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시롱 감시롱

남바 할머니 수정본 2002-06-18 글쓴이 : 김혜순

2009.05.28 12:55

양심수후원회 조회 수:1990

남바 할머니 수정본
글쓴이 : 김혜순
  남바 할머니

친정이나 시댁의 어른들이 칠순이 넘어서니 새벽녘이나 밤늦은 시각에 전화벨이 울리면 예사롭지가 않다.
오늘도 아침 7시가 조금 못 돼 전화벨이 울려 걱정이 앞서며 전화를 받으니 친정 엄마다.
“상화 에미냐? 아이들 다 잘 있느냐? 어제 남바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집에서 장사 준비를 하고 있다.”

남바 할머니는 호랑이처럼 성깔 있게 생겼다. 젊었을 땐 이쁘셨겠지만 나이들수록 볼이 패이며 인상이 험악해졌다.
우리 아버지의 작은엄마인 남바 할머니는 할아버지 5형제 중 넷째 할아버지의 둘째 부인이다. 그러다 보니 아버지와 나이 차가 크지 않다. 거기 막내 향자 고모는 나와 동갑일 정도다. 첫째 할머니가 딸 하나를 놓고 난 뒤 눈길에 미끄러져 돌아가신 뒤에 재취로 들어온 할머니는 아들 하나에 딸 넷을 두었다. 어느 집이나 그렇듯이 모두들 중학교 졸업만 맡고 대처로 나가 진도에는 할머니 혼자 남았다. 할아버지는 언제 돌아가셨는지 기억이 없지만 초등학교 들머리인 남바에서 학교 다닐 적에도 본 기억이 없으니 일찍 돌아가셨나 보다.
할머니는 늘 혼자였다. 중학교를 졸업한 향자 고모를 마지막으로 할머니에겐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일이 있으면 우리가 하교길에 걷는 똑같은 길을 따라 우리 집에 와서 뭔가를 의논하곤 했다. 의논이라기보다는 싸움이었다. 할머니가 오시면 늘 큰소리가 났다. 재산 문제나 땅 문제, 할머니의 남자 문제가 있으면 아버지를 찾았다. 그리고는 한두 살 어린 아버지에게 두만아 두만아, 내가 듣기에도 거북스레 불러댔다.

남바는 우리가 다닌 초등학교 근처의 지명이다. 전통적인 마을이 아니고 주변 마을 사람들이 읍내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나야 하는 길목이라 술집과 대장간과 학교와 농협과 할머니집, 이렇게만 있는 간이역 정도되는 임시로 형성된 마을이다. 여기 할머니집은 ㄱ자형의 본채와 일자형의 사랑채가 있었는데 그 사랑채에는 우리가 다닌 초등학교의 선생님들의 자취방이나 살림집으로 세들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까닭에 우리에게는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어떤 위엄을 갖고 있는 곳이기도 했다.
그 사랑채와 대장간 가운데에 양철 지붕을 이고 있는 우물이 하나 있었는데 몇집 안되는 마을 사람들이 함께 사용했다. 그런데 남바가 지역적으로 인근의 중심이 되면서 우물을 사이에 두고 땅 싸움이 벌어졌다.
농촌에서 남자 없이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큰 어려움이 따른다. 남편이 없다는 것은 커다란 결핍이었고 때론 삶의 의미를 송두리채 빼앗는 그 어떤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할머니가 땅 싸움에서 처음부터 밀리는 건 어쩜 당연한 일이었고 그럴수록 아버지에게 의지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여튼 초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지나다닌 곳이지만 추운 겨울날 바람찬 날에도 난 할머니에 대한 따뜻한 추억 하나 건지지 못했다. 그래도 할머니는 우리 집에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삼막리 돼지장사 아저씨와 정분이 나서 그집 식구들이 득달같이 달려와 집안 살림을 부셔버릴 때에도 울면서 두만아, 두만아를 부르며 우리집에 왔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둘 낳은 다음 고향에 가면 어머니는 늘 소주 됫병 하나를 들려서 할머니께 인사를 보냈다. 할머니가 풍으로 쓰러져 거동이 불편해도 아무도 모셔가지 않고 혼자 있으면서 병원을 못가면 그 수발도 우리가 들었다. 엄마는 찬을 준비해 냉장고 가득 넣어주곤 했다.
창원에 산다던 삼촌이 어느 날 내려와 할머니를 모시고 가고 그 겨울이 지나고 숙모와 이혼을 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괴팍스런 시어머니 등쌀에 더 이상의 결혼 생활이 불가능했다는 후문이었다.
거동을 못한 지 몇 년째인가, 할머니의 부음은 내 과거의 기억들을 막 헤집고 있다.

관절 수술을 한 뒤로는 수술한 다리가 짧아 절룩거리며 장사 준비를 할 엄마를 생각하니 짠한 마음이 들었다. 우리 동네 장사의 3분의 1은 우리집 장사다. 우리집 장사이니 8촌이 넘어가도 우리가 곧 상주이고 일꾼이어야 한다. 그러니 엄마가 짠하다.

아버지는 동생들이 고향을 뜰 때도 속으로 울면서 다 내보냈다. 한분뿐인 큰아버지가 환갑을 못넘기고 돌아가시고 방앗간을 맡아서 운영하던 막내 작은아버지마저 광주로 이사를 갈 때도 그 많던 눈물을 속으로 삭이며, 웃으며 배웅하셨다. 떠날 땐 그래도 희망이라도 있었는데 전주 살던 넷째 작은아버지가 예민한 성격을 이기지 못하고 죽어 돌아올 땐 햇볕 잘드는 곳에 자리를 잡아주고는 말을 잃고 먼산만 바라보았다.

한번 고향에 태를 묻었던 사람들은 죽어서도 모두들 고향으로 돌아온다. 거기에 묵묵히 삶을 받쳐 고향을 지켜온 사람들이 타향살이한 고향 사람들을 묻는다. 식구들이 남아 있건 없건, 여기서 태어났으면 누구나 묻힐 자격을 주는 곳,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돌아오는 이들을 아무런 조건없이 받아주며 예쁜 꽃상여를 입혀 그들이 ‘소 뛰끼(소를 들판으로 데려가서 풀을 먹이는 일)’며 뛰놀았을 산천에 묻는다.
70이 넘은 우리 아부지 엄메가 또 같은 연배의 할머니를 묻는다.

느지막히 전화를 하니 팔순의 사자굴 큰아버지와 칠십을 훨 넘긴 창패 큰아버지, 우리 아버지, 엄마, 둘째 언니 이렇게 장사 준비를 한단다. 한창 바쁠 때 돌아가셔서 장삿날인 내일이나 북적대겠지.

내일, 방죽물 출렁이는 물결따라 만가가 울려퍼지고 황금빛 찬란한 보리밭 사이로 흰 상여꽃이 날리면 우리 아버지 두만 씨는 또 울고 계실 게다.



☆ 제주도에서는 이웃에 상사가 있으면 이웃집을 모두 빌려 준다지요. 진도도 그렇습니다. 오늘 미정이네 언니가 시집을 가는 날이면 미정이네 집 이웃에서는 통째로 집을 내주지요. 잔치마당으로 쓸 수 있게요. 집이 좁아서였기도 했겠지만 함께 나누는 공동운명체라서 그런 것이 아닌가 합니다. 진도는 아직도 그런 풍습이 많이 남아 있는 곳이지요. 죽어서 들어와도 귀찮다 안그러고 소리없이 장사를 지내주지요. 그 가운데에 우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아버지 두만 씨가 있습니다.

2002-06-18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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