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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바 할머니 2002-05-21 글쓴이 : 김혜순

2009.05.28 12:42

양심수후원회 조회 수:1933

남바 할머니
글쓴이 : 김혜순
  친정이나 시댁의 어른들이 칠순이 넘어가니 새벽녘이나 밤늦은 시각에 전화벨이 울리면 예사롭지가 않다.
오늘도 아침 7시가 조금 못 돼 전화벨이 울려 걱정이 앞서며 전화를 받으니 친정 엄마다.

"상화 에미냐? 아이들 잘 있느냐? 어제 남바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집에서 장사 준비를 하고 있다."

남바 할머니는 호랑이처럼 생겼다. 젊었을 땐 이쁘셨겠지만 나이 들수록 볼이 패이며 인상이 험악해졌다. 남바 할머니는 우리 아버지의 작은 엄마다. 할아버지 5형제 중 넷째 할아버지의 둘째 부인이다. 그러다 보니 아버지와 나이 차가 크지 않다. 거기 막내 향자 고모는 나와 동갑일 정도다.
재취로 온 할머니는 아들 하나에 딸 넷을 두었다. 모두들 대처로 나가 진도에는 할머니 혼자 남았다. 할아버지는 언제 돌아가셨는지 기억이 없지만 초등학교 들머리인 남바에서 학교 다닐 적에도 본 기억이 없으니 일찍 돌아가셨나 보다.
할머니는 늘 혼자였다. 그래서 일이 있으면 우리가 하교길에 걷는 똑같은 길을 따라 우리 집에 와서 뭔가를 의논했다. 의논이라기 보다는 싸움이었다. 재산 문제나 땅문제, 할머니의 남자 문제가 있으면 아버지를 찾았다. 그리고는 한두 살 어린 아버지에게 두만아 두만아, 건방지게도 불러댔다. 그리고 늘 큰소리가 났다.

남바는 우리가 다닌 초등학교 근처의 지명이다. 오래된 동네가 아니고 읍네로 가는 길목이라 술집과 대장간과 학교와 농협과 할머니 집, 이렇게만 있는 간이역 정도되는 임시로 형성된 마을이다. 그 추운 겨울날 바람찬 날에도 난 할머니에 대한 따뜻한 추억 하나 건지지 못했다. 그래도 할머니는 우리 집에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삼막리 돼지 장사 아저씨와 정분이 나서 그집 식구들이 달려와 집안 살림을 부셔버릴 때에도 울면서 두만아 두만아를 부르며 우리집에 왔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둘 낳은 다음 고향에 가면 어머니는 늘 소주 됫병 하나를 들려서 할머니께 인사를 보냈다. 할머니가 풍으로 쓰러져 거동이 불편해 병원을 못가면 그 수발도 우리가 들었다.엄마는 찬을 준비해 냉장고 가득 넣어주곤 했다.
창원에 산다던 삼촌이 어느날 내려와 할머니를 모시고 가고 그 겨울이 지나고 숙모와 이혼을 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괴팍스런 시어머니 등살에 더 이상의 결혼 생활이 불가능했다는 후문이었다.
거동을 못한 지 몇년째인가, 할머니의 부음은 내 과거의 기억들을 막 헤집고 있다.

절둑거리며 장사 준비를 할 엄마를 생각하니 짠한 마음이 들었다. 우리 동네 장사의 3분의 1은 우리집 장사다. 우리집 장사이니 8촌이 넘어가도 우리가 곧 상주이고 일꾼이어야 한다. 그러니 엄마가 짠하다.
아버지는 동생들이 다 고향을 뜰 때도 속으로 울면서 다 보냈다. 큰 아버지가 환갑을 못넘기고 돌아가시고 방앗간을 맡아서 운영하던 막내작은아버지가 아버지 곁을 떠날 때에도 울면서, 웃으면서 배웅하셨다.

고향에 태을 묻은 사람들은 모두들 죽어서 고향으로 돌아온다. 넷째 작은아버지도 그리도 그리던 고향으로 죽어서 돌아왔다. 거기에 묵묵히 삶을 받쳐 고향을 지켜온 사람들이 타향살이한 고향 사람들을 묻는다. 70이 넘은 우리 아부지 엄메가 또 같은 연배의 할머니를 묻는다.
느지막히 전화를 하니 팔순의 사자굴 큰아버지와 70대인 창패 큰아버지, 우리 아버지, 엄마, 둘째 언니 이렇게 장사 준비를 한단다. 한창 바쁠 때 돌아가셔서 장삿날인 내일이나 북적대겠지.

내일, 방죽물 출렁이는 물결따라 만가가 퍼지고 골프장 같은 푸른(벨 때가 되어 황금물결이라네요.) 보리밭길 사이로 흰 상여꽃이 날리면 우리 아버지 두만 씨는 또 울고 계실 게다.
2002-05-21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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