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시롱 감시롱

세미와 함께한 주왕산답사

2009.05.29 12:51

양심수후원회 조회 수:1950

세미와 함께한 주왕산답사
글쓴이 : 나정옥    
  그리운 내 벗에게
벌써 올해도 허리쯤 왔구만. 정말 세월 빠르지? 얼굴 본지가 하도 오래되어서 만나면 알아나 보겠는지... 자네 살고 있는 무주 골짝엔 이미 녹음이 무성하겠지. 참 보고싶네.잘 있는가?
얼마전 오랜만에 동아리 사람들과 답사를 다녀왔어. 그러고 보니벌써 지난 달 중순께군.
막둥이를 늦게 보고 나서 뜸했었는데, 요게 이젠 제발로 제법 잘 돌아다녀서 데리고 다닐만하게 벌써 자랐지 뭔가.. 틈만 나면 밖으로 나가자고 졸라댄다네.. 아이 눈에 비치는 세상 풍경이 어떻게 보일런지, 무슨 생각을 할런지, 어떤 표정을 보여줄런지, 상상만 해도 즐거운 걸, 자네 , 먼 말인지 알지? 데리고 다니면 뭐 힘들다 여겨지는 것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애를 들여다 보는 재미가 더 쏠쏠하다네. 한참 이쁜 짓 할 때지.
아침 7시 반 쯤, 자고 있는 걸 옷입혀서 집을 나서니, 비가 올거라는 예보대로 첫날은 찌푸린 날씨였고만. 비가 내리면 애 데꼬 다니기 좀 번거로울 수가 있지. 낯선데 가서 감기들까 걱정도 살짝 되고.
하지만 가끔 비도 맞아보고 아프면서 애들은 커가는 거니까 뭐 별 상관은 없었다네.
하여간, 집 밖으로 나오니 일단 가슴이 시원하더군. 달리는 차창 밖으로 보이는 푸른 산이며 나무며, 꽃은 이미 져버렸지만 얼마나 이뻤을까 상상이 되는 사과나무 과수원, 주렁주렁 매달린 근심걱정들이 저절로 툭툭 떨어지며 멀어지더군. 밭에 심어진 작물들이나 산에서 한껏 잎새를 피워 올리던 나무들이나, 어쩜 그리도 이쁘고 부럽다는 생각이 들던지. 한창 청춘들 아니겠나?... 봄에 새잎 나서 아직 더러움을 타지 않은 아주 깨끗하고 밝고 반질반질한 고운 잎들이 바람에 살랑거리는 걸 실컷 바라봤다네. 벌써 한달이 다 되어가네만 지금도 눈앞에서 파랗게 바람에 팔랑거리고 있지. 우리도 저랬던 시절이..있었지?
영덕에 들렀다네. 오십천 개울가에서 물수제비를 뜨며 놀았지. 저 밑에서부터 은은히 밀려올라오던 아까시 꽃 내음.. 우리세미는 -참, 우리 막내 이름이야- 돌을 주워서 물 속에 던지며 퐁당거리더니 재미를 붙였는지 아예 붙어 있을라고 하데. 물가의 흙에서 악취가 났는데, 아마 그간 가물어서 그런 건지 오염이 된 건지 잘 알 수 없었어. 풍광 좋다 싶은데 물있는 주변이 썩어있는 걸 보면 괜히 맘이 아려와. 자네도 아마 그럴거야.
영덕 하면 대게 밖에 몰랐는데 대게는 구경도 못하고, 거기서 풍력발전소를 첨 봤어.
세미가 손을 들어 동그라미를 그리면서 ‘빙빙 돌아’라고 말을 해. 비슷하게 생긴 걸 난지도 공원에서 본 적이 있거든. 멀리서 바라볼 땐 몰랐는데 근접해서 보았더니 엄청 크더라구. 화력발전소나 원자력 발전소보담은 훨씬 덜하지만, 그래도 자연환경에 부담이 되는 건 사실이군. 전기사용 줄이고 아껴쓰는 노력없이 대체시설만 늘린다고 될일이 아닌거겠지.
바다에 간다길래 바닷물에 발 적시고 모래도 만져볼까 기대했지만 해맞이 공원은 그런 데가 아녔어. 산책하는 계단을 따라 걷고, 등대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심어놓은 야생꽃들을 만져보며 아는 척도 해봐 보고... 10여년 전 불이나서 다 타버린 다음 나름대로 애써서 가꿔놓은 것이라는군. 이곳에서 보는 해돋이가 일품인 모양이야. 확인은 못했지만..

이번 기행 주 답사 지역은 청송 주왕산자락이었어.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란 영화 혹시 보았는가? 이곳 주왕산 주산지를 무대로 찍었다고 해. 저녁밥 먹고나서 영화 감독 김기덕과 그 작품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영화전공하는 후배가 들려줬어. 나는 사실 영화를 보지 못해서 그냥 듣고 지나가야 했다네.
그 뒤에 이어진 뒤풀이 시간에는 막걸리 한 모금 마시는 흉내만 내고서 그냥 제꼈어. 다음 날 새벽부터 일정을 시작해야 되는데, 세미도 재워야 하고, 나도 예전같지 않은 지 오래됬거든.

다음날 아침 이른 아침의 기분좋은 서늘함을 맘껏 누리면서 주산지를 보고 왔어. 5시 반쯤 나섰는데도 이른아침 호수에 피어오르는 물안개는 볼 수 없었어. 전체적으로 아늑하고 정결하다는 느낌을 받았다네. 물 속에 뿌리박고 서있는 오래되어 보이는 굵은 왕버들나무는 마치 호수의 정령인 듯한 느낌으로 다가왔지. 그 모습이 의연하고 아름답게 보여 사진을 찍어왔다네. 버드나무가 물을 좋아해서 물가에 많이 자란다는 말은 들어봤지만, 나이도 꽤 들어 보이는데 물속에서 저러고 있는 건 처음 본 거야. 경외심까지 느껴질 지경이었다니까. 안쪽까지 들어갔다 왔는데, 참 이상하지, 나도 모르게 긴장하고 있었더라구. 웃긴 건 나는 그랬는데 우리 세미는 그 안쪽에서 쉬를 누고 왔단 거지. 왕버들이 헛기침 한바탕들 하겠군.

주산지에서 내려와서 아침밥을 맛나게 먹고서는 주왕산 산행에 모두들 나섰는데, 날씨가 넘 넘 좋은거 있지. 아주 굿, 굿이었다네. 남은 일정이 산행 뿐이라 시간이 널럴해서 여유로왔던 게 아주 좋았어. 여러군데 쫒기면서 다니는 것보다 한 곳에서 충실하게 있다오는 것을 나는 더 선호하는 편이야. 어디까지 올라갔다 올 수 있을지는 모를 일이었어. 뭐 어디까지 꼭 갔다와야한다는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다는 게 맞다고 할 수 있겠군. 하기야 산행 시작해서 얼마 되지 않아 내 등에서 세미는 잠이 들어버리더라구. 그럴만도 하지. 어제도 그랬지, 오늘도 새벽부터 깨어서 주산지 다녀오느라, 평소보다 너댓시간 덜잔 거여서 말이네. 업고 안고 도움받아 한참을 가다가 결국 급수대 쯤에서 길가 앉을만한 돌 위에 앉아서, 어쩜 여기까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한편으론 남편을 기다렸어. 거기 그 자리에 가만 머물러 있으면서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계곡 물 졸졸거리며 흐르는 소리를 듣고, 바위를 보고,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며 반짝이는 것을 보고 또 보았다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아. 내가 산에 있구나. 나는 산에 푸욱 안겨 있구나 하는 느낌, 내 자신과 온전히 하나되는 느낌들이 내 가슴에 가득 차올랐지. 불필요한 감정의 찌꺼기들,가슴 어딘가에 남아 나를 괴롭히던 부정적인 생각들을 모두 밀어내 버리는 것 같았어. 무지 행복하더라구. 그러면서 살짝 잠이 들뻔할 때 반가운 사람이 나타나더군. 세미를 업고 힘들었을 땐 사실 원망하는 맘도 들더니, 그 맘이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게 싸악 사라져 있었어. 셋이서 계곡물에 발을 담그며 단란한 한 때를 보냈다네. 모든게 꼬마 덕분인 것 같이 여겨지는군. 아님 꼬마를 재워준 산 덕분이거나.
가을이 되어 단풍지기 시작하면 또 찾고 싶어질거야. 처음 와 본 산이나 정겹고, 바위가 많아 웅장한 위용이건만 내게는 편안함으로 다가와주었지. 나로선 매우 만족스러운 산행이었다네. 언제 우리 만나서 손잡고 같이 올라가 보세나.
벗이여, 그때까지 부디 서로 변함없이 건강하세. 그럼 잘 있게나.


2007-06-09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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