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에서 온 편지] 김경용님의 편지

2017.09.25 19:33

양심수후원회 조회 수:440

1.

만사사통(萬事舍通),

모든 일은 사소(舍掃)로 통한다.

 

징역형이 확정된 기결수는 여러 가지 일을 합니다.

봉제, 목공, 식품 등 공장 출역을 나가기도 하고 관용부라고 교도소 운영을 우한 취사, 영선, 원예, 이발 등 일을 하기도 합니다.

사소(舍掃)도 이 관용부 가운데 하나인데 사동(舍洞) 청소부(淸掃夫)를 줄여서 그렇게 부르지 싶습니다.

각 사동마다 1~2명 사소가 배치되어 수용자의 일상을 도와주지요.

삼시세끼 배식하고, 하루 세 번 뜨거운 물 넣어주고, 구매물 나눠주고, 신문 배달하고 아침마다 쓰레기 걷고...

온갖 허드렛일을 다하는 사동의 집사 같은 존재입니다.

그러다보니 사소’ ‘사소님’ ‘사소형’ ‘사소 이 방이요찾는 소리가 끊이지를 않습니다. 아마 한 날 한시에 전국의 사소가 일손을 내려놓으면 모든 교도소가 엉망이 될 겁니다.

그는 때로는 수용자 사이에 연락을 전해주는 비둘기가 되기도 하고, 또는 옆방으로 책, 신문, 간식을 건네주는 택배기사가 되기도 하고, 한 번씩은 교도소 내의 이런저런 소식을 알려주는 통신원이 되기도 합니다.

어쨌든 사소를 잘 만나야 생활하기가 수월하지요.

무엇보다 그의 손에는 밥주걱이 쥐어져 있고 그의 두 발은 교도소 안을 자유롭게 오가니까요.

 

해 줄 수 있는 건 뭐든지 다 해줘라

제가 이감 왔다는 소식을 듣고 같은 사동에 먼저 와 있던 한상균 위원장님과 김성윤 목사님이 사소에게 단단히 부탁하였습니다.

사소는 저에게 김동지라고 살갑게 부르며 이것 저것 돌보아 주었습니다. 세탁기 돌리겠으니 빨래 내놓으라 하고, 주말에는 이불도 달라하고, 반바지며 수납함이며 필요한 것들 구해다 주고...

사람이 워낙 부지런하고 깔끔하기도 했지만 두 분 동지의 특별 당부가 있어서 더 마음 써준 것이겠지요.

사소 덕분으로 낯선 곳에 새롭게 적응하는 수고로움을 많이 덜었습니다.

한가할 때는 처자이지만 어려울 때는 동지라고 바깥세상과 단절되 홀로 사방 벽하고만 마주하고 있는 이 곳에서는 동지의 정이 더 애틋하게 다가옵니다.

맘 편히 이야기도 나눌 수 없고 마주 앉아 따뜻한 밥 한끼 먹을 수 없지만 곁방에 동지의 존재를 느끼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넉넉해지고 뱃심이 든든해집니다.

 

2.

지난 달 올린 김남주 시를 읽고 자신의 젊은 시절을 떠올린 분이 꽤 계시리라 짐작해 봅니다.

30여년 전 우리는 김남주 시에 곡을 붙인 노래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부르며 거리로 나가 돌을 들고 화염병에 불을 붙였고, 교문 앞 막걸리 집에 둘러앉아 그의 시 전사1’학살을 낭송하며 민족의 운명을 개척하는 길에 한 생을 바치기로 결의를 다졌습니다.

 

김남주는 징역을 살면서 많은 외국문학을 읽고 그 중 적지 않은 작품을 번역하여 감옥 밖으로 내보냈습니다. 칠레의 시인 네루다(Pablo Neruda)도 그 가운데 한 명입니다.

창작과 비평에 실린 아홉 편의 네루다 시를 읽고 감동을 받았던 김남주는 네루다의 시를 원어로 읽기 위하여 감옥에서 스페인어를 공부하고 번역까지 합니다. 그가 번역한 네루다의 시는 아침 저녁으로 읽기 위하여은박지에 새긴 사랑에 실려 출판되었습니다. 그 시집을 통하여 네루다를 알게 된 저는 김남주가 그러했듯 네루다와 네루다의 시 그리고 네루다가 시에서 노래하는 칠레의 역사와 칠레 민중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장대비 맞으며 고속도로를 달리는 호송차 밖으로 속세의 풍광들이 스쳐갔습니다.”

동지 한 분이 이감 가서 보내준 편지 한 구절이 김남주가 이송가면서 쓴 시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이 가을에 나는

김남주(1946~1994)

이 가을에 나는 푸른 옷의 수인이다

오라에 묶여 손목이 사슬에 묶여

또 다른 곳으로 끌려가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이번에는

전주옥일까 대전옥일까 아니면 대구옥일까

 

나를 태운 압송차가

낯익은 거리 산과 강을 끼고

들판 가운데를 달린다

 

아 내리고 싶다 여기서 차에서 내려

따가운 햇살 등에 받으며 저만큼에서

고추를 따고 있는 어머니의 밭으로 가고 싶다

아 내리고 싶다 여기서 차에서 내려

숫돌에 낫을 갈아 벼를 베고 있는 아버지의 논으로 가고 싶다

아 내리고 싶다 여기서 차에서 내려

염소에게 뿔싸움을 시키고 있는 아이들의 방죽가로 가고 싶다

가서 그들과 함께 나도 일하고 놀고 싶다

이 허리 이 손목에서 오라 풀고 사슬 풀고

발목이 시도록 들길 한번 나도 걷고 싶다

하늘 향해 두 팔 벌리고 논둑길 밭둑길을 내다리고 싶다

가다가 숨이 차면 아픈 다리 쉬었다 가고

가다가 목이 마르면 샘물에 갈증을 적시고

가다가 가다가 배라도 고프면

하늘로 웃자란 하얀 무를 뽑아 먹고

날 저물어 지치면 귀소의 새를 따라 나도 가고 싶다

나으 집으로

 

그러나 나를 태운 압송차는 멈춰주지를 않는다

내를 끼고 강을 건너 땅거미가 내리는 산기슭을 돈다

저 건너 마을에서는 저녁밥을 짓고 있는가 연기가 피어오르고

이 가을에 나는 푸른옷의 수인이다

이 가을에 나는 푸른옷의 수인이다

 

3.

이태 전 2015년 봄에 대학로의 지하 소극장에서 오랜만에 연극 한 편을 보았습니다.

<일 포스티노>라는 제목으로 영화로도 만들어진 칠레 작가 스카르메타의 소설 네루다와 우편배달부를 연극으로 올린 것입니다.

오래 전 소설에서 읽은 시는 쓰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읽는 사람의 것이예요라는 우체부 마리오 히메네스가 네루다에 했던 구절은 오래 기억에 남았었지요.

연극 막바지에 무대 위에서 외치는 아옌데 만세!! 네루다 만세!!” 소리를 들으니 가슴이 뭉클하더군요.

아집과 독선, 오만과 후안무치의 검은 구름이 세상을 뒤덮고 그 어둠이 언제 걷힐지 기약할 수 없던 그 때, 들려오은 젊은 배우들의 외침이 한 줄기 빛으로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목소리 높여 만세를 부르는 젊은 그들이 대견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론 자신들이 외치는 아옌데 정권의 탄생과 전복의 역사와 교훈을 알까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1970년 칠레는 역사상 처음으로 선거를 통하여 사회주의 정권을 세웠습니다.

3세계 어디나 그렇지만 칠레도 진보적인 좌파정당들이 선거에서 연합전선을 펼치지 않으면 압도적인 표차로 대패할 것이 틀림없었고 연합전선을 앞장서 추진한 정당은 공산당이었습니다.

아옌데가 인민연합의 위력한 후보로 부상하자 스스로 후보를 사퇴하고 아예데 지지를 호소하며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고 다닌 칠레 공산당 후보는 시인 파블로 네루다였습니다.

산티아고 외곽의 빈민촌 주민들, 외딴 지방의 광부들, 사막의 구리광산 노동자들, 양 팔에 아이들을 안고 몇 시간이나 네루다를 기다려 준 농촌의 아낙네들 이 모든 사람들을 향해 네루다는 연설을 하고 시를 낭송했습니다.

 

우리와는 다른 세계, 소수의 사람들만이 감지하는 세계에 익숙한 귀를 가진 독특한 이 시인에게 우리는 귀를 기울여야 한다.”

 

네루다와 함께 스페인 내전에 참여했던 절친한 벗이었던 스페인 시인 가르시아 로르카의 네루다에 대한 평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네루다의 <>입니다.

김현균 번역의 네루다 시선(지만지)에 실린 것입니다.

 

파블로 네루다(1904~1973)

 

그래 그 무렵이었다...시가

날 찾아왔다. 난 모른다, 어디서 왔는지

모른다, 겨울에선지 강에선지.

언제 어떻게 왔는지도 모른다.

아니다. 목소리는 아니었다. 말도,

침묵도 아니었다.

하지만 어느 거리에선가 날 부르고 있었다.

밤의 가지들로부터

느닷없이 타인들 틈에서

격렬한 물길 속에서

혹은 내가 홀로 돌아올 때

얼굴도 없이 저만치 지키고 섰다가

나를 건드리곤 했다.

 

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입술은

얼어붙었고

눈먼 사람처럼 앞이 캄캄했다.

그때 무언가가 내 영혼 속에서 꿈틀거렸다,

열병 혹은 잃어버린 날개들.

그 불탄 상처를

해독하며

난 고독해져 갔다.

그리고 막연히 첫 행을 썼다.

형체도 없는, 어렴풋한, 순전한

헛소리,

쥐뿔도 모르는 자의

알량한 지혜.

그때 나는 갑자기 보았다.

하늘이

흩어지고

열리는 것을

행성들을

고동치는 농장들을

화살과 불과 꽃에

들쑤셔진

그림자를

소용돌이치는 밤을, 우주를 보았다.

 

그리고 나, 티끌만 한 존재는

신비를 닮은, 신비의

형상을 한,

별이 가득 뿌려진

거대한 허공에 취해

스스로 순수한

심연의 일부가 된 것만 같았다.

나는 별들과 함께 떠돌았고

내 가슴은 바람 속에 풀려났다.

 

2017. 9. 25.

춘천교도소에서 김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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