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에서 온 편지] 김경용님의 편지

2017.07.18 11:04

양심수후원회 조회 수:426

지난 주에 마지막 출정을 다녀왔습니다.

바쁘신 가운데에도 선고공판에 와주신 이정태 운영위원님과 류제춘 사무국장님께 감사드립니다.

 

저에게 출정 길은 나들이 길이기도 합니다.

비록 손발은 포승줄에 묶이어 법정을 향하지만 눈과 마음 만은 오랜만에 구치소 담장을 벗어나 훨훨 산과 들을 날아다닙니다.

 

3월의 나들이 길에서는 연록으로 귀엽게 물 오른 버들가지가 전해주는 봄의 소식을 들었고, 5월 출정 길에서는 연분홍 빛으로 피어난 산벚꽃을 바라보며 봄이 만개했음을 느꼈지요.

이번 선고공판을 오가면서는 녹음에 파묻힌 산들을 보며 이제 계절이 번성한 여름의 한복판에 들어섰음을 실감했습니다.

 

감옥은 수인의 몸만 15척 담장 안에 가두어 놓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수인의 눈에 비치는 저 멀리 솟아오른 산과 파란 하늘까지도 앞뒤 사동의 벽과 두겹 세겹의 담장으로 가로막고 묶어 놓지요.

막혀있지 않고 묶여있지 않은 산과 들을 만나고 자유롭게 거리를 오가는 일반인을 구경하고 돌아오는 출정 길.

무심히 스쳐지나갔던 풍경의 정겨움과 담배 연기처럼 흩어져간 소소한 일상의 아름다움을 뒤늦게 일깨워주는 수인의 나들이 길입니다.

 

지난 번에는 <병든 서울>로 우리에게 익숙한 오장환의 시를 소개해 드렸습니다.

오장환은 시인 정지용의 제자이었고 그의 월북을 설득하였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The Last Train>은 그 허무적이고 우울한 정서와 다소 치기어린 듯한 운율이 식민지 조선의 현실과 맞닿아 그 시절 젊은이들이 술자리에서 즐겨 암송했던 시였답니다.  

월북시인 오장환의 시로 인하여 조직사건이 생기고 여러 사람이 고초를 당한 일이 있었습니다. 학살의 피가 채 마르지 않았던 1980년대 초 어느 늦은 밤, 누군가가 오장환의 시집 <병든 서울>의 필사본을 아차 실수로 버스에 두고 내렸습니다. 신고를 받은 정보당국은 이를 이적단체 오송회사건으로 확대하였고 관련자들은 모진 고문과 뒤이은 옥살이를 겪게 됩니다.  

오장환의 시가 너무 좋아 그의 시집을 필사본으로 몸에 지니고 다녔던 분이 바로 군산 제일고등학교 국어 교사였던 이광웅 시인이었습니다.

시인은 1987년에 사면되어 복직되었으나 전교조 활동으로 다시 해직의 아픔을 겪어야 했고 1992년 고문의 후유증으로 이른 나이에 생을 마감하고 맙니다.

 

<수선화>는 사면 후 학교로 돌아온 날의 평화로움을 노래하는 애잔한 시입니다.

양심수 모두에게 머나먼 압록의 강물 같이나 바라뵈던석방이 명절 같이나 찾아오기를 기원합니다.

 

수 선 화

이광웅(1940~1992)

내 생애에서의 영원이란

그 해 봄

내게 머나먼 압록의 강물같이나 바라뵈던 복직이

명절같이나 찾아와

떠나야 했던 교직에 또 몸담아 살면서

귀여운 소년 소녀들에게 평화로이 우리 국어를 가르치던

그 학교

그 교정

그 화단 가운데 수선화 피인

갠 날이라

 

수선화같이

혀끝으로 봄을 핥으려는

꼭이나 수선화의 생리를 지니인 사람을 흠모하기 비롯한

그해 봄

그 갠 날이라

내 생애에서의 영원이란

달리 미련이나 있을 것이 아니어서 ·····

 

빈 운동장 끝

그해 봄

바람 많아 섧게도 꽃대 흔들려 쌓는

한결 감옥에서 그리울, 한결 지옥에서 새로울 ·····

 

수선화 피인 갠 날이라

 

2017711

서울구치소 김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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