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지 310호(2017년 8월)입니다

2018.04.23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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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권 310호 발행일 2017. 8. 24 | 발행인 김혜순 | 발행처 민가협양심수후원회 

7월 31일, '양심수 없는 나라로 동행'에 참가한 민가협양심수후원회 김혜순 회장과 실천단들이 행진에 앞서, 비가 와도 무엇이  앞을 막아도 반드시 양심수들을 석방시키겠다는 각오를 다지다.

단상•장성들 모조리 제대시키고 새판을_김재선 부회장·1 | 만평·2 | 인터뷰•폐암 확진 받은 ‘양심수의 대부’ 권오헌_ 통일뉴스 김치관·3 | 권오헌 선생님께 전하는 편지·19 | 슬픈일_박석률 선생님·이준원 선생님·22 | 소식1•류종 인 선생님을 1주기·25 | 소식2•박정숙 선생님 101세 생신·26 | 미주소식•북침전쟁연습 규탄투쟁 보고_김시환·27 

목차 

| 투쟁1•양심수 가족 정지영 님이 쓴 편지·32 | 투쟁2•비전향장기수 2차 송환을 즉각 단행하라!·33 | 기고•출소1 년 양심수의 편지_정경학·34 | 연재•김련희 수기(10) 따뜻한 내나라_경찰서 보안계 신변담당관·36 | 광고•양지탕제 원·39 | 양심수 현황·40 | 감옥에서 온 편지•이미숙 이병진 한준혜 이용섭 이상호 신언택 김기종 김경용·42 | 이런  일이 있었어요·56 | 6월 재정보고·60 | 회비 내주신 분들·61 | 회원가입신청서·뒷표지 

민가협양심수후원회 | (우) 08802 서울시 관악구 남부순환로 247길 14-3(행운동 1690-141) 만남의 집 전화 (02) 874-4063 | 전송 (02) 888-4470 | 홈페이지 www.yangsimsu.or.kr | E-mail : yangsimsu0@gmail.com 

공 지

후원회 계좌번호는 그대로인 상태에서  회원님들 통장에 찍히는 출금자 명의만  변경했습니다.  

회원님들께서는 명의변경 내용만 알고 계시면 됩니다. 

월례강좌 

실현되지 않은 정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하여 

강사 윤미향 정대협 대표 

일시 8월 26일(토) 오후 4시 

장소 낙성대 만남의집 

(낙성대역 8번 출구) 

문의 010-4259-2790 

02-874-4063 

[ 변경 ] 국민은행 006-01-0601-098 민가협양심수후원회 농 협 053-01-112692 민가협양심수후원회 

[ 기존 ] 국민은행 006-01-0601-098 권오헌양심수후원 농 협 053-01-112692 권오헌양심수 

계속 성원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김련희 출판기념회 

831요일 | 오후 630종로5가 기독교회관 2층 

 단상 

장성들 모조리 제대시키고  

새판을 한번 짜 봤으면  

김재선_부회장 

우리 민족의 영웅 광개토대왕께서도 향년 38세에, 역발산기개세 초패왕 항우 도 향년 30세의 젊은 나이에 할 일 다 하고 갔다. 현대사의 예를 들어보라고  해도 크게 다를 것도 없다.  

박찬주 사령관 부부가 공관에 근무하는 사병들에게 오만가지 갑질을  

해 연일 화제다. 그들 부부가 갑질하다 들켜서 그렇지 그보다 더 못된  

짓을 한 사람도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남편이 대대장이면 여편네는 연대장이다" 라는 말이 있다.  

이런 말은 군에 갔다 온 사람치고 안 들어 본 사람이 없을 것이다. 사 

령관 부인이 남의 집 귀한 자식 종 부리듯 하는 것도 다 이런 배경 속에 

서 자연스럽게 나왔을 것이다. 아마 속으로는 재수 없게 자기들만 걸렸 

다고 무척 억울해 할 것이다. 별 단 군인들은 그들이 내 세우기 좋아하 

는 애국심이나 실력보다는 대체로 시류에 편승해 처세에 능한 사람들이 

고, 부인들 역시 남편 진급에 남편보다 더 공을 들이다 보니 보상심리 

도 클 것이다. 

전시작전권도 없는 나라에 별들이 왜 필요한지 왜 그렇게 많은지 난  

모르겠다.  

차제에 장성들 옷 다 벗겨 제대시키고 그 자리를 젊은 영관급이나 그  

하위 계급으로 채워서 이들을 키우는 그런 새판을 짰으면 좋겠다. 썩은  

별들은 능력이나 여러 면에서 그들보다 나을게 없고 나라 돈만 축내는  

적폐 세력일 뿐이다. 

우리 민족의 영웅 광개토대왕께서도 향년 38세에, 역발산기개세 초 

패왕 항우도 향년 30세의 젊은 나이에 할 일 다 하고 갔다. 현대사의 예 

를 들어보라고 해도 크게 다를 것도 없다. 그런데 왜 환갑을 눈앞에 둔  

늙은 별들이 하라는 일은 안 하고 무슨 염치로 젊은이들 괴롭히고 거드 름만 피우는가.

소포 목적지 :적폐청산 나라 정상화  경향신문_장도리(박순찬_0818)

양심수후원회 소식 |

만평 

▲ 경향신문 8월15일자 ▲ 경향신문 8월 8일자 

▲ 한겨레신문 8월 8일자

▲ 민중의소리 8월 6일자_꼬리잡힌 쥐 

‘구금시설 교정 관련 법규집’ PDF파일로 제공 ● 

2012년 5.18기념재단의 2012 국내 시민사회연대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제작된 ‘구금시설  

교정 관련 법규집’ 책자가 모두 소진되었습니다. 

양심수후원회의 어려운 재정 상황으로 다시 제작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어 조만간 개정된  

법규들을 수정보완하여 양심수후원회 홈페이지(www.yangsimsu.or.kr)에서 PDF파일 

로 제공할 예정입니다. 필요하신 분들은 PDF파일을 출력하여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2 | 310호•20178월  

인터뷰 

“고난 받는 이들 위해 이름 없이 헌신한 분들께 감사” 폐암 확진 받은 ‘양심수의 대부’ 권오헌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2017.07.31 

 

‘양심수의 대부’ 권오헌 민가협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이 팔순에 폐암 4 

기 진단을 받고 지난 11일 <통일뉴스>와 인터뷰를 가졌다. [사진_조천현]  

최근 폐암 4기 진단 을 받은 ‘양심수의 대 부’ 권오헌(81) 민가협 양심수후원회 명예회 장은 지난 11일 <통일 

“고난받는 사람들을 위해서 이름 없이 헌신 해주신 분들 정말 감사하다. 내가 언젠가는  밝히겠지만 이런 분들은 정말 얼마나 존경스 러운지 모른다.”

것은 지난 7월 5일”이 라며 “병원에서 (폐암)  4기라는 것은 이미 폐 를 지나서 다른 장기나  부위로 옮겨졌을 때를  

뉴스>와의 인터뷰에서도 끝내 ‘이름 없는 후원자’ 들의 실명은 공개하지 않았다. 

본인 스스로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 사건 으로 옥고를 치른 권오헌 명예회장은 양심수를  뒷바라지하며 팔순을 넘겼고, 민가협양심수후원 회 회장직을 내려놓고 명예회장으로 한발짝 물러 났지만 여전히 현장 곳곳을 누비다 덜컥 폐암 진 단을 받았다. 

그는 “내가 몸에 이상증상을 느낀 것은 거의 석  달이 다 되지만 의료기관에서 확정 판결을 받은  

말한다. 이럴 때는 수술이 불가능하고 약물치료  내지는 주사치료 밖에 없다고 한다”고 말했다. 

11년전 고희(古稀) 기념 인터뷰 당시에도 “통 일운동이나 민주화운동에 있어서 정년은 없다”고  말한 바 있는 그는 “그냥 내가 움직일 수 있는 한 에서는 움직이면서, 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한은  내가면서, 투병도 하고 또 자연의 섭리에 따라서  가게 되면 갈 거다”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실제로 폐암 판정을 받은 다음날인 7월 6일 ‘민 가협 목요집회’에서 그는 “물론 자연에 거슬러서  

양심수후원회 소식 |

인터뷰_폐암 확진 받은 ‘양심수의 대부’ 권오헌 

 

살 수는 없는 것이지만 인간의 의지로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다해서, 특히 조국통일에 대한 신심을  가지고 병마도 이겨 내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팔순을 맞은 지난해부터 기존 기고글들을 모아  두 권의 책을 준비 중인 그는 “하나는 자주통일과  관련된 부분, 또 다른 하나는 민주주의와 인권,  양심수 관련 문제”라며 “약간의 욕심이지만 최근 

에 서둘러서 하고 있다”고 변화된 심경의 일단을  내비쳤다. 

그러나 정작 인터뷰 자리가 잡히자 지난 일들  가운데 묵혀뒀던 특별한 이야기거리를 기대했던  기자의 바람이 무색하게 그의 관심은 온통 통일  정세와 양심수 문제로만 내달렸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다음날부터 ‘사회적 존재감’ 에 눈뜨기 시작한 그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3 년간 농촌 새마을운동의 원조격인 4H 활동을 통 해 청소년 사회운동을 했고, 3년간 군대생활을 하 고, 다시 3년간 농촌사회운동에 매진한 뒤 1964 년 한일회담 반대운동부터 본격적인 사회운동에  

참여, 1968년 통일사회당 입당, 1979년 남민전  

사건으로 투옥된다. 

출옥후 양심수와 양심수가족들을 돌보는 일을  시작해 지금까지 정년 없는 양심수의 대부 역할 을 해온 셈이다. 

그는 북에서 내려온 이름모를 피난민부터 <자 본론>을 건네준 한영고교 교감, 통일사회당 입당  계기를 마련해준 박금서 성신여대 교수, 당대의  선각자들인 함석헌, 장준하 선생, 3개월 동안 자 신의 집에서 동거한 남민전 책임자 이재문 선생 까지 숱한 인연을 언급했다. 

또한 두 달이 넘도록 가슴앓이만 했던 화진포  해수욕장에서 만난 북녘 처녀, “정말 동지이고 스 승이고 누님이고 어버이고 나를 키워준 유일한  분”인 ‘작은 누님’에 대한 각별한 마음도 풀어놓았 다. 

그러나 “이름 없이 헌신해주신 분들”에게 감사 와 존경을 표했지만 “언젠가는 밝히겠”다고만 넘 어갔다. 특별히 “민가협 어머님들을 정말 존경하 고 사랑한다”며 “어머니들의 소원이 이뤄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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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전 고희(古稀) 기념 인터뷰 당시에도 “통일운동이나  민주화운동에 있어서 정년은 없다”고 말한 바 있는 그는  “그냥 내가 움직일 수 있는 한에서는 움직이면서, 내 목소 리를 낼 수 있는 한은 내가면서, 투병도 하고 또 자연의 섭 리에 따라서 가게 되면 갈 거다”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비전향 장기수들의 석방과 2000년 남북정상회 담 직후인 9월 2일 63명의 비전향 장기수가 북으 로 송환되는 과정을 긴밀하게 도운 그는 “열일곱  분인가 남아있다는 말씀을 들었다. 선생님들 돌 아가시기 전에 빨리 가서 제발 뵙고 싶은데 여러  가지 여의치 않아서 안타깝다”며 “선생님들, 부디  건강하시고 선생님들 생전에 선생님들 평생 염원 이 반드시 이뤄지길 간절히 빌겠다”고 안부를 전 했다. 

아울러 ‘강제 전향은 전향이 아니다’며 2차 송 환을 요구한 33명 중 생존해 있는 15명의 조속한  송환도 촉구했다. 

속아서 강제로 끌려왔다는 탈북민 김련희 씨와  중국 식당에서 일하다 지배인을 따라 단체로 입 국한 뒤 본인들의 귀순의사가 확인되지 않고 있 는 12명의 여종업원에 대해 송환운동을 해온 그 는 “문명사회에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 “현대 판 노예, 야만행위”라며 강도 높게 비판하고 조속 한 송환을 촉구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새 정부에 대해서는 “미국에  대해서 할 말 하라”, “남북관계에 있어서 미국이  관여해서는 안 된다”, “핵과 미사일 문제는 한국 이 미국과 동맹관계 속에서 해결하려 하지 말고  미국에게 오히려 제재와 압박, 그리고 적대정책 을 폐기함으로써 해결하는 순서를 밟았으면 좋겠 다”고 조언했다. 

“남북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외세와 협의한 

다거나 허락을 받아서 할 게 아니라 문재인 대통 령 자신이 떳떳하게 김정은 위원장과 남북합의를  이행하기 위한 정상회담을 제안하고 현재 남북  

간에 얽혀있는 것을 완전히 풀어야 된다”는 것. 또한 “핵.미사일 문제는 어차피 미국의 고립 압 살정책 때문에 나온 것”이라며 “외세의 침략을 막 는 방어수단으로서 우리 민족의 자산으로 둘 수  있는 문제”라고 말하기도 했다. 특히 미국의 대북  ‘세컨더리 보이콧’에 대해 협의 중이라고 밝힌 강 경화 외교장관에 대해 “당장 파면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평생을 양심수 후원활동에 전념해온 그는 “양심 수가 많고 적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자기 양심에  따른 활동으로 구속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며 “그렇기 때문에 양심수 석방 문제는 ‘그 사람들 이 바로 양심수이기 때문에 석방된다’는 것”이라 고 명쾌하게 정리했다. 

6.15민족공동행사가 평양에서 개최될 경우 방 북하기 위해 병원 측의 입원 권유조차 보류한 채  기다렸다는 그는 6.15공동행사가 무산된데 이어  8.15민족공동행사마저 무산으로 흐르고 있는데  대해 안타까움을 표했다. 

인터뷰 내내 꼿꼿함을 잃지 않은 그는 이후에도  <통일뉴스> ‘최다 출연자’답게 6.15남측위원회가  주최한 7.27 정전협정일 기자회견이나 최근 남민 전 장기수 박석률 전 민자통 의장의 추모식에서 도 항상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양심수후원회 소식 |

인터뷰_폐암 확진 ‘양심수의 대부’ 권오헌 

다음은 지난 11일 서울 마포 한 오피스텔에서 가진 인터뷰 내용이다.  

조천현 작가가 영상과 사진 촬영을 맡았다. 

“조국통일에 대한 신심을 가지고  병마도 이겨내겠다”

통일뉴스 갑자기 건강이 안 좋다는 사실을 목요집 회에서 공개했다. 먼저 그 내용부터 알려 달라. 

권오헌 명예회장 : 내가 몸에 이상증상을 느낀 것 은 거의 석 달이 다 되지만 의료기관에서 확정 판 결을 받은 것은 지난 7월 5일이었다.  

서울대학병원 호흡기내과에서 CT촬영이나 조 직검사, 여러 검사를 통해서 최종적으로 폐암 4기 라는 판정을 받았다. 앞으로 2주 동안에 걸친 유 전자 검사를 통해서 어떤 치료를 해야 하는지 결 정한다고 한다. 그래서 7월 19일에 다시 병원에  

가서 아마 첫 치료를 할 것 같다. 

통일뉴스 폐암이 4기라면 오래되고 진전된 상태 같 다. 몸에 이상을 자각했다지만 갑작스럽고 당황스 럽겠다. 

문헌상으로 보니까 폐암은 증상을 알았을 때는  많이 발전된다고 한다. 나도 4기라는 얘기에는 좀  놀랐다. 실제로 왼쪽 폐에 있는 부위는 자그마한  거였다. 덩어리가 작아서 그렇게 심한 건 아니지  않겠나 생각했다. 그리고 기침 나오는 것 외에는  통증이나 호흡 곤란이나 다른 부위에 대한 통증은  아직 느껴지지 않았다. 

그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병원에서 4기라는 것 은 이미 폐를 지나서 다른 장기나 부위로 옮겨졌 을 때를 이야기 한다. 이럴 때는 수술이 불가능하 

고 약물치료 내지는 주사치료 밖에 없다고 한다. 

통일뉴스 오랫동안 사회운동을 해왔고, 고령에 비 해 활동도 많았다. 지금까지도 거의 모든 집회에 빠 짐없이 참가했는데, 4기가 되도록 어떻게 그렇게  계속 활동을 해왔는지 믿기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목요집회에서도 얘기한 바 있다.  “물론 자연에 거슬러서 살 수는 없는 것이지만 인 간의 의지로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다해서, 특히  조국통일에 대한 신심을 가지고 병마도 이겨내겠 다” 이런 이야기를 했다. 

이것은 가장 존경하는 민가협 어머니들, 양심수 후원회 회원들, 비전향장기수 여러분들, 목요집회 에 항상 나오는 사회단체 여러분들에 대한 내 개 인의 애정이고 또 그분들과의 동지적 연대감이다.  

또 이 나라의 민주주의와 통일을 위해서 함께했다 는 측면에서 서로에게 힘을 주자는 의미를 둔 것 이다. 실제로 나는 어디 요양하러 간다거나 이런  생각은 전혀 없다. 그냥 내가 움직일 수 있는 한에 서는 움직이면서, 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한은 내 가면서, 투병도 하고 또 자연의 섭리에 따라서 가 게 되면 갈 거다. 

사실 너무 오래 살았다. 원래 내가 몸이 약했 고, 위가 약해서 60을 넘겨 살기 힘들다고 생각했 는데 지금 80을 넘겼기 때문에 다른 욕심은 없다.  그래서 내가 활동하는 한은 종전과 다름없는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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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하려고 한다. 

통일뉴스 2006년 선생의 고희를 맞아 인터뷰한 적 이 있다. 벌써 11년이 흘렀고, 민가협양심수후원회  회장에서 명예회장으로 한발짝 물러나기도 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거의 똑같이 활동해 온 것 같다.  좀더 여유를 가졌으면 하는 후배들의 바람도 있었 

는데, 계속 일선 활동에 전념한 이유는? 그 때도 인터뷰에서 그런 이야기를 한 것 같은 데, 양심수후원회 회장의 임기는 반드시 있어야  하지만 통일운동이나 민주화운동에 있어서 정년 은 없다. 사실 어떤 직책을 맡고 안 맡는 것과는  관계없이 통일문제나 민주화문제, 특히 늘 만나야 하는 양심수 가족들과의 생활, 이것은 임기를 떠 나서 그냥 ‘내 생활의 일부다’ 이렇게 생각할 수밖 에 없었다. 나는 그것을 가장 자긍심을 가지고 보 람있게 생각할 뿐이지 고통이라고 생각한 일이 없 다. 

그래서 사실은 명예회장이 된 이후에도 일상활 동은 거의 변함없이 했다. 그리고 회장의 자리를  침범한다거나 이런 개념하고는 전혀 관계없이 개 인 권오헌이 우리 민족문제나 민주화문제나 양심 수에 대한 생각에 따라 활동은 변함없이 했다. 

통일뉴스 고희 때 책을 낸 적이 있는데, 팔순에는  계획이 없었나? 고희 때 자서전을 내고 싶다고 말 했는데 진척이 있나? 

자서전이라는 것은 나이가 들고 했을 때 얘기가  나와야 된다. 쉽게 이야기하기 어려웠지만 80 가 까워지니까 지나간 삶에 대해 되돌아보는 그런 생 각이 안 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거기에 대한 것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 겠다는 것은 계획된 바가 없었고, 다만 그동안 썼 던 글들, 주로 후원회 소식지에 썼던 글인데 ‘이것 

을 엮어내는 것이 어떨까’ 이런 생각을 했다. 그전 70때에는 한겨레신문이나 대학신문에 쓴  것이 많았다. 이번에는 주로 통일뉴스에 기고형식 으로, 사월혁명보라든가 민중의소리, 자주시보 이 런 언론사에 썼던 글들이다. 후원회 소식지에도  실었던 글들인데, 이것을 엮어내는 것이 어떨까  생각했다. 특히 양심수후원회에서 함께 일했던 분 들이 그렇게 생각해 음력으로 치면 80인 작년에  책을 내면서 팔순잔치도 하자고 했는데 내가 일이  바빠서 정리할 시간이 나지 않았다. 사실 내가 아 무 것도 않는 것 같아도 굉장히 바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틈틈이 정리를 시작한 것이  올 초부터였고, 올 초 내 조카가 그걸 정리했다.  그러다가 내가 몸이 안 좋게 돼서 기왕에 하려면  서두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해서 글모음을 정리 하고 있다. 

다른 글들은 제외시키고 주로 우리사회에서 일 어나는 모든 일, 가령 자주통일이라든가 평화, 전 쟁반대, 인권, 민주주의, 양심수, 국가보안법, 민 중생존권 이런 부분에 있어서의 내 마음 속에 생 각을 거쳐서 나온 것이 우리 주장이었다. 

그래서 우리 주장만을 그것도 다가 아니라 추려 서 두 권으로 모아냈다. 하나는 자주통일과 관련 된 부분, 또 다른 하나는 민주주의와 인권, 양심수  관련 문제, 이렇게 나눠서 정리하고 있다. 약간의  욕심이지만 최근에 서둘러서 하고 있다. 

“개인사라기 보다는  

우리사회의 한 단면” 

통일뉴스 현대사를 깊숙이 체험하며 살아왔는데,  자서전 계획은? 

마음속으로는 좀 갖고 있었다. 내가 살아온 것 이 그냥 개인사라기 보다는 사실 어떻게 보면 우

양심수후원회 소식 |

인터뷰_폐암 확진 ‘양심수의 대부’ 권오헌 

리 현대사의 한 단면이기도 했다. 

예를 들어서 내가 철이 들고 사회적 존재감을  갖게 된 것이 해방 다음날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였는데, 작은 아버님이 “일본이 망했다” 그러면 서 그 자리에서 장롱 속에 깊숙이 놔뒀던 지금으 로 치면 한글교본을 주면서 “오늘부터 이 공부를  해라. 왜놈 글은 이제 안 해도 된다”고 했다. 

바로 그날 면사무소와 학교를 가보니까 학교 신 사가 불타고 일본 교장선생이 아래만 가리고 발가 벗긴 채 “나니모 나이, 나니모 나이(아무것도 없 다)” 이렇게 하고 있는 것을 봤다. 

그때 청년들이 왜놈들로부터 그 압박과 설움을  받았는데 “이제 우리 독립을 했다. 우리는 독립국 가다”고 외치던 것이 쟁쟁하다. 지금도 귀에 들리 는 것 같다. 그것이 내가 사회적 존재감을 갖게 된  거다. 

우리 마을에서 일어났던 해방공간의 여러 일들 이 있다. 그것이 청년운동이기도 했지만 좌익운동 이기도 했고, 지금으로 보면 자주통일운동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동네사람 70여명 이 한꺼번에 잡혀들어가는 것을 보고 그때부터 심 각한 우리 이념대립의 현장을 목격하게 됐다. 

그렇게 시작된 사회적 존재감이 내가 어머니 아 버님 일찍 돌아가시고 사회적으로는 아주 격변시 대였고, 전쟁을 겪었다. 어려운 시대를 지내면서,  그럴수록 왜 그렇게 책을 보고싶어 했는지. 사회 적 여러 가지 현상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고 이것 이 움터서 나중에 이런 사회활동 하는 토대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초등학교 졸업하고 3년간 4H 활동을 통해서 청 소년 사회운동을 했고, 3년동안 군대생활 했고,  제대 후 3년간 농촌사회운동을 했고, 이때부터 정 치적 의식을 가진 사회운동이었다. 

64년부터 한일회담 반대로 본격적인 운동이 시 

작된다. 68년 통일사회당 입당, 그 뒤로 남민전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사건, 이렇게 해서 감옥살 고 나와서, 양심수 문제와 통일 문제 관련해서 사 회활동하고 이렇게 한생을 보냈다. 

이것이 그냥 소박한 개인사라기 보다는 우리사 회의 한 단면이기 때문에 이런 것도 하나 기록해  놓으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통일뉴스 지금까지 공개하지 못하고 묻어뒀던 이야 기가 있다면 한두 가지 말해 달라. 

이상하게 내가 아주 어려서부터 혼자 생활이 아 니라 동네 사랑방에서 생활했고, 또 4H 그룹이라 는 이런 공동체 생활을 했다. 그래서 개인생활이  없었다.  

한 가지 이야기한다면 64년에 농촌사회운동 3 년을 하다가 농촌을 떠나서 충청북도 단양에 한일 시멘트공장 짓는 현장에 갔다. 전국에서 노동자들 이 모여들어 조그만 천막을 치고 수천명이 모여서  

하루 일을 하는 거다. 새벽 3시쯤이나 일어나 줄 을 서야 되는 거다. 삽이나 곡괭이 같은 공구를 받 아야 일하는 거다. 그때 나한테는 굉장한 충격이 었다. 사람들 삶이 이렇게 절박하고 일이라는 게  

단순한 게 아니라 생존권이라는 게 이렇게 절박하 다는 것을 처음으로 느꼈다. 

북에서 피난 왔다는 사람이 이런 이야기한 걸  기억한다. “회사에서는 나한테 공구를 안 줬지만  나한테 임금을 줘야 된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죽 으니까. 나는 집도 없고 잘 곳도 없어서 여기서 하 루 일을 해야만 사는 사람이다.” 

여기서 회사는 사회, 국가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인식했다. 나를 살게 해야 된다는 이야기를 당당 하게 이야기했다. 국가나 사회는 특정 개인을 떠 나 사람들에 대한 생존권을 보장해줘야 된다. 그 분은 전혀 지식인도 아니고 그냥 떠돌이 같은 사

8 | 310호•20178월  

람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이야기를 했던 거다. 

통일뉴스 1964년이면 한일협정이 사회적 이슈가  됐던 때 같다. 

64년 그해가 굉장히 무더웠다. 한일회담 때문에  서울이 아주 부산했다.  

현장 모르게 서울에 올라와서 광화문네거리에 서 데모 속에 들어갔다가 종로경찰서에 끌려가기 도 했는데, 만일 그날 못 내려가면 아주 큰일 날  일이었다. 어떻게 용케 빠져 나가서 내려가면 현 장에서는 전혀 모르는 일이었다. 그리고 나서 9월 에 서울에 올라왔는데 처음 만난 사람이 함석헌,  장준하 이런 분들이었다. 나는 그때 진보라든가  이런 것보다 그 분들의 한일회담 반대 활동이나 < 사상계> 글을 통해서 지식인으로서 평가했던 것 이다. 

사실 사상계를 본 것이 사상계가 창간된 다음해 인 54년쯤 될 거다. 시골에 있으면서 그때는 한자 도 잘 모르던 땐데 사상계를 봤다.  

진보당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온 책자 <중 앙정치>도 전부 한자였다. 평화통일론을 접한 거 다. 그런 걸 열심히 볼 정도로 많은 책을 통해서  속을 채우긴 했다. 그래서 함석헌, 장준하 선생을  만나서 생각의 차이나 대화에 있어서의 어려움은  느끼지 않고 지냈다. 서울에서 옳은 일을 하는 사 람들도 있다는 걸 보면서 많은 토론회를 거의 다  갔고, 그것이 하나의 나의 학습장, 교정이었다. 

65년인지 67년에 졸업하고 10여년이 지나서 초 등학교 6학년 담임선생을 만났다. 전쟁시기에 부 역을 했다해서 우리학교에서 쫓겨나 서울에 와서  어느 대학 사학과를 나와 고등학교에 있다고 듣고  수소문해 만났다. 

왕십리 근처 한영고등학교 교감 선생으로 있더 라. 그 교감 선생을 만난 것이 또 하나의 계기가  

됐다. 그분이 나한테 <자본론> 1,2,3권을 준 분이 다. 해방공간에서 처음으로 <자본론> 3권이 나왔 는데, “이건 자네나 봐야할 거네. 나는 이제 못 보 겠고”라고 줬다. 

얼마나 어렵나. 그걸 수십 번 읽곤 했다. 다른  비판적 막시즘이나 보다가 그걸 보니까 아주 논리 정연하고 내 머리가 정리되는 것 같기도 했다. 그  뒤로 통일사회당도 들어가고 했지만 사실은 그것 은 내 전부는 아니었다. 

통일뉴스 남민전이나 비전향장기수 관련해서 비화 나 공개 못할 이야기도 많았을 텐데, 의미가 있는데  안 알려져 있거나 이번 기회에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은 것이 있다면? 

이재문 선생이 우리집에 3개월 있었던 것은 공 개한 바 있다. 그와 관련된 이야기가 많이 있다.  지금 어떤 것을 특정하지는 못 하겠다. 정리를 쭉  해놓고 봐야 어떤 것이 중요했던지 알 것 같다. 

통일뉴스 혹시 남로당이나 조선로동당에서 당원 가 입을 권유받거나 가입하지 않았나? 

남로당 당시에는 소년이었고, 남민전 사건은 전 선이었고, 전혀 그런 건 없었다. 통일사회당에 들 어간 것이 유일하게 당에 들어간 거다. 

통일사회당에 입당한 것도 독특한 이야기다. 박 금서 성신여대 교수가 박정희 쿠데타 세력한테 밀 려나서 현장에 쫓겨나와 나하고 현장에서 만난 거 다. 그때 입석이라고 충북시멘트공장 짓는 현장인 데, 거기서 보니까 아무래도 비슷한 사람은 서로  

가까워지지 않나. 모든 것이 너무 찰떡궁합이었 다. “미스터 권, 정치 한번 해보지 않을래?” 그래 서 김철 씨를 소개해줘서 통일사회당 가게 된 거 다. 그 사람 아주 참 재밌었다. 그 뒤로 나와는 절 친했고, 그 사람 이야기만 해도 참 많다.

양심수후원회 소식 |

인터뷰_폐암 확진 ‘양심수의 대부’ 권오헌 

통일뉴스 독신으로 홀로 사시는데 연애는 안 했나?  경제적으로도 어려움이 많았을 텐데, 후원자가 따 로 있었나? 독자들도 궁금해 할 것 같다. 

사람들이 자꾸 묻는다. 간간이 이야기 한 적은  있다. 군대생활 할 때 화진포에 추경명이라고 통 역장교가 관리소장으로 가고 내가 위생병으로서  장병들 건강 관리하러 갔다. 바로 거기가 휴전선  바로 아래인데 휴전 전에는 이북 땅이다. 지금도  거기 가면 가슴이 좀 뛴다. 그때 우연히 북의 처녀 를 만났다. 지금으로 치면 포장마차처럼 돼 있는  집에 들어가서 술을 한잔하게 됐는데, 먼저 와 있 는 장병들과 우리하고 맞닿았다. 다들 팬티만 입 고 있어 누가 장교인지 모르는 거다. 서로 싸움 날  뻔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까 아는 사람이다. 그 사 람이 우리 고향 사람이고 훈련소에 같이 입대해  그 사람은 3소대 서무계였고 나는 1소대 서무계 였다. 그래서 쌈이 날 듯 하다가 화기애애해져서  노래 부르고 그랬다. 

그런데 포장마차에 묘령의 너무 젊고 아름다운  여성이 있었다. 나나 추경명 장교나 다툴 뻔 했던  사람들이 모두 그 여인을 잊지 못하고 그 다음날  또 간 거다. 그런데 그 여인이 가버렸다. 그것이  정말 두 달 이상 가더라. 이 이야기를 알고 있는  우리 회원들은 화진포만 가면 거기 가보자 한다. 

우리 작은 누님은 정말 동지이고 스승이고 누님 이고 어버이고 나를 키워준 유일한 분이었다. 누 님이 건강이 안 좋을 때 화진포 이야기를 수필로  써서 보낸 적이 있다. 

통일뉴스 개인의 생활을 유지하는 것도 그렇고, 양 심수 후원하는 일은 재정적 후원을 받지 않으면 안  됐을 텐데. 

내가 토목공사장 현장에서 일했고, 장비 관리하 는 일을 했다. 그걸 하면서 일종의 내 퇴직금 겸해 

서 내가 장비를 사서 동업을 했다. 그것이 바로 남 민전 사건 터지던 해인가 그 전해다. 

사실상 사업도 해보지도 못하고 감옥 갔다 왔 는데, 나오니까 장비 값이 뚝 떨어지고 장비가 고 장만 나고 엉망이 됐더라. 그래서 그것을 동업자 가 팔고, 나하고 다 정리가 됐다. 그래서 누님이  

그 당시에 800만원을 가지고 있더라. 그래서 그  돈하고 좀 보태서 불도저를 하나 사서 기사하고  동업했다. 역시 기사에게 전적으로 맡겼다. 또다 시 돈 하나도 없이 대우에서 나온 0.2입방미터라 는 뜻인데 ‘공투’ 포크레인을 할부금으로 샀다. 그 것도 기사한테 전적으로 맡기고 나는 내 나름대로  활동했다.  

그 때는 남민전 석방운동과 민가협 장기수가족 협의회 활동을 할 때다. 결국은 두 가지가 다 잘  안 됐다. 89년에 다 처분했다. 기사들 생활은 됐 지만 나한테 큰 보탬이 안 된 거다. 내가 크게 돈  쓸 게 없고 나름대로 강남에 12평짜리 집을 가지 고 있어서 그냥 생활했던 거다. 처분한 것 가지고  생활하다 2001년에 그 12평 아파트가 재건축됐 고 그때 나는 팔았다. 당시 오진으로 암 진단을 받 고 죽으면 안 되니까 주는 대로 받고 다 정리하고  지금 수유리에 9평짜리 집을 샀던 거다. 그리고  얼마 남은 걸 가지고 생활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직도 내가 이야기해야 할지 모르지만  개인적으로 도움 주신 분이 있다. 얼마 후에는 공 개적으로 이야기해야 될 거다. 그것이 내 생활 전 부는 아니지만 정신적으로 큰 도움을 받고 있었 다. 

양심수후원회는 특정한 후원자 한 분이 계신다.  그리고 인혁당재건위 분들이 보상이 나오니까 그  중에 몇 분이 개인적으로 후원해줬다. 내가 민주 화운동 공헌자로 돼서 생활지원금이라고 4,800만 원인가 받았다. 그것이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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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다른 후원을 받거나 어떤 대우를 받아 가면서 생활하거나 그렇지는 않았다. 

“양심수이기 때문에 석방된다” 

통일뉴스 실제로 많은 양심수들이 석방되고 비전향 장기수 송환되고, 했지만 여전히 목요집회가 계속 되고 있다. 실제 양심수 현황은 어떻게 되나? 

지금 양심수가 그전처럼 그렇게 많은 숫자는 아 니다. 87년 6월항쟁 때만 해도 천명 이상이 됐고  가장 많은 때는 1989년 1,700명까지 이르렀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50명 안팎인데 많은 숫자 라 할 수 없다. 그러나 이것도 더 엄밀히 따지면,  종교적 신념에 따른 양심적 병역거부로 구속된 사 람까지 치면 500명이 넘는다. 그 사람들을 제외 하면 지금 40~50명 내외라 볼 수 있다. 

통일뉴스 오랫동안 양심수 석방, 후원 활동을 해왔 다. 지금 양심수 문제나 국가보안법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한다고 보나? 

독재국가 특히 군부독재와 같은 권위주의 국가 에서의 양심수와 그래도 이른바 문민정부, 특히  오늘 촛불시민에 의한 새로운 정부 하에서 양심수 는 다르다. 오늘 문재인 정부 하에서 양심수가 있 다는 것은 절대로 안 된다. 

양심수가 많고 적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자기  양심에 따른 활동으로 구속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양심수 석방 문제는 ‘그 사람 들이 바로 양심수이기 때문에 석방된다’는 것이다. 

그럼 양심수는 어떤 사람들이냐. 한마디로 말해 서 자기 양심에 따른 활동으로 인해 구속된 사람 이다. 또 소수의 이익이 아니라 다수의 이익, 공동 선을 위해서 활동하다 구속된 사람이다. 또 하나 는 자기 활동이 불이익을 가져온다는 것을 알면서 

도 그것이 정당했기에 확신을 가지고 활동하다 구 속된 사람이다. 

이런 양심수, 확신수는 단 한사람이라도 있어서 는 안 되고 이런 양심수를 잡아 가둔다는 것은 반 문명적인 야만행위라고 규정하는 것이다. 

통일뉴스 대체로 우리 사회에서는 양심수와 국가보 안법이 연관돼 있다. 지금 국가보안법 관련 양심수 는 몇 명이나 되고 어떻게 해결해야 한다고 보나? 

지금 양심수 절반 이상이 국가보안법 관련 양심 수들이다. 대표적인 사건이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 과 코리아연대 사건으로 자주통일운동을 하다 구 속된 사람들이다. 또 인터넷 상에 통일관련 의견 을 개진했던 이른바 ‘인터넷 논객’이라고 하는 사 람들이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되고 있다. 이 사람들 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석기 의원은 내란음모가 무죄고 지하혁명조 직 RO가 없는 걸로 판명됐음에도 불구하고 9년이 라는 게 말이 되느냐. 완전히 정치보복이고 이건  야만시대의 행태나 다름없다고 본다. 

그 다음에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상징적으 로 되고 있다. 다 알다시피 2015년 민중총궐기 때  민중들의 요구를 짓밟고 살인진압하고 한상균 위 원장을 잡아 가뒀다. 그 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들 이 같이 잡혀갔다. 

그 외에도 직장에서 정리해고 됐거나 직장폐쇄  됐거나 비정규직으로 노동3권 보장 투쟁을 하다  구속된 노동자들이 있다. 다 사회 공익을 위해 활 동한 거나 다름없다. 그리고 노점상이 두 사람 있 는데, 도시빈민으로서 노점상 철거에 반대하다 구 속된 사람들이다. 

또 종교적 신념으로 구속된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숫자가 문제가 아니라 구속할 필요가 전혀  없다. 왜 이 사람들의 정당한 요구를 꼭 구속만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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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_폐암 확진 ‘양심수의 대부’ 권오헌 

느냐. 만약 이 사람들이 문제가 있다면 재판을 통 해서 잘잘못을 법정에서 가릴 수는 있다. 유엔의 자유권규약위원회가 여러 차례에 걸쳐 서 한국의 양심수들에 대해서 여러 가지 제언을  했다. 이것은 사상양심의 자유 침해, 또 결사의 침 해, 노동자들의 정당한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기  때문에 빨리 석방하라 했다. 

그런 이야기 전에, 천만 촛불의 힘이 있지 않나.  혁명적 발상으로 대통령이 결단을 내려서 석방을  해야 한다. 이번 8.15광복절에는 양심수가 한 사 람도 없고, 정치수배자도 없어져야 한다. 민주노 총 사무총장 같은 경우가 정치수배자로 몰려있다.  또 많은 사람들이 석방은 됐지만 공민권을 박탈당 하고 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에 대한 사면복권 이 반드시 이뤄졌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하다. 

통일뉴스 특별하게 최근에 이슈가 된 탈북민 김련 희 씨와 12명 여종업원에 대한 입장은? 가장 중요한 인권문제로써 김련희 평양주민이  속아서 강제로 끌려와서 현재 사실상 억류상태에  있다. 이것은 문명사회에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김련희 평양주민은 오는 과정에서도 눈치 채고  “나는 안 가겠다. 나는 돌아가겠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권을 뺐기고 강제로 끌려왔다. 오자마 자 국정원에서도 그 이야기를 되풀이했지만 통하 지 않았고, 결국 현재 6년이 되도록 여기 억류된  거나 다름없다. 

이게 냉전시대라면 몰라도, 지금 꼭 이렇게 해 야 되나. 김련희 씨는 빨리 가족 품으로, 자기 조 국 품으로 돌아가야 한다. 

북 해외식당 종업원 12명은 정부에서는 남한사 회를 동경해서 왔다고 했지만 사실상 본인들이 어 떻게 왔다는 이야기를 지금까지 일체 않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모습이나 처지가 전혀 밝혀지지 않 고 있다. 문명사회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가 있나. 식당 지배인이 <한겨레>에 이야기했고,  또 민변에 찾아와서도 이야기했는데, 남한사회를  동경해서 온 게 아니라 돈을 많이 벌어 가려고한  것으로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정부 당국에서 발표한 것이 거짓말인  거다. 이들이 만약에 자유의사로 왔다면 떳떳하 게 이야기하면 누가 뭐라 하겠나. 부모 자식 간이 라도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 그런데 본인들이 일 체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부모들이 북쪽에서  면회라도 한번 해달라고 했고, 또 변호사들이 면 회요청을 했지만 안 들어주고 있다. 또 인신보호 구제신청을 통해 법정에 나와서 구제하려 했어도  법정에도 못 나오게 한다. 국가인권기구라든가 유 엔인권기구 대표들이라든가 우리는 인정 않는 기 구이지만 이른바 북한인권사무소, 이들도 만나주 지도 않았다. 이거야 말로 현대판 노예, 야만행위 다. 더군다나 국정원 직원이 돈을 줘서 비행기표 를 사가지고 들어오게 했다. 국가기관이 개입된  납치나 다름없는 것 아니냐. 

박근혜 남북대결 시대라면 그런 못된 짓도 늘  했겠지만, 이제는 문재인 시대 아니냐. 국정원의  과거 잘못을 다시 밝힌다고 한다. 국정원은 억울 하게 끌려온 북 주민들을 빨리 돌려보내고, 그렇 게 함으로써 이산가족 문제에 조금이나마 숨통이  트일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으면 좋겠다. 

통일뉴스 2차 송환을 요구하는 비전향장기수도 있 고, 연세가 많아 돌아가신 분들도 많다. 2000년 9 월 2일 북으로 송환됐던 분들의 근황도 궁금하다. 

다들 아다시피 2000년 9월 2일 63명의 비전향 장기수가 북녘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 다음해인  2001년 2월 6일 기자회견을 통해 33명이 2차 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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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을 희망했다. 

1차 송환 때는 이른바 ‘전향’을 했다고 해서 안  간 측면도 하나 있었다. 그런데 ‘강제 전향은 전향 이 아니다’라는 이야기가 나오게 된 거다. 실제로  강제전향은 전향이 아니라고 국가기관인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에서도 인정한 사례가 있다. 

그리고 실제로 이분들이 자기 조국을 배신했다 거나 그런 것이 아니다. 자기 신심을 가지고 지금 까지 살고 있다. 2차 송환 희망자 33명 중 정순택  선생은 세상을 떠나 시신을 송환을 했다. 그때 처 음으로 ‘시신 송환’이라는 용어를 썼다. 

리인모 선생이나 63명이 송환될 적에도 ‘송환’ 이라는 말을 않고 북한주민접촉신청서를 갖고 갔 다. 그런데 이때 처음으로 정부에서도 송환이라는  말을 썼고, 송환이라는 말은 당연히 가야된다는  걸 내포하고 있다. 당연히 가야할 사람들을 보내 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지금 남아있는 비전향장기수들은 고향이 거의  다 북쪽이다. 처음부터 전향 대상자도 아닌 전쟁포 로들도 있다. 세월이 17년이나 지나다 보니까 지금  15명도 안 남았다. 이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신념의  고향, 자기 조국이기도 한 고향으로 빨리 보내지길  간절히 바란다. 이들은 아직도 보안관찰법에 감시 와 통제를 받고 있다. 얼마나 억울한 일이냐. 이들 이 빨리 고향을 찾아가서 부모들이야 다 잃었겠지 만 혹시라도 처가 남아있거나 자식들이 있다면 그  혈족들을 만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통일뉴스 논란이 됐던 북한인권법 제정에 대한 입 장은? 

북한인권법은 사실 미국에서 2005년 ‘민주주의  증진법’을 제일 먼저 만들었는데 다 북을 고립 압 살시키기 위한 법이었다. 반북단체들한테 돈을 줘 서 북을 붕괴시키기 위한 공작을 하기 위한 법이 

었다. 미국에서 만들고 그 다음에 일본서도 만들 었다. 그때 바로 한국에서도 지금 야당이 만들었 다. 그게 계속 폐기되다 재작년에 여야 합의로 만 들어졌다. 지금 여당인 당시 야당은 북의 인권을  

실질적으로 증진시킨다며 가령 인도주의 지원사 업이라든가 이런 걸 포함시켜서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것은 아주 잘못된 법이다.  제 나라 인권이나 제대로 챙기지 남의 나라 이름 을 빌려서 북한인권법을 만든 자체가 이건 굉장히  미국 같은 제국주의나 패권주의 국가나 할 수 있 는, 일본 같은 망나니 나라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 이지 이게 한국에서도 있었다는 게 정말 부끄럽 다. 지금은 여당인 당시 야당이 함께했다는 것에  대해서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가 여러 번  국회에도 가서 이걸 막으려고 했는데 끝내 북한인 권 증진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만들었는데 이건 한 마디로 문재인 정부가 폐기해야 한다. 

근본적으로 인권을 정치화시켜서 북을 고립 압 살시키기 위한 것으로 만든 것이나 다름없다. 그 래서 북한 인권을 증진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인권 을 내세워 북을 국제적으로 고립시키고 중상모략 해서 아주 악마화시키는 법이다. 

문재인 정부야말로 촛불정신으로 이룩한 정부 다. 이런 야만행위는 이 문명사회에서는 없어야  되는 것이 원칙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 법을 없앴 으면 한다. 

“민족문제, 통일문제는  

민족자주의 원칙을 가져야” 

통일뉴스 한·미 정상회담과 G20회의가 열렸고,  새 정부의 통일외교안보 정책의 일단이 드러났다.  어떻게 평가하나? 

문재인 대통령 스스로가 이야기했다. 새 정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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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_폐암 확진 ‘양심수의 대부’ 권오헌 

촛불시민들의 힘으로 이룩된 정부다. 그러니까 촛 불시민의 뜻을 절대로 명심하고 받아들이겠다고  이야기했었다. 그리고 실제로 여러 가지 국내정 

치, 사회 문제에 대해서 박수도 많이 받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통일외교안보 문제에 있어서 새  정부가 어떻게 할 것인가 다. 예를 들어서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6.15공동선언, 10.4선언이 다  무시, 외면당했는데, 그것을 다시 복원시키고 이 어질 수 있을 것인가 여기에 관심이 많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고 미국을 간다 는 것이 참 뜻밖에도 너무 서둘렀던 것 같다. 물 론, 미국에서 아마 빨리 박근혜 정책을 잇기 위해 서 초청했다는 것이 첫 요인이 되겠지만 미국을  생각보다는 빨리 갔다. 후보 시절 평양을 먼저 가 겠다고도 이야기했는데, 우리 생각이라면 평양을  먼저 가야되지 않나. 문 대통령이 미국에 갈 적에  많은 평화와 통일을 염원해왔던 단체나 개인들이  이야기했다. “미국에서 올바른 이야기를 하라”는  것이다. 나도 광화문에서 며칠 동안 농성하며 세  가지를 요구했다. 

첫째, 우리 민족문제 통일문제에 대해서는 미국 에 대해서 눈치 보지 말고 소신껏 이야기했으면  좋겠다. 

그 다음에, 핵과 미사일 문제는 미국의 70년 가 까운 북에 대한 적대정책, 군사적 압살정책에 따 른 자위적 억제력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독립국가, 주권국가로서 당연하게 자위권이 있는  거고, 자위권을 행사하기 위한 방법으로써 핵 억 제력을 가진 것이다. 

따라서 이 문제에 관해서는 한국 정부가 관여  안 했으면 좋겠다. 오히려 관여를 한다면 미국에  대해서 대북 적대정책을 폐기하도록 조언해주면  핵문제는 저절로 해결되지 않겠나. 

다른 한 가지는, 한미연합전쟁연습 이걸 꼭 해 

야 되는 건가? 이건 이전에 벌써 문정인 교수도  미국에 가서 이야기한 바 있고 또 북에서도 일부  외교관들이 그런 이야기를 했고, 또 미국의 많은  전문가들이나 활동가들이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 

다. 

전쟁연습 중단과 핵활동 중단이나 임시중단을  동시에 하는 것, 일단은 한미연합전쟁연습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걸 미국에 가서 트럼프와 결 단을 내렸으면 좋겠다. 이걸 주문했다. 

그런데 실제로는 어떻게 됐나. 문재인 대통령은  한미동맹을 토대로 해서 북핵문제를 해결한다고  했다. 그리고 대북정책을 한다고 했다. 그러니까  우리 남북관계는 한미동맹의 종속관계가 된 거다.  이래서는 안 되는 거다. 이것은 전도된, 뭐가 바뀐  거다. 

첫째, 미국 가서 겉으로는 남북관계에 있어서  주도적으로 역할을 하겠다고 했지만, 실제로 왜  그걸 미국한테 허락받아야 하는 건가. 

핵과 미사일에 대해서 ‘미국과 한미동맹을 토대 로 제재와 압박을 가해서 해결하겠다’ 이런 이야 기를 했다. 이거야말로 잘못된 것이다. 대화와 제 재는 양립될 수 없는 거다. 핵과 미사일은 미국의  

고립 압살정책에 따른 자위적 억제력이기 때문에  미국에서 그걸 풀어야 해결될 문제이다. 대화를 한다면서 제재와 압박을 외교수단으로  쓴다는 것이야말로 논리적으로도 안 맞는다. 정말  대화를 한다는 것은 상대방과 동등한 자격과 입 장, 권한을 가져야 한다. 동등한 자기방어권을 가 져야 하는데, 대화한다면서 상대방을 압박하고 제 재하면서 무슨 대화가 되느냐. 미국에게 핵과 미 사일 문제를 해결하려면 적대 정책과 고립압살 정 책, 특히 핵 전력이 수시로 드나드는 이런 핵위협  공갈부터 없애야 된다. 그렇게 해야 상대도 맘 놓 고 핵을 폐기할 수 있고, 동결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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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동결과 폐기 순서로 간다고 했 는데, 어떤 순서로 가든지 제재와 압박 속에서 해 결한다는 것은 안 맞는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제 까지의 ‘전략적 인내’가 실패했다고 얘기했는데,  

그건 사실상 ‘전략적 인내’의 연장이라고 볼 수밖 에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금 천만 촛불의 힘으로 정권 을 세웠다. 여기서 무슨 이야기를 하더라도 미국 서 함부로 할 수가 없다.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이  말할 수 있는 것은 혁명적 발상을 가지고 해도 되 는 것이다. 세계 어떤 지도자도 문재인 대통령이  이야기하면 “아, 그렇다” 따를 수밖에 없게 된 것 이다. 

이런 위치와 역할, 이런 권능을 왜 스스로 포 기하고 미국이 시키는 대로 한단 말인가. 그래서  “미국에 대해서 할 말 하라”, “남북관계에 있어서  미국이 관여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핵과 미사 일 문제는 한국이 미국과 동맹관계 속에서 해결하 려 하지 말고 미국에게 오히려 제재와 압박, 그리 고 적대정책을 폐기함으로써 해결하는 순서를 밟 았으면 좋겠다”, 이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다. 

통일뉴스 문재인 정부의 통일외교안보 정책에 대해 서 우려를 표했는데, 문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 이 후 독일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 참가했고, 최근 에는 국회 외통위가 열려 강경화 외교장관 발언이  

문제되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G20 정상회의 참가 차 독일을  방문해 거기서 이른바 ‘신 베를린 선언’을 발표했 는데, 결국 미국서 한 거나 본질적으로 다른 게 없 다. 이른바 북핵문제에 대해서 국제협력을 요청하 고 있다. 그전 정부라면 늘 해왔으니까 그렇다지 만, 촛불혁명으로 마련된 신정부라면 민족문제,  통일문제에 대해서 혁명적 발상을 가져야 한다.  

민족문제, 통일문제는 민족자주의 원칙을 가지고  해야 한다. 왜 국제사회에 협력을 얻어가지고 해 결하려 하나. 이것이 근본적으로 잘못된 거다. 

핵·미사일 문제는 어차피 미국의 고립 압살정 책 때문에 나온 것이다. 미국의 이러한 정책을 폐 기시키는 방법이 있고, 내부적으로 남과 북이 합 쳐서 어떻게 하는 게 좋을 것인가 심층 협의를 해 야 될 것이다. 외세의 침략을 막는 방어수단으로 서 우리 민족의 자산으로 둘 수 있는 문제 아닌가  

생각될 수도 있다. 물론 근본적으로는 이런 대량 살상무기는 인류가 폐기해야 하고 전쟁도 없애고  평화스러운 세상을 만들어야한다. 그러나 그건 이 상이지 현실이 아니다. 항상 외세로부터 침략과  간섭을 받을 개연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통일된  조국이라 하더라도 침략적 외세에 대한 방어적 수 단은 필요하다. 

그래서 지난 번 목요집회서 그 이야기를 했다.  일단은 미국의 핵위협 공갈시대는 끝났다. 이제 미 국 자신도 그런 위협에 노출이 현실화 됐기 때문에  다 같이 폐기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단계적으로 이 것을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대화를 해야 된 다. 미국이 지금 대북제재를 중국에게 압박을 가한 다. 만약에 중국이 안 하면 독자제재를 하겠다면서  석유를 금수조치하고 노동자들 송출을 막겠다고  한다. 그것도 안 되면 ‘세컨더리 보이콧’을 하겠다 고 한다. 제3자에 대한 제재를 하겠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것은 제국주의적인 패권주의자들의  침략 근성 그대로다. 미국이 자기들이 일등국가로  살려는 욕망이 있다면 상대방도 주권국가로서의  자주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하고, 최소한 구성원 

의 생존권을 지켜야하고 그 나름대로 발전할 권리 를 가져야 한다. 왜 그걸 인정하지 않느냐. 말이 무슨 평화와 안전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약 소국가에 대한 살인행위나 다름없다. 그렇기 때문

양심수후원회 소식 | 15 

인터뷰_폐암 확진 ‘양심수의 대부’ 권오헌 

에 미국은 제국주의 시대의 야만행패를 당장 집어 치워야 되고, 한국 정부는 이런 야만행위에 동참 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지금 외무장관이라는 자 가 미국이 세컨더리 보이콧을 하는데 한국이 협의  

중이라고 했다. 어떻게 감히 외교장관이라는 자가  이따위 소리를 할 수가 있나. 당장 파면시켜야 한 다. 전쟁을 막고 평화를 지키려는 우리 민족의 이 익과는 전혀 배치되는 행패이기 때문에 이런 외무 장관은 당장 파면시켜야 한다. 

통일뉴스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이번 베를린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한 말 중에  우리 국민들이 귀담아 들을만한 이야기들도 물론  있었다. 그 중에는 7.27를 기해서 휴전선 근처에 서의 모든 적대행위를 중단한다든가, 10.4를 기 해서 이산상봉을 추진한다든가 하는 것은 다 좋은  일이다.  

이렇게 되려면 무엇을 해야 되느냐. 남북관계,  통일문제, 민족문제에 있어서는 어떤 외세의 간섭  없이 7.4남북공동성명, 6.15공동선언, 10.4선언  정신에 따라서 우리민족끼리 자주적으로 한다. 이 

걸 선언하고 시작하라. 그러면 모든 것이 해결할  수 있다. 

그런 기본적인 것이 해결돼야 이산가족 문제도  해결되고 동계올림픽도 함께 할 수 있고 그렇지  남북문제의 주체가 외세의존형으로 된다면 다른  것은 될 수가 없는 거다. 

남북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외세와 협의한 다거나 허락을 받아서 할 게 아니라 문재인 대통 령 자신이 떳떳하게 김정은 위원장과 남북합의를  이행하기 위한 정상회담을 제안하고 현재 남북 간 에 얽혀있는 것을 완전히 풀어야 된다. 

남북정상이 만나는 데서는 자주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정상회담을 하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사실 핵도 미사일도 수십조원 에 이르는 국방비도 정말 평화와 번영을 위한 사 회복지를 위한 데로 다 돌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선생님들 돌아가시기 전에  

빨리 가서 제발 뵙고 싶은데…” 

통일뉴스 오랫동안 인권. 통일 분야에서 활동해왔다.  <통일뉴스> 현장 사진에 가장 많이 등장한 주인공이 기도 하다. 보람이나 아쉬움, 남기고 싶은 말은? 

가장 보람있었다면 양심수후원회가 89년에 만 들어져 99년 10년만에 비전향장기수를 다 석방해 냈다. 양심수후원회 만들 때 비전향장기수가 170 여명이었는데 10년만에 다 석방했다. 

그 당시에 비전향장기수를 양심수라고 규정한  것 자체가 참 혁명적이었다. 어떻게 간첩들을, 좌 익분자들을 양심수라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때 내 논리는 이렇다. 수십년 감옥에 갇혀 있 으면서도 자기의 정치적 신념과 양심을 지켜왔기  때문에 그것만 가지고도 양심수다. 그래서 우리는  석방운동한다. 10년만에 다 석방을 했고, 그 다음 해에 63명 비전향장기수를 송환했다. 

이때 가장 긍지를 느꼈고. 내 힘이 아니지만 여 러 운동하는 사람들이 힘을 모아서 이런 일을 해 낼 수 있었다. 지금도 우리가 10년동안 보수세력 에게 젖다 보니까 자기가 당연히 할 소리도 뭔가  

자기검열을 하면서 못하는 거다. 현재의 집권여당 이 그렇다. 야당시절의 종북 논리에 젖어서 지금  제대로 이야기를 못한다. 

예를 들어서 국가보안법 철폐, 양심수 석방 말  자체를 않고 있고, 북한인권법 문제도 마찬가지 다. 옛날 군부독재시절에 늘 이야기 해왔던 ‘국가 보안법 철폐하라, 양심수 석방하라, 국정원 해체

16 | 310호•20178월  

하라, 자주통일하자’ 이런 얘기를 지금 여당이라 면 옛날 생각을 해서라도 이제 제 목소리를 좀 내 달라. 오랫동안 종북 논리에 젖어서 목소리를 잊 고 자기 검열을 해왔다면 이제는 제목소리를 내서  

하나하나 사회정의를 위해서, 평화를 위해서, 민 주주의와 인권을 위해서 소신껏 정치를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통일뉴스 오랜 활동을 해오면서 감사를 표하고 싶 은 이가 있다면? 

고난 받는 사람들을 위해서 이름 없이 헌신해주 신 분들 정말 감사하다. 내가 양심수후원회 활동 을 했기 때문에 이분들에게 정말 감사드린다. 

또 자기가 하는 일을 전혀 밝히지 않게 한 특별 한 분들이 있다. 내가 언젠가는 밝히겠지만 이런  분들은 정말 얼마나 존경스러운지 모른다. 

그리고 민가협 어머님들을 정말 존경하고 사랑 한다. 처음에는 내 자식과 내 가족 때문에 나왔지 만 이제는 모든 고통받는 사람들을 자기 자식으로  생각하고 모든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서 헌신적 으로 계속 활동하고 지금도 1030회가 되도록 목 요집회를 열고 있다. 어머니들의 소원이 이뤄졌으 면, 양심수가 없고 국가보안법이 없고 자주통일  되는 세상이 이뤄졌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하다. 

통일뉴스 통일운동권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은? 운동권도 어떤 측면에서 그런 측면이 있다. 글  하나를 써도 그렇고 어디 가서 발언을 해도 그렇 고, 자기검열을 하게 되는데 이제는 소신껏 이야 기를 하고 그것 때문에 감옥에 간다면 떳떳하게  갈 수 있다는 소신을 가지고 활동하면 좋겠다. 지금 제일 중요하게 일자리 문제라든가, 최저임 금 1만원 시대, 언젠가는 모두 똑같이 일하고 똑 같이 받는 ‘동일노동 동일임금’ 시대가 되면 그런  

용어 자체가 없어지지 않겠나. 

어제도 독일에서 온 사회주의자 국회의원이 이 야기했다. 이 땅에서 ‘노동자의 책’ 이진영 대표가  구속됐다는 소리를 듣고 놀랐다는 거다. 어떻게  책을 출판하고, 막시즘이라든가 자본론이라는 책 을 폈다고 구속될 수 있느냐는 거다. 

사드 배치 반대, 그리고 반환 미군기지 오염 제 거, 미군이 이 땅에서 물러가게 하는 문제도 있다.  우리가 처음부터 어떤 원한이 있어서 갈라진 것이  

아니니까, 이제야말로 우리가 같은 동족으로서 아 무 원한 없이 함께 웃고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는 자주통일 시대를 이뤄냈으면 하는 마음 간절 하다. 

통일뉴스 인터뷰에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내가 최근에 몸이 이러니까 여기도 내세우고 저 기도 내세우고 하는데, 나는 건강 때문에 특별하 고 싶지 않다. 그래서 건강과 아무 관계없이 내가  능력이 있는 대로 종전처럼 똑같은 활동하고 싶 다. 뭘 계산해서 이렇게 하는 것보다는 자연의 순 리에 그냥 따르려고 한다. 

통일뉴스 주변에서 돌봐줄 분이 있나? 

내 조카가, 누님의 아들딸들이니까 생질인데,  실질적으로 내 보호자가 됐다. 내가 책 내는 것도  그 사람이 책임지고 해야 할 거다.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책임도 져야할 거고. 그 사람도 자기 할  일도 많은데, 지금도 수시로 다니면서 여러 가지  보살펴주고 있다. 집도 별로 멀지 않다. 

많은 회원들이 전화주고 뭘 해온다고 하는데,  너무 감사하다. 관심을 가져주신 회원들에게 너무  감사하다. “여러 회원님들의 뜻에 맞게 내가 열심 히 싸워서 이겨낼 테니 걱정하지 마시라”, 이 이 야기를 하고 싶다.

양심수후원회 소식 | 17 

인터뷰_폐암 확진 ‘양심수의 대부’ 권오헌 

통일뉴스 남북해외 독자들에게 안부 삼아 하시고  싶은 말은? 

지금 몸도 여의치 않고 나라 사정이 여의치 않 아서 가고 싶은 데를 못 가고 그렇다. 서울대병원  입원 날짜를 6.15를 지나서 잡았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평양에 갈 수 있지 않나 자그마한 희망을 가 졌었다. 10년 넘게 남과 북이 서로 오가지 못했 다. 왜 같은 땅에 같은 민족끼리 오가지 못하는지.  그래서 북에 계신 반가운 얼굴들에게 인사드리고  싶은 생각이다. 또 해외에 계신 많은 분들이 있다.  전화 주신 분, 와서 쉬었다 가라는 아주 감사한 말 씀 해주신 분도 있다. 

많은 분들에게 감사말씀 드리고 싶다. 그러나  어디에 있든 똑같은 마음으로 통일조국에 대한 심 신으로 열심히 일을 하면 우리 뜻이 이뤄지지 않 을까 생각한다. 다 같이 건강하고 우리가 힘을 모 아서 통일조국을 이뤄냈으면 좋겠다.  

특히 북쪽에 비전향장기수로 가셨던 선생님들,  지금 아마 많이 돌아가시고 알기로는 열일곱 분인 가 남아있다는 말씀을 들었다. 선생님들 돌아가시 기 전에 빨리 가서 제발 뵙고 싶은데 여러 가지 여 의치 않아서 안타깝다. 선생님들, 부디 건강하시 

고 선생님들 생전에 선생님들 평생 염원이 반드시  이뤄지길 간절히 빌겠다. 

통일뉴스 통일뉴스에도 한 마디 남겨 달라. 통일뉴스는 사실 내 사회활동과 아주 직접 관련 돼 있다. 아마 통일뉴스에서 보도한 횟수가 누구  못지않게 많았고, 또 통일뉴스는 언론이라는 본연 의 임무 말고도 정말 우리민족 전체의 참 염원인  조국통일에 대해 언론영역에서 활동했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내가 글을 쓰게 됐고 통일뉴 스에서 늘 잘 실어줬다. 지난 10년이 별로 보도할  게 없었던 시대라면 이제야 말로 봇물 터지듯이  통일과 관련된 기삿거리 많고, 궁극적으로 자유스 럽게 남북을 오가면서 취재해 북녘 소식, 남녘 소 식을 서로에게 전해주는 그런 통일뉴스로 거듭나 길 바란다. 통일을 지향하고 활동하는 많은 개인 과 단체들에게 큰 힘과 용기를 줬던 언론사이면서  가장 통일의 큰 주춧돌, 주도적 역할을 한 통일뉴 스의 무궁한 발전과 앞으로 그 소원이 반드시 이 뤄질 것을 또 한 번 간절히 빌겠다.

(지난 7월 31일 기사화 된 통일뉴스의  

권오헌 명예회장 인터뷰 내용입니다.) 

투병과 관련해 부족한 저의 말씀 조금 보태겠습니다.  

무엇보다 여러분께 걱정을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비전향장기수 선생님들, 민가협 어머 님들, 후원회원 여러분들, 특히 해외에 계신 여러 선생님들, 그리고 남민전 동지들! 여러  가지 물심양면으로 큰 도움을 주시어 몸 둘 바 없이 감사하고 죄송합니다. 

저는 서울대 종양내과센터 김동완 교수팀의 처방에 따른 경구항암제를 복용하는 치료 를 받고 있습니다. 8월 20일 현재 꼭 한 달이 되었습니다. 별다른 거부반응 없이 평소 와 같은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오는 8월 30일에는 단층촬영 등 검사를 받게 되고 암세 포의 진행상황을 판단 받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께서 염려하시는 힘을 받아 제 몸속의 불청객을 몰아내고 싸움에서 꼭 이겨낼  것을 약속드리겠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2017년 8월 20일 권오헌 드림 

18 | 310호•20178월  

권오헌 선생님께 전하는 편지

양심수후원회 소식 | 19 

20 | 310호•20178월 

권오헌 선생님께 전하는 편지

양심수후원회 소식 | 21 

슬픈일이 있었습니다 | 박석률 선생님 

조국의 자주·민주·통일을 위해 헌신하신 박석률 선생님

 

7월 25일, 박석률 선생님께서 71세의 연세로 돌아가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1947년 광주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선생님은 민청학 

련 사건으로 1년, 남민전 사건으로 9년, 범민련 사건으로 10개월의  

옥고를 치르면서 조국의 자주, 민주, 통일을 위해 헌신했습니다.  

출옥 후에는 민족자주평화통일중앙회 의장, 범민련 남측본부 부의 

장, 6.15남측위 공동대표,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 평화경제미래포 

럼 대표를 역임하셨습니다. 삼가 명복을 빕니다.

22 | 310호•20178월  

슬픈일이 있었습니다 | 이준원 선생님 

통일애국의 성실한 실천자이셨던 이준원 선생님 권오헌_명예회장

조선인민군 출신, 비전향장기수 이준원  

선생님이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원한의 철조망을 헐어내고 막혔던 민족 

의 혈맥을 이으려다 숱한 고난을 겪으셔야  

했던 선생님께서 끝내 평생염원을 보시지  

못한 채 안타깝게도 숨을 거두시었습니다.  

그 누구보다 조국과 가족들, 신념의 고 

향으로 가고 싶어 하셨던 그리하여 비전향 

장기수 2차 송환운동에 앞장서 계셨고 대 

구, 경북 지역에 사시던 동지들을 2차 송 

환 희망자 명단에 올리게 하셨던 선생님이 오히려 먼저 저 세상으로 가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1935년 1월 16일 함경남도 함주군 하기천면 운봉리에서 가난한  농민의 7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나셨습니다. 일제의 억압과 착취, 식민지 지배에서  초등학교에 다니면서도 야학과 항일운동을 하셨던 어머님의 남다른 지도를 받으셨 고, 그 어머님은 해방공간에서 웅변대회에서 1등을 하여 리 인민위원장 후보에 오 를 정도였다고 하셨습니다. 

1953년 1월 선생님께서는 조선인민군에 입대 14사단 수도방위사단 등에서 복무 하셨고 중대 초급 민청위원장을 계속 맡은 매우 성실한 조직원이셨습니다. 

1959년, 상급두대로의 소환과 교육, 1960년 전역 이후 민족보위성 특수정찰국  소속으로 활동하셨고 같은 해 고향에서 강금녀 여성과 결혼 따님을 얻었으나 홍역 으로 잃었다고 하셨습니다.  

1963년 5월 개성-서울 ‘밀로’ 개척사업중 남측 첩보원에 체포(9월 30일), 1963 년 반공법 15조 등을 적용, 1심 무기, 2심 15년, 대법원에서 15년을 확정판결 받게  되었습니다. 이후 서대문형무소, 대전, 대구형무소 등으로 이감되었고 1979년 대 구형무소에서 출소하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감옥에서 익힌 목공기술을 살려 갱생보호소 등에 계시면서도 열심 히 일을 하시어 79년 6월 도봉순 님과 가정을 이루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가정과 생활전선에 충실하시면서도 양심수문제, 자주통일운동에  관심이 많으시어 대구·경북 양심수후원회, 6.15남측위 대구·경북본부 고문, 대 

양심수후원회 소식 | 23 

슬픈일이 있었습니다 | 이준원 선생님 

구·경북진보연대 고문 등을 역임하셨습니다. 마침내 선생님께서는 오랜 옥고의  후유증과 노환을 이기지 못하시고 2017년 8월 7일 14시 30분에 숨을 거두셨습니 다. 진정 명복을 빕니다.

대구·경북양심수후원회가 주관하고 대구·경북지역 민족민주운동단체가 함께하여 2017년  8월 8일 대구 드림병원 장례예식장에서 ‘민족통일열사 이준원 선생 추도식’이 진행되었습니다.  오규섭 이웃교회 목사님 사회로 김병길 통일원로의 약력소개, 한기명 대구·경북양심수후원 회 회장, 권오헌 민가협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 권택흥 민주노총 대구·경북본부 본부장 등의  추도사. 김대용 전 민주노총 대구본부 통일위원장의 추모시 낭송, 이정찬 민족문제연구소 대구 지부 사무국장의 추모의 노래, 고인의 사모님 오봉순 여사의 유족인사와 참가자들의 헌화로 모 두 마쳤습니다. 서울에서도 통일광장 권낙기 대표, 범민련 남측본부 이규재 의장, 노수희 부의장,  박희성 고문이 함께했습니다. 

[ 추도시 ] 부음을 듣고… 

비전향장기수 양희철 

왔으니 가야한다지만 

갑작스럽게 전해 온 부음 

고향을, 어머니 당을, 조국을, 

생전에 보고 안기고 쌓이길 바랬는데 

좀 참고 기다리지 어인 병고 

함경도 함흥에서 장진호 부전호 쪽 

오로리 동네 가을 추수 후 분배 

그렇게 풍요로웠다던 배부른 나날 이였다던. 

형무소 밑치기 당한 4등식 앞에 놓고 

먹기 아까워라 1/4 털어내어 

허우대 크신 동지 얼마나 배고프시오 

하며 얹어 주시던 이준원 동지 

이젠 고향의 풍요로움 한껏 누리시라 

남도의 인정 받아 안은 은혜 

고마워 하시던 동지시여 

망나니 미국놈 안보니 좋으시겠소 

푸르름에 쌓여 편히 가시기요

24 | 310호•20178월  

소식 1 

한 여름 뙤약볕 

류종인 선생님을 추모하며들리지 않는가 보이지 않는가 

구름그늘 점점으로 띄우시고 

매미소리, 스치는 바람소리 들으시며 적막을 벗삼아 일월을 엮으셔라 

지내온 일 년 사이 변화 많았습니다 광화문 횃불혁명 새로운 길 밝히셨고 부패정권 몰아내고 

온갖 부정비리 바로 잡느라 인권은 어데 헐떡이는 숨결 힘 부침인가 

고르게 서로 힘 몰아 일해야지 민족우선을 저만큼 던져두고 

방향감각을 잃었나 허둥대는 모습 외세가 갈라놓은 조국의 분단 

원흉과 손잡고 무엇을 하잠인가 버릴 것 버리고 손 놓을 것 뿌리쳐라 단군겨레 지혜를 모을 때다 

고난의 행군에서도 선군정치 

굳건히 다지고 길러온 공화국의 위상 

튼실하고 미뿐 나라의 힘 

위축되고 퇴각하는 양키 

세계평화애호민의 축하가 이어진다 

휘청이는 Yankee 뒷다리 잡는다고 

무엇 하나 얻을 것 없다 

ICBM, NANO의 정밀 

세계를 정화하고 평화를 담보한다 

이렇게 조국의 남북과 세계는 변했어라 당신께서 일하셨던 일터의 일꾼 

당신의 튼실한 후배후학들 

당신의 반려 유치자 여사님 함께 모여 당신을 추모하며 그리고 있습니다 

류 종 인 선생님! 

동지시여! 푸르름 쫓는 당신을 그립니다 청량한 솔바람 불리시고 영생하소서 

2017년 7월 23일 양희철 

양심수후원회 소식 | 25 

소식 2 

박정숙 선생님 101세 생신 

 

박정숙 선생님께서 8월 9일 자로 101세를 맞으셨습니다. 

통일광장 권낙기 대표님과 범민련 남측본부 김영옥 선생님, 양심수 후원회 박윤경 님, 가족들께서 함께 축하드렸습니다. 권오헌 명예회장 님, 조순덕 상임대표님, 김혜순 회장님, 김호현 전회장님께서는 축하  영상통화를 하셨습니다.

 

26 | 310호•20178월  

북침전쟁연습 규탄투쟁 보고 

미주소식 김시환

안녕하십니까, 

양심수 후원회 회원들과 함께 트럼프 정부 한반 도 전쟁 책동 규탄 긴급 연대시위에 다녀왔습니다. 저희 양심수 후원회도 후원단체로 참여하였 습니다. 우리 회원 7명 외에 여러 단체에서 전 쟁반대 또 평화협정을 바라며 많은 분들이 참 여했고 저희가 연락을 담당하여 미국인 단체 

인 Answer,Party for socialism,veterans for  peace,code pink,Green party,workers world  party.international action center 등 많은 단체 들이 참여했습니다. 어떤 분이 세어보니 150여명 이나 되었다고 했습니다. 

미국인 반 한국인 반 정도였습니다. 

오늘 우리와 동지관계인 Answer의 Web site 위 력을 많은 미국인 단체 참여를 통해 다시 한 번 알 게 되였습니다. 

이번 시위를 미국인 단체들과 함께하면서 그들 의 조직력과 주인의식, 높은 사상 의식 등을 알게  되여 한편으로 부럽기 도하고 부끄러웠으며 안타 까웠습니다.  

한국인들에게 연대의 참모습을 보여준 미국인  단체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마지막 자유발언시간에 송영애 동지가 한국사람 들에게서 이 전쟁책동의 중심에 서있는 문재인에 게 보내는 말이 없어서야 되겠는가고 동학농민단 체 협의회의 문재인 정부에게 드리는 글이라도 읽 어 달라고 부탁하시기에 읽으려했더니 문재인 이 야기는 안하기로 했다, 시간이 없다 등을 이야기하 다가 송영애 동지의 강한 주장으로 간신히 기회를  

얻어 낭독했습니다. 

지난 세월호 시위 때도 세월호만 이야기하라하 더니 사물의 연관성을 모르는가 아니면 태극기 할 배들처럼 칼 퇴근이 하고 싶은 건지 알다가도 모르 겠네요. 

이런 시위의 자리는 선전선동이 먼저인데 젊은  사람들은 국내 초불 시위 때도 그런 것 같고 놀이 로 가는 것 같아 세대차인지 뭔지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시위는 박근혜 탄핵시위 이후 제일 많이  모인 시위로 성공적이였습니다. 

트럼프의 전쟁발언으로 미국의 많은 주요 티비  방송국들이 열띤 취재경쟁을 벌여 한국사람과 미 국사람들이 전쟁을 반대한다는 모습들이 미국인과  한국인의 안방에 잘 전달 되였을 것입니다. 맨 아래는 미주 지역의 성명서입니다. 

[ 시위 현장 보고 ] 

1) NY 시위 

뉴욕의 경우, 낮 12시에 유엔본부를 마주보는  건너편 길에서 재미동포 진보단체 활동가 20여명 과 미국인 진보평화운동단체들의 활동가 60명 가 량이 모여 우리말과 영어 구호 (1. 북침전쟁 책동 

 

양심수후원회 소식 | 27 

 

하는 트럼프정부 규탄한다 2. 북침 전쟁책동 북 침전쟁연습 당장 중단하라 3. 불의한 유엔 대북 제재 당장 철회하라 4. 적대정책 중단하고 평화 협정 체결하라.(1. Stop the war provocations,  

No military exercise! 2. Stop the war games!  Peace talks now! 3. Stop UN sanctions against  North Korea! 4. End Korean War! Peace  Treaty Now!)로 시위를 시작하였습니다.  

시위를 시작한 후 먼저 공동성명서를 우리말과  영어로 각각 재미동포 활동가와 미국위 활동가 각 각 낭독하는 순서를 가졌습니다. 그리고 참가 단체 의 몇 대표들과 참가자 중에 자유로이 몇 분이 나 와 이번 이슈에 대한 발언을 하였으며 중간 중간  구호를 함께 하였고 할머니활동가단체의 세 분이  나오셔서 집회 마무리의 노래를 경쾌하게 해 주시 면서 한 시간의 시위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시위 중간에 참여단체들의 대표들이 나 와 대표 발언들을 하고 개인 참가자들 중에도 자유 발언을 하는 순서들을 가졌는데 대표적으로 세 분 의 발언 내용을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발언자 중에 뉴욕시장 후보로도 출마하였던 아 스번 선생은 미국인 입장에서 발언을 함에도 우리  재미동포 진보활동가들과 거의 동일한 주장을 하 

였습니다. 미국의 한국 지배의 문제점, 한반도가  통일이 되지 않고 있는 이유, 현재 북미간의 핵문 제와 북미전쟁 발발의 가능성이 발생한 이유 등이  모두 미국에 그 원인이 있다며 역대 미국정부와 현  

트럼프 정부를 강력히 규탄하였습니다.  이분은 핵무기 없는 세계가 와야 한다며 미국부 터 비핵화에 나서라고 주장 하였습니다. 그리고 현 재 미국과 북 사이의 핵문제를 언급하며 한 예로  1960년 초 쿠바 핵미사일사태 관련한 언급하면서  쿠바가 왜 핵미사일을 소련으로부터 가져올 수밖 에 없었는가의 이유를 설명하고 그 근본원인인 적 대관계가 해소되어야 문제가 해결 된다고 하였습 니다. 지금 북미 간에도 근본 원인이 미국의 북에  대한 적대인 입장이 없어져야 핵문제가 없는 평화 가 이루어진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아마도 미국 이 당시에 터키에 모스크바를 사정권 안에 넣은 미 국 미사일기지를 건설해 두었는데 그 때문에 소련 이 대응 차원에서 쿠바 미사일 기지 건설에 함께  한 것이며 미소 평화적 합의에 의해 터키 미사일  기지 철거와 쿠바 미사일 기지 동시 철거로 미-쿠 바 핵미사일위기가 소멸되었음을 염두에 두고 언 급한 것 아닌가 합니다.) 

뉴욕에서 가장 활발히 활동하는 진보적평화운동 단체인 IAC의 활동가 사라의 발언 대부분도 미국

28 | 310호•20178월  

 

의 제국주의 정책이 한반도 분단과 북핵 이슈의 근 본 원인이며 현 북미간의 제반 문제도 모두 미국이  만들어 내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사라는 트럼프정 부의 북침전쟁책동을 강력 성토하면서 트럼프 정 부에 북침전쟁연습(을지프리덤가디언 등)을 당장  중단하고 주한미군 철수하라고 주장 하였습니다.  

발언자 중에 자신은 독일에서 태어나 성장하였 고 현재 인턴쉽으로 뉴욕에 와 있다는 베트남 청년 여성이 자기 조국 베트남이 미국 제국주의 침략에  의해 베트남전쟁이 발생했고 자기 할아버지도 그 에 맞서 싸우신 분이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며 베 트남에 대한 미제국주의 침략전쟁이 한반도에 반 복되어서는 절대 안된다고 하며 미국의 북에 대한  침략전쟁을 막기 위해 코리언들과 굳게 연대하여  함께 싸우겠다고 하였습니다.  

한 가지, 이번 시위 준비 실무 중 한 사람으로의  독특한 경험은 우리 재미동포들이 조직한 시위에  정작 우리 재미동포들은 약 20여명 참여 했는데 미 국인 평화활동가들이 그 보다 세 배인 약 60명 가 량이 참여한 점 이었습니다. 단 3일 동안 연락하고  연대를 부탁한 시위에 이렇게 많은 미국인평화운 동단체들의 활동가들dl 나온 것은 미국인 평화활동 가들이 현재 트럼프정부의 북침전쟁 기도를 트럼 

미주소식 

프의 호전적 수사(rhetoric) 정도로 결코 가볍게 여 기지 않고 있음에 대한 반증이며, 지난 주 안내메 일에서 말씀 드린 바처럼 미국인들은 미국정부의  이라크, 아프카니스탄 침공을 생생히 경험하고 기 억하기에 미국의 북에 대한 침략전쟁의 가능성을  매우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고 국내 분들이나 재미 동포들보다 훨씬 심각하게 여기기 때문이라고 생 각 합니다. 또한 발언에 나선 분들 대부분 거의 동 일한 주장의 발언에서 충분히 알 수 있었습니다. 

이제 다음 주 월요일(8/21)이면 을지프리덤가디 언 북침전쟁연습이 시작 되는데 우리 조국 한반도 가 또 어떤 몸살을 앓을지, 어떤 위기를 겪을지 깊 이 염려가 됩니다. 북미 간에 대협상이 이루어져  

북미 간에 평화를 이루고, 남북 간에 다시 평화와  통일의 기운이 우리 모두에게 퍼지기를 염원해 봅 니다.  

2) 워싱턴DC 시위 

 

워싱턴 디씨도 어제(월,8/14) 낮 12시에 백악 관 앞에 모여 집회시위를 개최하였다 합니다. 특 히, 미국인 평화운동 단체들 대부분이 DC 부근의  버지니아 샬러츠빌 시위참사 현장으로 가 있어서  시위 조직에 다소 어려움이 있었다 합니다. 그러 나 트럼프의 북침전쟁 기도라는 사안의 중대성이 

양심수후원회 소식 | 29 

있기에 참여 가능한 활동가들끼리라도 모여 연대 시위의 의의를 살리며 시위를 하기로 하였다 합니 다. 참여자 중에는 국내에도 잘 알려진 탐사보도  전문 저널리스트 팀쇼락 기자도 취재 겸 동참 하 였다 합니다.  

양현승 목사님의 사회로 한 시간 가량 집회를 진 행하였는데 공동성명서를 우리말과 영어로 재미동 포 와 미국인 활동가가 낭독하고 뉴욕과 동일한 시 위 구호를 외치고 참가자 몇 분의 발언이 있었다  

합니다. 그리고 백악관 앞이라 관광객들이 많은데  트럼프에 대한 반감과 미국 미디어들의 적극적 보 도로 북미전쟁 발발 가능성에 대한 약간의 염려들 을 갖고 있어 소수의 시위대였지만 관광객들이 시 위대의 구호와 발언들에 적극 공감하고 호응을 하 여 주었다 합니다. 

3) LA 시위 

로스앤젤레스는 약 15개의 재미동포단체들이 참 여하고 여러 미국인 평화운동단체들이 참여하여  코리아타운 윌셔Blvd/웨스턴지하철역에서 시위를  

[ 국내 동포들 앞 ] 

안녕하십니까, 

어제(월,8/14) 뉴욕(UN본부앞@12pm), 워싱 턴DC(백악관앞 12pm), 로스앤젤레스(코리아타운  6pm)에서 재미동포 진보단체들과 미국인 평화운동 단체들이 연대하여 동시 연속으로 <트럼프 정부 북 침 전쟁 책동 규탄 긴급 연대시위(Emergency Rally  Demanding Trump: Do Not Provoke War with  North Korea)>를 ‘트럼프 정부의 북침전쟁 책동을  규탄하는 재미동포와 미국인 평화운동단체들 및 개 인들’ (Korean American and U.S.-based Peace  Activist Organizations and Individuals Calling  on the Trump Administration to Stop U.S. War  Provocations Aimed at North Korea)이라는 이름(주 최)으로 개최하였습니다.  

이 연대시위가 개최된 것은 지난 주 트럼프의 “화염 

 

개최하였다 합니다. 집회를 앞두고 15개 단체에 소 속 활동가들이 모여 이틀 저녁을 집회 준비로 고 생들을 한 것으로 전해 들었습니다. 어제(월,8/14)  집회는 김미라님의 사회로 진행되었는데 순서는  1. 개회 2. 묵념 3. 성명서 낭독(영어) 4. 성명서 낭 독(우리말) 5. 나비 날리기 독려 6. 자유발언(영어  1인 /한국말 1인 ) 7. 노래패 8. 자유발언(영어 2 인/ 한국말 2인) 9. 풍물패 10. 자유발언(영어 2 인/ 한국말 2인) 11. 해방춤 12. 노래 합창(우리의  소원은 통일) 13. 마무리 인사의 순서로 진행하였 다 합니다. 더 자세한 소식은 전달 받는 대로 추가 하여 보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과 분노(fire and fury)” 전쟁책동 발언(화,8/8 오후)  다음 날(수,8/9) 미국인 평화운동단체들이 주도하여  백악관 앞 긴급시위가 있자 목, 금 이틀 사이에 NY,  DC, LA의 코리안 진보단체 활동가들 사이에서 우리의  문제이니 우리가 책임져야 한다는 의견이 급히 공유,  교환되었고 각 지역의 미국인 평화운동단체들과 연대 

하여 ‘동일시위 명칭’, ‘공동성명서’에 기초해 동시연속  연대시위를 각 지역 실정에 맞게 갖자고 합의해 개최 된 것이었습니다.  

공동성명서는 서부에서 초안 작성하였습니다. 

1. 시위사진 

2. 시위 현장 보고  

3. 공동성명서 (우리말 & English) 

안녕히 계십시오. 

뉴욕시위 참가자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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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소식 

공동성명서 

???_??? 

트럼프정부는 북침 전쟁 책동을 당장 중단하라!  

미국대통령 트럼프의 호전적인 언동이 조국 한반도에 전쟁의 위기로 몰아오고 있다.  ‘분노와 화염’이니 ‘예방전쟁’에서 더해 “전쟁이 나도 미국 본토가 아니라 한반도에서 수 천 명이 죽는다”는 무분별한 말로 제국주의 전쟁광의 본색을 전 세계 앞에 확연히 드러내 고 있다.  

미국은 1945년 해방 이후 한국에서 수많은 정부와 정당이 바뀌어 왔지만 변함없이 70  여 년 동안 미군을 주둔 시키고 있다. 1953년 정전협정 후 3개월내에 체결하기로 한 평 화협정은 미국의 거부로 64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체결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비정상적인 정전 상태 아래 수십 년간 되풀이 해오고 있는 한미합동군사연습과  핵전쟁연습은 결국 북의 핵개발과 대륙간 탄도미사일 개발을 불러오고 말았다. 핵보유국  사이의 전쟁은 인류가 경험해보지 못한 대량살육과 파괴의 대참사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이는 우리 민족만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민과 전세계의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 재미동포들은 조국 한반도와 미국 본토 사이에 핵전쟁이 발생하는 것을 절대 반 대한다. 이 모든 문제의 근본원인은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에 있다. 미국은 동북아의 패권 전략을 포기하고 대북적대정책을 포기하라. 제재와 전쟁이 아닌 대화와 평화의 길에 나 서길 강력히 요구한다. 우리는 우리 조국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미국이 평화롭게 공존하 기를 원한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1. 미국은 북침전쟁책동을 당장 중단하고 북과의 대화에 즉각 나서라! 

2. 미국은 북의 핵미사일 개발의 근본 원인인 대북적대정책을 포기하라!  

3. 미국은 종전을 선언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하라 

2017년 8월 14일 

트럼프 정부의 북침전쟁 책동을 규탄하는 재미동포와 미국인 평화운동단체들 및 개인들

양심수후원회 소식 | 31 

투쟁 1 | 양심수를 석방하라 

양심수 전원 당장 석방하라! 

- 양심수 가족 정지영 님이 쓴 편지 - 

지난 8월 9일 낮 12시, 청와대 앞에서  

이번 8.15에 양심수를 석방하라는 내용 

으로 기자회견이 있었습니다. 

전 통합진보당 경기도당 위원장이었던  

김홍렬님의 아내 정지영 님은 문제인 대 

통령께 호소하는 발언을 한 후 실신하여  

긴급히 병원으로 후송되었습니다. 참가자  

모두를 울린 이 글이 문제인 대통령께 닿 

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옮겨봅니다.

누구보다 양심수와 그 가족들의 고통을 알고계신  분들이 청와대에 들어가셨기에 이번 광복절 특사를  어느 때보다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광화문에서 이곳 분수대 앞까지 23일째 걸으며 생 각 또 생각했습니다. 우리들의 목소리가 어느 그물 에 걸려서 대통령께 가닿지 못하는 걸까요? 

어떤 이들의 단체복은 괜찮고 저희들은 안 된다 며, 매일매일 모멸감을 주고 모질게 구는 저 입구를  지키는 경찰들 때문일까요?  

아니면 진짜로 시간이 부족해서 일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이유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태풍에 떨어진 낙과도 버려진 유기견에도 따뜻 

한 마음을 나눠주시는 대통령님이신데, 왜 유독 33 명 양심수들의 억울한 사연은 그곳에 가닿지 못할까 요? 저희 남편이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질러서일까 요? 박근혜 정권을 떠받쳤던 공안검사들의 그 두꺼 운 공소장을 아무리 읽어봐도 남편의 죄는 말하고  

노래한 것이 전부입니다. 

종북이라는 말로 국민을 가르고 현혹시켰던 미망 을 깨고 전세계 유래없는 평화로운 정권교체를 이뤄 

냈습니다. 대통령님은 이제 억울한 사람이 없는 나 라, 사람이 먼저인 세상을 만드시겠다고 약속하셨습 니다.  

대통령님, 저희들도 국민입니다. 

박근혜 정권의 정치탄압과 그로인한 주홍글씨로  지난 4년 내내 크게 숨 쉬기 조차 어려웠던 우리시 대 아픈 손가락입니다.  

양심수와 그 가족들도 상식이 통하고 정의가 바로 서는 이 나라에서 함께 살아도 된다 손 내밀어 주십 시요. 정권이 교체되면 가장 먼저 전 정권에서 탄압 받던 양심수들이 석방되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 도 어제 있었던 국무회의에서도 815특사가 다뤄지 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도 아직 3일, 3일이라는 골든타임이 남아있습 니다. 이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지 마시고 이 땅의 인 권과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는 시간, 양심수 석방을  위해 지혜를 모으는 시간, 양심수들이 감옥문을 열 고 가족품으로 돌아오는 시간이 될 수 있도록 의지 를 세워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 김홍렬 아내 정지영 

32 | 310호•20178월  

투쟁 2 

비전향장기수 2차 송환을 즉각 단행하라!

8월 8일 오전 11시 30분, 민가협양심수후원회는 통일부 앞에서 통일광장, 범민련  남측본부, 민가협, 한국진보연대, 사월혁명회, 민족자주평화통일중앙회의, 전국여 성연대, 환수복지당 등 여러 분들과 함께 비전향장기수 2차 송환을 촉구하는 기자회 견을 진행했습니다. 

참가자들은 발언에서, 당면하여 한미전쟁연습 중단과 12명의 북측 종업원 및 김련 희 씨 송환도 강력히 요구하였습니다. 

각계 각층의 자주통일 물길은 더욱 거세지리라 확신합니다.

양심수후원회 소식 | 33 

기고 

동지는 운동가들의 최고의 재부입니다 - 출소1년 양심수의 편지 

정경학_출소양심수

안녕하십니까? 

대구에서 보낸 출소 후의 1년을 돌이켜 보면서  동지들에 대한 존경과 고마움을 전해드리고 싶어 서 펜을 들었습니다. 어려운 정세와 환경조건에서 도 사비를 들여 주거지부터 마련해주신 권오헌 명 예회장 선생님과 모든 생활용품들을 갖추어주신  한기명의장님, 원영민 사무국장님, 그리고 선뜻  방을 내주시고 이모저모로 돌봐주시려 마음 써오 신 이준원 장기수 선생님… 참으로 친 혈육과 같 은 민족적 동포애를 느낄 수 있게 한 잊지 못할 분 들이셨습니다. 

고령임에도 귀중한 애용품들을 손수 들고서 멀 리까지 버스를 갈아 타시며 날라다 주신 신동숙  어머님을 비롯하여 물심양면의 지원과 배려를 아 끼지 않으신 많은 분들 덕분에 저는 불편없이 학 습과 생활을 해 올 수 있었습니다. 한편 감옥에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면서도 오히려 저에게 고 무와 격려를 보내주신 김형륜동지와 이병진동지,  오승기동지들께도 고마운 인사를 드립니다. 

또한 알게 모르게 저의 모든 일들을 자신의 고 통처럼 여기고 성심성의로 지원해주신 김익, 리정 애 부부를 비롯한 잊지 못할 많은 동지들께도 감 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아울러 감옥 10년간 매달 손으로 또박또박 쓰신  격려의 편지와 함께 많은 도서들과 엄청난 액수의  영치금을 보내주셨던 채만수동지를 비롯한 노동사 회과학연구소의 일꾼들과 “고난함께”의 다정한 벗 들, 변순영 동지… 모든 분들에 대한 잊지못할 고 마움은 마음속에 그대로 남아 있지만 1년이 다 가 

도록 인사 한번 제대로 드리지 못한 죄송함을 아뢰 게 됩니다. 아무런 신분증명서류도 없이 지내다 보 니 어떠한 활동도 할 수 없는 상태여서 지난 10년 과 다름없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래도 감옥에선  

음식이나 물, 전기는 보장 받았는데… 하하  지난 1년은 저에게 있어서 남녘동포들의 민족 애와 통일열의를 피부로 체험한 기간이었습니다. 특히 반북, 반공 정책이 70여년 간의 궤적을 따 라 그대로 집행되고 있는 땅에서 온갖 정치적, 사 회적, 물리적 압제와 폭력에 시달리면서도 사회적  진보와 자주적 통일을 위한 투쟁을 순간도 멈추지  않으시는 민족애국투사들의 고결한 인생관, 희생 적 투쟁열의는 일제시대의 항일투사들의 그것과  다름이 없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와 함께 사상과 의지, 사랑과 양심으로 서로 를 위하고 함께하는 훌륭한 동지애의 관계에서 많 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돈이 삶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사회, 반동과 우익의 관념, 정서가 지배 적인 사회에서 도덕과 의리의 동지적 관계를 떳떳 이 내보이며 대오의 변함없는 동행자로서의 의무 를 자랑스럽게 실천하는 모습에서 우리 민족의 미 래, 통일된 조국의 내일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그런 동지적 대오가 정의로운 미래를 열어  갈 수 있는 기본 담보이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그 런 대오의 한 식솔이 되어 운명을 같이 해야만 하 겠다는 마음이 새삼스럽게 굳어지는 과정이었습 니다. 

동지란 단순하게 그저 뜻을 같이하는 사람에 대 한 이해나 호칭이 아닙니다. 동지라는 개념은 사 

34 | 310호•20178월  

회적 정의와 진보를 위한 조직적 투쟁의 관계를  바탕으로 생겨 났습니다. 자본주의가 독점자본주 의로 치닫고 노동계급의 생존이 오직 정치적 혁명 으로만 가능하다는 진리가 공감되어 갈 때, 바로  그때로부터 그러한 인간관계의 개념이 동지로 쓰 이기 시작하였습니다. 때문에 동지란 사회공동체 의 정의로운 미래를 위한 정치적 동행자, 정의의  동행자이지 삶의 목적이나 주장이 같다고 다같이  동지가 되지는 않습니다. 반동의 무리속에 동지가  있다면 그것은 그저 반동질하는 동행자일 뿐이고  장사꾼 동업자를 동지관계에 있다고 칭하지는 않 습니다. 참으로 동지라는 호칭은 우리들의 삶에 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영예롭고 고상 한 사회정치적 부름이고 평가입니다! 

동일한 목적과 지향을 실천하는 같은 조직의 구 성원이 되어 동지로 불린다고 하여 진정한 동지적  관계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진정한 동지는 자 기자신이 동지로서의 삶을 실천 할 때 자연히 다 른 구성원들에게 동지로 받아들여 질 수 있습니 다. 동지적 믿음과 사랑은 주어야 받을 수 있고 말 로써가 아니라 실천으로 오랫동안 증명되어야 합 니다. 진정한 동지적 관계에서는 그 무슨 “사생활  보호”라는 부르주아적 관념이 작용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동지적 관계에서는 서로 비밀로 남겨 둘  삶의 내용이 있을 수 없습니다. 결국 동지관계란  미래의 인간사회안에 지배되어야 할 가장 고상하 고 존엄있는 최고의 인간관계입니다! 

우리들의 동지적 관계는 사상적 동조자, 조직적  관계자, 운명적 동행자 관계입니다. 특히 조직된  구성원관계로서 조직의 원칙과 규범에 충실한 관 계이어야 하고 사랑과 의리, 믿음과 헌신으로 서 로의 운명을 책임져 도와주는 사회적 혈육관계이 어야 합니다. 이것이 없는 관계라면 동지라는 본 질적 개념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동지적 관계에  

기초한 단결과 조직만이 응당한 사회적 진보를 이 룰 수 있습니다. 동지만 있으면 못 해낼 일이 없 고 언제나 낙관적으로 살며 투쟁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동지야 말로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귀중한  정치적 재부입니다. 

정의로운 사회적 조직은 이 동지적 관계에 기초 하여 조직되고, 단결하고, 활동합니다. 그래서 평 등한 동지적 관계로서 민주주의적으로 활동을 협 의하고 결정하며 서로를 돕고 성찰하게 합니다.  

동지적 관계가 없는 조직은 필연적으로 강제적인  통제와 상부권력으로만 운영되게 되어 다양한 소 원과 의견도 종합되지 못하고 아래로부터의 상부 에 대한 비판문화도 없다 보니 결국 진실한 단결 도, 응당한 활동성과도 낼 수 없게 됩니다. 동지적  관계에 기초한 조직에서 조직책임자는 사령관 노 릇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동지들의 회합을 조직하고  회의를 사회하는 “의장”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의장” 노릇이 조직책임자의 첫째가는 의무로 될  때 그 조직안에는 동지적 관계에 기초한 단결이  유지되고 민주주의적 운영질서가 자리잡을 수 있 습니다. 동지로서의 조직책임자에게는 조직의 운 영과 활동에 대한 개인적 결정권이 없습니다. 

최근 폐암 4기의 병 상태를 고백하신 권오헌 명 예회장 선생님의 한생은 참다운 동지적 관계를 일 궈 오신 신뢰와 의리의 한생이었습니다. 하루빨리  최선의 치료대책을 세우시고 사랑하는 동지들에 게 건강하신 쾌유의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할 의무 도 꼭 지키시리라 봅니다. 

현장과 감옥에서 고난을 이겨가시는 모든 동지 들이 때이른 무더위를 시원하게 이겨 내셨으면 좋 겠습니다. 

2017년 7월 15일  

 대구에서 경학 올립니다.

양심수후원회 소식 | 35 

연재 | 김련희 수기(10) 

따뜻한 내나라 

- 경찰서 보안계 신변담당관  

김련희_평양주민 

이 글은 자주시보에 실린 글을 김련희 씨와 자주시보의 동의하에 싣게 되었다. 병 치료를 위해 중국 친척집에  나왔다가 탈북이 뭔지조차 모르고 한국에 오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탈북 브로커(국정원으로부터 돈을 받 음) 말을 듣고 ‘탈북자’ 대열에 들어선 김련희씨 이야기이다. 김련희 씨는 한국에 들어온 날 바로 북으로 보내 달라고 국정원에 요구했지만 묵살된 채 강제 억류되어 있으며 현재 송환투쟁을 벌이고 있다. 본 소식지에서 는 김련희씨 장문의 수기를 나누어 싣기로 한다. 우리는 김련희 씨의 글을 통해 북도 남과 같이 사람냄새 나 는 곳이며 통일의 반쪽이라는 민족동질성과 함께 통일의 절박성 당위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글은  남측 표현에 맞게 다듬었으나 전달 의미를 살리기 위해 북의 어법을 지킨 점을 밝혀둔다.

(전호에 이어)  

2012년 1월 26일 드디어 하나원을 나와 경상북도 경산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대 아파트를 배정받아 사회에 배출되었다. 

적십자 도우미의 차를 타고 하나원을 떠나 경산에 도착하여 나를 제일 먼저 데려간 곳 이 경산경찰서였다. 

탈북자들은 사회에 배출되면 먼저 해당 지역 경찰서 보안계에 가서 신고를 해야 한다. 일명 ‘신변보호담당형사’라고 부른다. 

그들은 탈북자들이 주거지에 상주하는 동안 지속적인 만남과 전화통화로 그들의 한국 정착과정을 철저히 감시관리한다. 

경산경찰서 보안계는 형사가 4명이었는데 계장이 나를 담당했다고 한다. 계장은 주 2회 정도 전화를 하여 나의 일상을 알아보군하였는데 어느 날인가 나를 만나  하는 말이 탈북자들이 하나원을 나올 때 국정원에서부터 몇 부류로 나누어져 오는데 나 의 서류는 남들과 특별히 분류되어 왔다며 나의 휴대폰은 물론 주변 공중전화까지도 다  도청이 된다고 엄포를 놓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이 숨막히는 현실을 이제 혼자 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나도 모르게 긴장해졌다. 

42년 동안을 사회주의체제에서 살다가 하루아침에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너무나 다른  사회에 오게 된 나로서는 혼자서 이 자본주의 사회생활을 이해하기가 너무나 버거웠다. 하지만 내 곁에는 형사 외에는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그 누구에게도 안타깝거나 두 려운 생각을 털어놓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36 | 310호•20178월  

사상, 경제, 문화, 등 모든 부문이 낯설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한국생활은 나에게 점점  더 큰 상처와 아픔으로 다가왔다. 

한번은 보안계 담당형사와 차를 타고 어딘가를 가던 중 갑자기 형사의 손이 나의 가슴 에 순간적으로 와 닿는 것이었다. 

상상할 수 없었던 너무나 뜻밖의 일이 벌어진 상황에 내가 놀란 모습으로 아무 말도 못 하고 빤히 쳐다보자 형사는 급기야 어색해하며 분위기를 바꾸어 나에게 여기 한국 문화 를 이해시키려고 무진 애를 썼지만 그 형사의 입에서 나오는 말마다 더더욱 나를 경악케  하였다. 

모텔에 가서 섹스채널을 켜고 성관계를 가지던 일들을 자랑삼아 이야기하는 형사를 보 면서 이 나라 경찰에 대한 혐오감을 금할 수 없었다. 

서로 잘 아는 사이라던가, 이 나라 문화에 적응되어 있는 사람들끼리라면 이해할 수도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도 아닌 경찰이, 그것도 자기 담당자이고 아직 한국 문화 에 엄청난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북쪽사람을 상대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에 참을  수 없는 모욕감과 수치심을 느꼈다. 

그때부터 나는 경찰에 대한 반감이 싹텄던 것 같다. 

하지만 피할래야 피할 수 없고 아무리 싫어도, 멀리하려고 해도 도무지 해결될 수 없는  것이 탈북자와 보안계 형사와의 관계이다. 

주 3회 정도 전화를 걸어왔고 월 2회는 만났던 것 같다. 

이 과정에 또 한번의 충격을 받아 참을 수 없는 반발심을 불러일으키는 일이 벌어졌다. 

그 날도 형사를 만나고 그 사이 별다른 일이 없다는 것을 얘기하고 집으로 가려고 하는 데 형사가 집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하여 함께 차를 타고 집으로 가던 길이었다. 그때 나에게는 현금 50만원(5만원짜리 10개)이 있었다. 

통장에 넣으려고 며칠을 벼르고 있었지만 시간이 없어 지갑에 계속 가지고 다니던 차라  차를 타고 가다가 길가에 현금인출기가 보이기에 형사에게 잠간만 차를 세웠다가 가자고  부탁했다. 

나는 차에서 내려 현금인출기에 지갑에 있던 현금 50만원을 넣었다, 그런데 현금인출기에서 나오는 말이 돈을 인식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영문을 알 수 없어 차에서 기다리고 있는 형사에게 좀 도와달라고 부탁하였다. 형사가 다시 돈을 현금인출기에 넣으니 이번에도 조금 전과 꼭 같은 말이 나오며 돈이  다시 나오는 것이었다. 

그러자 형사는 다짜고짜로 나의 팔을 잡으며 이 돈은 위조화폐이니 경찰서로 자수하러 

양심수후원회 소식 | 37 

연재 | 김련희 수기(10) 

가자는 것이었다. 

갑작스럽게 몰아붙이는 형사를 보며 가슴이 활랑거렸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가? 

나는 소리쳤다. 

“형사님은 그래도 다른 사람들과 달리 탈북자들과 가까이 하고 이해한다는 사람인데  설사 위조화폐라 해도 먼저 나를 이해시키고 단 5분정도라도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는  배려는 해줄 수 있어야 하지 않는가요? 어떻게 이렇게 잠시도 여유 없이 나를 범죄자 취 급할 수 있나요?” 

두려웠다. 나는 무작정 돈을 가지고 집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얼마 뛰지 못했는데 형사가 차를 타고 따라와 또다시 나를 잡으며 경찰서로 가자는 것 이다. 나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형사를 손을 뿌리치고 내달렸다. 

그제서야 형사는 포기하고 돌아가는 것 같았다. 

그날 저녘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그 상황에 대한 생각으로 잠이 오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나는 농협은행 건물 옆에 있는 현금인출기에 가서 다시 돈을 넣어보았다, 헉! 돈이 들어간 것이다. 정확히 통장에 입금되었다. 

나는 은행에 들어가 직원에게 어제는 집근처의 현금인출기에 돈을 넣으니 인식할 수 없 다고 하던데 오늘 여기 현금인출기는 어떻게 인식할 수 있냐고 물었다. 은행 직원의 말이  현금인출기마다 5만 원 권을 인식하는 것과 못하는 기계가 따로 있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어이가 없었다. 

이 나라에서 60년 가까이 살아온 형사가 어떻게 그것을 모를 수 있으며 설사 몰랐다한 들 어떻게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나를 경찰서로 끌고 가려고 했을까? 순간 나는 형사가 결 코 나를 보호하고 지켜주는 사람이 아니라 가까이 있으면서 자그마한 빌미라도 찾아 어 느 순간에 나를 범죄자로 만들려고 작심한 사람으로 생각되었다, 

내가 다음에 형사를 만났을 때 그돈이 현금인출기에서 인식되더라고 말하자 이번에는  그 돈이 어디서 났냐고 따지는 것이었다. 형사의 눈에는 앞의 사람이 인간이 아닌 오직  범죄자로만 보이는 것 같다. 나는 단돈 50만원이 있어도 그 출처를 형사에게 보고해야  하는 이 숨막히는 현실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의 마음은 단단히 닫혀버렸고 반발심은 꿈틀거리며 자라나 그 형사를 골탕 먹일 작정 으로 북에서 공작금 받은 것이라고 대답했다. 

친구들을 만나려고 서울에 갈 때도 형사가 어디가는 가고 묻기에 북에서 온 공작원을  만나러 간다고 쏘아주었다.

(다음 호에 계속) 

38 | 310호•20178월  

비전향장기수 양희철 선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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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수후원회 소식 |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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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 310호•2017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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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수후원회 소식 | 41 

감옥에서 온 편지 ● 

이미숙 님의 편지 

안녕하세요. 

제가 오는 8월 4일 만기출소하게 되어 인사드립니다.  

민가협양심수후원회의 관심과 연대, 후원 덕분에 2년 옥살이를 잘 마무리하게 되었습 니다. 특히 옥중에서 제일 많이 떠올랐던 장기수 선생님들의 삶은 제게 가장 큰 힘과 의 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권오헌 명예회장님의 건강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 소식을 듣 고서 저희들의 농성장을 찾아 주시고 여러 투쟁현장에 서신 모습과 소식지에 실린 선생 님의 글과 사진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선생님께서 몸소 실천으로 보여주신 한 생의 모 범을 따라 저 또한 우리 사회의 악폐청산과 자주통일의 길로 쉼 없이 달려 나가겠습니다. 

권오헌 명예회장님과 장기수 선생님들께서 늘 건강하셔서 고향방문, 가족상봉의 소망 도 이루시고 조국통일의 그 날도 꼭 보시길 소원합니다.  

저는 곧 찾아뵙고 인사드리겠습니다. 

2017. 7. 17 

이미숙 올림 

이병진 님의 편지 

최동진 사무국장님께 

안녕하세요. 

민가협양심수후원회 사무국장이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어려운 여건에서 일하는 사무국장 내정을 축하한다고 인사드리는 게 맞는 표현인지 조 금 생각해 볼 일이지만, 아주 중요한 일을 책임지는 자리이기에 축하 인사를 드립니다. 아주 오랜만에 후원회에서 보낸 편지를 받아봅니다. 

신임 최동진 사무국장이 후원회 활동과 밖의 정국 소식을 직접 편지로 알려주시니까  더 깊은 교감과 연대의식을 갖게 됩니다. 

하루빨리 진보진영이 다시금 일어나 민주주의와 역사의 진보를 이끌어 나가길 기대합 니다. 우리의 민주주의를 발전시켜 가려면 민족분단의 모순을 극복하여 민족의 자주와  평화를 지켜야겠죠. 이것은 사실상 미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우리의 힘으로 당당해 질  때 가능해 질 것입니다. 우리도 이제는 이런 예속적인 한미관계에 대해서 시대의 요구에 

42 | 310호•20178월  

감옥에서 온 편지 ● 

맞게 진지하게 고민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촛불혁명을 통해서 민중들의 정치적 요구가 봇물처럼 터져 나왔습니다. 그 결과 지배 계급은 탄핵으로 위기를 맞았고 조금 온화한 문재인 정권으로 하여금 급진적인 대중들 의 혁명적 요구는 억누르면서 일부 개량적인 유화정책들로 성난 민심을 수습하려 합니 다. 그러나 남북 적대관계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한 문재인 정권의 개혁정책들은  

한반도 안보불안으로 흔들릴 테고 그것을 빌미로 반동 보수세력은 다시 역사의 흐름을  뒤집으려 할 것입니다. 

그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진보진영은 멀리 내다보면서 독자적인 정치세력화에 힘을 넣 어 역사의 반동을 막아내고 전진시키는 실질적인 힘을 키워가야 할 것입니다. 지금은 민중들의 힘이 미미할지라도 그 힘들이 모이고 모여서 거대한 역사의 전진을  추동하는 힘으로 나타나리라 확신합니다. 

저 역시 “노동자, 농민, 빈민, 청년들이 끊임없이 정치공간을 열고 정치공간에서 진보 적이고 애국적인 요구와 지향을 외치며 자기의 정치적 지위를 비상히 높여 나가리라 확 신”한다는 최동진 사무국장님의 의견에 동의하며 함께 힘을 모아가겠습니다.  저는 8년 동안 수감생활을 마치고 9월 8일 출소합니다. 

국가보안법이 무엇인지도 모르며 지내다가 갑자기 구속되는 바람에 모든 것이 낯설고  힘들었습니다. 그런 모진 시련의 시기에 ‘양심수후원회’ 동지들이 제겐 큰 힘이자 함께  고통을 짊어지고 나아가는 벗이었습니다. 

그런 의미를 되새기며 양심수후원회의 고마움을 잊지 않겠습니다. 

8년의 긴 시간을 변함없이 함께 해 주신 양심수후원회 동지들과 장기수 선생님, 건강 이 위중하신데도 항상 최선봉에서 우리 양심수들을 위해서 싸우시는 권오헌 선생님께  가슴 뜨거운 존경과 감사 인사드립니다. 

출소하여서도 그런 애국애족의 사랑을 가슴깊이 새겨 잊지 않고 고마운 마음을 갚아가 겠습니다. 그럼 감옥 밖에서 건강한 모습으로 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이병진 올림 

2017년 7월 20일 

이병진 석방모임에서 출소환영식을 준비한다고 합니다. 양심수후원회와 상의하여 준비하면 그 의미가  더 뜻 깊을 것입니다. <해방세상> 대표인 변순영 님께서 석방모임 회원이신데 환영식 준비를 도와주고  계십니다. 최동진 사무국장님께서 변순영 님과 소통하셔서 환영식 행사를 공유하시면 좋겠습니다. 그 리고 서신검열 재판비용은 모금으로 납부 완료했다는 편지를 받았습니다. 양심수후원회에서도 재판비 용 모금을 도와 주셨는데 소송비용을 납부하게 되어 기쁩니다. 최동진 사무국장님께서도 옥고를 치르 셨기에 더욱 관심이 가고 빨리 뵙고 싶네요. 후원회가 활력있게 느껴져 기쁘고 기대가 됩니다. 더운 날 씨에 건강히 잘 지내세요. - 이병진 올림

양심수후원회 소식 | 43 

권오헌 명예회장님께 

감옥에서 온 편지 한준혜 님의 편지

6월부터 시작된 폭염과 최근에 폭우까지 요상스런 날씨에 회자님의 건강이 걱 정스러워 편지 드립니다.  

얼마 전 민족재단에서 책자가 들어왔는데 첫 글이 회장님 글이라 무척 반가웠습 니다. 문재인 새 정권이 이뤄내야 할 첫 과제로 양심수 석방 글이 가슴을 뛰게 했 습니다. 

어제 오늘 한겨레 신문을 보면서 8.15특사 없다와 국정 100대 과제 기사에서  문재인정부의 통일의지가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굴욕적인 미국행보에서 이미  드러났지만, 비까지 오는 광화문 광장에서 양심수 석방을 외치는 사진을 받아보 고 가슴이 더 짠했습니다.  

양심수 석방을 위해 온 몸 받치셨던 회장님이 제일 먼저 생각이 났습니다. 누구 보다 안타까워하실 권오헌 회장님이 생각나서 편지를 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감옥이지만 하루에 몇 번씩 찬물로 더위를 식혀도 숨이 차오르는데 밖도  예외는 아닐 것 같아 늘 걱정이 앞섭니다. 분단된 조국의 기둥이신 회장님의 건강 이 조국통일 등불이다 보니 마음이 더 쓰입니다. 

부디 건강하시길 마음속으로 되새겨 봅니다. 

저는 대전교도소 한켠에서 아주 씩씩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기결되고 면회 가 제한돼서 약간 답답하지만요^^ 

얼마 전 인성교육 관련해서 미리 거부의사를 밝혔습니다. 인성교육 일로 복잡 하게 될 것 같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말복 같은 초복이 지나고 감옥에서 여름을 씩씩하게 보내고 있습니다.  열심히 살다 곧 찾아뵙겠습니다. 

2017.7.20. 

한준혜 올림 

44 | 310호•20178월  

감옥에서 온 편지 ● 

이용섭 님의 편지 

양심수후원회 동지들! 

안녕하십니까? 자주시보 이용섭 기자 인사드립니다. 

편지 늦게 드려 대단히 죄송합니다. 그 동안 법정에 제출할 <준비서면-공소사실에 대 한 답변서>를 쓰느라고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없었기에 편지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이 제야 지난 7월 17일 오전 8시 20분 작성을 마치고 시간적인 여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 래서 동지 여러분들께 인사를 드립니다. 

세상이 편치 않은 때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지칠 줄 모르고 언제나 한 마음으로 민족 을 위해, 이 땅의 민주주의의 만개를 위해 고난의 길을 걷고 계시는 동지 여러분들께 존 경과 고마움의 마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수 십 년간을 옥중에서, 또 수 십 년간을 갈라진 겨레 하나 되는 길에 인생의  모든 것을 다 바치셨으며 지금도 바쳐가고 계시는 장기수 선생님들께도 존경과 고마움 의 인사를 드리며, 지금까지 민족을 위해 한 일도 없이 살아온 제 자신 부끄럽기 그지없 다는 생각을 전합니다. 대단히 죄송합니다.  

저는 3월 28일 오전 10시에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받고 오후 2시에 서대문 경찰서 유 치장에 수감되어 있다가 4월 6일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세월 이라고도 할 수 없는 4개월여 정도의 짧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 동안 저는 서울구치소 수감생활 중 검찰조사 2회, 재판 3회를 받았습니다. 재판은  심리 중이며, 8월 21일 오후 2시에 4차 재판이 서울중앙지법 서관 513호 법정에서 열리 게 됩니다. 당일 재판은 증인 심문으로서 검찰 측 증인과 변호인 선정 증인이 출석하여  각각 증인심문을 할 것입니다. 변호인이 신청한 증인으로는 한홍구 교수가 출석하여 증 언을 하게 될 예정입니다. 그리고 최종 선고일은 아마도 빠르면 9월 말경 내지 10월 중 순이나 말쯤 이루어질 듯 합니다.  

저의 근황에 대해 말씀드리면, 이 곳에서 정신·육체적으로 모두 안정감 있고 편안하 게 아주 잘 지내고 있습니다. 다른 양심수 선생님들의 생활은 제가 잘 모르겠지만 저의  경우는 전혀 어떤 어려움도 없이 생활하고 있습니다. 또 이 곳에서 생활 해보니 담당하 시는 담당자들 또한 매우 친절하게 따뜻하게 배려하면서 잘 대해주고 있습니다. 예전에 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요즈음 구치소 담당자들은 구치소 생활에 어려움이 있을세라  불편함이 있을세라 대단히 신경을 많이 써 주시고들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곳 생활 에서 그다지 어려움을 느끼지 않고 생활하고 있습니다. 

다만 제가 개인적으로 아쉬운 것은 저의 개인적 삶이 아닌 민족의 삶, 민족이 내린 명

양심수후원회 소식 | 45 

감옥에서 온 편지 ● 

령, 임무에 따른 참된 길을 걸어가는데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멈추어 서 있다는 점입 니다.  

조선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는 매일매일이 백척간두에서 날선 대결을 벌이고 있는 이  때 그저 두 눈만 멀뚱멀뚱하고 뜬 채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너무나도 안타깝 습니다. 어서 관련 외신 한 편이라도 번역하고 분석하여 실 상황을 전해주고 조선의 대 처 상황도 비교분석하여 남쪽에 있는 민족 구성원들에게 전해주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 하고 맥없이 주저 앉아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그 외에 제 개인적인 생활로 는 전혀 어려움 없이 생활하고 있다는 저의 근황 전해 드립니다. 그리고 매달 보내주시 는 후원회 소식지 잘 받아보고 있습니다. 소식지 덕분에 밖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계시는  동지들의 노고에 대해 알게 되니 고마운 마음과 죄송한 마음이 교차를 하게 됩니다. 그 리고 지난달부터는 후원회 차원에서 영치금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이 곳에서 생활하고  있는 제게 무슨 돈이 그리 필요하겠습니까. 후원금만으로 후원회를 꾸려가기에도 버거 우실 터인데 저에게까지 영치금을 보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권오헌 선생님께서 몸이 많이 편찮으시다는 소식을, 새롭게 사무국장 일을 맡아 하시 게 되었다는 인사와 함께 소식을 전해주신 최동진 사무국장님의 서신에서 알게 되었습 니다. 그래서 권오헌 선생님께는 따로 안부 서신을 보내드립니다. 

어렵고 힘든 사무국장 일을 또 다시 기꺼이 맡아주신 최동진 사무국장님께도 인사드립 니다. 모쪼록 어려우심이 많으시겠지만 후원회 사무를 더욱 잘 꾸려 가셔서 ‘민가협양심 수후원회’가 해체되는 날이 하루라도 빨리 이 땅에 올 수 있도록 아름다운 누리를 만들  수 있는 데 일조를 해 주시기를 진심으로 그리고 간절히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장기수 선생님들 모두 건강하게 생활하시어 평생을 바쳐 그토록 염원하시 는 <통일의 그 날>을 꼭 맞이하셔서 막걸리 한 잔에 덩실덩실 춤을 추실 수 있는 준비들  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럼 두서 없는 글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2017년 7월 22일 자주시보  

이용섭 기자 올림 

대단히 죄송합니다. 양심수후원회 회장을 새롭게 맡으신 김혜순 회장님에 대한 인사를 한다고 했으면서도 앞에서 하지  못하고 지나쳤습니다. 다시 한 번 죄송하다는 인사드립니다. 무거운 중책을 맡아 지금까지 무리없이 후원회를 이끌어오 고 계시는 김혜순 회장님께 열렬한 지지의 응원을 힘차게 보내드립니다. 앞으로도 더욱 더 큰 힘을 내시어 양심수후원회 를 이끌어 이 땅에 단 한 명의 양심수도 없는 아니 양심수가 무얼 말 하는지 조차도 모른 아름다운 누리, 행복한 세상을 만 들어 가는데 견인차가 되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좀 늦은 감은 있지만 다시 한 번 김혜순 회장님의 양심수후원회 회장직 임 무를 맡아 주신데 대해 축하와 열렬한 지지의 인사를 보내드립니다. 김혜순 회장님 힘내십시오. - 이용섭 기자 올림 (※이용섭 기자님이 권오헌 명예회장님 앞으로 보내주신 서신은 전달했습니다. _사무국)

46 | 310호•20178월  

감옥에서 온 편지 ● 

이상호 님의 편지 

권오헌 선생님, 김혜순 회장님, 최동진 사무국장님 

안녕하세요. 대구소 이상호입니다. 

오는 8월 27일, 4년의 수감생활을 마치게 되어 인사를 드립니다. 

언제나 혈기 왕성하신 모습으로 먼 대구까지 찾아주셔서 큰 용기와 활력을 주셨던 권 오헌 선생님. 언제나처럼 그 모습 그대로 이시길 바랬는데 많이 편찮으시다는 소식을 들 었습니다. 그럼에도 부쩍 마르시고 쇠약해진 몸을 의지로 세워, 광화문에서 청와대까지의  양심수석방 순례길에도 참여하신다는 먹먹한 소식에 가슴이 저미어 옵니다. 

선생님. 지금은 건강회복을 위해 모든 것을 중단하시고 오직 치료에 전념하셔야 합니다.  이는 선생님께서 그토록 아끼시고 품어주셨던 수많은 이 땅 양심의 소원과 기도입니다. 부 디 치료에 전념하시길 간절히 부탁드리며, 출소 후 바로 인사드리겠습니다. 

김혜순 회장님. 이정태 운영위원님. 대구까지 오셨는데 면회횟수 제한으로 뵙지를 못 해 죄송합니다. 조만간 출소하여 찾아뵙고 인사드리겠습니다. 

4년 간 고립된 독방에서 고립감을 느끼지 않고 생기있게 생활할 수 있었던 것은 앞서 가신 선배, 선생님들의 강철 같은 신념과 투지의 정기가 감옥 곳곳에 배어 있었기 때문 이며, 양심수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양심수후원회와 각계의 성원 및 장기수 선생님 들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특히 인터넷 편지로 한반도 정세의 기사를 매일 보내주신 김병길 선생님, 그리고 보행 기에 의지하여 힘겹게 찾아주셔서 정말 꽃보다 아름다운 미소로 격려해 주신 한기명 어 머님, 그 정성과 미소 평생 간직하겠습니다. 

그리고 명절 때마다 어려운 걸음을 해주신 대구지역의 여러 동지들과 선생님께도 감사 의 인사를 드립니다. 

이제 큰 배움과 넘치는 동지애를 가득 담아 원래의 자리로 돌아갑니다. 자주, 민주, 통일의 광장에서 막혔던 긴 호흡을 풀어내며 먼저 나가는 마음 빚, 양심수 석방투쟁에도 힘차게 함께 하겠습니다. 

양심수후원회의 모든 분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2017. 8. 2  

이상호 드림

양심수후원회 소식 | 47 

감옥에서 온 편지 ● 

신언택 님의 편지 

최동진 민가협양심수후원회 사무국장님, 해방세상 변순영님 등 재야단체의 여러분 들이 7월의 폭염에도 불구하고 서울에서 머나먼 전주교도소까지 면회 오신 것에 대하 여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변함없이 양심수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조국의 평화통일은 멀지 않습니다. 독일대통령 말대로 ‘갑자기’옵니다.  핵ICBM은 군사력 무기가 아닌 ‘외교력의 종결자’입니다. 사악한 미국은 베트남 전 쟁 때도 앞에서는 전쟁을, 뒤로는 파리평화협정으로 같이 싸운 주월한국군, 태국군  등 우방을 배신했던 나라입니다. 최근에도 시리아내전과 ISIS를 만들어 대규모 시리 아 난민을 만들었고 우크라이나를 부추겨 러시아와 대립각을 세웠습니다.  멍청한 우크라이나 수상은 미국과 NATO를 믿고 러시아에 대항했다가 러시아 푸 틴 대통령이 실제로 크림반도를 점령하자 미국과 NATO는 우크라이나를 배신했습니 다. “미국이 크림반도를 침공하는 러시아군에 대항하면 핵무기 공격하겠다”는 푸틴에 게 미국은 굴복한 것입니다. 그 결과 우크라이나는 국토의 1/3인 크림반도를 러시아 에 빼앗겼습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 반도의 점령은 인류의 전쟁역사를 새로 쓰게 했습니다.  즉, 핵보유국은 총 한 방 안 쏘고 남의 영토를 점령하는 시대가 온 것입니다. 지금 조 선과 미국은 첨예한 핵무력 대결을 하고 있지만 이것은 평화협정(조-미불가침조약) 체결을 위한 미국의 명분 쌓기용 언론플레이입니다. 

조선이 요즘 공개하는 핵무기 ICBM이나 SLBM은 이미 김정일시대 때 개발, 실전 배치된 핵무기입니다. 조선은 과거 2012년 12월에 이미 핵ICBM을 남극으로 발사한  나라입니다. 즉, 지금 조선이나 미국, 양 국가는 서로 비밀협상하며 유리한 평화협정 의 문구를 위해 언론플레이 중입니다. 

베트남 전쟁 때, 파리평화협정 체결 때도 미국은 전 세계를 속이기 위한 언론플레이  했었고 남베트남인들만 몰랐던 것입니다. 

폭염 속의 감방에서 받아 본 신문에 전문가라고 자처하는 기레기 기자들의 논평을  보면 코미디보다 더 웃겨 웃음을 짓습니다. 

TV, 신문의 기레기 기자들의 보도에 더위를 잊고 시름을 잊습니다.^^ 최근 베트남 전쟁 당시 파리평화협정의 미국측 최종 실무자였던 헨리 키신저 전 미

48 | 310호•20178월  

감옥에서 온 편지 ● 

국국무장과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계적 핵무력국이 된 조선에 대하여는) 미국은  이미 늦었다. 선택할 카드는 없다. 주한미군을 철수하고 중국과 빅딜을 하는 수밖에  없다.” 

2010년 천안함 사기사건 때 (당시 김정일시대) 책임지고 파면된 월터 샤프 전 주한 미군사령관은 이임식에서 이런 놀라운 말을 했습니다.“-북한군은 재래식 무기를 제 외하면 세계3위의 대략 핵보유국입니다.-” 즉 김정일 시대에 이미 핵ICBM의 실전배 치가 끝났다는 의미입니다. 

그것을 요즘 조-미 비밀회담 때문에 쏜다-쏘지마라 식의 쇼를 조선-미국 간에 하 고 있는 겁니다. 

국가보안법도, 월남전 때 남베트남의 반공법이 파리평화조약 체결 후 주월미국대사 에 의해 폐지됐듯이 주한미국대사의 허락 없이는 국가보안법 폐지가 안됩니다. 노무 현 때 국회 과반수가 있었음에도 노무현도 국가보안법의 폐지는커녕 UN에서 권유하 는 찬양, 고무 조항조차 개정도 못한 이유입니다. 

조선-미국 두 핵무력국 사이의 남한대통령은 이명박 때부터 이미 월남대통령 짝이  났습니다. 나라 살림하는 내무부장관 수준일 뿐입니다. 

‘양심수석방추진위원회’의 많은 분들이 감옥 속의 양심수 석방을 위해 폭염 속에서  땀을 흘리고 계시지만 남한을 지배하는 미제국의 남한 총독인 주한미국대사는 문재인 에게 ‘양심수 특별사면’을 허락 안할 것입니다. 전두환 때 양심수 천여명 석방은 미국 이 군부 노태우 당선을 위한 허락이었습니다. 

‘납치해 간 12명의 북한 여성과 북송을 원하는 평양주민 김련희씨의 북한으로의 귀 향 없이는 어떠한 남-북 간의 교류는 없다.’고 못 박은 북조선에게 독일 드레스덴에 서의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이나, 그에 대한 답변을 북한의 잔칫날이 7월 27일까지 답 변하라는 외교부의 기가 막힌 국제외교 감각은 (북조선은 27개국 연합군을 물리친  

1953년 7월 27일을 조국해방전쟁 전승일로 기념일 선포 후 매년 축제 행사한다) 혀 를 차게 합니다. 

폭염의 무더운 날씨에 양심수 석방을 위해 뛰어다니는 선생님들의 모습이 눈에 선 합니다. 폭염에 건갈 잘 챙기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17. 8. 6. 

전주교도소에서 신언택 올림

양심수후원회 소식 | 49 

감옥에서 온 편지 ● 

김기종 님의 편지 

안녕하십니까  

우리마당 김기종입니다. 

지난 4월 19일, 소식을 당일에 불쑥 발송했는데 오늘도 갑자기 글을 올리게 되었습 니다. 

다름 아니라, 어제 ‘입추’를 맞이했지만 더위가 맹위를 떨치는 까닭을 곱씹어 보며,  오늘 8월 8일이 저에게 갖는 또 다른 의미를 되새겼기 때문입니다. 달력에서 달과 날이 겹치는 날, 특히 ‘여덟-8팔’이 겹치는 ‘팔팔절’은 ‘팔팔’나는 기 운으로 무더위에 찌든 몸과 마음을 깨끗이 씻고 가을을 준비하는 생활명절입니다.  (‘우리마당’에서는 1985년부터 이렇게 샘솟는 기운을 한데 모아, 8.15광복절 행사를  준비하는 모임도 함께 하였습니다. 1988년 테러사건의 원인도?) 

그런데 오늘 새벽에는 해와 달 사이에 지구까지 일직선으로 자리잡는 월식현상도  이뤄졌습니다. 그 와중에 제 스스로도 자리매김(?)을 하다 보니 숫자들의 기묘한 만남 을 확인하게 된 것입니다. 즉 ‘팔팔절’에 ‘팔’을 하나 더 만들어 ‘팔팔+팔=888(팔팔팔)’ 일 째 맞이함을 깨달았습니다. 

‘888일’째 농성을 ‘팔팔절’에 맞이하다니... 

2015년 3월 5일, ‘전쟁훈련 중단’을 외치며 미국대사 마크 리퍼트와 충돌한 후, 병 원, 경찰서, 구치소, 교도소로 옮겨 다니며 농성했는데 ‘팔팔팔’일을 ‘팔팔’일에 맞이한  것입니다. 

제 상태는 단순한 구속 수감이 아닌, 인권을 논하는 미국 정부를 대상으로 하는 농 성입니다. 

저는 지난 소식에서 전해드린 바처럼 재활의 노력으로 최근에는 휠체어 없이 걷습 니다. 따라서 더욱 용솟음치는 저의 ‘전쟁훈련 중단’ 요구와 ‘평화통일’의 꿈이 하루빨 리 실현될 수 있도록 많은 격려와 지도를 부탁드립니다. 

전쟁훈련 중단 요구, 미국대사 피습 888일째 

4350년 8월 8일 

대구교도소에서 김기종 올림

50 | 310호•20178월  

감옥에서 온 편지 ● 

김경용 님의 편지 

1.  

“좌상폐에 약 2.1Cm 정도의 결절형 음영이 있어 폐암 가능성이 의심(됩니다.)” 판정일 2017년 6월 27일.  

판정의사 이◯◯ 

지난 6월 서울구치소에서 받은 <건강진단 결과통보서>입니다. 

6월 어느 날 구치소 대강당으로 수용자들이 다들 몰려가 혈액검사, 요검사 등과 함께  버스에 설치된 흉부 X-ray도 찍었는데 흉부방사선 검사에서 위와 같은 의사의 유소견 이 나왔다는 것입니다. 제가 오랜기간 B형 간염보균자라서 간에 무슨 이상이 생겼다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뜬금없이 ‘폐암’이라니 뭔 일인가 싶었습니다. 

1년 전, 열댓명의 국정원 수사관들에게 체포되며 시멘트 바닥에 내동댕이쳐지고 가슴 이 짓눌리고 사지가 뒤틀릴 때 ‘그래, 죽자’고 결심하며 ‘민족의 전사답게, 제자답게, 존 엄과 영예를 지키며 죽자’고 각오했었는데... 

어쩌면 1년 만에 다시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다니 이 무슨 운명 의 장난인가 싶었습니다. 작년이나 올해나 북망산을 그려볼 때마다 함께 떠오르는 것은  아내의 모습이더군요. ‘혼자 남겨두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는데...’ 

사동 담당에게 외부진료(흉부CT)를 요청했습니다. 며칠 후 의료과에서 연락이 오기를  이번 건강검진에 흉부방사선 이상소견이 많이 나와서 하루 날 잡아서 흉부 X-Ray를 다 시 찍고 그래도 이상이 나오면 외부진료를 검토하기로 했답니다. 

서울구치소의 수용인원이 3,000명이 넘습니다. 이 많은 사람에 상주하는 의사는 한  명뿐이고 이곳저곳 성치 않는 수용자들은 많다보니 진료요청을 하면 하세월이지요. 7월에 흉부방사선을 다시 찍기는 했지만 결국 판독 결과는 보지 못하고 춘천으로 이감 왔습니다. 

춘천교도소에 이감되어 들어오던 날 물품 검사와 함께 의료과에서 건강도 묻길래 사정  이야기를 했더니 그날로 흉부 X-ray를 찍고 외부 판독 결과도 빨리 알려 주었습니다. ‘No Remarkable Finding’ (특별한 이상 없음)

양심수후원회 소식 | 51 

감옥에서 온 편지

춘천에서 찍은 흉부방사선의 결과입니다. 얼마 후 서울구치소에서 다시 찍은 영상 검사의 결과도 정상으로 나왔다고 알려왔습니다. 

제 천성이 원체 그런지라 한 달여 동안 별 생각 안하고 평소와 다름없이 덤덤하게  지냈지만 어쩌다 한 번씩 건강검진 결과가 떠오를 때마다 ‘내가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가’, ‘나에게 마지막까지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성찰하게 하는 시간이었 습니다. 

2. 

지난 달 소개한 이광웅 시인의 <수선화> 어떠셨나요. 편집과정에 오타가 있어 바로  잡습니다.  

1연 10행, 2연 15행, 4연 22행의 갠 날이라(라) ⇀ 갠 날이다.(다.) 2연 17행의 달리 미련이나 있을 것이 아니어서...(미련) ⇀ 달리 마련이나 있을 것 이 아니어서...(마련) 

제가 이광웅 시인을 알게 된 것은 김남주 시인을 통해서입니다. 정확히는 김남주 시 인의 시집을 통해서입니다. 

1987년 도서출판 인동에서 출간된 김남주의 옥중시집 『나의 칼 나의 피』 (후에  1993년 실천문학사에서 재출간)의 발문을 이광웅 시인이 썼습니다. 두 분이 같은 교도소에서 징역을 살은 인연이 끈이 되었겠지요. 김남주 시인이  1979년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 사건으로 15년 형을 선고받고 광주 감옥에 먼 저 수감되었고, 이광웅 시인은 1982년 ‘오송회’ 사건으로 7년 형을 선고받고 같은 감 옥에 투옥되었습니다. 두 분은 광주교도소 특사 상층에서 책도 서로 빌려가며 읽고,  운동시간에 땅 탁구도 같이 하며 1년 3개월 동안 같이 지냈습니다. 얼마 전에 읽은 황석영의 소설 <수인> 2권에도 “(이광웅은) 김남주와 형제처럼 징역 을 살고 나(왔다)”고 쓰고 있더군요. 

이광웅 선생님의 시 한 편 더 감상해 볼까요. 

목숨을 걸고 

이광웅(1940~1992) 

이 땅에서 

진짜 술꾼이 되려거든 

목숨을 걸고 술을 마셔야 한다. 

52 | 310호•20178월  

이 땅에서 

참된 연애를 하려거든 

감옥에서 온 편지

목숨을 걸고 연애를 해야 한다. 

이 땅에서 

좋은 선생이 되려거든 

목숨을 걸고 교단에 서야 한다. 

뭐든지 

진짜가 되려거든 

목숨을 걸고 

목숨을 걸고... 

3. 

김남주 시인은 저에게 유다른 시인입니다. 

김남주 시인은 저에게 네루다, 아라공, 마야코프스키, 그레히트의 시와 푸시킨, 하 이네의 정치적인 저항 시에 대해 알게 해주었고, ‘한 편의 혁명적인 시는 천만자루의  창검을 대신할 수 있다’는 진리를 본인의 시를 통하여 저에게 가르쳐 준 시의 스승이 자 혁명선배였습니다.  

유난히도 추웠던 그 해 겨울 1994년 2월 14일, 서대문의 고려병원(지금의 강북삼 성병원)에 그 전날 너무 일찍 우리 곁을 떠난 김남주 시인을 추모하러 문상을 다녀온  기억과 년 전에 아내와 함께 해남에 있는 시인의 생가에 찾아가 마당에 있는 시비에  새겨진 그의 시 ‘노래’를 한 음절, 한 음절 되새기며 곡을 붙여 노래 부른 추억을 떠올 려 봅니다. 

오늘 소개할 시는 김남주의 <전사2>입니다. 남민전의 전사이자 불굴의 혁명가였던  신향식 동지가 사형되던 날 감옥에서 ‘우유곽에다 못 같은 것은 꾹꾹 눌러 쓴’ 시입니 다. ‘마지막에 웃는 자가 누구인가 두고 보자!’ 라는 구호가 절로 떠오르는 요즘, 새롭 게 되새기게 되는 시입니다. 

양심수후원회 소식 | 53 

감옥에서 온 편지

전사2 

 김남주(1946~1994) 

해방을 위한 투쟁에서 

많은 사람이 죽어갔다 

많은 사람이 실로 많은 사람이 죽어갔다 

수천 명이 죽어갔다 

수만 명이 죽어갔다 

아니 수백만 명이 다시 죽어갈지도 모른다 

지금도 죽어가고 있다 

세계 도처에서 나라 곳곳에서 

거리에서 공장에서 산악에서 감옥에서 

압제와 착취가 있는 바로 그곳에서 

어떤 사람은 투쟁의 

초기 단계에서 죽어갔다 

경험의 부족과 스스로의 잘못으로 

어떤 사람은 

승리의 막바지에서 죽어갔다 

이름도 없이 얼굴도 없이 죽어갔다 

살을 도려내고 뼈를 깎아내는 지하의 고문실에서 쥐도 모르게 새도 모르게 죽어갔다 

감옥의 문턱에서 

잡을 손도 없이 부를 이름도 없이 죽어갔다 

그러나 보아다오 동지여! 

피의 양분 없이 자유의 나무는 자라지 않는다 했으니 보아다오 이 나무를 

민족의 나무 해방의 나무 민족해방투쟁의 나무를 보아 다오 이 나무를 키운 것은 이 나무를 이만큼이라도 키워낸 것은 그들이 흘리고 간 피가 아니었던가 

54 | 310호•20178월  

감옥에서 온 편지 ● 

자기 시대를 열정적으로 노래하고 

자기 시대와 격정적으로 싸우고 

자기 시대와 더불어 사라지는 데 

기꺼이 동의했던 사람들 

바로 그 사람들이 아니었던가 

오늘밤 

또 하나의 별이 

인간의 대지 위에 떨어졌다 

그는 알고 있었다 해방투쟁의 과정에서  

자기 또한 죽어갈 것이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자기의 죽음이 헛되이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그렇다, 그가 흘린 피 한 방울 한 방울은 

어머니인 대지에 스며들어 언젠가 

어느 날엔가 

자유의 나무는 결실을 맺게 될 것이며 

해방된 미래의 자식들은 그 열매를 따먹으면서 

그가 흘린 피에 대해서 눈물에 대해서 이야기 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부끄럽게 쑥스럽게 이야기 할 것이다. 

2017. 8. 10 

춘천교도소에서 김경용

양심수후원회 소식 | 55 

1일 

이런 일이 있었어요 

2017년 7월 활동

재판 방청 (류제춘, 이정태, 최동진) 

● 권오헌 명예회장 호흡기 내과 조직 검사 등을 위 한 서울대 병원 입원, 검사를 마치고 퇴원하다. 

3일 

● 양심수석방추진위원회_광복절 사면촉구 관련  모임(권오헌) 

4일 

● 정부청사 후문(통일부) 앞에서 7.4남북공동성 명 발표 45돌에 즈음한 범민련 남, 북, 해외 본부  공동결의문 발표 기자회견을 열다. 이규재 범민련  남측본부 의장, 권오헌 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 등  결의발언, 노수희 범민련 남측본부 부의장이 공동 결의문을 낭독하다. 

● 북에서 이날 오전 평북 방현 일대에서 대륙간탄 도로케트 ‘화성-14형’을 시험발사 성공한 것으로  언론들이 보도하다. 

5일 

● 권오헌 명예회장 서울대병원 종양내과로부터  폐암(4기) 확정판결 받다. 앞으로 2주일 동안 유전 자 검사를 통해 어떤 치료를 받을지 결정하게 됨.  (김호현 전 회장 병원에 함께) 

● 양심수 김경용, 이영수 항소심 선고(5년, 4년)  

6일 

● 종로 탑골공원 앞에서 ‘국가보안법 철폐와 양심 수 전원석방을 위한 민가협 1029회 목요집회’를 열 다. 조순덕 민가협 상임의장의 여는 말(광복절 양 심수 사면촉구), ‘열다 0.75 청년 서포터즈’에서 활 동하는 성지화 학생 등 양심수 석방촉구 발언, 김 련희 평양주민의 북녘조국으로의 송환촉구 발언,  

권오헌 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의 미국의 대북적대 정책 폐지와 평화협정체결 촉구 발언 등이 있었음.  권오헌 명예회장은 이 날 폐암 확정을 공식으로 표 방하다. 그러나 반드시 이겨낼 것이라고 다짐하다.  (김혜순, 김재선, 김래곤, 이정태 외) 

7일 

● 명동 향린교회에서 새날희망연대 56기 강좌. 김 련희 평양주민의 강연회가 성황리에 열리다. (권오 헌, 김영식, 소수영, 류제춘, 최동진) 

● 광화문 광장에서 ‘양심수석방 추진위우언회’ 주 최로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한 양심수석방문화제’ 가 열리다. 마지막 순서에 민가협 어머니들과 양심 수 가족들, 양심수후원회 일꾼들이 무대에 올라 ‘솔 아 푸른 솔아’를 합창하고 권오헌 양심수후원회 명 예회장이 ‘양심수 석방 촉구 발언’ 울리다. (김혜순,  

김재선, 모성용, 나정옥, 손일순-남편, 김래곤, 유 

56 | 310호•20178월  

영호, 류경완, 김길자, 이정태, 유인호, 박희성, 김 영식, 김현주, 권오헌, 최동진 외) 

9일 

● 박윤경회원, 중랑구 시립노인전문 요양원으로  박정숙 선생님을 찾아 공원 산책, 화상전화로 권오 헌-박정숙 선생님 통화했음. 

11일 

● 마포의 한 오피스텔에서 권오헌 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 <통일뉴스> 김치관 편집국장과 통일정 세 등과 관련 인터뷰하다. 

12일 

● 재일 한국인양심수동우회 이철 회장과 부인 민 향숙씨를 만나 오랜만에 밀린 이야기 나누고 반가 운 시간을 보내다. 이철 회장은 70년대 고국에 유 학을 왔다가 이른바 재일유학생간첩단 사건으로  

10년 가까이 옥고를 치루었으나 재심에서 무죄 확 정판결을 받았음. 

13일 

● 광화문역 7번 출구 옆에서 ‘양심수석방추진위원 회’ 주최로 ‘양심수 없는 나라라로 동행’ 첫날 행사 가 진행되다. 50여 명이 함께하여 광화문 광장을  출발, 청와대 분수대까지 행진, 약식 기자회견을  

갖고 다시 광화문으로 돌아오는 ‘동행’이다. 오늘이 첫날이고 8.15광복절까지 이어질 것이다. ‘동행’의 명예 단장인 권오헌 선생과 공동단장인 조 순덕 민가협 상임의장, 조영건 구노회 회장 그리고  장남수 유가협 회장과 이경진 이석기 의원 누님,  정지영 전 통합진보당 경기도당위원장 부인 등 양 심수 가족들, 출소자들, ‘열다 0.75 서포터즈’ 활동 가들이 함께하다. (권오헌, 이정태, 최동진) 

이런 일이 있었어요•2017년 7월

● 종로 탑골공원 앞에서 ‘국가보안법 철폐와 양심 수 전원 석방을 위한 민가협 1030회 목요집회’를 열 다. 권오헌 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의 여는 말 <국가 정보원 적폐청산 TF는 ‘이석기 내란음모 조작사건’ 과 ‘북 해외식당 종업원 기획탈북 의혹사건’을 반드 시 조사, 진상규명하라‘고 촉구. 조영건 구노회 회 장, 김종일 평통사 서울대표 등 결의 발언이 있었음. 

15일 

● 분당 서울대병원 장례예식장으로 양심수였던  손정목 회원 부친상 문상 다녀오다. (권오헌, 김혜 순, 이윤섭, 홍휘은 부군, 유영호) 

16일 

● 6.15한마음 통일산악회, 7월 산행으로 삼성산 을 등반하다. 

17일 

● 양심수석방추진위원회에서 기획한 양심수석방  문화제와 관련된 인터뷰를 하게 되다. 윤희숙 한국 청년연대 상임대표와 ‘열다 0.75 서포터즈’에서 활 동하는 숭실대생이 수유리 집을 찾아오다. ● 양심수 이용섭 재판 방청 (최동진, 소수영, 김련 희, 윤희보) 

19일 

● 권오헌 명예회장, 서울대병원 종양내과센터 김 동완 교수로부터 7월 5일 폐암판정에 따른 후속조 치로 2주일 동안의 유전자검사 결과를 통보받다.  바로 경구 항암화학요법으로 치료받게 되며 이날 2 주일 분 복용약 ‘이레사’를 처방해 주다. 이 약은 암 세포만을 표적공격하여 비교적 치료 받기에 어렵 

지 않다고 설명하다. (김호현, 김혜순 회장 함께) ● 서울진보연대 후원주점 참가 (김혜순, 양원진,  

양심수후원회 소식 | 57 

강태희, 홍휘은, 김련희, 소수영, 이정태, 류경완,  최동진 등) 

20일 

● 종로 탑골공원 앞에서 ‘국가보안법 철폐와 양심 수 전원석방을 위한 민가협 1031회 목요집회’를 열 다. 임방규 민가협 감사님의 여는 말 <양심수 석방,  국가보안법 철폐> 이어 권오헌 양심수후원회 명예 회장이 ① 8.15광복절 사면 부정하는 청와대 비판  ② 문재인 정부의 대북 군사회담, 적십자회담 제안 에 대한 미일의 부정적 반응 규탄 ③ 문재인 정부의  대북 대화 제안을 미일에 사전 통보한 종속성 규탄  ④ 8월에 있을 을지프리덤가디언 한미연합군사연 습 중단할 것 등을 주장하다. 이어 조영건 구노회  회장, 환수복지당 활동가의 양심수 석방 촉구 발언  등이 있었음. (김혜순, 권오헌 외) 

● 김혜순 양심수후원회 회장과 제일은행, 국민은 행 등 계좌 명의 등 정리 (김혜순, 권오헌) ● 양심수 이진영 선고(무죄) 방청 (최동진) 

23일 

● 서울시립 용미리 공원묘역 추모관에서 민가협 양심수후원회와 범민련 남측본부, 민족자주평화통 일중앙회의 등 공동으로 ‘통일애국열사 류종인 선 생 1주기 추모제’가 진행되다. (소식란 참조) 

24일 

● 인사동 음식점 ‘풍류사회’에서 ‘장준하 특별법제 정 시민행동 제38차 연석회의’에 참석(권오헌) 

25일 

●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민가협과 민가협양심수 후원회, 구속노동자후원회 등 104개 단체가 함께 하여 ‘공안탄압반대, 양심수석방 사면복권을 위한  

공동행동’ 주최로 ‘문재인도 양심수였다. 양심수 석 방하라’는 내용의 광복절 사면촉구 기자회견‘을 열 다. 조순덕 민가협 상임대표, 장남수 유가협 회장,  최종진 민주노총위원장 직무대행, 권오헌 양심수 후원회 명예회장, 조영건 구노회 회장 등의 사면촉 구 발언과 양심수 가족으로 정지영 전 통합진보당  경기도당위원장 부인 등 촉구발언 등이 있었음. 마 지막으로 ’열다 0.75 서포터즈‘에서 활동하는 김선 경님이 기자회견문을 낭독하다. (권오헌, 김영식,  박희성, 이윤섭, 이정태, 최동진 외) 

● 민통선 안에서 6.15사과원을 하시는 사장님께 서 영양식을 보내주시어 강태희 회원님과 류제춘  전 사무국장님이 요리하여 수유리 권오헌 명예회 장님께 보내주셨습니다. (양원진, 박희성, 강태희,  류제춘) 

26일 

● 이 땅의 민주화와 자주통일을 위해 헌신해 온 박 석률 선생이 25일 밤 어려운 투병 끝에 세상을 떠 나게 되어 그 빈소가 마련된 한일병원 장례예식장 에서 관련단체 대표들이 모여 장례위를 결성, 27 일 추도식을 갖기로 하다. 고인의 유족과 남민전 의 권오헌, 민청학련의 이철 전 의원 등이 함께하 여 장례명칭을 ‘통일애국전사 고 박석률 동지 민주 사회장’으로 하고 공동 장례위원장으로 안재구(남 민전), 이규재(범민련 남측본부), 이철(민청학련),  

오세제(서강대 민주동우회), 한충목(한국진보연대) 로 하고 호상은 남민전의 이강동지, 추도식 사회는  최석진 남민전 동지가 보기로 하다. 장례위 결정과  추도식 진행 등 사무 일체를 양심수후원회 최동진  사무국장이 맡기로 하다. 

27일 

● 광화문 광장에서 6.15남측위 주최로 ‘7.27 정전

58 | 310호•20178월  

협정 64돌’을 맞아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촉구 하는 기자회견을 열다. (권오헌 외) 

● 종로 탑골공원 앞에서 ‘국가보안법 철폐와 양 심수 전원 석방을 위한 민가협 1032회 목요집회’ 를 열다. 권오헌 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의 여는 말  <8.15 양심수 사면, 지난 25일 미국 하원에서 통과 된 대북제재안 규탄, 평화협정체결과 주한미군 철 수 등 촉구> 이어 정지영 전 통합진보당 경기도당  위원장 부인의 ‘8.15 양심수 석방 촉구 발언’, 며칠  전 무죄석방 된 ‘노동자의 책’ 대표 이진영씨 ‘출소 인사’, 옛 코리아연대 이상훈 대표, 김혜영 회원 등  만기 출소인사 등이 있었음. 마지막으로 민중연합 당 산하 장지화 엄마당 대표의 결의 발언이 있었음. ● 한일병원 장례식장에서 남민전, 민청학련 등 사 회 각계 조문객이 함께한 가운데 남민전 최석진 동 지의 사회로 ‘통일애국전사 고 박석률 동지 민주사 회장 추도식’이 진행되다. 추도의례에 이어 서강대  민주동우회 오세제 회장의 약력소개, 안재구 남민 전 동지회 대표, 박형선 광주전남 민청학련 동지회  회장의 추도사, 고인의 유작 ‘동행’을 남민전 신우 영 동지가 낭독하다. 이어 민중가수 박준씨의 추도 의 노래, 이강 남민전 동지의 호상인사, 유족(부인  신선아, 따님 박세희, 아우 박석삼)을 대표해 박석 삼 아우가 ‘석률형을 보내며’를 낭독하고 참가자들 의 헌화로 모두 마치다. 

29일 

● 환수복지당 한명희 대표님과 최근 출소한 양고 은, 이상훈, 김혜영 일군들이 수유리로 권오헌 명 예회장을 찾아와 최근 정세와 건강에 대해 의견을  나누다. 

● 양심수 없는 나라로 ‘동행’, 광화문역 7번 출구  앞에서 100여명이 함께하여 집회와 행진, 청와대  앞길 행사를 진행하다. 양심수석방추진위원회 윤 

이런 일이 있었어요•2017년 7월 

희숙 공동집행위원장 사회로 권오헌 명예회장, 이 태호 참여연대 사무처장 등 양심수석방촉구 결의 발언이 있었고 청년학생들의 문예공연에 이어 행 진에 들어가다. (권오헌 외) 

31일 

● 김혜순 회장과 최동진 사무국장, 권오헌 명예회 장. 농협, 제일은행 등 돌며 통장명의 변경 등 정리  작업을 하다. 

광 고 

권오헌명예회장 출판기념회 

20171029일(일) 

오후 3시 

대방동 서울여성프라자

양심수후원회 소식 | 59 

재정 보고 | 2017년 7월 

단위 : (원) 

수입 내역 수입 총액 10,580,310 현금 50,000 

CMS 2,085,000 

미주지부 1,807,031 

SC지로 90,000 

농 협 870,000 

하 나 30,000 

국 민 560,000 

회비수입 계 5,492,031 

전월이월 5,088,287 

지출 내역 지출 총액 6,566,818  양심수 관련 양심수영치금, 소식지발송, 면회사업 등 754,000 

출소장기수 관련 만남의집 운영비, 출소장기수관련 지원 1,181,170 

소식지 관련 소식지 제작 및 발송 1,176,788 

사무국 활동 상근일꾼 활동비(활동비, 상여금, 보험) 2,568,330 

연대사업 기자회견, 집회, 연대단체분담금 등 330,000 

교통 통신 인터넷 전화 및 통신요금 등 109,090 

회원사업 및 운영 회원경조사비, 회원사업, 이체수수료 등 447,440

5,492,031(수입) - 6,566,818(지출) + 5,088,287(전월이월금) 차기 이월액 4,013,500 

열심히 회비를 내주시는 회원님께 감사드립니다.  

지로로 회비를 내주시는 회원님들께 부탁드립니다.  

은행납부 시 지로용지에 성명을 정확하게 기재해주시기 바랍니다.  

보내신 분 성함을 확인할 수 없어 소식지에 올리지 못하는 경우가 있으니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60 | 310호•20178월  

 ● 회비를 내주신 분들 | 2017년 7월 

강대준 10,000 강순례 10,000 강순영 10,000 강순희 50,000 강응길 10,000 강태희 10,000 강호민 10,000 건설타워분과 100,000 고대립 10,000 고재형 10,000 고제헌 20,000 공진하 20,000 곽영신 5,000 구본승 5,000 권기순 10,000 권미경 30,000 권오헌 50,000 권장희 10,000 김 창 수 10,000 김경구 5,000 김경중 10,000 김광선 20,000 김광태 10,000 김교영이해옥 30,000 김기수지명순 20,000 김길자 30,000 김난영 10,000 김대봉 5,000 김덕진 10,000 김동만 10,000 김력균 5,000 김미령 10,000 김민제 30,000 김병관 10,000 김병철 10,000 김선영 5,000 김성영 10,000 김성철 10,000 김수진 5,000 김수희 10,000 김순영 10,000 

김애숙 10,000 김영규 20,000 김영호 10,000 김용심 30,000 김은정 20,000 김인순 10,000 김재선 20,000 김재홍고현희 50,000 김정라 20,000 김정현 5,000 김제영 10,000 김진양 10,000 김충례 30,000 김태상 5,000 김현식 10,000 김혜식 10,000 김혜정 5,000 김홍섭 10,000 김효숙 30,000 김희찬 5,000 나명주 10,000 노중선 20,000 노혁 30,000 류경완안현숙 30,000 류동수 10,000 류예선 20,000 류제춘 10,000 모두리 10,000 모세미 30,000 모아라 10,000 모지희 10,000 문일승 10,000 민기채 10,000 박강혁 10,000 박귀선 5,000 박귀영 10,000 박금란 10,000 박기동 50,000 박기찬 10,000 박선후 10,000 박세용 5,000 

박수분 10,000 박수분 10,000 박숙현 20,000 박재만 10,000 박재현 10,000 박중기 10,000 박진도 10,000 박창숙 10,000 박태동 20,000 박현숙 10,000 박형성 5,000 박희성 10,000 배춘실 20,000 백설애 10,000 백승호 10,000 법전 100,000 서승종 10,000 서은성 10,000 설혜경 10,000 성영미 10,000 소미영 10,000 손영주 10,000 손일순 20,000 손혜련 20,000 송록희 10,000 송무호 10,000 송창학주경임 30,000 신귀영 10,000 신동숙 20,000 신동현신재웅 20,000 신미순 20,000 신용승 10,000 신준호 10,000 심주이 10,000 안관혁 10,000 안샘 10,000 안은숙 10,000 안인숙 5,000 양인철 10,000 양해용 10,000 여혜정 10,000 

오경희 10,000 오윤석 10,000 오은결 10,000 유기수 10,000 유상영 30,000 유성경 20,000 유승옥 30,000 유영호 10,000 유치자 10,000 윤규승 10,000 윤주미 10,000 윤진실 10,000 윤현숙 65,000 윤형근 5,000 은종복(풀무질서점) 

10,000 

이경도 10,000 이경미 20,000 이경원 10,000 이경자 20,000 이남현 30,000 이내관 10,000 이덕우 10,000 이두화 10,000 이명래 10,000 이미선 10,000 이미숙 10,000 이미애 10,000 이범주 10,000 이병민이지은 30,000 이봉재 10,000 이봉주윤노숙 20,000 이상준 10,000 이상희 10,000 이상희 10,000 이선아 5,000 이성형 50,000 이수호 10,000 이승미 10,000 이승헌 5,000 이영림 정선용 20,000 

이영재 5,000 이영재 5,000 이우인 50,000 이윤 10,000 이윤섭이정희 30,000 이윤성 20,000 이재성 30,000 이재호 120,000 이정규 10,000 이정섭 10,000 이정숙 50,000 이지아 10,000 이창규 10,000 이창희 10,000 이철우 10,000 이현근 김혜순 30,000 이현희 10,000 이호승 10,000 이호중 10,000 인미화 10,000 임소희 5,000 장경욱 100,000 장희자 10,000 전미라 10,000 전양배 10,000 전형범 20,000 전환식 10,000 정관호 10,000 정동희 10,000 정만기 5,000 정명숙 20,000 정봉주 30,000 정종만 10,000 정향숙 10,000 정훈철 10,000 조규응 10,000 조기훈 100,000 조동문 10,000 조봉기 10,000 조순덕 10,000 조진숙 10,000 

조철호 20,000 주칠규 10,000 진영배 10,000 진태준 10,000 최광운 10,000 최대식 10,000 최선희 10,000 최옥순 10,000 최진수 20,000 최화섭 10,000 편상범 20,000 한상권 20,000 한상근 10,000 한영선 30,000 한준혜 10,000 허행란 10,000 홍명자 10,000 홍세희 5,000 황규은 30,000 황철우 20,000 황해평 5,000 황현승 20,000 

미주지부 1,807,031 LA 1,040불 

DC수도장로교회 300불 캔터키 김재순 300불 

자동이체 하실 분은 아래 은행을 이용해주세요 

국민은행 006-01-0601-098 민가협양심수후원회 농협 053-01-112692 민가협양심수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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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ail : yangsimsu0@gmail.com 

서명 

생년월일

 

전자우편

 

휴대폰


 

성 명 

소 속 

전화번호 

주 소 

회비약정액 매월 1만원 매월 2만원 매월 3만원  매월 5만원 기타 ( )원 

계좌번호 |  

이 체 

은행 | 


 

예금주 |  

출금일자 매월 10일 매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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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아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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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아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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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가협양심수후원회 http://www.yangsimsu.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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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후원회소식 343호(2020년 5월) file 양심수후원회 2020.06.10 202
110 후원회소식 342호(2020년 4월) file 양심수후원회 2020.05.09 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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