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에서 온 편지] 김경용 님의 편지

2018.01.23 21:32

양심수후원회 조회 수:251

<올해의 계획>

1.독서.....

2.글쓰기.....

3.시 암송 일주일에 한편, 1년에 50편 암송하기

 

무술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내남없이 연초가 되면 이런저런 새해 결심을 하지요.

누구는 독서를 계획하기도 하고, 누구는 운동을 마음 먹기도 하고, 누구는 금연과 금주를 자신과 약속하기도 하고...

저도 새해를 맞아 몇가지 계획을 세웠는데요. 그중 하나가 시 암송입니다.

사실 시 암송은 제가 즐기고 좋아하는 제법 오래된 습관인데요, 허나 이곳에 들어와서는 이것저것 다른 것에 신경쓰느라 그럴 겨를이 없기도 했고 또 제 시 낭송을 들어준 대상도 딱히 없기도 하여 한동안 손놓고 있었지요.

이제 대법상고심까지 재판도 모두 끝났고 담안에서의 생활도 제법 익숙해지기도 해서 그동안 미뤄놓았던 시 암송은 다시 해보려고 합니다.

 

제가 경험한 바로는 시를 즐기는 좋은 방법 가운데 하나가 시 암송이지요.

읽을수록 인상에 남고 심금을 울리는 좋은 시란 결국 시대와 역사 그리고 인간에 대한 심오한 성찰과 함께 사람에 대한 속깊은 연민과 다함없는 사랑이 담김 시 일텐데요.

좋은 음식일수록 천천히 음미해가며 먹어야 그 맛과 향을 다 느끼고 즐길 수있듯이 여러번 되풀이해서 읽고 암기해야하는 시 암송이야말로 좋은 시를 제대로 이해하고 즐길수 있는 좋은 방식이지요.

 

이러한 시 암송은 저에게 많은 것을 선물해 줍니다.

김남주의 시는 엄동설한 신새벽에 냉수마찰을 하듯 하고 나를 항상 깨어있게하고, 신경림의 시는 화사한 봄날 양지바른 곳에서 해바라기하듯 나를 따뜻하게 덮혀주고, 네루다의 시는 뜨거운 여름날 바닷가 모래사장으로 달려가듯 나를 들뜨게 만들지요. 물론 그 가운데는 백석의 시처럼 산들바람처럼 무슨 대숲에 들어와 있듯이 나른 가만히 내려 놓으며 쉬게 해주는 시들도 있지요.

이런것과 함께 저에게는 시 암송이 주는 유별난 기능이 하나더 있습니다.

그건 제 나름의 유체이탈이라고 할수 있는데요.

다름아니라 시 암송을 하며 힘들고 괴로운 고통에서 벗어나 제 마음을 다스리며 평정심을 찿는 것입니다.

저는 내시경 검사를 할 때 항상 비수면 검사를 선택합니다. 그리고는 당일날 검사를 받기 전에 두편 정도를 마음속으로 준비를 하지요.

검사실 침대에 누워 내시경이 시작되려고 하면 준비한 장시를 속으로 읊기 시작합니다.

몰두해서 한참을 암송하다보면 어느새 일어나세요라는 소리가 들려오지요.

이러한 저의 시 외우기는 이번 일을 겪으면서도 제 구실을 발휘했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시내 PC방에서 십수명의 국정원 수사관들에게 체포당하여 시멘트 바닥에 대동뎅이쳐지고 한바탕 홍역을 치른뒤에 신체 압수.수색과 사용하던 PC의 이메일이 압수.수색당하던 그때, 머릿속으로는 수많은 생각들이 떠오르고 가슴은 활랑거렸지만 저는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한후 내시경검사 받을 때처럼 제법 긴 장시들을 외웠지요.

그렇게 한참을 시를 암송하다보니 놀랐던 마음이 좀 안정이 되고 정신을 가다듬을 수가 있더군요.

구속된뒤 내곡동 국정원 청사에 불려가 신문을 받으면서도 저는 조사시간 내내 책상에 엎어져서 시만 외웠지요.

 

오늘 소개할 시는 그련 장시 가운데 하나로 김수영 시 <사랑의 변주곡>입니다.

행간 엇걸침이 절묘한 이 시는 낭송을 하다보면 마치 강물이 쉬지않고 흐르듯, 기차가 선로위를 미끄러지며 달리듯 호흡도 같이 흐르며 내달리게 되는 시입니다.

여러분도 한번 소리내여 낭송해 보셔요.

 

 

사랑의 변주곡

김수영(1921~1968)

    

욕망이여 입을 열어라 그 속에서

사랑을 발견하겠다 도시의 끝에

사그러져 가는 라디오의 재갈거리는 소리가

강이 흐르고 그 강 건너에 사랑하는

암흑이 있고 삼월을 바라보는 마른 나무들이

사랑의 봉오리를 준비하고 그 봉오리의

속삭임이 안개처럼 이는 저쪽에 쪽빛

산이

 

사랑의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우리들의

슬픔처럼 자라나고 도야지 우리의 밥찌끼

같은 서울의 등불을 무시한다

이제 가시밭, 덩쿨장미의 기나긴 가시가지

까지도 사랑이다

왜 이렇게 벅차게 사랑의 숲은 밀려닥치느냐

사랑의 음식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 때까지

 

난로 위에 끓어오르는 주전자의 물이 아슬

아슬하게 넘지 않는 것처럼 사랑의 절도는

열렬하다

간단도 사랑

이 방에서 저 방으로 할머니가 계신 방에서

심부름하는 놈이 있는 방까지 죽음 같은

암흑 속을 고양이의 반짝러리는 푸른 눈망울처럼

사랑이 이어져 가는 밤을 안다

그리고 이 사랑을 만드는 기술을 안다

눈을 떴다 감는 기술불란서 혁명의 기술

최근 들어 우리들이 4.19에서 배운 기술

그러나 이제 우리들은 소리 내어 외치지 않는다

 

복사씨와 살구시와 곶감씨의 아름다운 단단함이여

고요함과 사랑이 이루어 놓은 폭풍의 간악한

신념이여

봄베이도 뉴욕도 서울도 마찬가지다

신념보다도 더 큰

내가 묻혀 사는 사랑의 위대한 도시에 비하면

너는 개미이냐

 

아들아 너에게 광신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사랑을 알 때까지 자라라

인류의 종언의 날에

너의 술을 다 마시고 난 날에

미대륙에서 석유가 고갈되는 날에

그렇게 먼 날까지 가기 전에 너의 가슴에

새겨 둘 말을 너는 도시의 피로에서

배울 거다

이 단단한 고요함을 배울 거다

복사씨가 사랑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할 거다!

복사씨와 살구씨가

한번은 이렇게

사랑에 미쳐 날뛸 날이 올 거다!

그리고 그것은 아버지 같은 잘못된 시간의

그릇된 명상이 아닐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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