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슬픈 경우”

[추가] ‘통일애국열사 박종린 선생 민족통일장 장례위’, 추도식 개최

  • 김치관 기자 
  •  
  •  입력 2021.01.28 05:09

‘통일애국열사 박종린 선생 민족통일장’ 추도식이 27일 오후 6시 인천사랑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렸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통일애국열사 박종린 선생 민족통일장’ 추도식이 27일 오후 6시 인천사랑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렸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박종린 선생을 생각하면 ‘참 사람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슬픈 경우겠구나’ 생각을 했다.”

‘통일애국열사 박종린 선생 민족통일장’ 추도식장은 조국의 분단이 한 개인에게 얼마나 깊은 슬픔을 안겼는지를 새삼 확인하면서 숙연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추도식은 코로나19로 인해 한정된 인원만 직접 참석했다.

‘통일애국열사 박종린 선생 민족통일장 장례위원회’가 27일 오후 6시 인천사랑병원 장례식장에서 개최한 추도식은 애타게 가족이 있는 북으로 송환을 기다리다 89년의 생을 마감한 통일운동가의 가슴아픈 사연이 펼쳐졌다.

고인의 유해는 28일 오전 6시 빈소에서 발인해 오전 8시 인천시립승화원에서 화장했고, 곧바로 서울 종로구 금선사에 모셔질 예정이었지만 폭설로 인해 인천시 부평구 자택으로 회향했고, 오는 2월 3일 금선사에 안치될 예정이다. 

“분명히 ‘신병인수서’였다. 전향서가 아니었다”

2007년 평양에서 개최된 6.15민족통일대축전에 고인과 함께 참가했던 이규재 범민련 남측본부 의장은 “마음속으로만 ‘저 사람이 내 딸이지’ 짐작하면서 손도 못 잡아보고 말 한 마디 못하고 되돌아서서 올 때 그 양반 심장이 과연 어땠을까 하는 것. 아마 그것은 사람이 경험할 수 있는 그런 슬픔으로 최고의 슬픔의 경지가 아니었겠는가 싶다”며 “우리 민족만이 갖고 있는 이런 참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이러한 상황”을 개탄했다.


2007년 평양에서 개최된 6.15민족통일대축전에 참가한 박종린 선생.(맨 오른쪽) 딸을 먼 발치로만 보고 끝내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2007년 평양에서 개최된 6.15민족통일대축전에 참가한 박종린 선생.(맨 오른쪽) 딸을 먼 발치로만 보고 끝내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당시 평양 공동행사는 한나라당 의원의 주석단 배치 문제를 두고 행사가 파행을 거듭했고, 박종린 선생은 1959년 북을 떠나올 때 100일도 안 됐던 딸 옥희를 먼 발치에서만 보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안타깝다’거나 ‘슬프다’는 말로 그 마음을 다 표현할 수 있을까.

34년을 감옥에서 살면서 남쪽에 가족이 없어 ‘일반면회’를 단 한 번도 못 해본 고인에게 따뜻한 손길을 건넨 곳은 시골의 작은 교회였다. 전남 무안군 용학교회의 임영창 목사와 배종렬 장로 등이 ‘신병 인수서’를 써주고 1993년 성탄절 전야에 병보석으로 출감한 것.

지금은 화순 만나교회에서 사목하고 있는 임영찬 목사는 “신병 인수서를 써서 제출하고 박종린 선생을 우리가 모시고 왔었다. 그런데 그게 박종린 선생에게 있어서는 돌아가실 때까지 족쇄가 되고 말았다”며 울먹였다. “분명히 ‘신병인수서’였다. 전향서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을 쓴 것은 박종린 선생이 아니라 내가 썼다”고.

임영찬 목사는 고인과의 인연과 2000년 비전향장기수 송환대상에서 제외된 경위 등을 밝히며 울먹였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임영찬 목사는 고인과의 인연과 2000년 비전향장기수 송환대상에서 제외된 경위 등을 밝히며 울먹였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2000년 남북정상회담에서 채택된 6.15공동선언에 따라 비전향장기수들이 송환됐지만 고인은 전향자로 분류돼 끝내 송환되지 못했다. 마음의 짐을 떠안은 임 목사를 불러 다독인 것은 오히려 박종린 선생이었다. “좋은 뜻으로 사랑으로 나를 감싸줬는데 내가 목사님과 영학교회 교인들 원망을 하겠나. 고마운 마음으로 지내고 있으니 염려하지 마시고 2차 북송 때는 올라갈 거다”라고.

그러나 비극은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김혜순 양심수후원회 회장은 “그날 서울을 떠난 63분의 선생들이 ‘신념의 강자’를 맞이하는 격정적인 환영 인파에 둘러싸여 평양에 들어설 때 신혼 14개월 만에 헤어져 41년을 기다려온 로인숙 사모님이 그 자리에 계셨다. 선생님을 찾아 헤매다 오지 못했다는 소식을 듣고 사모님은 충격으로 쓰러져 끝내 일어서지 못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한참 후에야 이 소식을 알게 된 고인의 비통한 심경을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
 

통일애국열사 박종린 선생 걸어오신 길
1933년 3월 14일 중국 길림성 훈춘현 반석촌에서 부친 박승진(1945년 작고), 모친 채성녀(1988년 작고) 사이 5형제 중 넷째로 출생

1945년 3월 중국 훈춘 남신소학교 졸업

1945년 해방을 맞아 함경북도 경원군(현 새별군) 안농면으로 귀국

1945년 11월 조국광복회 항일유격대원 아버지 박승진님 별세

1947년 7월 함북 경원군 안농중학교 졸업

1950년 9월 만경대혁명가유자녀학원 졸업

1950 – 51년 인민군 자원입대, 오백룡사단 배속 전쟁참가, 낙동강전투 부상

1951년 12월 16일 화선입당(19세)

1958년 3월 로인숙님(24세)과 결혼, 59년 득녀(옥희)

1959년 6월 20일 연락책으로 남파(911 통신부대 소좌) 당시 딸 옥희 생후 100일

1959년 12월 29일 체포. 서울형무소 수감(국가보안법)

1960년 10월 28일 ‘모란봉 간첩단 사건’으로 무기징역 선고

1961년 2월 18일 대법원 무기징역 판결. 대구교도소로 이감

1976년 이른바 “ 붉은별” 조직활동 사건으로 무기징역 추가. 2중 무기수로 복역함. 광주, 전주, 대전, 대구교도소 생활

1993년 12월 24일 병보석으로 출옥후 신병치료함

1994년 7월 – 2000년 9월 전남 무안군 용학교회 등에 거주. 무안 해제중학교 매점 근무

2000년 9월 – 2001년 3월 상경. 경기도 과천시 소재 소환된 비전향장기수들(홍문거, 김은환) 운영하던 고서적방 인수운영함.

2000년 9월 평양 비전향장기수 환영행사(부인 로인숙여사 –쓰러져 별세하심). 딸 옥희(김일성종합대학 교수)

2000년 10월 통일광장 성원

2001년 범민련 경기인천연합 고문

2001년 3월 – 2004년 5월 월간 “민족21” 창간 참여 근무함

2004년 5월 – 2007년 5월 홍익대 부속 중고등부 학생매점에서 근무

2005년 범민련 남측본부 금강산 행사 참가

2007년 5월 이후 신병 등으로 무직

2007년 6월 범민련 성원으로 6.15 7주년 기념 남북공동행사(평양)에 참가

2008년 북경올림픽 남북공동응원단 참가

2015년 범민련 남측본부 고문

2017년 8월 오랜 옥고의 후유증으로 대장암 판정, 투병생활

2021년 1월 대장암 증세 악화로 인천 사랑병원 입원치료

2021년 1월 26일 오전1시49분 숙환으로 별세. 향년 89세.

(자료제공 - 장례위원회)

 

“남쪽에서는 환송을, 북쪽에서는 환영을 받으며 북한으로 돌아가겠다”

공동장례위원장인 권낙기 통일광장 대표가 첫 추도사를 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공동장례위원장인 권낙기 통일광장 대표가 첫 추도사를 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임영찬 목사는 박종린 선생과 함께 선생의 고향 중국 훈춘을 방문했던 일도 회고했다. 두만강 건너 코앞이 북녘 땅인지라 “박 선생님, 지금 얼른 넘어가 버리세요. 북한으로 가세요. 그리운 부인과 딸이 있는데 그냥 넘어 가세요”라고 권유했다는 것. “그때 박 선생은 눈에 눈물이 가득하고 목이 메서 한동안 말씀을 안 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나는 공식적으로 남쪽에서는 환송을, 북쪽에서는 환영을 받으며 북한으로 돌아가겠다. 그것이 통일을 앞당기는 일이다. 내가 지금 사라지는 게 통일을 앞당기는 게 아니라 떳떳하게 북으로 돌아가는 그것이 통일을 앞당기는 일이다.”

임 목사는 “박 선생의 인생은 통일에 대한 열망을 단 한순간도 버리지 않고 사셨던 분”이라며 “그분의 인생은 남북 분단에 가장 고통스럽고 괴로운 십자가를 온몸으로 짊어지고 사셨던 인생이라고 그렇게 평가할 수 있다”고 추도했다.

김혜순 회장은 박 선생의 병세가 위중해지자 통일부에 북으로의 송환이나 유해 송환을 요청했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며 “고령의 비전향장기수들을 가족품에서 여생을 마칠 수 있도록 인도적인 차원에서 송환문제를 다뤄주기를 학수고대했는데 코로나 핑계로 시간만 축낸 상황이 야속하기만 하다”면서 “환갑을 넘긴 딸 옥희씨에게 부고가 전달되었을까요? 혹여 아버지의 부음 소식을 들었다면 남쪽 당국에 송환을 요청하지 않을까 귀를 쫑긋 열어둬 본다”고 마지막 미련을 붙들었다.

고인이 몸담았던 비전향장기수 모임 통일광장의 권낙기 대표는 “박종린 선생과 같이 관계를 맺었던 사람 치고 박종린 선생에 대한 품성, 인품에 대해서 탓하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했다”며 “사상성이니 당성이니 정치성이니 하고 매도를 하지만 그 모든 것들도 종국에 가서는 그 사람됨됨이고 그 사람의 인품이며 품성이다. 박종린 선생은 그 세 개를 다 갖춘 분”이라고 추도했다.

특히 “박종린 선생은 혁명유자녀학원을 나온 자존심 있는 분”이며, “공화국에서 당이라는 조직적 생활을 해보신 분”이라고 각별히 기렸다. 항일혁명열사 유자녀들의 교육기관인 만경대혁명유자녀학원을 다녔고,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인민군에 자원입대해 화선입당하고 전쟁 후에는 통신부대 장교로 활동했다.

“혁명유자녀학원을 나온 자존심 있는 분”

중국에 거주하고 있는 조카 박건 씨가 유족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중국에 거주하고 있는 조카 박건 씨가 유족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고인이 활동했던 범민련남측본부의 이규재 의장은 “불행을 씌워준 놈들이 미국놈들이라고 생각할 때 치솟는 분노가 하늘을 찔러야 한다”며 “2021년부터는 새롭게 마음가짐을 다잡고 미국놈 내쫒는 일에 전력을 다하자”고 ‘반미투쟁’을 강조했고, 장례위 호상을 맡은 통일광장 임방규 선생도 “우리 민족을 여러모로 괴롭히는 미국놈들을 조국강토로부터 축출하는 그런 통일운동에 죽는 순간 후회 가지 않도록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유족을 대표해 중국에 거주하는 조카 박건 씨는 그간 고인을 돌봐주고 찾아와준 단체와 개인을 일일이 거명하며 고마움을 표하고 “이제 중국에 가게 되면 여러분들의 진심어린 방조와 손길을 북측 우리 동생 옥희에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딸 옥희씨는 2000년 비전향장기수 송환 당시 김일성종합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다.

출소후 무안 해제중학교 매점에 근무하면서 ‘통일 할아버지’로 불리던 고인은 범민련 경기인천연합이나 <민족21> 등에서 일하면서도 인간관계를 돈독하게 쌓아왔고, 추도식에서도 ‘박종린 선생 청년동지회’ 고정석 씨가 고인의 약력을 발표하기도 했다.

양희철 통일광장 회원이 조시를, 노래패 휘파람이 조가를 헌정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양희철 통일광장 회원이 조시를, 노래패 휘파람이 조가를 헌정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원진욱 범민련 남측본부 사무처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추도식에서 양희철 통일광장 회원이 조시를, 노래패 휘파람이 조가를 헌정했고, 추모영상 상영과 합동헌화 등이 진행됐다.

한편, 범민련 공동사무국은 장례위 호상을 맡은 이태형 전 범민련 경인연합 의장이 대독한 추도사를 통해 “역사적인 판문점선언 이전시기로 되돌아간 남북관계의 현 실태로 선생님의 소원은 실현되지 못했다”며 “우리는 이제 자주통일을 위해 한 몸 바치신 선생님의 준절한 삶을 이어 반드시 자주통일의 역사적 위업을 당겨올 것”이라고 다짐하고 “고 박종린 선생님이시여 조국통일의 품에서 영면하옵소서”라고 기원했다. 

[조시] 쉼 없이 끊임 없이

통일광장 성원인 양희철 선생이 조시를 낭독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통일광장 성원인 양희철 선생이 조시를 낭독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박종린 선생님의 령전에
                                 1933.3.14-2021.1.26

 

그리는 마음 부풀릴 때마다

와 닿는 얼굴들

아빠! 오! 나의 딸 옥희냐

여보! 당신이구려, 로인숙

그리움은 켜켜이 쌓이고 발길은 막히누나

항상 안기고픈 어머니당 포근한 품

어찌 잊으리 어찌 그립지 않으리

만사 제쳐두고 오늘은 간다, 갈거다

이렇게 매일 거듭하셨을

박종린 선생님

 

남녘의 조국에서

엮은 풍상 얼만데, 당한 수모는

그래도 보람은 남았다며 돌아본 어젯 날

한분한분 자애로운 얼굴들 고마움 솟고

간난의 어려움도 이겨내게 하셨네

원망도 투정도 다 사라지게 했어라

 

낳고 자란 만주벌 길림 훈춘의 거리

배움 주신 평양의 만경대유자녀학원

조국의 부름 제복의 병영생활

배우고 익힌 것이 기술인가 지식인가

펼치고 전수하라 조국통일을 위해

명령 따라 밟은 남녘조국에서

지옥의 34년 아끼고 잃은 청춘

대구감옥 ‘붉은 별’ 가형은 무기징역

쌍무기 안고지고 인고의 서러움 달래다

 

출소, 보증을 목사님이 서셨나

이게 사달일 줄이야

2000년 9월 2일 비전향장기수 떠나든 그때

그 대열 끼지 못하고 낙오자라

평양의 아내 로인숙 사랑을 그리다

병 얻어 먼저 갔다

어이 이다지 목메게 하는가.

 

2차 송환은 21년 째 맴돌 뿐

서울 청와대에서 잠자고, 갔네 평양에

먼 발치 또렷한 옥희의 모습, 옆은 사위?

그냥 딸 따라 사위 손잡고 가면 될 것을

그럴 수는 없다

서울의 동지 친지 핍박을 어이하리

돌아 온 서울바닥 한냉이 깔리고

얻은 병마 남은 생 함께 했어라

 

어떤 우방도 민족보다 우선일 순 없다, 신

김영삼 대통령, 이인모 선생 가족의 품으로

선한 일은 작아도 하늘은 아신다, 던

노무현 대통령, 작고한 정순택 선생도 보내주셨네

김정일 국방위원장 김대중 대통령 두 분의 위훈이신

6.15통일장전 실천하라신다, 민족의 이름으로

하물며 민족의 한을 풀어주는 조국통일임이랴

외세가 갈라놓은 민족과 조국

모든 것 제쳐두고 통일 먼저 하라신다

 

평화 평등은 통일에 이어 자연스레 오는 것

자유도 행복도 통일 없으면 누릴 수 없는 것

몽매간에 바라시던 통일 보시지 못한 채

가시고 말았습니다. 박종린 동지시여!

여기 조카 내외, 조카딸 슬픔을 안고

경향에서 조문 오신 친지분들과 동지들

혈육보다 애통해하는 모습 보이시나요

훨훨 조국산천 날아 금수강산 조망하시고

쉽없이 통일의 씨앗 흩뿌리소서

싹터 통일의 열매 거두는 그 날 다시 만나요


2021년 1월 27일

삼가 양희철

 

출처 : 통일뉴스(http://www.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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