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암 최백근 선생 60주기 추모식 열려

  •  한찬욱 사월혁명회 사무처장
  •  
  •  승인 2021.12.21

 

수암 최백근 선생[사진 : 인터넷 갈무리]

수암 최백근 선생[사진 : 인터넷 갈무리]

 

12월 18일. 마석모란공원에서 <항일운동가, 민족통일운동가 수암 최백근 선생 60주기 추모식>이 개최되었다.

 

2021년 12월 18일, 최백근 선생 60주기 추모식[사진 출처 : 양심수후원회]

2021년 12월 18일, 최백근 선생 60주기 추모식[사진 출처 : 양심수후원회]
 

 

2020년에 2021년은 최백근 선생의 60주기이므로 선생의 삶을 재조명하고 후학들에게 분단된 나라가 자주 민주 평화적 방법으로 통일되어야 한다는 선생의 높고 참된 뜻을 계승할 수 있는 추모식을 태어난 전남 광양과 마석모란공원에서 치르기로 한 바 있다.

그러나 코로나19 거리두기 강화로 마석모란공원에서는 4월혁명 공간에서 최백근 선생과 함께 활동한 생존 사회당 김영옥, 황금수 선생과 사월혁명회, 범민련 남측본부, 양심수후원회 및 4·9통일평화재단 중심으로 약식 추모식을 하였다.

대신 12월 22일 오후 6시에 광양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광양의 항일ㆍ통일운동가 최백근 선생 기일 추모제>를 ‘최백근선생 명예회복위 광양시민들’ 주최로 개최된다.

 

최백근 선생이 보통학교 재학시절 학생시위로 구속되었다는 기사[사진 출처 : 4·9통일평화재단]

최백근 선생이 보통학교 재학시절 학생시위로 구속되었다는 기사[사진 출처 : 4·9통일평화재단]
 

 

선생은 1914년 전남 광양 태안리에서 태어났다.

경남 하동 보통학교 재학 중에는 항일 학생운동으로 구속된다. 이후 광주고보와 와세다대학 야간학부를 다니기도 하였으며, 귀국 후에는 서울로 올라가 서울외국어전문학원을 다녔다. 그러나 항일운동은 멈추지 않고 일본에서는 사회주의 독서회에 관여하였고, 귀국 후에는 전남사회운동협의회에 조직원으로 참가한다.

선생은 해방 후 여운형 선생이 주도한 건국준비위원회(건준)에 가입한다. 이때 건준 최근우 총무부장과 인연을 맺어 4·19혁명 이후 창당한 사회당까지 함께 일을 한다.

미군정 시기에 선생은 1946년 제1차 미소공동위원회가 결렬된 후 여운형과 김규식 주도한 좌우합작운동에 참가한다.

1946년 남조선신민당과 조선공산당 및 조선인민당의 3당 합당으로 남조선노동당(남로당)이 결성되나 선생은 남로당에 들어가지 않고, 여운형이 주도한 근로인민당에 입당한다. 그리고 선생은 근로인민당에서 남북을 오가며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주로 남북제정당 간의 연락 임무를 수행한다.

1952년 12월 6·25전쟁 와중에 선생은 경남지방의 당 재건 임무를 띠고 밀파된 혐의로 경찰에 체포되어 국방경비법으로 1955년 9월까지 복역한다.

선생은 4·19혁명 이후 광양에서 혁신동지총연맹 후보로 7·29민참의원 선거에 민의원으로 출마하여 합법적 공간에서 활동하며 혁신계를 규합하려고 한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된 이력과 이승만에 반대한 민주당의 열풍으로 낙선하였지만 분열된 혁신정당을 통합하기 위해 최근우 선생과 함께 사회당창당준비위원회를 결성한다.

뿐만 아니라 청년운동단체인 통일민주청년동맹을 지도하며 전선 조직인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민자통) 결성에 나서 자주민족통일운동을 견인해 낸다.

5·16 군사쿠데타 후 박정희는 미국의 주구(走狗)임을 증명하기 위해 ‘조국 통일’보다 ‘반공 국시’를 천명한다.

이승만 정권도 미군정과 6·25전쟁을 거치면서 반공이 국시라고 주장하였지만, 쿠데타 세력은 미국의 지지를 받기 위해 혁명공약 첫째에 “반공을 國是(국시)의 제1義(의)”로 삼는다.

지금까지 형식적이고 구호에만 그친 반공 체제를 재정비하고 강화한 것이다.

당시 냉전 시대에 오로지 미국 사대만이 쿠데타를 인정받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하며 박정희는 북을 적으로 규정하며 자발적으로 굴종한다.

그뿐만 아니라 박정희는 4월혁명 공간의 혁신계 인사를 용공 세력으로 몰아 5월 16일부터 21일까지 6일 동안에 무려 2,014명을 체포한다.

그리고 두 달 동안 예비검속된 용공혐의자는 모두 3,098명이나 된다.

혁명검찰부(혁검)는 혁신계 탄압과 제거를 위해 ‘특수범죄 처리에 관한 특별법’ 6조(특수반국가행위)를 이용해 216명을 기소하며 190명을 유죄 선고한다.

특히 혁신계를 바로 용공세력이라 규정하고 대표적으로 북과 일본 총련에 연계되었다고 사회당창당준비위원회 최백근 조직부장과 민족일보사 조용수 사장을 혁검에서 1960년 12월 21일 국가살인하기에 이른다.

최백근 사회당 조직부장은 북과 연계되었다고,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은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와 관련되었다며 사형한다.

 

2018년 4월 11일, 망우리 묘소에서 마석열사묘역으로의 최백근선생 묘소 이장식 [사진 출처 : 민족통일운동가 수암 최백근 선생 이장식 준비위원회]

2018년 4월 11일, 망우리 묘소에서 마석열사묘역으로의 최백근선생 묘소 이장식 [사진 출처 : 민족통일운동가 수암 최백근 선생 이장식 준비위원회]
 

 

두 분은 국가 살인을 당한 후 망우리 공동묘지에 묻혔으나 동지들의 노력으로 조용수 사장은 남한산성 부근에, 최백근 선생은 2018년 4월 11일 마석 열사묘역으로 이장하면서 항일운동가이자 민족통일운동가로서 안식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최백근 선생의 공개적 추도식은 2007년 46주기 때부터이다. 이후 그간 몇몇 지인 동지만이 해오던 것을 추모연대, 사월혁명회가 격식을 차려 민족·통일운동 관련 인사들이 참가한 가운데 계속 추모하고 있다.

생존해 있는 사회당 당무부장 김영옥 선생은 “4월혁명 공간 당시 남북대학생회담을 제안하고 외쳤던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 만나자 판문점’이라는 구호에 민족자주성과 반외세가 빠졌다면서 선생이 그 구호 앞에다 ‘이 땅이 뉘 땅인데 오도가도 못하느냐’를 넣었다”고 한다.

또 한 분의 생존자인 사회당 노동부장 황금수 선생은 “그 시절 최백근 선생은 참으로 걸출한 지도자셨습니다. 박정희는 그야말로 미국의 주구(走狗)로 1979년 10월 26일 부하의 손에 죽을 때까지 국가보안법으로 저지른 학살 만행을 결코 민중은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미국이 발악하는 소리, 무너지는 소리가 신음하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습니다. 멀지 않은 시기에 한반도에 평화와 통일이 곧 도래할 것이니 줄기차게 싸웁시다.”라고 말씀한다.

최백근 선생이 가신지 60년 세월이 흘렀지만, 그때 외쳤던 자주 민주 통일 세상은 아직도 진행중이다.

만일 지금 선생이 살아 계신다면 남북과 북미대화를 가로막고, 평화를 위협하는 대북 적대정책 즉각 철회하고 미국은 내정간섭 말고 미군은 철수하라고 호령하였을 것이다.

최백근 선생이 즐겨 말씀하신 내용을 축약한 묘비명 구절로 추모의 결의를 대신한다.

“사람이 사람을 억압해서는 안 되고 사람이 사람을 수탈해서도 안 되며 나라가 외세의 지배로부터 벗어나야 하고 분단된 나라가 자주 민주 평화적 방법으로 통일되어야 한다”

최백근 선생 약력

1914년 전남 광양군 골약면 태인리(태안도) 출생

1932년 출판법 위반혐의로 진주지원에서 금고 6개월 선고

1936년 서울 외국어전문학원 졸업

1946년 2월 민주주의민족전선 조직국 참가

1947년 5월 근로인민당 참가

1948년 4월 전조선제정당사회단체대표자연석회의 근로인민당 대표단으로 참가(평양)

1948년 8월21일 남조선인민대표자대회 근로인민당 대표로 참석(황해도 해주)

1949년 4월 월북 재북 근로인민당 당무부장 역임

1950년 6월25일 6.25전쟁 이후 남으로 내려옴

1952년 12월 국가보안법 위반혐의 2년형 선고

1955년 9월 4일 만기 출소

1960년 5월 4.19혁명 이후 혁신동지총연맹 중앙조직부장, 7.29민참의원선거 전남 광양 출마, 낙선, 11월 사회                 당 창당발기인·창당준비위 조직부장

1961년 한미경제협정반대공동투쟁위원회 조직부장, 민자통 중앙상무위원

1961년 5월 5.16쿠데타 후 6월5일 체포

1961년 9월14일 혁명재판소 사형 선고

1961년 12월21일 국가살인

현재 북 평양시 신미리 애국열사릉에 선생님의 가묘가 있다.



출처 : 현장언론 민플러스(http://www.minplu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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