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에서 온 편지] 김경용 님의 편지

2018.03.14 14:08

양심수후원회 조회 수:311

아프지 말고 꼭 다시 만나

이별을 앞둔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선수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떨어질 줄 몰랐습니다.

함께 지낸 한달 동안의 시간은 짧았지만 남북이 갈라졌던 오랜 세월의 벽을 넘기에 충분했습니다.

파란눈의 머리 총감독마저도 같은 코리아의 피가 흐르지 않나(.....) 우리는 금세 하나가 됐다.”고 말했습니다. 불신과 대결의 비정상적인 상태로 경색되었던 남북관계가 평창동계올림픽을 함께 하면서 화해와 대화의 국면으로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새해 벽두에 자주통일의 돌파구를 열기 위하여 신년사가 내놓은 남북관계 개선대책들이 결실을 맺어가고 있는 것이겠지요.

 

<단숨에>

저는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펼쳐진 우리민족끼리의 감격적이고 감동적인 화폭들을 보면서 단숨에라는 구호가 떠올랐습니다.

긴 세월 분단의 장벽에 가로막혀 서로 만나볼수 없었고 온갖 왜곡과 모략으로 덧칠된 반공반북교육에 물들어 있었지만 분열의 장벽을 뛰어넘어 끊어졌던 혈맥이 다시 이어지고 손과 손을 마주잡으면 봄날 따사로운 햇볕에 언눈이 녹듯이 남과 북은 단숨에하나가 되라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처음엔 북의 언니들이 무서웠다는 10대 후반의 단일팀 막내들이, 만난지 한달이 지나 헤어지면서는 이제 (언니들이) 곁에 없으면 그리울거예요.”라며 변하였듯이.

 

우리민족의 경사이자 세계인의 흥겨운 축제였던 이번 평창동계올림픽에서 한가지 옥의 티라면 신성한 올림픽까지 대결 모략에 악용하는 미국의 비열한 추태였습니다.

대국답지 못한 치졸한 짓거리를 통하여 미국은 우리민족의 화해와 단합 그리고 지역의 평화와 긴장완화를 결코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전세계가 지켜보는 앞에서 증명해 보였습니다.

미국의 교활한 추태는 뒤집어 보면 지금 그들이 처한 처지가 얼마나 절박하고 궁색한지를 보여주는 반증이기도 했습니다.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는 다른나라 같았으면 벌써 열백번 일으키고도 남았을 전쟁을 감히 우리민족에게는 걸어오지 못하고 압박이니 관여니, 제제니 봉쇄니 강건너에서 삿대질이나 하듯 기껏 말폭탄이나 쏘아대고 있을 뿐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급해지는 것은 미국이며 시간이 지날수록 궁지에 몰리는 것도 미국입니다.

 

이번 평창동계올림픽을 지켜보며 단숨에라는 구호와 함께 이영희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해방은 도둑처럼 왔다.”

선생님께서 말년에 내놓으신 자서전 <대화>의 한 구절입니다.

저기 힘차게 걸어오는 모습이 똑똑히 보이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벌써부터 들리는 통일을 도둑처럼맞이해서는 안되지 않겠습니까?

머지않아 우리 앞에 다가올 통일을 도둑처럼 맞지 않기 위하여 서들러 준비해야겠다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의 시는 오래전 감옥에서 작은 통일을 이루었던 김남주의 시입니다.

이번 설맞이 양심수 공동면회에 오셔서 안타까운 눈길로 미안하다란 말씀을 여러번 하시어 저를 되돌아보게 한 박희성선생님, 지난 추석공동면회에 춘천으로 오셔서 당신 몸도 편치않으신데 젊은 저에게 식사잘하고 건강 잘 살피라고 당부하시던 강담선생님, 그리고 서울구치소로 편지 보내주시며 조용한 곳에서 연구 많이 해가지고 나와 조국을 낙원의 나라로 건설하라고 격려해 주셨던 김영식선생님,

이번에 남녁땅을 찿아왔다는 모란봉악단의 노래 단숨에와 함께 오늘의 시를 세분 선생님께 바칩니다.

 

통일되면 꼭 와

2018.3.6.

 

대구교도소에서 김경용

 

 

통일되면 꼭 와

김남주(1945~1994)

 

장병락 선생님 그는

一心(일심)이라고 팔에 문신을 한 뱃사람이었지

북녘에서 남녘으로 조선쌀이 오던 날

우리 둘은 얼싸안고 울었지

아이처럼 엉엉 울면서 언약도 하나 했지

통일되면 꼭 놀러 오라고 꼭 놀러 가마고

그는 내가 그의 고향 원산에 가면

명사십리 해당화를 구경시켜 주겠다고 했고

나는 그가 내 고향 해남에 오면

실낙지에 막걸리를 대접하겠다 했지

고향에 홀어머니를 두고 왔다는 그는

내게 편지가 올 때마다 어머니한테서 왔냐며 묻고는

어머님 잘 계시냐 어디 아프신 데는 없느냐

앞으로 나가게 되면 효도 많이 해드리라 신신당부 했지

철창으로 으스름 달빛이 젖어드는 밤이면

내 심사 울적하여 청천하늘의 잔별을 헤아리다가

옆방의 그를 불러내어 이런 부탁 가끔씩 하고는 했지

장선생님 나오셔셔 노래나 한 곡조 뽑아주시오

그러면 그는 한사코 또 어머니 생각나냐며

수천 년 수만 년 그 모습 여전해

세상에 근심 걱정도 많네...”

볼가강의 뱃노래를 고적하게 불러 주거나

이 한 몸 다 바쳐 쓰러지면은

대를 이어 싸워서라도 금수강산 삼천리에

통일의 그날이 오면 만세소리를

자손아 불러다오를 목메이게 불러주었지

그런 그가 어느 날 새벽 갑자기

어딘가로 모르는 곳으로 이감을 가게 되었지

나는 부랴부랴 내 십오 년의 징역 보따리를 뒤져

덧버선이며 귀마개며 장갑이며를 꺼내

어쩌면 통일의 그날까지 징역살이를 할 줄도 모르는

어쩌면 통일의 그날을 맞이하지 못하고 옥사할지도 모르는 그에게

철창 너머로 사슬 묶인 그의 손에 건네주었지

폐가 나빠 자주 각혈을 하고는 했던 그는

교도관한테 끌려가면서 뒤돌아보면서

백지장 같은 얼굴에 눈물 빛내며 다짐했지

통일되면 꼭 와” “통일되면 꼭 와

 

 

통권 316호에 실린 김수영의 시 <사랑의 변주곡>에서 누락된 부분이 있어 바로 잡습니다.

게재된 시에서 4행이 빠져 있습니다.

 

욕망이여 입을 열어라 그 속에서

사랑을 발겨하겠다 도시의 끝에

사그라져 가는 라디오의 재갈거리는 소리가

사랑처럼 들리고 그 소리가 지워지는

강이 흐르고 그 강 건너에 사랑하는

암흑이 있고 삼월을 바라보는 마른 나무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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