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에서 온 편지] 김경용님의 편지

2017.08.24 11:48

양심수후원회 조회 수:398

1.

좌상폐에 약 2.1Cm 정도의 결절형 음영이 있어 폐암 가능성이 의심(됩니다.)”

판정일 2017627.

판정의사 이00

 

지난 6월 서울구치소에서 받은 <건강진단 결과통보서>입니다.

6월 어느 날 구치소 대강당으로 수용자들이 다들 몰려가 혈액검사, 요검사 등과 함께 버스에 설치된 흉부 X-ray도 찍었는데 흉부방사선 검사에서 위와 같은 의사의 유소견이 나왔다는 것입니다.

제가 오랜기간 B형 간염보균자라서 간에 무슨 이상이 생겼다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뜬금없이 폐암이라니 뭔 일인가 싶었습니다.

 

1년 전, 열댓명의 국정원 수사관들에게 체포되며 시멘트 바닥에 내동댕이쳐지고 가슴이 짓눌리고 사지가 뒤틀릴 때 그래, 죽자고 결심하며 민족의 전사답게, 제자답게, 존엄과 영예를 지키며 죽자고 각오했었는데...

어쩌면 1년 만에 다시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다니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싶었습니다.

작년이나 올해나 북망산을 그려볼 때마다 함께 떠오르는 것은 아내의 모습이더군요.

혼자 남겨두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는데...’

 

사동 담당에게 외부진료(흉부CT)를 요청했습니다.

며칠 후 의료과에서 연락이 오기를 이번 건강검진에 흉부방사선 이상소견이 많이 나와서 하루 날 잡아서 흉부 X-Ray를 다시 찍고 그래도 이상이 나오면 외부진료를 검토하기로 했답니다.

 

서울구치소의 수용인원이 3,000명이 넘습니다. 이 많은 사람에 상주하는 의사는 한 명뿐이고 이곳저곳 성치 않는 수용자들은 많다보니 진료요청을 하면 하세월이지요.

7월에 흉부방사선을 다시 찍기는 했지만 결국 판독 결과는 보지 못하고 춘천으로 이감왔습니다.

 

춘천교도소에 이감되어 들어오던 날 물품 검사와 함께 의료과에서 건강도 묻길래 사정 이야기를 했더니 그날로 흉부 X-ray를 찍고 외부 판독 결과도 빨리 알려 주었습니다.

‘No Remarkable Finding’ (특별한 이상 없음)

춘천에서 찍은 흉부방사선의 결과입니다.

얼마 후 서울구치소에서 다시 찍은 영상검사의 결과도 정상으로 나왔다고 알려왔습니다.

 

제 천성이 원체 그런지라 한 달여 동안 별 생각 안하고 평소와 다름없이 덤덤하게 지냈지만 어쩌다 한 번씩 건강검진 결과가 떠오를 때마다 내가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가’, ‘나에게 마지막까지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성찰하게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2.

지난 달 소개한 이광웅 시인의 <수선화> 어떠셨나요. 편집과정에 오타가 있어 바로 잡습니다.

110, 215, 422행의 갠 날이라() -> 갠 날이다.(.)

217행의 달리 미련이나 있을 것이 아니어서...(미련) -> 달리 마련이나 있을 것이 아니어서...(마련)

 

제가 이광웅 시인을 알게 된 것은 김남주 시인을 통해서입니다. 정확히는 김남주 시인의 시집을 통해서입니다.

1987년 도서출판 인동에서 출간된 김남주의 옥중시집 나의 칼 나의 피(후에 1993년 실천문학사에서 재출간)의 발문을 이광웅 시인이 썼습니다.

두 분이 같은 교도소에서 징역을 살은 인연이 끈이 되었겠지요. 김남주 시인이 1979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 사건으로 15년 형을 선고받고 광주 감옥에 먼저 수감되었고, 이광웅 시인은 1982오송회사건으로 7년 형을 선고받고 같은 감옥에 투옥되었습니다. 두 분은 광주교도소 특사 상층에서 책도 서로 빌려가며 읽고, 운동시간에 땅 탁구도 같이 하며 13개월 동안 같이 지냈습니다.

얼마 전에 읽은 황석영의 소설 <수인> 2권에도 “(이광웅은) 김남주와 형제처럼 징역을 살고 나(왔다)”고 쓰고 있더군요.

이광웅 선생님의 시 한 편 더 감상해 볼까요.

 

목숨을 걸고

이광웅(1940~1992)

이 땅에서

진짜 술꾼이 되려거든

목숨을 걸고 술을 마셔야 한다.

 

이 땅에서

참된 연애를 하려거든

목숨을 걸고 연애를 해야 한다.

 

이 땅에서

좋은 선생이 되려거든

목숨을 걸고 교단에 서야 한다.

 

뭐든지

진짜가 되려거든

목숨을 걸고

목숨을 걸고...

 

3.

김남주 시인은 저에게 유다른 시인입니다.

김남주 시인은 저에게 네루다, 아라공, 마야코프스키, 그레히트의 시와 푸시킨, 하이네의 정치적인 저항 시에 대해 알게 해주었고, ‘한 편의 혁명적인 시는 천만자루의 창검을 대신할 수 있다는 진리를 본인의 시를 통하여 저에게 가르쳐 준 시의 스승이자 혁명선배였습니다.

유난히도 추웠던 그 해 겨울 1994214, 서대문의 고려병원(지금의 강북삼성병원)에 그 전날 너무 일찍 우리 곁을 떠난 김남주 시인을 추모하러 문상을 다녀온 기억과 년 전에 아내와 함께 해남에 있는 시인의 생가에 찾아가 마당에 있는 시비에 새겨진 그의 시 노래를 한 음절, 한 음절 되새기며 곡을 붙여 노래 부른 추억을 떠올려 봅니다.

 

오늘 소개할 시는 김남주의 <전사2>입니다. 남민전의 전사이자 불굴의 혁명가였던 신향식 동지가 사형되던 날 감옥에서 우유곽에다 못 같은 것은 꾹꾹 눌러 쓴시입니다.

마지막에 웃는 자가 누구인가 두고 보자!’ 라는 구호가 절로 떠오르는 요즘, 새롭게 되새기게 되는 시입니다.

 

전사2

김남주(1946~1994)

해방을 위한 투쟁에서

많은 사람이 죽어갔다

많은 사람이 실로 많은 사람이 죽어갔다

수천 명이 죽어갔다

수만 명이 죽어갔다

아니 수백만 명이 다시 죽어갈지도 모른다

 

지금도 죽어가고 있다

 

세계 도처에서 나라 곳곳에서

거리에서 공장에서 산악에서 감옥에서

압제와 착취가 있는 바로 그곳에서

 

어떤 사람은 투쟁의

초기 단계에서 죽어갔다

경험의 부족과 스스로의 잘못으로

어떤 사람은

승리의 막바지에서 죽어갔다

이름도 없이 얼굴도 없이 죽어갔다

살을 도려내고 뼈를 깎아내는 지하의 고문실에서

쥐도 모르게 새도 모르게 죽어갔다

감옥의 문턱에서

잡을 손도 없이 부를 이름도 없이 죽어갔다

 

그러나 보아다오 동지여!

피의 양분 없이 자유의 나무는 자라지 않는다 했으니

보아다오 이 나무를

민족의 나무 해방의 나무 민족해방투쟁의 나무를 보아 다오

이 나무를 키운 것은 이 나무를 이만큼이라도 키워낸 것은

그들이 흘리고 간 피가 아니었던가

자기 시대를 열정적으로 노래하고

자기 시대와 격정적으로 싸우고

자기 시대와 더불어 사라지는 데

기꺼이 동의했던 사람들

바로 그 사람들이 아니었던가

 

오늘밤

또 하나의 별이

인간의 대지 위에 떨어졌다

그는 알고 있었다 해방투쟁의 과정에서

자기 또한 죽어갈 것이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자기의 죽음이 헛되이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그렇다, 그가 흘린 피 한 방울 한 방울은

어머니인 대지에 스며들어 언젠가

어느 날엔가

자유의 나무는 결실을 맺게 될 것이며

해방된 미래의 자식들은 그 열매를 따먹으면서

그가 흘린 피에 대해서 눈물에 대해서 이야기 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부끄럽게 쑥스럽게 이야기 할 것이다.

2017. 8. 10

춘천교도소에서 김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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