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에서 온 편지] 김경용 님의 편지

2017.11.24 23:00

양심수후원회 조회 수:296

지난주 기결복으로 갈아 입었습니다.  피고인들과 검사의'상고를 모두 기각한다'는 대법원판결을 마지막으로 1년6개월을 끌어온 재판이 다 끝나고 형이 확정된 것이지요.

그리고는 이튿날부터 몸살을 앓았습니다.  그간의 긴장이 풀려서 그랬는지 아니면 계절의 변화에 몸을 맞춰가느라 그랬는지 온몸이 쑤시고 오슬오슬 떨리며 식은땀까지, 무엇보다 허리가 아파 앉아 있기가 힘들었습니다.

엎어진 김에 쉬어 간다고 몸살 덕분에 며칠간 뜨끈한 그둘장에 누워 잠도 실컷 자보고 입맛 담기는 대로 달달한 간식도 먹어보고 미뤄 놓았던 시와 소설도 읽었습니다.

매일하던 새벽운동과 냉수마찰도 하지 못했지요.  사람은 한번씩 아파봐야 하나 봅니다.  내가 아파보니 아픈사람 심정도 더 이해하게 되고 내가 고통받아보니 비로소 다른이의 고통도 더 공감하게 되더군요.

   너무 외로워 하지마

   네 슬픔이 터져

   빛이 될 거야

   [리얼리스트], 체 게바라

지난달 10월9일은 체 게바라 사망 50주기 였습니다.  체 게바라가 전사한 볼리비아의 아예그란데와 쿠바 아바나등 세계 곳곳에서 체 게바라가 꿈꾸워 왔던 세상을 이루기 위해 싸우고 있는 진보적 인민들이 그를 기렸습니다.

체 게바라는 시에라 마에스트라에서 밤마다 네루다의 시를 게릴라들에게 읽어 주었다지요.  파블로 네루다는 그의 자서전 [사랑하고 노래하고 투쟁하다]에 쿠바혁명이 성공한후 아바나의 집무실에서 체 게바라를 만났던 추억을 남겨 놓았습니다.  "체는 피부가 가무잡잡한 모레노(라틴아메리카에서 혼혈인의 가무잡잡한 피부색을 가리키는 용어)였다.  아르헨티나 억양으로 쉬엄쉬엄 말했다.  팜파에서 간간이 마테차를 마셔가며 한가하게 대화를 나누면 딱 좋을 사람이었다.  짧은 문장을 구사하는 데다가 웃음으로 마무리했기 때문에 이야기가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린것 같았다."  이 글을 읽으니 체 게바라가 어떤 이였을지 그려지나요?

체 게바라가 숨지고 남겨진 배낭에는 녹색노트 두권이 발견되었는데 그중 한권에는 손으로 옮겨적은 시들 69편이 있었습니다.  파블로 네루다와 세사르 바예호등 시인들의 시였습니다.

오늘 소개할 시는 네루다가 [세사르 바예호에게 바치는 송가]등 추모하는 시를 쓰며 '소중한 친구이자 훌륭한 동지'라고 부른 세사르 바예호(Cesar Vallejo)의 시입니다.

내몸이 힘들고 고통받을때 읽어서 그런지 '하늘과 땅, 삶과 죽음에서 두번이나 버림받은' 고통의 심연에서 건져올린 그의 시어들이 공감이 되고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검은 전령

                세사르 바예호 Cesar Vallejo(1892~1938)

 

  살다 보면 겪는 고통.1 너무도 힘든...모르겠어.

  신의 증오가 빚은 듯한 고통.  그 앞에서는

  지금까지의 모든 괴로움이

  썰물처럼 영혼에 고이는듯...모르겠어
 
  얼마 안 되지만 고통은 고통이지. 굳은 얼굴에도

  단단한 등에도 깊디깊은 골을 파고 마는...

  어쩌면 그것은 길길이 날뛰는 야만족의 망아지,2


  영혼의 구세주가 거꾸러지며 넘어지는 것.

  운명의 신이 저주하는 어떤 믿음이 넘어지는 것.

  오븐 문 앞에서 타버릴 때 나는 소리.3


  그러면, 불쌍한...가엾은...사람은

  누가 어깨라도 치는 양 천천히 눈을 돌려,

  회한의 웅덩이가 되어 그의 눈에 고이고,


  살다 보면 겪는 고통.  너무도 힘든...모르겠어.


옮긴이의 주

1 원문은 golpes(충격), 여기서는 물리적 충격이 아닌 심리적 충격을 뜻한다.

2 원문은 (야만 아틸라족의 망아지), 여기서 '아틸라'는 무모할 정도로 용감하고 잔인한 종족을 통칭한다.

3 원문은 (빵이 오븐 문 앞에서 탄다),  다된 일이 마지막 순간에 수포로 돌아갈때 사용하는 표현이다.

*[오늘처럼 인생이 싫었던 날은] 세사르 바예호 시선집, 고혜선 옮김, 다산책방.

            

                   2017.11.16  춘천교도소에서 김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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