가장이 되시질 못했습니다. 그 오랜 시간 가족들이 겪은 아픔은 헤아릴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자녀분들 모두 훌륭히 자라 이제는 아버님 뜻을 이해하고 존경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자녀분들께 힘을 보태주십시오.
그리고 선생님, 한평생을 통일조국만을 위해 헌신하셨는데 오늘의 통일정세가 궁금하시지요? 그렇습니다! 외세와 분단구조 변하지 않고 있으며 제국주의 침략외세의 적대행위도 여전합니다. 그러나 선생님! 그들이 일방적으로 공갈 위협하는 시대는 끝났습니다. 이제는 적대행위에 대한 억제력을 넘어 그들도 공포 속에 살아가야만 하는 응징력 시대를 완성하였습니다. 우리 민족이 오늘 세계사를 주도하고 있습니다. 남은 과제는 남북이 손잡고 미·일 침략외세를 몰아내고 선생님께서 꿈꾸셨던 자주통일세상을 이루는 일입니다. 남은 사람들이 그 일을 완성할 것입니다. 편히 쉬시길 빌겠습니다. 

2019년 10월 13일 
남민전 동지 권오헌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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