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시롱 감시롱

기행기-우리도 그들처럼

2009.05.29 12:13

양심수후원회 조회 수:1923

기행기-우리도 그들처럼
글쓴이 : 여혜정    
  이번 기행에서
매일 한 번씩이라도 오감시롱 방에 들어와 사는 모습들
두루 살펴보자고 철썩같이 약속해놓고도 이제사 들어왔네요.

어쩌다보니 덜컥 기행기를 떠맡고서는
이런 일, 저런 일에 치이다 보니 마감일 다가와서는
다른 이에게 떠맡길 수도 없게되고...
후원회 김은 간사님 독촉전화를 받고서야 부랴부랴
그 이틀간의 좋았던 시간을 기억해냅니다.
모두 행복하시죠?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오감시롱 기행을 다녀와서>

바다와 동굴, 들풀-우리도 그들처럼…


6월 25일 토요일, 우리는 강원도 삼척을 향해 아침 일찍 서울을 떠났다. 1950년 6월 25일, 우리 민족의 현대사에 지울 수 없는 상흔으로 남은 그 날로부터 55년이 되는 날이기도 하다.
기행지가 강원도이다 보니 도로사정을 감안해 일찍 출발해야 했는데 그래서인지 기행에 함께한 회원수가 어른, 아이 포함해서 스물 여덟명으로 다른 때에 비해 단촐했다.

나는 사실, 헤어진지 10여년이 넘은 딸에게 이번 기행에 함께 가자고 했고, 요즈음 힘겹게 지내는 딸아이도 기쁘게 받아들이는 듯 해서 설레임와 두려움에 상기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이런 저런 이유로 아이에게 다음을 기약하자는 메일을 보내고서 그 아이의 침묵에 며칠을 가슴앓이하는 중이었다.
어쨌거나 주위의 강력한 권유로 어린 성원이와 함께 기행에 합류한 마당에 강원도의 바다와 숲, 좋은 사람들의 향기에 아낌없이 나를 내맡겨 사면초가의 현실을 헤쳐나갈 힘을 얻어 돌아오리라 기대했다.
자랑스러운 일도 아닌 개인사를 서두에 꺼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어쩌다보니 기행기를 떠맡긴 했지만, 그 즈음의 내 마음자리를 얘기하지 않고는 글을 쓸 수 없을 것 같아서이다.

그렇게 강원도를 향해 떠난 우리는 오후 2시 무렵 촛대바위로 유명한 추암해수욕장에 도착해 늦은 점심을 해결하고, 초여름치곤 뜨거운 날씨를 이기려 삼삼오오 모여 때이른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해변을 걸어 다시 버스에 올랐다.

기행 첫번째 행선지 죽서루는 관동팔경 중 하나로 바다를 향해 휘돌아 흐르는 오십천의 풍치가 뛰어난 절벽 위에 세워진 누각으로 자연 암반을 그대로 주춧돌로 사용한 자연미가 돋보이는 곳이다.
루에 올라 물길 너머를 바라다보니 최근 지어진 큰 건물들과 동굴엑스포타운이라는 거대한 구조물이 들어서서 옛 정취를 고스란히 느낄 수는 없었지만, 루와 주변의 암벽들 사이의 오죽숲, 그리고 물길 따라 병풍처럼 둘러선 절벽이 어우러져 그지없이 아름다웠을 옛날을 상상할 수는 있었다.

그리고, 환선굴.
덕항산이라는 낯선 이름의 산 중턱에 위치한, 동양최대의 석회암 동굴이라는 환선굴을 향해 꽤 가파르긴 하지만 잘 정비된 등산로를 따라 오르다보니 발 닿는 곳마다 절경인 강원도의 산답게 덕항산의 산세도 그야말로 선경이다.
하지만 흔치않은 감동의 순간은 땀 뻘뻘 흘리며 동굴에 도착해 동굴 안으로 들어서면서부터였다.
우선 자그마치 5억 3천만년 전에 생성되었다는 동굴의 거대한 규모에 놀라고, 1시간을 넘게 정해진 길을 따라 동굴 내부를 돌아보며 바닥을 흐르는 물길과 폭포, 그리고 태고로부터 흘러내린 그 물이 만들어낸 종유석, 종유관, 동굴진주, 동굴산호, 커튼 등의 동굴생성물 앞에서 그저 탄성을 내지를 뿐.
형형색색의 인공조명 아래, 상상하기조차 힘든 오랜 시간 동안 땅 위로부터 스며들어 흐르는 물과 시간이 만들어낸 거대한 동굴 내부의 섬세한 작품(!)들을 감상하면서 새삼 인간과 자연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네 인간도 저 동굴을 만들어낸 자연과 시간이 빚은 한 생명임이 분명한데, 우리는 어찌 이리도 근본을 잊고, 자연을 거스르며 살아가는 것인지....
겸허해지지 않을 수 없는 자연 앞에 설 때 나이들 수록 깨닫는 것은 겸손하지 못한 인간으로 살아왔던 지난 시간 전부에 대한, 나의 존재 자체에 대한 참회와 죄없이 태어나는 아이들이 감당해야할 인간으로서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다. 살아볼 수록 우리를 둘러싼 세상은 막막하게만 느껴지고, 그나마 기대고 살아야할 인간들끼리도 아귀다툼의 굴레에서 벗어나질 못하니 말이다.

상정리의 '들풀학교'에 도착, 짐을 풀고 저녁식사를 했다.
들풀처럼, 들꽃처럼 소박하게 살고 싶다는, 그리고 그렇게 사는 것의 아름다움을 전파하고 싶다는 소망으로 조금은 불편한 건 사실이지만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삶을 택한 김연순님의 남다른 꿈이 이루어낸 공간답게 운동장 가득 들풀과 꽃들이 자라고 있다.
뒷 날 아침에 보니, 폐교된 상정분교는 학교를 둘러싼 나즈막한 산과 조그만 학교 건물, 온갖 벌레들이 함께 어우러져 소박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이젠 날마다 등교하여 재재거리는 아이들은 없지만, 생태학습 프로그램으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원하는 사람들은 자연과 함께하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니, 이 폐교는 여전히 사람을 키우는 행복한 학교인 셈이다.

저녁식사 후, 조선붕당사에 대한 성균관대 하원호 교수님의 강의가 있었다.
숙종-경종-영조-정조 시대를 거치면서 남인의 득세와 송시열의 죽음 이후 숨죽여야 했던 서인 세력이 장희빈의 몰락으로 정권 회복의 기회를 얻고, 비교적 안정적으로 노론 중심의 정권을 유지할 수 있었던 영조를 거친 후, 왕권회복의 의지에서 비롯된 정조의혁신정치에 위기감을 느낄 즈음 정조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노론(서인)의 세도정치가 고착화되는 과정의 전후좌우를 대체로 알기쉽게 훑어주셨다.
조선의 붕당정치를 민주국가의 의회정치에 비유하는 학자들도 있다지만, 그건 어불성설이라는 단호한 말씀도 기억에 남는다.
나는 어린 아들에게 불려다니느라 제대로 경청하지는 못했지만 거칠게 결론 내리자면, 조선시대 지배이데올로기였던 성리학도 현실적으로는 지배계급 내부의 이권다툼이 '학문'이라는 고상한 형태로 표출된 것일 뿐이라는 것.
덕분에 예나 지금이나 줄서기에 몰두하는 '권력자'들과 그들의 이전투구 놀음에 힘겹게 한 생을 살아내야하는 '약자'가 존재할 뿐인 세상을 본다.

그리고 잠시 엉뚱한 생각을 한다.
여전히 지배계급인 그들의 후손들 중, '내부고발자'는 왜 없는 것인지... 그들의 선조들이 권력의 대를 잇기위한 이권다툼의 속내를 감춘 채 현란한 학문적, 철학적 수사로 갑론을박하는 동안 조선의 몰락과 일제의 침탈, 6·25를 거치면서 지금까지-이른바 '그들의 백성'들이 당해야했던 고통에 대한 자성은 불가능한 것인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사란 강한 자의 편에서 쓰여진다는게 사실이지만 왜 역사의 진실은 늘 '중심'에서가 아닌 '언저리'에서 밝혀져야 하는 것인지... 인간이 이기적인 동물인 탓이려니 하면서도 말이다.
그래도 나는 사람을 믿는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을 믿는다. 사람은 누구나 이기적이지만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서 어떤 길을 선택하는지가 바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주는 것임을 나이들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나 자신만 돌아봐도 그 정도는 배울 수 있다. 나의 현재는 지난 날의 숱한 선택의 순간에 내가 택해온 길의 한 정점이다. 내가 선택한 그 모든 순간의 집합체, 결정체가 바로 지금의 내 모습인 것이다.
자신을 남처럼 바라본다는 게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그렇게 되돌아보면 절로 낮아지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다.

각설하고,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뒷풀이 시간. 우리는 언제나처럼(!!) 술 한 잔씩 걸치며, 강의시간에 다하지 못한 질의, 응답과 자유토론을 빙자한 즐거운 담소를 나누었다.
나는 늘, 이 쯤에서 다른 세상 사람이 되어버리는 통에 뒷날 얼굴들지 못하는 게 다반사였다.
이 날도 예외는 아니었지만 초반부에 독도 문제로 시끄러운 근래의 동북아 정세에 대한 심도 깊은 얘기들은 한반도의 미래와 맞물려 본강의보다 더 생동감 넘치는 토론의 장이었던 것은 기억한다.
독도문제 해결에 매진해야한다는 권오헌 선생님의 말씀, 그리고, 한 잔 들이킨 김에 거기 모인 누구에게도 황당했을 질문-독도문제에 대해 대한민국 사학자로서가 아니라 정말 객관적으로 어떻게 생각하세요?-을 공연히 삐딱하게 던진 나, 엄연히 역사에 기록된 우리 땅이라는 당연한 말씀에 덧붙여 국제법은 제국주의적인 토대 위에 성립된 법인 까닭에 일본의 영유권 주장에 시시비비를 논의하는 것은 일본의 불순한 의도에 휘말리는 꼴이 되어 우리나라에 불리할 수도 있으니 가능한 논의 자체를 무시하는게 우리의 입장이었다는 하교수님의 성실한 답변.
일본을 교묘하게 이용한 미국의 동북아 패권장악 의도에 대한 권오헌 선생님의 성토에서 비롯된 담론에서는 일본 뿐 아니라 중국 역시 중화의 기치 아래 동북아의 패권을 두고 점차 흑심을 내보이는 상황이 심화될 것이라는 하교수님의 말씀.
소규모의 국제연대를 통해서라도 끊임없이 일본국민들의 각성을 불러일으키고, 일본 대중의 의식 자체를 재편시키지 않으면 안된다는 권선생님과 하교수님의 말씀에 한반도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암울한 현실이 느껴지지만, 위정자들은 여전히 이전투구에 눈 먼 작태만 거듭하고 있으니...
그리고, 기억에 남는 한가지.
내가 무슨 질문을 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하교수님의 답변은 명쾌했다.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야지."라고 하셨던가?
'평화로이 공존할 수 있는 세계'를 만드는게 우리 모두가 추구하는 궁극의 꿈이겠지만, 나는 그 답변이 너무 명료한게 놀라워서 "그게 가능하다고 보세요?"라고 반문했었다.

하지만, 안다.
가능하다고 믿어서가 아니라,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는 믿음이 있을 때, 우리는 그렇게 되도록 노력해야하는 것이겠지. 그것이 그나마 인간의 역사를 진보시켜왔을 터.
그러니 어떠한 억압도 없이 사람답게 살고싶은 우리들의 최종의 목표는 '지구별의 모든 나라, 모든 사람들, 모든 생명체가 평화로이 공존할 수 있는 세상 만들기'가 되지않을까.

기행 두번째날.
미인폭포, 그리고 너와집.
미인폭포는 건기여서 폭포수가 가늘긴 했지만, 폭포수가 떨어지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은 가히 절경이었다. 폭포를 찾아 가는 길에서 산딸기가 있길래 아이에게 맛보였다. 좋다.

남근설화가 전해내려오는 해신당에 당도해서는 눈길 두기 민망한 거대한 남근조각상이 즐비해서 짐짓 실실 웃으며 지나쳐야 했다.
해신당 공원 내에 어업과 관련한 여러 자료들을 모아놓은 어촌민속전시관의 한 전시실에도 남근숭배와 관련된 세계 여러나라의 민속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성원이가 민망스런 그림 앞에 신기한 듯 올려다보며 서 있길래, "성원아, 저 아저씨는 쉬야를 제 때 하지 않아서 고추가 병들었다. 병들어서 엄청 부었네."했더니, 어린 아들은 "그래, 맞아!"맞장구치고는 그제야 그 자리를 뜬다.(에구~. 앞으로 아들 성교육은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거야?)

삼척항 가까이에서 점심식사 후 척주동해비를 둘러보는 시간이 있었지만 나는 식당에서 쉬었다.
자료를 통해 척주동해비를 간략히 소개하자면, 조선 후기 문신이자 남인이었던 미수 허목(선조 28~숙종 8년)이 노론과의 당쟁에서 밀려 좌천되어 삼척부사로 부임했을 당시, 조수피해가 심각한 것을 염려하여 '동해송'을 지어 비를 세우니 심각한 조수의 해에서 벗어났다는 얘기가 전한다.

오후 3시, 우리는버스에 올라 바다와 작별인사를 하며 돌아오는 길을 재촉했다.
출발한 지 얼마되지 않아 우리들이 떠나기를 기다렸다는 듯, 장마비가 시작되었다.
버스 안에서 성원이와 함께 뒷목이 뻐근하도록 줄곧 잠을 잤는데, 문득 깨어보니 혜순이의 제안으로 기행에 참가한 어린이들에게 감상문을 쓰게하고, 심사하여 시상까지 한다고 한바탕 흥겨움이 넘친다.
아이들이 발표하는 걸 들어보니, 기행감상문은 시, 산문, 일기 등 글쓰는 재미를 아는 우리 아이들의 다양한 표현방식이 총망라되었는데, 역시 나이가 어릴 수록 그 표현이 너무도 솔직하고 예뻤다.(아이들이 쓴 글이 궁금하신 분은 후원회 홈피의 오감시롱 방에 들어오셔서 감상하시길.) 그나 저나 우리 성원이는 언제 커서 기행감상문 쓰나?

조국통일의 당위성을 굳게 믿고 자신의 전부를 바쳐온 권오헌 선생님, 양심수로 40년 넘게 옥고를 치르신 안학섭 선생님, 아마도 에미가 부실해 보였는지 우리 아들 성원이를 특히 예뻐해주시던 안선생님 사모님, 그리고 역사가 알려주는 진실에 귀기울이는 사학자 하원호 교수님, 그리고 언제나 다정하고 반듯한 우리 오감시롱 사람들.
이들과 함께한 특별한 여행은 언제나처럼 행복했다. 모두에게 감사의 인사를 보낸다.


2005-07-05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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