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두 개의 8.15를 보는 시각

2013.07.31 16:58

anonymous 조회 수:2392

두 개의 8.15를 보는 시각
<기고> 광복절과 ‘건국절’


한상권 역사정의실천연대상임대표/양심수후원회장



역사학자 부르크하르트(Jokob christoph Burckhardt;1818~1897)는 역사란 “한 시대가 다른 시대 속에서 찾아낸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 것들에 대한 기록”이라고 했다. 역사학은 사실(事實)을 ‘역사적 의미’라는 관점에서 사실(史實)로 재구성하는 학문이라는 것이다. 결국 과거에 일어났던 수많은 사실(事實) 중에서 무엇이 사실(史實)이 되어야 하는가를 제대로 구분하는 일이야 말로 역사학자의 가장 중요한 임무가 되는 셈이다.


'해방'과 '단정수립', 두 개의 8.15

우리에게는 두 개의 8.15가 있다. 하나는 일제 식민지지배로부터 조선민족이 해방된 1945년 8월 15일이다. 해방은 일제 식민지하에서 계속된 민족해방운동의 성과이자, 강대국 사이의 모순으로 인한 제2차 세계대전의 소산이었다. 이민족에게 강탈당한 주권을 36년 만에 되찾은 이날을 우리는 광복절로 기리고 있다. 다른 하나는 해방 이후 3년 동안 지속되었던 미군정이 종식되고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한 1948년 8월 15일이다. 남한만의 단독정부를 수립하는 과정에서 제주 4.3항쟁을 비롯하여 많은 반대 투쟁이 있었다. 이 때문에 해방의 감격을 노래한 글은 많지만 정부수립을 축하하는 것은 거의 없다. 지금까지 두 개의 8.15 가운데 식민지 조선이 일제로부터 해방된 1945년 광복절을 경축일로 기려왔다. 불행하게도 해방은 1945년 8월 15일 하나인데, 건국은 1948년 8월 15일과 1948년 9월 9일 등 둘이 되는 상황이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된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절’이라 이름하고, 광복절보다 이 날을 경축일로 기려야 한다는 주장이 뉴라이트를 중심으로 제기되었다. “대한민국이 환갑 잔칫상을 받는 해”라고 주장하는 2008년, 한나라당의 정갑윤·정두언·조전혁 의원 등 13명이 “8월 15일을 광복절이 아닌 ‘건국절’로 기념하자”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국경일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 법률안’을 국회에 발의하였다(2008.7.3.). 이들은 8월 15일을 광복절이 아닌 ‘건국일’로 기념하여, △반세기만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룩하는데 근원이 된 자유민주 건국이념을 새롭게 가다듬고 △건국정신을 드높여 대한민국 정체성과 정통성을 수호하며 △헌법정신에 맞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자연스럽게 국민의식 속에 자리 잡게 함으로써 △자유와 번영이 넘치는 미래지향적인 대한민국을 추구함과 동시에 국민의식통합과 국가발전의 의식을 고취시켜야 한다고 하였다. 요컨대 건국절을 국경일로 기념하는 것이 대한민국 정통성과 정체성을 수호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주장이다.


1948년, 대한민국 '건국' 아닌 '재건'

뉴라이트가 주장하는 ‘건국절’론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1945년의 해방만으로 해방의 진정한 의미가 성취된 것은 아니었다. 해방의 진정한 의미는 1948년 자유, 인권, 시장 등의 인류 보편의 가치에 입각하여 대한민국이 세워짐으로써 비로소 확보될 수 있었다. 지난 60년간의 대한민국 건국이 한국인의 삶을 자유롭고 풍요롭게 만들었다. 앞으로 다가올 통일한국도 대한민국의 이념에 입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한 시각에서 광복절의 역사적 의미를 미래지향적으로 고쳐 생각해야 한다. 종래 광복절을 해방절로만 기억해 온 것을 지양하고, 보다 중요하게 건국절로 경축해야 한다.(교과서포럼, 《대안교과서 한국‧근현대사》, 2008, 144쪽)

건국절을 광복절보다 더 중요하게 경축해야 하는 까닭은 △1948년이 대한민국 건국 원년이라는 점 △해방의 진정한 의미가 대한민국이 건국됨으로써 비로소 확보되었다는 점 △대한민국 건국이념이 미래 통일한국의 이념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라는 점 등의 세 가지이다. 과연 이러한 주장이 타당한지 검토해보겠다.

먼저 대한민국 성립기점이 1948년이라는 주장이다. 이러한 입장은 뉴라이트 뿐만이 아니라 이명박 정부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8.15경축사에서 ‘(올해는) 대한민국 건국 60년’이라고 하였으며, 각계 원로와 전문가를 중심으로 ‘건국60년기념사업위원회’를 발족시키고 여러 가지 기념사업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1948년=대한민국 건국 원년이라는 주장은 그토록 강조하는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 된다. 제헌헌법은 그 전문(前文)에서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3․1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 독립 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라고 하여, 1948년에 수립하는 대한민국 정부는 1919년에 수립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여 ‘재건’ 즉 다시 세우는 것임을 분명히 밝혔기 때문이다. 헌법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1948년에 나라를 세운 것이 아니라 정부를 수립한 것이며, 이 해는 건국원년이 아니라 건국 30년이다. 1948년 정부수립을 선포할 당시, 이승만 대통령을 포함해 어느 누구도 ‘건국’을 표방하지 않았다. 정부수립 직후, 1948년 9월 1일자로 관보 1호가 나왔는데 그 간기(刊記)는 “민국 30년 9월 1일”이다. 민국이란 대한민국의 연호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1948년을 건국의 해로 했을 때 생기는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1948년을 건국의 해로 잡으면 연합국, 즉 다른 강대국들이 한국을 해방시켜주고 그 덕분에 나라를 세운 타율적인 국가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제의 수많은 학정에도 불구하고 1919년 3.1독립만세운동을 일으키고 그 힘을 몰아서 나라를 세웠다고 해야만 참다운 독립된 나라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이승만은 아주 분명하게 지적하였다.

제헌헌법이 1948년 정부수립을 ‘재건’이라고 한 것은 대한민국의 정통성이 독립운동으로부터 나온 것임을 내외에 천명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1948년=건국원년은 항일독립운동의 전통을 부정하는 것이 된다. 건국절론자들의 이러한 생각은 다음 구절에서 더욱 분명히 드러난다.

“개화기와 식민지시기에 걸쳐 민족의식을 자각하고 근대 문명을 학습하고 실천해 온 근대화 세력과 해방 이후 미국을 따라 들어온 자유민주주의 국제세력의 결합으로 대한민국이 성립하였다.”(위의 책, 134쪽)

식민지 근대화세력 즉 친일세력과 미국식 자유민주주의를 추종하는 친미세력이 결합하여 대한민국을 세웠다는 주장이다. 독립운동세력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신생독립국가에서 정치권력을 장악할 수 있는 일차적 자격을 갖춘 세력은 말할 것도 없이 민족독립운동을 주도했던 세력이다. 자주적인 독립 국가를 수립하여 민족의 자존심을 회복하고 국민들의 신뢰를 얻어 사회통합을 이루며 민주주의를 뿌리내리는 데 있어, 민족독립에의 헌신이 필수적으로 요청되는 덕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건국절론자들은 대한민국을 건립한 세력을 독립운동세력으로 보고 있지 않다. 심지어 “대한민국을 건국한 공로는 1948년 8월 정부수립에 참여했던 인물들의 몫으로 돌리는 것이 마땅하다.”는 주장까지 한다. 이들의 주장대로라면, 단정수립운동은 이승만 한민당과 함께 친일파가 주도했으므로 친일파가 대한민국 건국 공로자가 되어야 한다. 반면 ‘좌우 통합과 남북 협상을 통한 통일정부 수립 운동’을 주도하다가 피살된 여운형이나, “반쪽이나마 먼저 독립하고 그 다음에 반쪽마저 통일한다는 말은 일리가 있는 듯 하되, 실상은 반쪽 독립과 나머지 반쪽 통일이 다 가능성이 없고, 오직 동족상잔의 참화를 격성(激成)할 뿐일 것”이라며 남북협상을 통해 통일정부를 수립하려한 김구는 대한민국 건국 공로자가 될 수 없다. 뉴라이트의 ‘건국절’론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할 뿐만 아니라, 친일파를 건국 유공자로 둔갑시키려는 참으로 불순한 목적을 지닌 정치적 주장인 것이다.


민주주의 전통과 평화통일은 기본 가치

다음으로 자유, 인권, 시장 등 해방의 진정한 의미가 1948년 대한민국이 건국됨으로써 확보될 수 있었기 때문에 건국절을 국경일로 기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와 관련하여 뉴라이트는 “민주주의의 실제 출발 기점은 1948년 8월 대한민국 건국이라고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식민지배 억압과 차별에 맞서 싸우면서 내용을 채워나간 역사적 형성물이 아니라, 미국을 통해 전래된 수입품으로 보는 입장인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출발은 이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미국식 자유민주주의를 수입한 1948년 아니라, 1919년 3.1운동이었다. 3.1운동 이후 운동이념선상에서 전통적인 왕정체제로 복고하려는 복벽주의(復辟主義)가 청산되고 국민이 주인이 되는 민주공화제 이념이 전면적으로 보급되었기 때문이다. 3.1운동을 통해 분출된 민족의 독립의지를 결집하여 출범한 상해임시정부는 최초의 공화주의 정부였다. 같은 해 4월 11일에 선포된 「대한민국 임시헌장」은 “대한민국의 인민은 남녀 귀천 및 빈부의 계급이 없고 일체 평등임”을 선언하였다. 새로 건국할 민족국가의 기본방향이 평등사회 건설에 있음을 밝힌 것이다. 임시정부에서 등장한 평등 이념은 제헌헌법에 지대한 영향을 주어 대한민국이 지향하는 기본가치가 되었다. 제헌헌법은 다른 민주주의 국가와 같이 정치적‧법률적으로 민주주의국가를 수립하고자 하였을 뿐만 아니라, 경제적‧사회적으로 실질적인 민주주의 국가를 수립하고자 하였다. 제헌헌법은 형식적·정치적 민주주의가 약자의 경제적 불평등을 해결하지 못한다고 보고, 실질적·경제적 평등을 지향하는 사회민주주의를 채택하였다. 이는 대한민국이 표방한 민주주의가 단순히 미국에서 직수입한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독립운동의 전통을 반영한 역사성이 있는 민주주의였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대한민국 건국이념이 미래 통일한국의 이념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건국절을 기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건국절론자들은 “통일은 반드시 지난 60년간 대한민국이 지키고 가꾸어온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원리를 토대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한다. 자유민주주의체제에 입각한 흡수통일론을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7.4남북공동선언 직후에 마련된 유신헌법에서 평화통일의 책무를 민족의 지상과제로서 헌법상 의무화하였다. 남북한의 통일은 평화주의에 기초한 통일이어야 한다는 평화통일의 원칙이 대한민국 통일의 기본원칙인 것이다. 2000년 6.15공동선언을 통해, 남북의 정상들은 국가연합 내지 낮은 단계의 연방이라는 중간과정을 거쳐서 통일로 간다는 점에 합의하였다. 그리고 2007년의 제2차 남북정상회담과 10.4선언을 통해, 민족의 존엄과 이익을 위해 6.15공동선언을 고수하고 적극 구현할 것을 다짐하였다. 남북 간의 화해와 협력, 공존과 불가침이라는 시대적인 흐름에 발맞추어 평화체제구축과 남북연합건설이 앞으로의 핵심 의제인 것이다. 이에 반해 건국절론자들의 흡수통일론은 1950년대에 이승만이 주창하였던 북진통일론과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써, 낡은 냉전시대의 산물이다. 민족 간의 상생과 협력을 지향하는 통일민족주의적인 관점이 아니라, 대립과 갈등을 부추기는 분단국가주의적인 입장인 것이다.


'건국절'론, 위험천만한 발상

헌법은 임시정부의 법통을 대한민국의 정통성으로 선언한다. 헌법이 그 동안 9차례 개정되었지만,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였다”는 전문내용이 부정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은 불굴의 독립운동정신에 있다는 것이다.

또한 헌법전문에서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라 한 것처럼 대한민국은 제헌헌법에서부터 자본주의의 폐해를 막기 위해 사회복지국가를 지향하였다. 대한민국이 지향하는 민주주의는 사회적 약자의 자유를 보장하는 정치적·사회적·경제적 민주주의인 것이다.

게다가 헌법전문에서 “조국의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 한다고 한 것처럼, 대한민국은 평화통일과 평화주의를 지향한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자유와 평등, 민주와 평화를 추구하는데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헌법 정신에 비추어 볼 때, 항일독립운동의 흐름, 민주주의의 전통, 평화통일 등을 부정하는 건국절론은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위협하는 참으로 위험천만한 주장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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