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시롱 감시롱

남도에 내리는 비

2010.03.12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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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교회 안병길 목사입니다.
지난 2월을 끝으로 운전하는 일을 쉬기로하고 늘 그리던 남도여행을 떠났다 광주에서 주보식구와 하룻 밤 머물고 해남으로가 황산동부교회에서 하루,고천암호(드라마 추노 촬영지) 갈대밭을 돌아 보고 미황사 거쳐 순천으로 향했다. 순천친구의 시간 관계로 보성군 문덕면에서 머물기로 정하고 그리로 향하는데 안개비 사이로 나타나는 이정표가 처음 길인데, 참 낮익다 율어면, 외서면... 소설 태백산맥에 외서댁이 살았던 곳, 그러고 보니 지금 소설태백산맥의 주무대에 내가지금 머물고 있는게 아닌가?  
이튿날 벌교에서 점심을 먹으러 가는데 이 전도사의 자세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알고보니 소설태백산맥 무대인 보성,벌교에 가이드역할을 했단다. 그의 안내에 따르면 벌교는 순천시와 고흥군의 2개시군이 교차하는 곳으로 남해안을 잇는교통의 중심지이자 고흥군의 관문이기도 하단다. 일제시대에 (일제 36년이니 그 때 한이 어리지 안은 곳 있으랴만) 인근 고흥, 화순 등지에서 수탈한 물자를 수송할 목적으로 1930년에 개통된 철도로 인하여 물류유통과 상업이 타 지역에비해 일찍 발달 되었고 신흥 도시로 번창하였단다. 50년대 당시 인구가 5만을 웃돌 만큼 큰 도시였단다. 지금은 1만 3~4천명, 하기는 박정희 이래 농촌을 살리려는 위정자가 있기나 했었는지, 순천에서 벌교를 넘어오자면 진트재(진토재)가 있는데 이는 속세를 떠나 불국토로 들어간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그런데 순천사람들이 자신들을 때묻은 속세라고 표현되는 것이 싫어 따로 금치재로 부른단다. 벌교에는 이런 불교 용어로 불리어진 지명이 많다한다. 존제산(부처님 계신 곳) 부용산(부처 손 안에 피어난 연꽃) 부용산이라는 노래를 들어 보셨는지 "부용산 오리길은 하늘만 푸르러, 푸르러 솔밭사이 사이로 회호리 바람 불고 간다는 말 한 마디 없이 너는 가고 말았구나 피어나지 못한채 병든 장미는 시들어지고 부용산 오리 길엔 하늘만 푸르러 푸르러." 소년 빨치산들의 한 어린 가슴 먹먹헌 노래를, 제석산,열가제등. 
존제산 자락의 율어는 소설에서 해방구로 표현된 곳으로 실제 추수가 끝나고  이 곳의 소작 농들이 소달구지에 쌀가마니를  싣고 주릿재를, 벌교의 대지주들에게 곡물바치려 넘나들었다 한다.
소화의 집.
조그만 하고 예쁜 기와집, 방 셋에 부엌 하나인 집의 구조.....부엌과 붙은 방은 안방이었고 그 옆방은 신을 모시는 신방이었다.
부엌에서 꺽여 붙인 것은 헛간방이었다. 소설 태백산맥(1권 17쪽). 당시의 무당집은 실제로 제각으로 들어서는 울 안의 앞터에 있었단다. 집 둘레로는 낮춤한 토담이 둘러져 있었고, 뒤로는 풍성헌 대나무 숲이 집을 보듬듯 하고 있었다.
찾는이들의 편리를 위하여 주차장으로 사용하게 되면서 소화의 집은 그 흔적 조차 찾을 수 없게 되고 말았던 것을 2008년에 보성군에서 복원하였단다. 소설 태백산맥은 이 집의 신당에서 정참봉의 손자 정하섭과 무당 월녀의 딸 소화가 애틋한 사랑을 시작하는 것으로 길고도 아픈 이야기가 펼쳐진다. 사실 둘은 고모와 조카간임. 개인적으로 소화의 헌신적인 성품이 맘에 든단다. 남자란 어쩔수 없는 속물. 
현부자네집
중도 들녁이 내려다 보이는 제석산 자락에 우뚝 세워진 이 집과 제각은 본래 박씨 문중의 소유란다. 건물은 한옥에 일본식이 가미된 형태로 대문 위에 누각이 앉아 있다. 이 누각에 올라 기생들과 술잔치를 하면서 중도 들판의 소작인들이 게으름을 피우며 일하지 않나 감시도 했던 곳, 얼마나 일본을 좋아했으면 집으로 올라 가는 길에 벗꽃나무를 심었으며 정원은 일본식, 다다미방에 욕실까지, 당시 일본에서 수입되는 건축 자제를 구경하려 인근 동네방네 사람들이 몰려들었다고 하니 알만해요. 소설에는 현부자네 집으로 묘사되었다. (그 자리는 더 이를 데 없는 명당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는데, 풍수를 전혀 모르는 눈으로 보더라도 그 땅은 참으로 희한하게 생긴 터였다...1권 14쪽)
소설 태백산맥이 문을 여는 첫 장면에서 처음 등장하는 집이다. 조직의 밀명을 받은 정하섭이 활동 거점을 마련하기 위해 새끼무당 소화의 집을 첮아 가고, 이곳을 은신처로 사용하게 되면서 현부자와 이 집에 대한 자세한 묘사가 펼쳐진다. 회정리 교회
돌로 지은 예배당으로 남녀 구별을 위해 출입문이 좌 우로 있다. 소설에서는 서민영이 야학을 열었던 곳으로 그려진다.지금은 대광 어린이 집
학교를 그만두게 된 이지숙이 야학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모습도 자세하게 묘사되어있다.  "이 일은 이, 이 이는 사,이 삼은 육, 이 사 팔.... " 모두의 목소리가 조화롭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이지숙은 그 울림이 슬픔인듯 서러움인 듯 가슴을 젹셔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가난이란 육신을 배고프게 하는 것뿐만 아니라 영혼까지 배고프게 만드는 것이다.(태백산맥 4권 100쪽) 부상당한 안창민을 자애병원에서 간호하고 피신하도록 도운 죄목으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선고를 받고 석방된 뒤의 일이다.
김범우의 집
원래 대지주였던 김씨집안 소유의 집이다. 안채의 대문 옆에 딸린 아랫채에서 초등학생이었던 작가가 친구인 이 집 막내 아들과 자주 놀았다는 것은 흥미를 일으킨다. 소설에서는 품격있고 양심을 갖춘 대지주 김사용의 집으로 그려지고 있다. 사랑채, 겹안채, 돌담등 그 모든 형태와 규모들이 대지주의 생활상을 한 눈에 파악 할 수 있게한다. 이 집에서도 오른쪽으로 한눈에 들어오는 것은 집 터를 무심코 잡은게 아님을 보여준다. 
횡갯다리(홍교)
홍교는 벌교 포구를 가로지르는 다리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세 칸의 무지개형 돌다리이다. 원래는 강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에 뗏목다리를 세웠는데 서기1728(영조4년)에 선암사의 초안선사가 보시로 홍교를 놓았는데 당시 불교에서는 다리를 놓는 보시를 중히 여겼다 한다. 현존하는 아치형 돌다리 가운데 그 규모가 가장 크고 아름다워 보물 제304호로 지정되어있다. 벌교:뗏목으로 잇달아 놓은 다리, 우리말큰사전.한글학회 지음. 라는 지명은 다름 아닌 '뗏목다리" 로써 국어사전에 나와있는 보통명사인데, 보통명사가 고유명사로 바뀌어 지명이 된 것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지 않을까한다. 그러므로 뗏목다리를 대신하고 있는 이 홍교는 벌교의 상징일  수밖에 없다.
지금은 다리를  더 늘였는데 꼴불견이다. 현대 기술을 가지고 재현이 어려워, 실제 기둥없이 건설하다가 두세 번 무너지자 기둥을 세웠음.
중도 방죽 
중도 방죽은 일본인(중도, 나까시마)의 이름을 따 붙여진 간척지이다. 일제 강점기 실제 인물로. 철다리 옆에있는 마을에 살았었단다. 중도의 집은 철거 되고 없는데, 부정적인 역사도 우리의 거울이거늘, 중도는 이 간척지를 백마타고 순시하기 좋아했단다. 뻘에 논을 만들기 위하여 돌과 흙을 날라 방죽을 만들었다니  소작인들의 처절헌 짐승같은 삶이란?
철교
염상진의 동생 염상구가 벌교 깡패두목인 땅벌과 기차가 올 때 누가 끝까지 벝티냐로 싸움한 곳으로 염상구가 이겨 벌교의 패권을 잠음.
벌교 특산 음식
여행의 재미중 빠질 수 없는 것이 그곳의 특산 음식이다. 전라도 지방이야 워낙 음식 맛이 좋기로 유명 하지만 그 중에도 벌교하면 태백산맥에서도 진펀허게 음담패설로 등장허는 꼬막아닌가? 짱뚱어 탕도 유명허고, 몇 년 전만 해도 만원 한 장이면 꼬막 한 자루였는데 지금은 꼬막 축제다 뭐다하여 방송에 소개되더니 거의다 꼬막 정식 식당으로 바뀌어 서로 원조라한다나 하긴 벌교가 원조지, 영화 황산벌에서 심리전을 펼치는데, 신라군이 욕설을 퍼붓자 게백장군이 벌교 보성놈들 나오라고 하는 장면에서 순천시에 있는 극장에는 한바탕 폭소가 터졌다네요. 다른 지역은 덤덤허게 넘어갔던 모양인데 웃을라도 뭘 알아야 웃지요. 그 때 배우 이문식이 "우리는 밥 한 공기를 먹어도 빈찬이 사십 가지다라고 했듯이 실제의 남도 정서였는데, 돈 맛은 본 뒤로 이런 정서가 하나 둘, 사라져감이 아쉽답니다.
마지막 금요일 밤 순천의 작은 식당에서 봄 비도 내리고 노래 한 가락 신청에 남도의 내리는 비를 불렜지요. 여순혁명의순천(책에는 반란), 80년, 5.18의 광주, 뜨거운 남도 내 사랑이여. 
옴시롱 감시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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