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수] 소위 '왕재산'사건 관련 모두 진술입니다.

2011.11.14 14:20

양심수후원회 조회 수:3066

어제 신문에 1000세가 넘으신 독립운동가 구익균 선생님께서 군사정권하에서 '중립화통일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반국가행위로 처벌받은 것을 재심을 통해서 무죄판결을 받았습니다. 참 반가운 소식입니다. 최근 연이은 과거 국가보안법 사건에 대한 무죄판결을 내리는 법원의 전향적인 모습을 환영합니다.

한창 더운 여름에 시작된 사건이 어느덧 석달을 훌쩍 넘겨 찬바람이 불어오는 계절이 되었습니다. 짧지 않은 기간 피고인들을 위해 헌신적인 도움을 주신 변호사님들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아울러 저희들의 조속한 석방을 위해 애쓰시는 민가협 양심수후원회를 비롯한 대책위 관계자분들과 가족들, 이 자리에 참석해 주신 모든 분들께 따뜻한 인사를 보냅니다. 또한, 저로 인하여 이유없이 고초를 겪으시는 분들에게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을 전합니다.


저는 지난 7월초 국장원 수사관들에게 사무실과 가택으 압수 수색을 당한 후부터 수사기관의 모든 신문에 진술거부권을 행사하였습니다. 진술거부권은 법률로 정해진 피의자의 당연한 권리행사입니다. 하지만 제가 이번 사건에 진술을 거부한 이유는 단지 불리한 진술을 거부하는 소극적인 의미만은 아니었습니다.

시대에 뒤떨어진 국가보안법을 악용하여 황당하고 터무니없는 혐의를 들씌우는 국정원 수사에 대한 저 나름의 강력한 항의표시였습니다. 여기 함께 앉아 있는 피고인들은 회사동료거나 친구, 선후배 관계입니다. 모두가 힘없는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무엇으로 어떻게 국가를 전복시킬수 있겠습니까?

5명이 모여서 반국가단체를 구성했다고 합니다. 왕재산이니 225국이니 대호명이니 하는 듣지도, 알지도 못하는 용어들을 들먹이며 억지주장을 합니다. 특히, 저를 임천지역당 총책으로 지목하고 아내와 친구를 통해 폭동을 준비, 획책했다고 합니다. 인천시정, 남동방송국, 남인천방송국, 서해방송국, (주)한화 인천공장 인천연유창, 주안공업단지, 인천항, 제 17보병사단 102연대, 공병대대 제9공수특전여전단, 각 경찰서, 파출소 등을 타격하기 위하여 조직원들에게 대상목표별 임무를 부여하였다고 합니다.

저도 인천에 여러해를 삽니다만 방송국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습니다. 한화 인전공장은 인전된지가 5-6년 된걸로 알고 있습니다. 또 제가 군에도 못가본 사람이, 부대가 어디있는 줄도 모르는 사람이 무엇으로 어떵게 타격을 하겠습니까? 그리고 그 많은 조직원은 다 어디에 있습니까?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입니다. 천안함 사건, 연평도 사건에도 적극 동조했다고 합니다.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저는 폭력을 싫어합니다. 평화를 사랑합니다. 사건의 원인과 과정을 불문하고 고귀한 생명이 사라지고 많은 사람들이 눈물 흘리는 사태를 지지할 만큼 비정상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검찰은 어처구니 없는 억지 주장을 당장 철회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이번 사건의 성격을 "민족대결적인 정권의 말기에 수구세력이 공안정국 조성용으로 빌린 간첩단 조작사건"으로 규장하겠습니다.

저희들의 사건은 엄청난 인력과 장비, 재원이 투여되고 오랜 기간 준비한 수구공안기관의 야심찬 프로젝트였습니다. 저의 경우를 보면 지난해 12월부터 무려 7개월동안 밀착감시를 당했습니다.(확인된 기간만 그렇습니다.)미행 및 24시간 위치추적은 기본이고, 모든 종류의 통신수간의 도청, 담청 및 은행계좌 추적 등 전방위적 수사를 받았습니다. 

저의 사무실 압수수색에만 30명 이상이 동원된것에 비추어보면 전체인원은 수백명될 것입니다. 하지만 대단히 요란스럽게 시작된 수사에 비해서는 실제 신문 과정은 격에 맞지 않을 정도로 황당하였습니다. 출처도 불분명하고 내용조차 모르는 문건을 쓶임없이 읽어주면서 무조건 시인하라고 강요받는 것이 제가 받은 신문수사릐 전부였습니다. 20일동안 15명에 이르는 수사관들이 계속 교대로 들어와서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과 협박, 모욕, 회유, 이간질성 발언을 해대면서 자백을 강요했습니다. 심지어는 시골에 계시는 노부모님들과 형님을 찾아가 저를 회유하라고 종용했고, 저의 지인들과 얼굴조차 모르는 주변사람들에 대한 무분별한 소환조사를 했고 현재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지속적으로 진술거부를 하자 "수사관은 피의자를 잘 만나야하는데 당신 잘못 만나서 신세 조졌다"고 푸념도 하고, "우리 입장을 봐서 조금만 협조해달라"는 사정도 하엿습니다. 정말,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국정원의 수사는 과학적 증거를 통한 사건의 객간적 실체규명보다는 사건을 미리 만들어놓고, 이것저것 나열하고, 이리저리 짜맞추고, 상상으로 추리하고, 결정저으로는 피의자의 자백에 의존하는 수사입니다. 그래서 지속적인 피의장의 진술거보는 수사관이 스스로 묻고 설명하고 대답하는 진풍경을 연출합니다. 진술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우리가 똘똘 뭉쳐서 어떻게든 당신을 사회에서 영원히 격리시키도록 하겠다. 최소한 10년 이상의 감옥생활을 하도록 하겠다"는 수사관의 악의에 찬 말을 뒤로 하고서야 국정원 조사를 마칠수 있었습니다.

얼마전 신문을 통해 보니 검찰의 공정성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가 12%를 넘지 못한다는 여론조사결과를 보았습니다. 좋지는 않을것이란 예상을 했지만 이 정도로 심각할 줄은 미처 몰랏습니다. 검찰의 이러한 대국민 이미지가 어제 오늘 사이에 만들어진 것도 아닐 것이고 그 누가 의도한 반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희들 사건을 포함한 최근의 사건들-한상률 전 국세청장 건, 과노현 교육감 건, 신재민 전 차관 건 등-에서 보여준 검찰의 권력의 시녀로서의 행태는 국민들에게 더욱 큰 실망감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저희들이 검찰수사를 받던 중에 검찰의 인사이동이 있었습니다. 신임 한상대 검찰총장은 취임을 하면서 3대 중점과제 중 한가지를 종북세력의 척결을 들고 나왔습니다. 공정한 법 집행을 해야 하는 검찰의 수장이 극우보수세력이 사용하는 생경한 단어까지 동원해가면서 앞장서겠다고 햇습니다. 17년만에 적발해낸 반국가단체를 엄히 처벌하겠답니다. 신임 검찰총장의 의지와 위용을 빛내줄 첫 재물로 저희들이 낙점된 것입니다.

서울시 무상급식투표가 있은 직후에 사건이 기소되었고 대대적으로 알려졌습니다. 정치검찰이 기막힌 타이밍에 환상적으로 잘 써먹었죠. 국민들의 알 권리를 당연히 보장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피의자들에 최소한의 보호는 있어야 하고 인권을 침해해선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간첩 혐의하는 이유로 피의자의 실명과 회사명, 업종, 매출액등 피의사실과 직접 관련없는 것까지 언론에 제공한 점은 명백히 검찰이 잘못한 것입니다.

수개월에 걸친 노력으로 수주한 공사가 대통령의 친척이 살고 있는 아파트단지라는 이유만으로 공사를 하지 못하고, 그러한 내용들이 tv를 비롯한 언론매체를 통해서 알려져 기존 고객들, 대리점, 협력업체들의 신뢰 추락은 물론 신규 영업에도 치명적 타격을 받았습니다.

수사초기부터 위장거점으로 낙인찍혀서 회사의 폐업을 강요받았습니다. 결국 수사기관의 바람대로 회사는 심각한 위기에 몰려 있고, 어쩔 수 없이 대표이사직 사임은 물론 '***'이라는 간판도 내렸습니다.

검찰이 저에게 적용한 국가보안법은 1948년 제정시부터 현재까지도 폐지를 둘러싼 격렬한 논란을 불러 일으켜 온 대표적인 악법입니다. 일제치하에서 독립운동가를 처벌하던 '치안유지법'을 모태로 하고있으며 대한민국 형법이 만들어지기 5년전에 '여순사건 직후의 비상시기'라는 명분으로 정치적 반대세력을 탄압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후 독재정권하에서 수많은 구속과 고문, 불공평한 재픈으로 피해자를 양산해온 법률입니다. 또한 법조항의 추상성과 불명확성으로 인하여 해석과 제반상황에 따라서 얼마든지 남용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1990년대를 거치면서 획기적으로 달라진 국제 및 남북관계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1991.9.18. "남과 북은 동시에 UN에 가입하였습니다."
이것은 북이 국제법상으로 주권국가임을 인정하는 것이고 UN가입의 기본적인 자격인 평화애호국임을 나타내주는 것입니다. 인정하기 싫어도 대한민국과 대등한 '사실상의 국가'라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북이 대한민국의 영토를 무단으로 점령하고 있는 '반국가 단체'라고주장하는 것은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이고, 이러한 입장에 기반하는 국고법도 현실성을 잃었다고 생각합니다. 위의 견해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1948년 12월 12일의 유엔총회 결의 제195호(Ⅲ)를 근거로 한반도의 유일합법 정부를 주장하지만 이마저도 그 유효한 지배의 범위는 남한에 국한시키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헌법상의 영토 규정도 실효성이 없는 선언규정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1991.12월 '남북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가 채택되고, 1998. 10월 금강산 관광 개시, 2005.6.15 공동선언 발표, 2007.10.4선언 발표 등 지속적인 남과 북의 화해와 협력, 평화통일을 위한 조치들은 냉정적인 국보법의 설자리를 잃게 하였습니다. 비록 보수세력들의 거센 반발에 브딪쳐서 실현되지는 못했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는 '칼집에 넣어 박물관에 보내야한다'는 의견을 피력한 바 있습니다. 현재 MB정부에서 남과 북이 대결과 분열의 상태에 놓여 있지만 국보법은 이제 공안기관들이 국민들을 처벌하는 처단적 기능만 남아 있고 국민들이 이를 준수하고자 하는 의사결정규범으로의 기능은 상실된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6.15공동선언은 민족의 공존과 공생, 공양의 선언입니다. 전쟁은 물론이고 일제의 무력에 의한 통일을 반대하고, 한쪽이 한쪽을 먹는 흡수통일 또한 반대입니다. 서로의 실체와 차이를 인정하고 시간을 두고 동질성을 찾아가며 평화적으로 통일을 지향해가는 것입니다. 지난 시절 본인이 관여했고 실천했던 일련의 활동은 6.15공동선언을 기준으로 했던 것이도 그 내용과 범주를 벗너난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검찰이 저에게 제기한 이적동조혐의는 결코 인정할 수 없습니다. 작금의 상황에서 종북세력이라는 것은 민족화합과 공조를 주장하는 6.15선언, 10.4선언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인 것같습니다. 심히 우려되는 상황입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최근 들어 국보법 관련사건들이 신문기상에 연이어 등장하고 있습니다. 검찰총장을 비롯한 수구공안기관의 태도가 달리지 않으면 저희들과 같은 사람들이 더 많이 생겨날 것입니다. 무모하고 과도한 공권력행사에 대해 경종을 울리고 제동을 걸어줌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저희들의 사건이 및거름이 되길 희망합니다.

2008년 7월 금강산관광객 피격이라는 불행한 사태가 있었습니다. 그후 3년간의 공백을 거쳐 지난 7월부터 남북, 북미 당국사이에 접촉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북도 조건없는 6자회담을 말하면서 적극적이고 미국도 새로운 대북라인을 구성하고 의욕을 보이고 있습니다. 비록 저의 단견에 불과하지만, 지난 20여년간의 남북, 북미사이의 갈등과 화해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우여곡절속에서도 조금씩 조금씩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해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조금만 저 전진하면 한반도의 비핵화, 평화협정, 북미수교의 새로운역사가 열릴 수 있으리라고 확신합니다.

그날이 오면 이 자리의 피고인들에게 적용된 국보법도 역사의 유물에 될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평화적인 통일의 길로 들어서게 될 것입니다. 머지 않은 날에 꿈이 실현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재판관님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합니다.

2011년 10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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