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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1일 타계한 비전향 장기수 서옥렬 선생의 영결식이 14일 광주 동구 문빈정사 극락전 앞에서 엄수됐다. 고인의 영결식은 시민사회단체의 ‘통일애국열사 서옥렬 선생 민족통일장’으로 치러졌다. 이 원고는 권오헌 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이 영결식에서 낭독한 추모사이다. / 편집자 주


선생님!

이제 저희들은 선생님께서 그렇게도 사무치게 그리워하셨던 옛 동료 교원이자 동지였고 부인이셨던 강순성 선생님을 찾는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평생 염원이셨을 통일 조국, 그 신념의 고향 그리고 꿈에도 잊지 않으셨던 태길 태현을 만나지 못한 채 어찌 눈을 감으셨습니까.

선생님 운명 소식에 많은 분들이 추석을 앞두고 세상을 떠나셨음을 애석해하지만 정작 저희들이 안타까워할 일은 남북 사이 민족분단으로 발생된 인도주의 문제를 시급히 해결하기로 약속을 하고도 그 이행을 미뤄와 끝내 평생 염원을 못 보시고 가신 안타까움이 더 컸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조국통일투쟁 현장이라면 그 어디든 가리지 않고 달려가시곤 했는데 언제부턴가, 그 발걸음이 더디어졌습니다. 아마 7~8년 전쯤일 것입니다. 이전에는 그렇게도 입이 무거우시더니 오랜 옥고의 후유증이 점점 심해지고 고령의 노환까지 깊어지면서 헤어진 가족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당연히 ‘비전향장기수 2차 송환’에 대한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각하동 작은 아파트에서 요양원으로 옮기시면서 점점 쇠약해지시는 데 반비례하여 신념의 고향에 대한 ‘귀향’과 투병의지도 철저하셨지만 끝내 감옥 후유증과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셨습니다.

선생님은 1928년 1월 17일 전라남도 신안군 팔금도(섬)에서 5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나셨습니다. 고개를 넘고 배를 타고 다니며 당시 심상소학교를 다니시다가 아버님 일터 옮기심에 따라 초등학교 4학년 때 천안 영천국민학교로, 1940년에는 서울 미동국민학교 6학년으로 편입하는 과정을 겪으셨습니다. 이후 1945년 3월 25일 경기상업학교를 150명 중 6등으로 졸업하는 수재이시기도 하셨습니다.

1945년 8.15 조국광복 이후 해방공간에서 선생님께서는 조선은행 목포지점(오늘의 한국은행)에 근무하시면서 부지런히 사회과학 서적을 탐독하셨고 사회경제적 측면에서, 인류의 역사 발전 과정에서의 해방된 조국이 사회주의적 경제 체제로의 지향점을 굳게 믿으셨습니다.

1946년 7월 당시 서울대학 예과 시험과 본과에 합격했으나 구두시험에서 석연찮게 낙방되셨습니다. 당시 미군정에 의한 서울국립대학교안(국대안)이란 교육정책에 선생님께서는 새로운 식민지 교육 정책이라 규탄하며 ‘국대안 반대 투쟁’에 참여하셨습니다.

1947년 고려대 경상대학 경제학과 편입 시험에 합격하고 3학년 때인 1950년 전쟁을 맞게 되셨습니다. 그리고 8월 의용군에 지원, 9월 15일 조선인민군 후방총국 912부대(자동차 운전 양성 부대)에 입대하시게 되었습니다. 1950년 9월 말 일시 후퇴 시기 재령 사리원 중화를 거쳐 평양으로 옮겼으나 이미 평양은 미군 폭격으로 잿더미가 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후 개천, 강계를 거쳐 중국 동북 지역으로 이동 교육 훈련을 맡으셨고 1950년 12월, 신의주를 거쳐 다시 평양으로 돌아와 후방 총국 직속 운수 제 14대로 배치 정식으로 조선인민군 병사가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이때부터 조선민주청년동맹(민총) 가맹 지휘관 추천으로 조선로동당에 입당하셨고 1953년 11월 23일에는 당시 격전 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인민군 상등병으로 제대하셨습니다. 당시 남조선 출신 대학생 및 졸업생들을 민족 간부로 육성하기 위한 고등교육 시책에 따른 것이라 했습니다.

선생님께선 제대와 함께 강원도 천내군 제 4중학교 교원으로 봉직하셨습니다. 이때 같은 학교 교원으로, 원산 사범전문학교를 졸업하고 교원으로 부임했던 강순성 선생님과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되고 매우 사연 많은 밀애 끝에 1955년 교장 선생님 주례로 한 가정을 이루게 되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1955년 12월 김일성종합대학 경제학부 정치경제학과(뒤에 정치 경제 학부로 개편) 2학년 편입 시험에 합격 마침내 공화국 최고 학부에서 대학 생활을 하시게 되셨습니다.(재학 시기 평양시 평남 등 전쟁 복구 사업에 헌신)

이어 1958년 12월 28일 선생님께선 ‘인민경제에 있어 원가의 체계적 저하에 대하여’란 논문으로 김일성종합대학 제 10회 졸업생이 되셨습니다. 이후 1959년 1월 원산 교원대학 정치경제 학부 교원으로 헌신하셨습니다. 남쪽에서는 고려대학교 경상대학 경제학과를, 북쪽에서는 김일성대학 정치경제학부를 나오신, 그리고 원산 교원 대학의 정치 경제학부 교원을 지내셔서 수재 중의 수재임을 보여주셨습니다.

이처럼 학자로서의 학문 연구와 교육 부분의 무거운 짐과는 달리 분단 조국의 자주통일이라는 또 다른 과제 앞에 선생님께선 예측이 가능했던, 험로를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1961년 8월 선생님께선 통일조국의 염원을 안고 남녘 고향 땅에 내려와 부모님 뵙고 돌아가던 중 체포되어 군사재판에서 무기형을 선고 받고 온갖 수모와 박해 받으며 30년 옥고를 치르시고 1990년 9월 29일 감옥문을 나오셨습니다.

선생님의 조국 사랑과 통일 염원은 출소 후에도 이어졌습니다. 광주에서 단칸방 독거를 하시면서 전국 모든 민주화 운동, 인권 운동, 통일 운동 현장을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단순 참가가 아니라 기록하고 촬영하고 연구, 분석, 평가, 방향을 잡는 헌신을 다하셨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나라 안팎에서 벌어지는 정치, 경제, 군사 등 다방면적 정황을 분석 평가하시고, 작은 책자로 정리하여 후대들에게 보내주셨습니다.

선생님께선 자신과 관련된 어떤 개인적인 말씀을 삼가셨습니다. 사실상 의지할 데 없는 무연고 장기 구금 양심수였지만 자신의 그 어떤 경제적 어려움을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혼자 계신 선생님들께 드리는, 비록 적지만, 양심수후원회의 지원 사업을 단호히 사양하셨고 병석에 계신 최근년에야 후원자의 도움으로 후원 계좌번호를 알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언제나 청빈, 정의, 공정의 사표이셨습니다.

선생님!

선생님께서 ‘부치지 못한 편지’라고 하셨던 동료교사이자 동지였고 부인 강순정 선생님께 보낼 편지는 마침내 부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보 내 사랑! … 당신 곁을 떠난 지 38년이 훌쩍 넘는 수많은 세월, 당신은 잊어본 일이 없었소. 앞으로 생명이 다할 때까지!”

이제 선생님께서는 일제강점기에 태어나시어 해방의 감격 순간도 잠시, 분단시대를 겪으셨고 그 과정에서 숱한 고뇌와 고통을 당했습니다. 어떤 죽음을 맞을까 하는 각오도 하시면서 통일되는 그 순간 ‘당신을 부둥켜안고 덩실 덩실 춤추는’ 희망을 간직하시다가 가셨습니다. 올해만도 김동섭(1.23) 선생님, 류기진(5.25) 선생님까지 ‘비전향 장기수 2차 송환 희망자’ 세 분이 평생 염원 못 보시고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다시 한 번 선생님들 영전에 명복을 빌고 선생님들께서 못다 하신 민족적 과제 남은 사람들이 반드시 해낼 것을 말씀드립니다. 이제는 편히 잠드시기 빌겠습니다.

2019년 9월 14일

정의 평화 인권을 위한 양심수후원회 권오헌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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