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시롱 감시롱

민가협 양심수 후원회 2006 역사기행 사전 답사기

2009.05.29 12:42

양심수후원회 조회 수:2202

민가협 양심수 후원회 2006 역사기행 사전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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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가협 양심수 후원회 2006 역사기행 사전 답사기

‘세미야 안녕 많이 컷네“(모세미:2006 민가협 역사기행 사전 답사 최연소요원21개월)
하고 인사를 했다. 세미는 예의상 힐끔 한번 쳐다 봐 주더니 이내 모르는 척 하고 다른 데로 눈길을 돌리는 게 아닌가. 서운한 마음을 감추고 “그럴 만도 하지 1년 만에 보는 건데”하고 스스로 위안을 해본다.

최연소 답사 요원과 최고 답사 연장자(68세 차이 남)를 태운 노란색 승합차가 멈춘 곳은.김포에서 강화대교를 따라 강화도를 들어가면 섬 초입의 강화역사박물관 옆으로 병인양요, 신미양요 당시 전적지인 갑곶돈대가 있다. 그 돈대 아래로 보이는 갯벌이 당시 강화 전역에서 자행 되었던 양민학살 현장 중에 하나인 강화 구대교 옆 갑곳 나루터다. 천주교 순교 성지도 같이 볼 수 있다.

먼저 도착해 기다리고 있던 서영선회장님께서 일행을 환한 미소로 맞이해 주셨다. 서영선회장님은 현재 “강화양민학살 희생자 유족회 대표“를 맞고 계시며 그 당시 어머니가 갑곳 나루터에서 희생 당하셨다 한다. 51년 1월 초 향토방위특공대가 이곳에서 부역혐의자 가족들과 무고한 양민들을 학살하였고 어머니가 그 때 희생된 것이다. 좀 더 자세한 설명은 기행 당일 날 회원들과 함께 하기로 약속하고 일정상 다른 역사 유적지로 발길을 옴겨야만 했다.

“세미야! 자 내리자!” 손을 내밀었더니 그래도 1시간 동안 차안에서 익숙해 졌는지 다가 오는 것이 아닌가! 차에 타고 이동하는 내내 세미 어머님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엄마와 잘 아는 사람 이구나”라고 세미도 느꼈을까. 사람 사는 게 이런 것이 구나 하는 것이 새삼 느껴진다.

5년 전에 처남 일가와 강화도를 찾은 적이 있다. 그 때 보았던 고인돌이 저 고인돌인가? 아니면 이 고인돌인가? 아~ 모르겠다. 망각의 힘은 대단했다.
눈앞엔 집체만한 고인돌이 떡하니 버티고 있다. 이 또한 세월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시간 덩어리다. 최고 연장자인 권오헌 선생님께서 한마디 하신다. ‘예전에 왔을 땐 이런 울타리는 없었던 것 같은데! 저 위에 올라가서 사진도 찍고 그랬어!’ 옆에 있던 세미 아버님께서 한마디 거든다. 자세히는 못 들었다. 아라랑 두리도 저 위에 올라가서 뭘 했다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나만 못 올라 가 보았네. 울타리는 폼으로 있는게 아닌데. 상석에 금이라도 가면 어떡했을려고? 살짝 걱정을 해 보지만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포크레인으로 내리 눌러 도 깨질 것 같진 않다. 왜냐하면 지금 내 앞에 있는 고인돌은 국내에서 가장 큰 강화도 지석묘(고인돌)이기 때문이다. 세계자연유산이기도 한 강화도우의 고인돌은 남방식 고인돌과 북방식 고인돌을 함께 볼 수 있는 특이한 지역이다. 고인돌 축제가 매년 열리고 있으니 자랑스런 한국의 자랑이 아닐 수 없다. (더 많은 정보는 “고인돌 사랑회”에서(http://www.igoindol.net))

저만치 떨어진 곳에서 엄마~~ 아빠~~ 다정하게 부르며 종종걸음으로 손을 뻗어 보이는 세미의 모습은 훈훈한 가족애을 느끼게 한다. 말은 아직 잘 못해도, 왜 마디 단어지만 그 부름을 듣는 엄마, 아빠는 인생의 시름이 녹는다.

그러나, 당장 결정해야 할 큰 고민거리가 생겼다. 바로 숙박과 식사 문제다.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기 위해 고민하는 두 분의 모습은 아름답다.
‘예약 문의 할 때는 비용을 아끼기 위해 인원수를 줄여서 말해야 되요’, ‘큰 방 있습니까?’, ‘큰 방은 얼마구요 작은 방은 얼마에요’ 관광 안내 정보지를 펼치고 숙소와 식당 검색 작전이 시작되었다.
유스호스텔, 노래방 딸린 민박, 블루문, 모모텔, 모여관 등등 가능성 있는 곳을 권오헌선생님과 세미 아버님 핸드폰으로 수십통(통신비용지원해 주나?) 연락을 취하고 5~6 군데를 방문하여 방 크기나 시설, 위치, 경관, 동반한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도로와 떨어진 곳을 고려하여 최적의 숙소“감나무골”와 식당“우리옥”을 정하게 되었다. 넓은 잔디 마당과 연못, 성춘향과 이도령이 되어 봄직한 추억의 받줄 그네(민가협 어머님 복잡한 세상시름 잊고 소녀처럼 그네 한번 띄우고 까르르 웃어 보세요. 처녀 촉각도 오면 왔다지. 이번 역사 기행 놓치시면 후회 할지도 몰라요. 더 이상 밝힐 수 없음. 직접 확인요망)가 그네처럼 앞 뜰에 자리하고 있다.
고민하고 있는 사이 석모도로 떠나는 배시간과 가격을 알아보러 외포리 선착장으로 발길을 돌릴 시간이다.

새우깡 한 봉지를 샀다. 석모도 들어갈 때 갈매기와 대화할 때 줄 선물이다. 석모도는 선덕여왕 때 건축되었던 보문사를 답사하기 위해서다. 기다리는 사이에 5분에 4를 먹어버렸다. 맛이 있군. 그래서 갈매기들이 좋아하나? 어쩌면 좋으랴 그대들도 가공식품의 희생자가 되었으니! 출발하기 5분전 1봉지를 부랴부랴 더 사서 배에 올랐다. 기행 땐 버스가 통제로 배에 승선하게 될 것이다. 시간을 제진 않았지만 외포리를 떠난 배는 갈매기와 대화하면서 새우깡 한 봉을 다 던져 주고 나면 도착하는 짧은 거리다.

강화도(면적 302.14㎢, 남북길이 30㎞, 동서길이 12㎞, 해안선길이 99㎞)는 섬 같은 느낌이 안 든다. 석모도는 작으니까 섬 같겠지 생각했는데 석모도(면적42.841㎢, 해안선길이 41.8km) 또한 도로가 나 있고 양쪽으로 논밭이 보이는 것은 매한가지다. 그러나 섬에서 다시 부속된 작은 섬으로 가는 기분은 또 다른 섬 여행의 맛이다.

드디어 보문사 주차장에 도착. ‘세미야 내려야지’, 이제는 손도 잡고 안아줘도 가만 있는다.
매표소에서 보문사 대웅전으로 올라가는 길은 운동하기에 아주 좋다. 폐활량을 높이는데 아주 도움이 된다. 그래서 세미 아버님과 어머님께선 올라갈 수가 없는 형편. 그래서 권오헌선생님과 단 둘이서 올라갔다. 올해 칠순을 맞이한 권오헌 선생님은 20대 젊은이의 모습이다. 너무나 잘 올라 가신다. 부끄러웠다. 그러나 말은 못했다. 운동 좀 해야지!

보문사는 635년(선덕여왕 4)에 회정(懷正)이 창건하였다고 한다. 5분 남짓 올라오면 홍예문이 보이고 홍예문을 들어서면 천연 동굴에 나한을 모신 넓이가 97평이나 되는 보문사 석실이 보인다. 안에는 석가모니불, 미륵, 제화갈라보살, 나한상을 안치한 23개소의 감실이 있다. 신라 선덕여황 때, 한 어부가 고기를 잡다가 그물에 올려 진 것들이라는 보문사 창건 전설이 있기도 하다.
그 밖에도 일반 맷돌의 2배 크기인 보문사 맷돌, 보문사 천인돌, 보문사 눈썹바위, 보문사 마애석불좌상 등을 볼 있다. 마애석불좌상(磨崖石佛坐像)은 1928년 절 뒤편 절벽에 새긴 것으로 높이 32척 너비 12척의 관음상을 새긴 것으로 은 지방유형문화재 제65호로 지정되 있다.
보문사 석실을 배경으로 번갈아 가면서 독사진도 남겼다. 그런데 사진기가 필름을 사용하는 필카였다. 오래된 물건을 봤을 때 느끼는 그런 느낌. 그런데 좀 우끼긴하다 디카가 언제부터 나왔다고! 13년전 형의 필카를 잃어버린 생각이 난다. 문득 이 생이니 나는 것은 왜지?

시간은 지나고 나면 총알과 같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정말 그렇다. 아침 일찍 일산을 출발한 오늘의 일정도 막바지에 이르렀다.
석모도를 빠져나와 기행 이튼날 가게 될 코스는 외포리 선착장에 도착하면 외포리를 출발하여 남쪽 해안로를 지나 동쪽 해안로로 이어지면서 곳곳에 위치한 초지진, 덕진진, 광성보, 오두돈대, 화도돈대, 용진진, 갑곳돈대, 역사 발물관 등을 둘러보고 강화 신대교를 건너
서울로 향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최고 연장자와 최연소 답사 요원이 함께 했던 특별한 역사기행 사전 답사는 어둠이 내려 보이지도 않는 강화 구대교를 뒤로 하고 아침에 출발했던 일산으로 향한다.

얼마 전 라디오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연락 안하든가 아니면 연락을 못해서 3년이 지난 친구에게서 전화가 오면 당신의 반응은 어떤가요? 대부분의 사람이 이런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웬 일이야? 예가 무슨 부탁이 있어서 전화 했나? 등등의 속마음을 숨기면서 반가운 척 한다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전화 받는 본인도 하지 않았으면서 말이다.

3년을 잊어버리고 지내도 이럴 지언데 세월이 그렇게 흘렀음에도 서영선회장님은 어제일 처럼 그렇게 기억하고 계셨다. 55년 반세기가 지났건만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는 것은 억울한 죽음과 그 시신 조차도 수습하지 못한 상황을 만들었던 가해자에 대한 원망일까? 아마도 지금까지 가해자도 희생자도 드러내기 꺼려했겠지만 지금이라도 진상을 규명하고 왜곡된 역사를 바로 잡으려는 작은 소망일 것이다.

2006-10-26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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