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성 선량한 흔치 않은 선각적 지식인”
권재혁 선생 50주기 추도식 및 자료집 발간식 열려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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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재혁 선생 50주기 추도식 및 자료집 발간식’이 4일 오전 마석 모란공원에서 열렸다. 허영구 발간위원회 위원장이 자료집을 권재혁 선생 묘역에 헌정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정의를 세우는 일, 민주와 자유를 쟁취하고 지키는 일, 민족의 자존과 통일을 이루는 일이 천하의 지난사(至難事)임을 마음을 두지 않은 자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백전노장 노투사의 목소리가 떨렸다. “선생께서 50년 전 내일을 가늠할 수 없는 암울한 시대상황과 선생이 당면한 곤궁한 입지에서도 자기 신념을 굽히지 않으시고 죽는 순간까지 분단 조국민의 불행을 아파한 충정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알지 못 하겠다”는 것.


숱한 동료를 사법살인으로 떠나 보내고 살아남은 2차 인혁당 관계자 박중기(85) 추모연대 명예의장이 4일 오전 11시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 모란미술관 교육장에서 열린 ‘권재혁 선생 50주기 추도식 및 자료집 발간식’ 추모사에서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한 것은 권재혁 선생 가족들의 수난사를 언급하면서부터다.


“40여 년이 지난 후 재심판결이 나고 장남 권병덕은 기자의 물음에 첫 마디가 “아버님의 구속후 ‘아’ 자만 봐도 두려웠고 무서웠습니다”하는 이야기는 내 머리에 각인돼 있습니다. 병덕이만 그랬겠습니까. 가족 전체가 그랬겠죠. 가녀린 가슴에 뽑을 수 없는 대못을 박은 이 형벌의 보상은 누가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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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재혁 선생 부인 이종식 여사와 박중기 추모연대 명예의장이 나란히 자리잡았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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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오헌 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이 추모사를 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권오헌 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도 “오늘 이 자리에 나와 계신 구순 넘으신 사모님, 큰 아드님, 따님들 나오셨는데, 이 가정에 대한 것도 사실은 이 자료집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알게 됐다. 한 혁명 가족이 어떻게 일어나고 죽어가고 또 다시 부활되는가, 이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공감했다.


‘권재혁 선생 50주기 추모 자료집’에는 재판기록과 과거사청산위 및 진상규명 활동 등은 물론 인권의학연구소가 채록한 권재혁 선생의 부인 이종식, 아들 권병덕, 딸 권병희.권재희의 인터뷰가 고스란히 실려있다. 뿐만 아니라 1958년 몬타나대 석사논문 「한국의 경제 문제와 1945~1955년 해외 원조」도 우리글로 번역해 포함됐다.


박중기 선생은 “추모연대를 맡고 일을 하면서 내 마음속에 가장 보람있고 감격스러운 한 부분이었다”며 권재혁 선생 묘역을 마석 모란공원에서 찾아내 김영옥 선생과 함께 비를 세우고 가족들과 극적으로 추모식에서 만난 사건을 회고하기도 했다.


독립운동가 집안에서 태어난 권재혁 선생(1925~1969)은 서울대를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하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박사과정을 이수했고, 1960년 5.16쿠데타가 발발하자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해 육사와 여러 대학에서 강의하는가 하면, 한국 수산개발공사에서 일하기도 했다. 1968년 7월 30일 중앙정보부로 연행된 뒤 ‘남조선해방전략당’ 당수로 지목돼 1969년 11월 4일 서대문 형무소에서 사형이 집행됐다.


그러나 2009년 진실화해위원회는 남조선해방전략당사건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을 했고, 2014년 대법원 재심을 통해 처형 후 45년 만에 ‘무죄’가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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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조선해방전략당 관계자 중 유일한 생존자인 노중선 통일뉴스 상임고문이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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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념행사는 마석 모란미술관 교육장에서 진행됐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남조선해방전략당 사건 관계자로서 유일한 생존자인 노중선 통일뉴스 상임고문은 “권재혁 선생은 참으로 심성이 선량한 그런 분이셨다”고 회고하고 “권재혁 선생님은 흔치 않은 선각적 지식인이었다... 탁월한 분석을 통해서, 그 당시 이야기가 됐던 우리사회의 ‘3대 특징, 5대 모순’이라는 이론을 정리해 냈다”고 평가했다.


자료집에 실린 권재혁 선생 11회 진술서에 따르면, “3대 혁명특징의 첫째가는 특징은 38선 즉 휴전선의 定置(정치)이며, 둘째는 미군 및 軍·經(군·경)원조, 셋째는 우리 스스로가 內有(내유)하고 있는 半(반)봉건성”이다. 5대 모순은 ① 미제국주의 대 전체인민, ② 봉건주의 대 민주주의 ③ 매판자본 대 민족자본 ④ 자본 대 노동 ⑤ 지주 대 농민의 모순이다.


노중선 선생은 “사회과학적 이론들을 대중과 함께 운동현장에서 그걸 펼치고자 노력하셨고 청년학생들을 설득하고 동지규합활동을 열성적으로 하셨다”며 “외세에 의해서 분단된 현실을 어떻게 극복하고자 용트림치는 이 시기에 있어서 우리 각자 이런 식의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심각한 자기 반성과 다짐을 하는 그런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권오헌 선생도 “국가보안법도, 파쇼 법정도, 양심수도 없는 자주통일시대를 앞당겨야 할 것”이라며 “오늘 부활하신 권재혁 선생 뒤를 따라서 우리 과제를 열심히 실천해 내자”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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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간위원회를 대표해서 허영구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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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간위원으로 참여한 권재혁 선생의 둘째 딸, 연기자 권재희 씨가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왼쪽은 발간위원인 이계환 통일뉴스 대표.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권재혁 선생 50주기 추모자료집 발간위원회’를 이끈 허영구 전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여기 있는 분들과 함께 1년 정도 준비했다”며 “50년이라는 세월이 한 매듭을 짓는 것이 쉽게 넘어가는 것이 아니구나 생각했다”고 소회를 밝히고 “앞으로 평전도 펴내야겠고, 선생님에 관한 논문도 발표돼야 할 것 같고, 수필집, 소설, 어린이를 위한 이야기 책, 또 권재희 선생도 계시니까 다큐멘터리도 필요하지만 권재혁 선생 영화가 하나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쏟아냈다.


발간위원회에 참여한 둘째 딸 권재희 연기자는 “그저 감사하고 고맙다는 말 밖에. 다른 말이 더 안 떠오른다”며 “여기 오신 분들 마음에 한분 한분 담고, 이 감사함을 담고 기억하겠다”고 사의를 표했다.
권재혁선생50주기 추모자료집 발간위원회는 허영구, 이계환, 전명혁, 권재희, 김익흥, 이단아, 이창훈 등이 참여했다.


이창훈 4.9통일평화재단 사료실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추도식 및 자료집 발간식에서 가족을 대표해 아들 권병덕 씨가 감사의 인사를 했고, 전명혁 전 진실화해위 조사관이 고인의 약력을 소개했다. 서울대민주동문회 관계자와 등이 추모발언에 나섰고 가수 박준 씨는 ‘나의 살던 고향’ 등 추모곡을 헌정했다.


그러나 장남수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 회장은 건강이 여의치 않아 추모사에 나서지 못했고, 권오헌 선생은 병원 진료를 위해 자리를 먼저 떴고, 추모발언에 나선 고령의 노투사들도 기력이 예전 같지 않아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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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가 한겨레 시론에 글을 쓴 지 10년 만에 권재혁 선생 묘역에 술을 올리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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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배와 헌화를 마친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남겼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기념행사를 마친 참가자들은 모란공원 권재혁 선생 묘역으로 이동해 참배, 헌화했다. 특히 10년전 <한겨레> 시론에 “죽은 뒤에도 전략당 사건의 권재혁이라 불려야 하는 젊은 경제학자의 40주기에 술 한잔을 올린다”고 적었던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10년 만에 권재혁 선생 묘역에서 술 한잔을 올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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