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만의 산행, 다시 금강산에 가려면 계속 산행할 수밖에...'

[산행기] 6.15산악회 2022년 1월 북한산

  •  리정애 
  •  
  •  입력 2022.01.18 23:38

 

리정애 / 6.15산악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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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산악회 2022년 신년 산행은 북한산 코스였다. [사진제공-6.15산악회]
 

3년 만의 6.15산악회 산행

얼마만의 ‘6.15산악회’일까? 생각해보니... 3년 만인 것 같다.

실은 그 동안 몇 번이나 참가하려고 했었다. 그 증거로 몇 년 전에 등산화와 배낭을 새로 장만했었다. 신혼 때 장만한 등산화는 다 떨어졌고 계속 쓰던 배낭도 지퍼가 고장 났다. 배낭은 박윤경 언니가 주셨고 등산화는 운동화로 산을 다닌다고 쓴 산행기를 보신 양심수후원회의 도상록 형님이 용돈을 주셔서 산 것이다. 난생처음 가져본 등산화였고 남쪽의 많은 산들을 함께 했다. 그 후 등산화로서의 삶은 끝났지만 우리 농활지인 춘천에서 작업화로서 제2의 인생을 살게 되었다. 그때 등산화를 사고 남은 돈으로 내 등산복과 남편 김익 씨 등산복까지 장만했고 평소에도 잘 입고 있다.

3년 만에 만나게 되는 회원 분들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설레는 마음으로 집합장소로 걸어가는데 처음 만난 사람이 김래곤 형님이었다. 래곤이 형한테는 미안하지만 솔직히 그렇게 반갑지 않았다. 그전에도 몇 번 봤었고 연락을 주고받았기 때문이다. 사실 이번 산행에 참가하게 한 장본인이다. 작년 11월 초, ‘남쪽에서 제일 긴 감악산 출렁다리에 갈 거니까 같이 가자’고 연락을 해오셨다. 이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곳이라 가겠다고 약속했는데 김익 씨도 일이 생겼고 나도 등산할 수 있는 몸상태가 아니라서 못 갔다. 게다가 12월 산행도 취소됐지만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가기 싫어하는 김익 씨를 회유하고 협박하면서 겨우 설득시키고 드디어 3년 만에 이번 산행에 참가하게 된 것이었다.

집합장소에 도착하자 우리 얼굴을 보고 놀라면서도 김재선 대장님과 박윤경 언니가 열렬 환영을 해 주셨다. 진짜 대장님을 많이 보고 싶었는데... 실은 태릉을 지나갈 때마다, 추어탕을 먹을 때마다 대장님 생각이 많이 났었다.

윤경이 언니는 “진짜 얼마만이니~!!”라고 하면서 김익 씨 팔을 꽉 잡으면서 격하게 반기셨다. 나한테도 격하게 반겨주시려고 하길래 위험을 느낀 나는 잽싸게 몸을 피하며 “언니! 저 화요일에 백신 맞았어요!!”라고 방어를 했다.

내가 쉬고 있는 동안, 우리 선생님들도 다 은퇴하시고 세대교체? 회원교체가 많이 돼서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기다려 봤지만 산행 때마다 나를 늘 반겨주신 통일뉴스의 김익흥 국장님과 이계환 대표님, 그리고 형님들은 결국 오지 않으셨다.

래곤이 형이 처음 뵙는 분들에게 나를 소개해 주셨는데 “여기는 재일교포고...” 바로 그때 대장님이 “그러면 혼나! 교포가 아니라 동포라고 해야지!”라고 하셨다. 역시 대장님! 근데 내가 대장님한테 그렇게까지 말한 적이 없는데... 아무튼 래곤이 형, 아직 멀었네. 그렇지만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괜찮아요. 나도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좀 부드러워지고 있다.

결국 보고 싶었던 분들 반도 못 보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공포의 시간이 왔다. 설렜던 마음은 후회로 바뀌었다. 내가 동네 뒷산이라고 북한산을 너무 얕보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도 정상은 800m급, 서울에서 가장 높은 산인데 말이다.

남쪽을 ‘우리나라’라고 부르지 못하는 이유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산은 어디죠?” 12월에 참가한 성북구 ‘환경 아카데미’에서 강사가 질문했다. 당연히 “백두산이에요!”라고 대답하려고 했는데 사람들이 다 “한라산이에요!”라고 말했다. 엥? 백두산보다 한라산이 높다고? 바로 왜 한라산인지 알게 되어 머리를 맞은 것 같았다.

나에게 여기가 ‘우리나라’가 아닌 것처럼 남쪽사람들 또한 여기만이 우리나라라는 것을 새삼스레 깨닫게 된 일이었다. 분단이 너무 오래되어 반쪽짜리, 이 섬과 다름없는 조그마한 땅이 ‘우리나라’가 되고 말았다. 가끔 김익 씨가 말실수로 남쪽을 ‘우리나라’라고 지칭해서 혼난다. 그런데 나 또한 김익 씨 앞에선 남쪽사람들한테 말하는 것처럼 ‘공화국’이라고 하지, ‘우리나라’라고 부르지 않는다. 가족들, 동포들 앞에선 ‘우리나라’라고 하는데 말이다. 나와 김익 씨 사이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38선이 존재하는 것일까? 진짜 갈 길이 멀다.

 

등산로 입구에서. [사진제공-6.15산악회]

등산로 입구에서. [사진제공-6.15산악회]
 

 

이번 코스는 평창동에서 시작해서 일선사 → 대성문 → 정릉동으로 내려오는 일정이었다. 출발하자마자 아직 북한산은 멀리 있는데 급한 오르막과 맞닥뜨렸고 평창동 부잣집의 요새와 같은 담벼락보다 높은 긴 계단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출발하면서 김익 씨가 ‘계단, 계단’ 하는데 뭔 말인가 했다. 윤경이 언니가 말했다. “익아, 이게 니가 말한 계단이다!”

몇 번이나 와 봤는데 왜 이것을 몰랐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도저히 끝까지 갈 자신이 없었다. 며칠 전에 코로나19 백신을 맞았는데 특별한 후유증은 없었으나 몸상태가 완벽하다고 할 수 없는 상태라고 핑계를 대고 싶었다. 버스로 10분만 가면 우리 집인데 약속도 지켰으니까 이제 집에 가도 되지 않을까, 갈까 말까 고민하다가... 이제 금강산에 가지도 못하는데 과연 이 산행을 할 의미가 있을까? 운동이야 둘레길을 걸으면 되는 거고... 그러다가 어느새 등산로 입구로 도착해 버렸다. 여기까지 왔으니까 정릉동으로 갔다가 집까지 걸어가면 되겠다고 너무 쉽게 생각한 것이 큰 오산이었다.

금강산 수정봉도 양희철 선생님, 권오헌 선생님에 이어 3등으로 올라가며, 한때는 ‘6.15산악회 다람쥐’로 이름을 날린 내가 참으로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앞서가는 래곤이 형이 보인다. 흙색 얼굴로 숨을 헐떡이면서 겨우 올라온 래곤이 형한테 “괜찮으세요?”라고 걱정한 여유를 부리던 때가 참으로 그립다.

일선사로 가는 갈림길에서 대장님이 기다리고 계셨다. 덕분에 나는 일선사로 올라갔다 오는 급한 코스를 생략할 수 있었고 음료수를 마시고 한숨 돌렸다.

드디어! 대성문에 도착해서야 내가 몇 번이나 온 것이 생각났다. 그 옆의 평지에서 점심을 먹게 되었다. 도시락 메뉴는 제육덮밥하고 이날을 위해 89학번 선배님이 운영하시는 인천의 실내 낚시카페, ‘도시어부 주안점’에서 얻어온 컵라면이었다. 겨울 산에서 먹는 컵라면은 최고였다. 어릴 때 가족으로 간 오사까의 가짜 금강산 정상에서 먹은 카레 생각이 났다. 나는 카레를 별로 안 좋아하지만 추운 날씨에 등산한 후 먹은 카레 맛 또한 최고였다. 대장님의 두릅장아찌, 윤경이 언니의 수제 커리 러스크(처음 먹어봄), 그리고 많이 사와서 나눠 주신 김밥도 맛있게 먹었다.

멀리 보이는 백운대 모습도 볼만했지만 대성문에서 쭉 성벽이 이어지는 것을 보니까 가슴이 두근거렸다. 내리막길에 돌이 많고 눈까지 쌓여있어서 조심해야 했지만 사진을 찍지 않을 수 없었다. 일제에 이어 박정희 정권 시대에도 많은 문화재들이 훼손되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성벽이다. ‘그나마 잘 보존되어 있다’는 성북구 구간도 여기저기 잘려나가 있어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프고 분노하는데 산속이라 그런지 그나마 길게 이어진 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철거민 생활을 각오하다’

남의 땅에서 나고 자랐지만 내 우리 문화재 사랑은 결코 우리땅 사람들에게 뒤처지지 않는다. 성벽 근처에서 살고 싶어서 성북구 삼선동에서 6년 살았다. 박원순 전 시장을 믿고 재개발이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결국 2년 전에 쫓겨났다. 11월이었다. 겨울에 이주시키지 않다는 부동산 말은 거짓말이었다. 철거민 생활을 각오했다.

‘재일동포 리정애, 철거민이 되다!’ 통일뉴스 기사 제목이 떠올랐다. 동네 곳곳에 드라마에서 본 빨간 가위표와 ‘철거’의 글자가 생기기 시작했다. 드라마의 세계가 현실이 되었다. 엄청난 쓰레기 산도 생겼다. 겨울이라 천만 다행이었다. 누가 불을 지르면... 공포심을 부추겨서 빨리 쫓아내려고 하는 구나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빌라 건물의 다른 집들은 다 이사를 가서 우리집과 3층 할머니만 남았다. 우리는 세입자이지만 할머니는 집주인이었다. 알고 보니 우리집 집주인은 할머니의 며느리였고 삼선동을 한눈에 내려다보는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다. 할머니 장남은 동네에서 가장 큰 부동산 사장인 것은 알고 있었는데 설마 집주인과 부부 사이라고는 꿈에도 몰랐다. 그리고 차남이 그 몇 년 전에 빌라로 들어와서 살게 되었다. 이것 또한 드라마에서 보는 것과 같은 꼼수였다.

이제 전철연(전국철거민연합회)에 가입해야 하나? 날씨는 춥고 마음은 급하고... 김익 씨가 늘 말한 ‘집 없는 서러움’을 뼈저리게 느꼈다. 결국 4월까지 버티다가 갈 곳이 생겨 이사비를 받고 이사했다. 불법 쓰레기 투기, 벌레, 결로 등등, 문제가 많은 집이었지만 결혼 후, 처음으로 제대로 같이 살게 된 집이라 도배도 하고 집들이도 한 곳이었다. 그 자리엔 롯데캐슬이 들어서게 된다. 낙산공원에서 시내를 바라보면 아파트단지가 별로 없어서 멀리까지 잘 보였는데 이제 커다란 아파트단지가 우리 앞을 막아설 것이다.

점심을 먹고 하산하기 시작했을 때, 대장님이 미소를 지으시면서 “정애씨, 오랜만에 왔으니까 산행기 써 볼까요?”라고 하셨다. 내가 방심했었다. 오후에 대장님이나 대표님이 미소를 지으면서 다가오시면 피했어야 했는데. 하도 오랜만이다 보니까 까맣게 잊고 있었다. 대장님이 부탁하시는 데 감히 거절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이번 산행기는 내가 쓰게 된 것이다.

 

권오헌 6.15산악회 회장.[사진제공-6.15산악회]

권오헌 6.15산악회 회장.[사진제공-6.15산악회]
 

 

헤어질 때, 함께 산행을 못해 아쉬웠는데 권오헌 선생님이 오셔서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건강하신 것 같아 천만 다행이다. 다들 ‘다음 산행에서 또 보자’고 하셨지만 몸이 이전 같지 않아 너무나 힘들었고, 이제 B팀이 없는 상황에서 제대로 산행을 즐기고 싶은 분들에게 민폐가 될 것 같아서 급하게 올라가느라 더 힘들어서 앞으로 참가하는 것은 힘들 것 같아 확답을 못 드렸다.

여기서 1월 산행기를 마치려고 했는데... 오마이뉴스에 올라오는 긴 기사를 읽을 때마다 너무 길어서 도중에서 포기할 때가 많아 글을 짧게 써야 한다고 노력하는 중이다. 그런데 너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 짧게 하지 못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바뀐 내 국적

실은 작년 12월에 알게 되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 내 국적이 바뀌고 있었다. 주오사카영사관의 창문도 없는 지하방에서 3시간 내내 '국민등록만 하면 당장이라도 보내 주겠다'던 영사의 말이 떠오른다.

백신을 맞는 과정에서 알게 된 사실이었다.

우리 선생님들이 내가 백신을 맞을 수 있을지 걱정하셨는데 김익 씨는 자신 있게 “정애는 못 맞습니다.”라고 대답했었다. 얄미웠다. 나도 차라리 백신 맞고 잘못되어 죽으면 4천 만엔 주는 일본에서 맞는 게 낫다고 생각했었다.

그 후 외국인처럼 얀센이면 맞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평소 외국인보다 못한 취급을 당하고 살다 보니까 화이자가 아니면 안 맞겠다고 버텼다. 방역지침이 강화되면서 백신을 안 맞으면 외식을 못하게 된다고 하여 마음이 급해졌는데 확인해 보니까 화이자를 맞을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여기저기 문의를 해 봤는데 사전에 몇 번 전화로 문의를 했을 때 들은 말과 달리 구청, 보건소, 주민센터를 왔다 갔다 해야 했다.

‘출입국에 관한 사실증명’이라는 증명서가 필요해서 주민센터에 찾아갔다. 이제 10년 정도 남쪽에서 살았지만 그동안 나와 전혀 관련이 없는 곳이었다. 나름 긴장하면서 직원에게 용건을 말했다. 이름과 국적을 물어봐서 대답했는데 역시나 직원이 되물었다. “아~ 조선족...” ‘조선족이면 국적이 중국이잖아!’ 그렇게는 말 못하고 아주 정중하게 늘 하던 대로 ‘조선적’의 역사부터 설명했다. 역시나 이해를 못한다. 당연히 이해할 리가 없지.

직원은 이제 이해하기를 포기하고 계속 입력을 시도하는데 몇 번 해도 조회가 안 된다. ‘그럼 외교부에 문의해 달라’고 하는데 완전히 무시하고 같은 작업을 되풀이하고 있다. 어쩔 수 없이 내가 외교부 여권과 법무팀에 연락해 봤는데 받지 않는다. 시계를 보니까 5시를 3분 지났었다. 다른 곳은 6시까지 하는데 외교부는 5시만 되면 문을 닫는다. 어떡하지? 역시 나는 백신을 못 맞는 건가? 낙담하는 척하면서 내심 기뻐하던 그때, 직원이 어딘가에 전화를 건다. 통화하면서 다시 입력을 시도하는데 해결된 것 같다. 직원이 전화를 끊고 따지듯이 말했다. “국적이 ‘한국’이시잖아요!”

 

북한산 인수봉이 보인다. [사진제공-6.15산악회]

북한산 인수봉이 보인다. [사진제공-6.15산악회]
 

마법 같은 일이 벌어졌다. 국적이 바뀌면서 주민등록번호도 새로 생겼다. 내 여행증명서 상의 주민번호란에는 750108-2000000이라는 숫자로 채워져 있다. 어디 가서 주민번호가 필요할 때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말하면 황당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그런데 이번에 백신을 맞으면서 0990XXX이란 새로운 주민번호가 생겼다. 성별불문, 신세대 번호인가! 했는데 알고 보니 1899년 이전에 태어난 사람들의 번호라고 한다. 내가 외할머니 번호를 대신 받은 느낌이다.

아무리 내가 ‘조선’의 후예라지만 이건 좀... 그나저나 진짜 제대로 쓸 수 있을지 어디 써 보고 싶지만 어디서 써야 할지 잘 모르겠다. 나도 남쪽 물을 너무 오래 마셨나 보다. 국민의 모든 것을 번호로 관리한다는 게 참 무섭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전보다 거부감이 덜하다. 물론 서류에 적힌 국적을 보니 기분이 나빴지만 말이다.

드디어 내 불편한 생활도 끝을 보는 건가? 어머니가 늘 걱정한다. ‘더 나이 먹으면, 아프면 어떡할 거냐?’ 나도 불안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지금도 여기저기 아픈데 큰 병에 걸리지 않게 그날을 맞이할 수 있을까?

진짜 국적을 바꾸지 않고도 주민번호를 주면 그땐 진짜 남쪽도 '우리나라'라고 부를 수 있게... 되진 않겠지.

영사관 직원이 강요한 ‘국민등록’이 뭔지, 어떻게 하는지, 하면 어떻게 되는지 여전히 알 수 없지만 작년 정세가 안 좋을 때, 정권이 바뀔 것 같으니까 누가 나 몰래 해 버린 건 아니겠지? 그땐 진짜 너무 지쳐서 그 꼼수에 넘어갈 뻔 했었다. ‘국민등록만 하면...’ 국적을 안 바꿔도 바로 여행증명서를 발급해 주는 것처럼 말했다. 내가 옛날부터 인내심이 강해서 이겼지, 지쳐서 먼저 포기한 쪽이 지는 싸움이었다. 영사가 3시간 만에 겨우 포기해서 나는 힘겨운 싸움에 이겼다! 나처럼 얌전하고 순진한 토끼가 사슴의 탈을 쓴 노회한 여우에게 이긴 건 진짜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그러나 그때는 결국 여행증명서를 발급받지 못했다. 그럼 내가 진건가?? 그 후 다른 사건도 있어서 ‘리정애만은 절대로 입국 못 시킨다’고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악명 높은 오사카영사관의 블랙리스트의 몇 손가락 안에 꼽히게 되어 내 고난의 세월이 계속되었다.

이것이 바로 내가 남쪽을 ‘우리나라’라고 부르지 못하는 이유다. 법적으로는 나는 ‘동포’, 심지어 ‘국민’이기까지 하는데 현실은 외국인마저 갖고 있는 권리를 주기는커녕 자꾸 배척하려고만 한다. 국가만 그런가. 나름 ‘의식이 있다’고 생각한 적지 않는 운동권 사람들이 오히려 더했다. “그렇게 북이 좋으면 북으로 가지 왜 남에서 살려고 하나.” ‘말이 어눌하다’, ‘발음이 미숙하다’, ‘억양이 어색하다’ 등등, 적어도 내 우리나라에서는 단 한 번도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없었다.

앞으로 6.15산악회 참가 여부는 누가 차기 대통령이 되느냐에

 

철이른 진달래꽃이 피었다. [사진제공-6.15산악회]

철이른 진달래꽃이 피었다. [사진제공-6.15산악회]
 

 

집에 와서 뉴스를 보는데 생각지도 못한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이재명 대선후보가 ‘금강산 관광 재개 및 비무장지대 관광 추진, 남북 철도 및 도로 연결 등을 핵심으로 하는 강원도 공약을 발표했다’는 소식이었다. “2008년 이후 닫혀버린 금강산 관광의 문을 최대한 빠르게 다시 열겠다”고 했다고 한다. 최대한 빠르게? 그럼 올해 가을에는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건데... 솔직히 그동안 이재명 대선후보의 발언 때문에 별로 기대를 하지 않고 있었지만 경기도지사 시절의 공약 이행률이 높은 것을 생각하면... 이건 혹시나 하면... 이렇게 되면...

다시 금강산에 가려면 체력을 키우기 위해서 산행에 참가해야 하잖아!

그 후 ‘스트레이트’를 봤다.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결정타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데미지를 입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여론조작인지 실제로 그런지, 생각했던 것과 달리 너무 파급력이 없었다. 이대로 가면 검찰독재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만일 그렇게 되면 금강산은커녕, 박근혜 정권 당시 여행증명서 발급을 거부당해 출국을 못했던 일이 또다시 벌어지게 된다. 참 걱정이다. 남쪽 대통령 자리 하나에 남북관계는 물론, 내 인생까지 달려있다.

결국, 앞으로 6.15산악회에 계속 참가할지 말지도 차기 대통령이 누가 될지에 달려있다.

 
출처 : 통일뉴스(http://www.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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