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째 북한으로 보내 달라는 여성, 정부는 왜 그를 붙잡아두는가 [다큐로 보는 세상]

입력
 
2021.11.02 04:30
 
 
 
 
 

북한으로 보내달라고 10년째 정부에 요청하는 여성이 있다. 불법인 줄 알면서 여권위조와 밀항을 알아보기도 했다. 간첩이라고 하면 강제 추방을 당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내가 간첩이니 체포하라’고 경찰에 신고해 구속되기까지 했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발은 꽁꽁 묶여 있다. 정부는 매달 꼬박꼬박 ‘출국금지’ 통지서만 보내줄 뿐이다. 대체 무슨 사연일까.

 

한국에 사는 유일한 평양시민

김련희(52)씨는 한국에 사는 평양시민이다. 북한에서 중국을 거쳐 한국에 온 북한이탈주민이지만 엄밀하게 따지면 탈북민은 아니다. 2011년 간 질환 치료를 위해 중국 친척집에 머물던 중 ‘한국에 가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혹해 브로커에게 여권을 건넸다. 첫 단추를 잘 못 끼운 탓에 일은 점점 꼬여갔다. 한국으로 갔다가 돌아오는 일이 쉽지 않을 거란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브로커에게 여권을 돌려달라고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여권을 포기하고 무리를 이탈했다간 다른 탈북민들까지 위험에 빠트릴 수 있어 일단 비행기에 오르기로 했다. 결국 중국, 라오스, 태국을 거쳐 한국에 왔다. ‘사정을 잘 설명하면 다시 북으로 보내주겠지.’ 그의 두 번째 오판이었다.

그는 입국하자마자 곧바로 국가정보원을 찾아가 재입북을 요청했다. 국정원은 이를 거부했다. 김련희씨에 따르면 국정원은 오히려 이렇게 협박했다. "너 간첩 임무 받고 내려왔지.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겠다는 서약서만 써라. 쓰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여기서 나갈 수 없다. 네가 국정원에서 죽더라도 그걸 알 사람은 세상에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결국 그는 전향서를 쓰고 대한민국 국민이 됐다. 사회에 나가면 여권을 발급받아 중국으로 갈 수 있겠거니 했지만 국정원은 그에게 여권을 발급하지 못하도록 했다.

김련희씨는 북한의 평범한 가정 출신이다. 아버지는 TV공장에서 일했고 어머니는 큰 병원의 의사였다. 김씨의 남편 리금룡씨도 대학병원 의사(북한에선 의사의 수입이 일반 공무원과 비슷하다고 한다)로 일한다. 평양에 있을 때 김씨는 양장점에서 일했다. 그가 재입북을 원하는 이유는 단 하나, 가족과 함께 지내고 싶어서다. "억만금을 줘도 바꾸지 못하는 게 가족"이라고 말한다. 한국에서 혼자 살 바엔 죽는 게 낫겠다며 몇 차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했다. 해외로 추방당할 수 있다는 생각에 간첩행위를 했다고 허위자백 하기도 했단다. 법원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유죄 판결을 내렸고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영화 '그림자꽃', 김련희씨의 북한 가족도 촬영

김련희씨의 파란만장한 삶은 지난달 28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그림자꽃’에 상세히 설명돼 있다. 2015년 한겨레 보도로 김씨의 사연을 알게 된 이승준 감독이 2018년까지 3년간 촬영해 완성한 영화다. 영화에는 뉴스로 보도된 김씨의 기구한 사연 이상이 담겨 있다.

김씨가 북에 있는 가족의 생사도 모른 채 살고 있을 것 같지만, 놀랍게도 그는 종종 딸과 통화하며 안부를 전한다. 딱 한 번이지만 북에 있는 가족과 영상 통화를 하기도 한다. 실제로도 제3국을 경유하면 북한과도 얼마든지 통화가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탈북민들은 북에 있는 가족과 전화도 하고 돈도 보낸다. 북한 주민 접촉 행위는 법에 의해 금지돼 있지만 '가족인 북한주민과 회합·통신하거나 가족의 생사확인을 위해 북한 주민과 접촉한 경우’는 사후 신고 대상에 해당해 적절한 신고만 하면 처벌받지 않는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영화에 평양에 사는 김씨의 가족을 찾아가 촬영한 영상까지 담겨 있다는 점이다. 몰래 찍은 것도 아니고 현지의 정식 협조를 받아 촬영했다. 물론 촬영을 이승준 감독이 직접 한 건 아니다. 이 감독은 “영화제를 다니다 알게 된 핀란드 출신 다큐멘터리 감독 미카 마틸라가 대신 북한에 가서 촬영해 보내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화는 탈북민들의 생각이 서로 다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김씨와 만난 한 탈북민 여성은 이렇게 말한다. “전 어린 시절부터 남한 생활을 동경해왔어요. 조직생활이 숨막혔고 늘 자유를 갈망했어요. 북한에서 나오면서 가장 좋았던 게 더 이상 김일성, 김정일 공부를 안 해도 된다는 것이었어요. 언니(김련희)를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에요. 생각이 나와 다를 수 있죠. 생각이 다를 뿐 틀린 건 아니잖아요. 그런 사람을 굳이 붙잡아놔 봐야 제대로 생활이 되겠어요?”

재입북 탈북민 지난 10년간 29명

팬데믹 전만 해도 매해 1,000명 이상이 북한을 떠나 한국으로 들어온 것으로 조사됐다. 코로나19로 인해 지난해는 200여명으로 줄었다. 통일부에 따르면 국내 거주 탈북민은 약 3만 4,000여 명. 그 중 2010~2020년 10년간 북한으로 재입북한 탈북민은 공식 확인된 것만 29명(이 중 재탈북자는 5명)이다. 대부분 제3국으로 출국했다가 북한으로 돌아가는 방식을 택했다. 소재파악이 안되는 탈북민이 900여 명에 달하는 점을 감안하면 당국이 파악하지 못하는 재입북자 수는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정식 귀순 과정을 거쳐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을 정부가 다시 돌려보낸 경우는 없다. 2019년 북한 오징어잡이배에서 동료 선원들을 살해하고 남한 귀순 의사를 밝힌 선원 2명을 북송한 적이 있지만, 이는 귀순 절차를 밟기 전에 해당한다.

재입북을 원하는 탈북민은 김련희씨만이 아니다. 한국으로 망명한 조성길 전 이탈리아 주재 북한 대사대리의 아내도 자녀가 있는 북한으로 돌아가길 원하고 있다. 그러나 김련희씨와 마찬가지로 현행법상 불가능하다는 것이 정부의 공식 입장이다. 고령의 비전향 장기수 11인도 여전히 정부의 무관심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김씨를 바라보는 시선은 그리 곱지 않다. 그에 관한 기사에는 온갖 악성 댓글이 달린다. 입에 담김 어려운 욕설과 무시무시한 위협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영화에서 “북한이 그렇게 좋으면 북한에 남아 있지. 왜 왔어”라고 성난 듯 고함 치는 노년의 남성에게 김씨는 “제발 좀 보내달라”고 외친다.

김련희씨를 붙잡는 게 나을까, 북송하는 게 나을까

탈북민의 북환 송환이 단순히 개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안보는 물론 북한과의 관계, 정부와 여당의 국내 정치와도 연관된 사안이라는 건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누구나 안다. 김련희씨를 북으로 보낼 법적 근거가 없다곤 하나 완전히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탈북민은 아니지만, 지난 2000년 6.15 공동선언 체결 당시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비전향 장기수 63인을 북으로 송환한 적이 있다. 정부의 입장과 국내 여론을 중요하지만, 한국 정부가 인권을 등한시한다는 국제사회의 따가운 시선도 무시할 순 없다.

국가 안보가 중요하다면 김씨를 한국에 묶어 놓는 게 썩 좋은 방법은 아닐 듯하다. 그는 대놓고 북한 체제가 한국보다 낫다고 말한다. 2015년 한겨레와 인터뷰에선 “김일성 주석은 저의 친부모 같은 분”이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영화에서도 그는 “한국에 처음 와서 놀란 점들이 몇 가지 있다”며 “노후대책이 왜 필요한지,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제 집이 있을 텐데 왜 평생 내 집을 마련해야 하는지, 함께 쓰는 고속도로에 왜 통행료를 내야 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쯤 되면 그의 불온한 사상이 퍼지는 것을 방치하는 것보다 북으로 보내는 것이 낫지 않을까.

탈북민들이 간첩행위를 할 수 있으니 모조리 붙잡아둬야 한다면 이들 모두의 출국을 금지하고 국정원 인력을 대폭 확대해 이들을 면밀히 감시해야 할 것이다. 이용선 더불어 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제3국으로 출국 후 돌아오지 않는 탈북민은 2015년 664명에서 2019년 771명으로 4년간 107명 증가했다. 김련희씨를 북에 보내면 위험하다고 말하기 전에 우선 이들부터 다시 붙잡아와야 한다.

검찰은 김씨가 탈북 및 한국 입국 과정에서 하나원(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을 통해 알게 된 조사 방법, 신문사항, 그 위치 및 구조, 입소부터 퇴소까지 과정, 한국 생활 중 알게 된 다른 탈북자들과 신변보호담당경찰관의 신원 등이 북한에 누설되면 북한 대남 공작에 이용될 우려가 있다고 했는데, 안타깝게도 북한은 이미 이 중 대부분을 알고 있을 것이다. 기존에 재입북한 29명의 탈북민들이 알고 있는 정보만 모아도 김씨가 알고 있는 이상일 테니 말이다.

임기 내내 북한의 인권 문제를 외면한다는 비판을 받아온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임기 마지막 국회 시정연설에서 “민주주의, 인권, 평화 등 인류 보편의 가치를 실현하는 데 더욱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인권이라는 인류 보편의 가치를 실현하면서 국가 안보와 남북의 평화를 지키는 방법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비전향 장기수를 송환한 김대중 정부는 일찌감치 그 답을 문 대통령에게 알려줬다.

고경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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