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지 299호(2016년 9월)입니다

2016.09.30 15:34

양심수후원회 조회 수:702

소식지 299호(2016년 9월)입니다

 

 

 

 

통권 299호 발행일 2016. 09. 28 | 발행인 안병길 | 발행처 민가협양심수후원회 

세월호 진상규명 특별법을 개정하라 ! 세월호 진상규명 특별법 개정을 위한 집중실천 선포 기자회견이 9월 21일 4.16연대와 4.16가족협의회 등 시민사회단체가  참가한 가운데 국회 앞에서 열렸다. 

우리의 주장_대결에서 다시 햇볕으로1 | 만평・3 | 단상_두만강 접경지역 홍수에 온정의 손길을4 | 월례강좌_김영식의  삶/내가 본 김영식 샘6 | 기쁜 일_양원진선생님 미수(米壽)10 | 소식_홍순석님 출소/북 종업원 기획탈북 의혹사건 해결을  위한 1인시위12 | 기고_세상과 철저히 격리된 ‘사회배출’ 북 종업원들13 | 미주 소식_사드 말고 평화, 깨어있는 민중의 힘 

목차 

인권과 평화는 우리 가까이 있습니다. 동족이 어려울 때 돕는것이 우리 겨레의 미덕입니다.  

추위에 떨고있는 우리 동포에게 십시일반의 마음으로 사랑을 보냅시다! 

국내양심수후원회는 미주양심수후원회와 소통연대하여 안전하고 투명하게 모아진 성금을  

으로!18 / 장민호・김은경 선생님 백년가약22 | 보고_원불교 재비 전달식21 / 통일애국열사 합동추도식22 | 기고_자 주통일위업에 바쳐진 고귀한 생애는 영생합니다24 | 연재_도성기행3-춘원 이광수의 마지막 거주지, 효자동 가옥26 | 산행 기_6.15산악회-강씨봉30 | 광고・35 | 양심수 현황・36 | 전국 양심수 면회 공동행동・38 / 참여기40 | 옥에서 온  편지・43 | 이런 일이 있었어요_8월・50 | 후원 신청서・55 | 재정보고・56 | 회비 내주신 분들・표3 

 

 

대결에서 다시 햇볕으로 

안병길 _ 회장 

보수정권의 트레이드마크라고 하면(사실 부풀려진 거짓이지만) 안보 아닌가. 안보는 말  그대로 이 땅에 살고 있는 백성들의 안전보장이다. 박정희 시대부터 안보를 내세워가며  자기들과 반대되는 사람들을 옥에 가두고 사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해왔던 게 이 땅 의 보수를 자칭하는 사람들이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에 와서 끊임없이 대북대결 정책 으로 일관하더니 여기까지 왔다.  

이명박은 박왕자 사건으로 금강산 관광의 문을 닫았고(2008년 7월) 이어 같은 해 11월 에는 개성관광까지 중단시켰다. 박왕자 사건은 지금도 의문이 꼬리를 문다. 군사지역 이라 사전에 교육에 교육을 해 주의를 시켰음에도 왜? 그 새벽에 초소가 있는 곳에 갔 을까 알 수 없다. 필자도 전방철책에서 근무했지만 군 수칙이 “서라! 암구호. 누구냐” 여기에 순응안하면 총으로 쏘라는 게 군의 수칙이다. 들리는 소문에는 박왕자 가족에 게 10억이 넘는 보상했다고 하는데 어디까지나 소문이다. 자신의 잘못은 모르고 그것 을 묻어두려고 줄곧 꺼내는 말이 ‘햇볕정책 실패, 햇볕 때문에 북이 핵 개발한다.’고 하 지만 정반대이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에 와서는 무수한 안보라는 말폭탄만 쏟아부었지  

실제는 안보에도 아주 무능하다는 걸 이렇게 사실적으로 보여줄 수 없다. 이들이 즐겨  쓰는 말 폭탄은 ‘강력한 제제, 예의주시, 원점타격, 단호한 대처’ 이다. 금강산, 개성관광  중단에도 못 참아 창조경제를 외치는 입으로 개성공단까지 문 닫아 수 천 명의 노동자 를 실업자로 몰아내고 영세업체인 개성공단 입주 업체를 파산으로 내몰았다. 이제 무엇 을 가지고 제재 한단 말인가.  

여지껏 네 차례에 걸쳐 핵실험을 했다. 2006년 10. 9일 1차, 2009년 5. 25 2차, 2013년 2.  12일 3차, 2016년 1. 6일 4차. 네 차례의 실험 중 햇볕정책 기간 1차례, 이명박 강풍정책 기간 중 총 2회, 이번 5차 2016년 9. 9일 박근혜 정부 들어 2회.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  

우리의 주장 | 대결에서 다시 햇볕으로

● 우리의 주장 ●  

북핵이 비약적으로 강화된 사실이고 증거이다. 그러면서 북핵, 사드가 햇볕 정책 때문 이란다. 그들이 내세우는 안보제일의 보수정권에서 북핵 실험이 네 차례나 이루어진 것 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노무현 정부 때 첫 실험도 미국의 북 돈줄 조이기가 발단이  되었다.  

박근헤 정부는 이제 더 꺼낼 카드가 없다. 그러니 이 땅을 점령한 미제국에 기대어 사드 배치 강행하려 하고, 사드 반대 세력에게는 “국내 불순세력이나 사회불안 조성자들에  대한 철저한 감시” 지시나 하는 그네는 이 땅의 수장이라 볼 수 없다. 국내 불순세력 운 운은 너무 위험한 발상이다. 사드와 대북문제, 정부정책에 반대하는 모든 국민을 ‘불순 세력’과 ‘사회불안 조성자’로 보는데 참으로 자가 당착이요, 시대착오다. 남쪽에서 누 가 사회불안을 야기 시키는가? 바로 박근혜 자신 아닌가. 북은 남북 동시 유엔에 가입 한 엄연한 한 국가이다. 그런 국가 수장에게 “김정은의 정신 상태는 통제불능”이라했 다. 통제불능이 누구인지는 여러분이 더 잘 아실 것.  

공안통치의 광풍이 몰아 칠 것을 예감한다. 세상에 집회의 자유가 엄연하게 적혀 있는  이 나라 헌법책이 있건만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에게 5년형이라니. 웃음도 안나온다.  박근혜 정부는 북한 규탄으로 유지하려는 정책을 벗어던지고 대결의 정책에서 벗어나  대화의 길로 가라. 북이 없으면 단 하루도 못 버티는 보수정권은 안보에도 정말 무능하 

다. 하긴 무에서 무로 끝나는 정부이지만 대북확성기, 전광판 활용, 한가위 비닐풍선 띄 우지 말고. 대결은 전쟁만 일으키지 안보는 아니다. 진정한 안보는 대결정책 지우고 다 시 햇볕이다. 민족 상생의 길을 열어라! 

/ 만 평 / 

명복을 빕니다 

민중의 소리_최민의 시사만평 

기획 행동 공급 

경향_김용민의 그림마당 

통제불능 

민중의 소리_최민의 시사만평

정녕 이러한가 

민플러스_천명기 만평

●‘구금시설 교정 관련 법규집’ PDF파일로 제공 ● 

2012년 5.18기념재단의 2012 국내 시민사회연대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제작된 ‘구금시설  교정 관련 법규집’ 책자가 모두 소진되었습니다. 

양심수후원회의 어려운 재정 상황으로 다시 제작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어 조만간 개정된  법규들을 수정보완하여 양심수후원회 홈페이지(www.yangsimsu.or.kr)에서 PDF파일로 제 공할 예정입니다. 필요하신 분들은 PDF파일을 출력하여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2 만평

두만강 접경지역 홍수에  

● 단상 유엔도 특히 수해가 심각한 회령시와 무 

온정의 손길을 

김혜순 _ 부회장 

추석 연휴 마지막 날 외출하려는데 딸아이가 “엄마, 북에 홍수가 났대.”라고 말했다.  ‘오매 큰일이네’하면서도 일상에 빠져들어 금세 잊어버렸다. 텔레비전이 없어 수해  현장을 실물로 보지 못하고 추석에 손님을 치르느라 신문도 읽지 못해서 소식을 전혀  몰랐다. 또 경주 지진 소식에 우리는 안전한지, 원자력 발전소는 괜찮은지 걱정하느라  북의 수해에 관심을 가질 틈도 없었다. 눈에 안 보이니 멀게 느껴지고 내 코가 석자인  상황이라 미뤄두었던 북녘의 어려움, 인터넷으로 확인해보니 난리가 아니었다.  

북한 조선중앙방송이 지난 14일 “8월 29일부터 9월 2일 사이 함북 지구를 휩쓴 태풍 (10호 라이언록)으로 인한 큰물 피해는 해방 후 처음으로 되는 대재앙이었다.”며 “사 망자와 행방불명자를 포함한 인명피해는 수백 명에 달하며 6만 8900여명이 한지에  나앉았다.”고 공식 보도하면서 국제사회에 지원을 요청하고 나섰다. 중국 매체들도  두만강과 백두산 지역에 기상관측 사상 최고이자 100년 만의 최대 폭우가 내렸다고  발표했다. 지난 14일 북한 외무성이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9개 나라 대사들 을 불러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평상시 북한은 내부 상황을 알리지 않는데 공개적으 로 도움을 요청한 것만 보아도 매우 어려운 상황임을 말해준다.  

국제 적십자사도 북한 수해로 138명이 사망했으며 400명이 실종됐다고 전했다. 1만1 천600여 채가 완전파괴된 것을 비롯해 주택 총 2만9천800여 채가 피해를 봤으며, 생 산 시설과 공공건물 900여 채도 손상됐다고 덧붙였다. 또 도로 180여 개 구간과 60여  개의 다리가 무너져 교통이 차단됐으며, 100여 개의 철길구간에서 문제가 발생해 열 차운행도 중단됐다고 북한 매체를 인용해 전달했다. 

이런 피해와 도움 요청 속에 세계보건기구는 15일 북한수해를 위해 미화 17만 5천 달러 를 투입했다. 현재 20만 명을 치료할 수 있는 의약품도 제공했지만, 임산부 신생아 홍역  발병 방지 등 기초시설 복구가 매우 절박하다고 밝히고 있다. 특히 1만5천 헥타르 이상 의 농지가 침수가 된 것은 가득이나 식량 사정이 안 좋은 북한에게는 악재라고 전했다.  14만 명의 이재민과 60만 명이 식수와 보건문제 등으로 난항을 겪고 있다고도 밝혔다.  

산군, 연사군의 수재민 8만 명을 대상으 

로 임시 숙소를 지어주고 주방용품을 나 

눠주는 동시에 지붕 복구에 필요한 자재  

역시 제공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수해의 규모가 북이 ‘해방 후 처음 겪는 것’으로 표현할 만큼 심각 

한 수준이고 이에 국제 구호단체들도 긴급지원을 하는 마당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정부는 핵무기 개발이나 실험을 멈추지 않으 

면 수해복구를 위한 지원을 하지 않는 게 적절하다며 민간단체의  

대북지원을 위한 접촉도 불허하는 등 초강수를 두고 있다. 하지만  

지난 4일 발효된 북한인권법에도 자연재해 발생시 인도적 지원을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 않은가. 더욱이 동포의 어려움을 나몰 

라라하는 것은 형제를 대하는 자세가 아니다. 제발 어떤 형태로든  

어려울 때 서로 돕자. 북이 핵실험을 한다고 국제사회에 가서 우리  

형제를 제재하는 데 동참해달라고 애원하는 비극은 더 이상 없었 

으면 한다. 핵 위협은 대화의 채널을 통해 풀어가고 수해지원 같은  

시급한 인도적 지원은 조건 없이 하는 통큰 정치가 필요하다.  

내가 동포의 어려움에 데면데면하고 측은지심을 갖지 않게 된 데 

는 정부의 태도와 언론의 영향 때문이다. 생각해보니 2014년 중국  

쓰촨성 지진보다도 더 관심을 갖지 않고 있었다. 그만큼 보도의 시 

각이 딱 한 방향이고 빈도수가 많지 않은 것이다. 같은 민족이 당한  

어려움을 보고 인도적 지원조차도 거부하도록 온갖 설교를 퍼붓는  

정권 아래서 나의 인간성도 크게 훼손되었다. 전쟁 중에 적군이라 

도 치료를 해주어야 하는 게 인도적 방식이다. 정치적 이유나 이념 

의 잣대로 재지 않고 사람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게 인도 

적이다. 게다가 수해지역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북단에 위치해 있어  

10월초만 되면 눈이 내린다고 한다. 비닐장판, 컵라면이라도 시급 

하게 준비해서 보내야 할 때다. 여기에도 골든타임이 존재한다. 북 큰물피해 ✽ 정정합니다 ― 지난 298호 소식지 중 단상 ‘물푸레나무의 끈질긴 생명력’의 필자는 모성용 후원회원이 아니라 김재선 6.15산악대장이기에 바로잡습니다.

4 단상 | 두만강 접경지역 홍수에 온정의 손길을

● 월례강좌 _8월 

김영식의삶

2016년 8월 27일(토) 오후4시, 여름더위가 막바지  기승을 부리고 있을 때, 낙성대 ‘만남의 집’에서 뜻 깊은 자리가 있었습니다.  

다큐영화 ‘송환’ 김동원 감독이 진행하고 장기수  김영식 선생님의 대화로 본 ‘김영식의 삶’을 들여다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회원들은 김영식 선생님의  소년같은 해맑은 표정을 배경으로 구수한 입담을  통해 조국통일에 대한 열정과 인간적인 면면을 만 나보았습니다. 투박한 손으로 피아노를 연주하실  때는 혁명가의 여유마저 엿볼 수 있었습니다.  김영식 선생님은 김동원 감독의 다큐영화 ‘송환’ 

의 주인공이십니다. 장기수 선생님들 63분이 2000 년 1차 송환되셨으니 ‘송환’은 16년 전 이야기이지 만 지금도 김영식 선생님은 송환운동이 아직 진행  중임을 보여주십니다. 2차 송환 희망자로서 그토록  가고 싶은 고향, 꿈에도 보고 싶은 가족을 그리며  몸자보를 두르고 전철로 거리로 통일사업을 매일  벌이고 있습니다. 김영식 선생님이 몸자보를 내려 놓고 편히 여생을 보내시길 바래봅니다,  

김영식 선생님 강좌는 회원들도 참여하여 풍성하게 채워졌습니 다. 회원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기울여 보면 김영식 선생님 이 보입니다. <김혜순 _ 부회장> 

나무가 저토록 커서 열매를 맺고 있는데 그동안 뭐 

들 참이었다. 생활, 삶이 곧 정치이며 도가 아닌가.  

| 내가 본 김영식 샘 | 

했어?” 하며 호통도 치신다. 올해 호두나무엔 유난 히 많은 열매가 열렸다. 그 하나하나에 통일의 열망 이 아로새겨져 있다. 

속세와 타협하지 않고 젊은이 못지않은 열정으로  세상의 변혁을 꿈꾸는 김영식 선생님. 그러면서도  피아노를 마주하면 아름다운 멜로디를 들려 줄줄  

지난 8월초, 양심수후원회 운영위원회가 있던  날 김영식 선생님께서 순무씨를 신문지에 곱게 싸 서 건네주셨다. 뒷날 나는 폭염과 가뭄으로 복사열 과 먼지만 자욱한 나의 텃밭에다 순무씨를 뿌렸다.  

김영식 선생님을 뵈면 프랑스 작가 장지오노의  ‘나무를 심는 사람의 주인공 부피에가 떠오른다. 숲 이 사라지면서 마을이 사라져버린 프랑스의 프로방 스 산골에 세상사 아랑곳 하지 않고 도토리 씨앗을  하나하나 묻어 마침내 숲을 만들고 새가 돌아오고  냇물이 흘러 젊은이들이 찾아들어와 결혼도 하고  

마을을 만들어 자연과 사람이 공존하는 지상낙원을  만들어낸 그 사람.  

부피에는 세계대전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도 모른 채 오로지 황무지에 씨앗만을 묻었다.  그러나 김영식 선생님은 세계화의 광풍, 남북 분 단의 엄혹함, 그리고 남녘의 가상의 세계 같은 절망 감 가운데서 끊임없이 씨앗을 뿌리고 가꾸고 또 그  희망을 나누어 주신다.  

낙성대 만남의 집의 상징물인 호도(두) 나무를  2004년쯤에 심었다 한다. 그러면서 아니, “저 호두 

몇 해 전 김영식 선생님과 도심에서 집회를 마치 고 돌아오는 길에 문득 산복숭아, 개살구, 돌배 같은  토종 유실수를 접붙이지 않고 그냥 씨앗을 뿌려 키 우는 게 온당할 것이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 즈음 난  그 문제로 고민을 하고 있었다. 자신이 없었던 것이 다. 씨앗이 갖고 있는 생명성에 의심을 하고 있던 터 에 그 말씀은 나에게 덕담(복음)이 되었다.  

그래서 난 그해 4천개의 산복숭아 씨앗을 줍고 얻 고 해서 초겨울쯤 땅에 묻었다. 작년 봄에 600개가  넘게 싹이 터서 올봄에 옮겨 심었다. 무릉도원을 만 

아는 선생님. 회색이 세상의 중심이 되어가는 지금  이곳을 푸른 생명의 세상으로 만들어 가는 순수성 에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려 한다.  

선생님, 늘 건강하십시오. 통일은 다가오고 있습니 다. 그리고 내년에도 씨앗 좀 나누어주십시오.  <도상록 _ 회원> 

선생님은 낙성대 가면 다른 사람 안 보이게 늘  손에 검은 봉지를 쥐어주신다. 집에 와서 꺼내보면  어떤 날은 밤, 대추, 감이 또 어떤 날은 쑥, 미나리 등  

6 월례강좌 | 김영식의 삶

계절마다 다르다.  

어떤 때는 낙성대에 가서 화초를 보면서 “선생님  이 꽃 참 예쁘네요.” 하면 바로 검은 봉지에 담아 주 시기도 했다.  

선생님한테 받은 작은 선물을 받을 때마다 고마움  넘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북쪽에 계신 가족한테 베풀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간절할까! 하루빨리 송환이 되어서 가족분들 만나 서 베풀고 나누면서 살기 바란다. 나 또한 그날을 위 해 열심히 싸우려 한다. <김길자 _ 회원> 

김영식 선생님의 모습 중 기억에 남는 것은 식사 를 하실 때의 모습이다. 김영식 선생님은 다른 선생 님들과 달리 식욕도 왕성하고 음식도 많이 드시는  편이지만, 밥상에 차려진 음식을 모두 다 드시는 모 

습이 다른 분들과는 확실히 다른 모습이다.  식사를 남기는 법 없이 그릇을 비워가며 드시고  다른 상의 남는 음식마저 가져다가 다 드신다. 나는 선생님이 식욕이 왕성하여 많이 잡수신다고 만 생각했다. 하지만 음식이 아까워 다 먹는 것이라 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 결국은 예전의 배고팠 던 시절, 음식이 귀했던 그 기억이 선생님의 머리에  각인되어 늘 남기는 음식을 아까워하시는 모습이었 던 것이다. 

선생님의 음식에 대한 각별한 애정은 다른 분들과  다른 모습으로도 나타날 때가 또 있다.  

예전 낙성대 부엌에서 무엇인가를 만드시는 모습 을 보니, 요즘은 집에서 만들지 않고 사먹는, 강정을  만들고 계시는 모습이었다. 과자가 귀했던 시절 명 절이면 집에서 만들던 그 강정을 낙성대 부엌에서  만들고 계시는 모습을 보니 옛날 자식을 위해 정성 껏 음식을 만들어주던 엄마 생각이 났다. 

그동안 봐왔던 여러 모습 중에서도 음식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다른 선생님들과는 달라 강하게 머 리에 남는다.  

솜씨 좋고 재능 많으신 김영식 선생님, 앞으로도  맛있는 음식 많이 만들어도 주시고,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사시기를 바랍니다. <홍휘은 _ 회원> 

선생님은 탁월한 통일운동가이시며 환경운동 가이시다. 

폭염이 와도 눈이 와도 매일 기자회견이나 집회에  참가하시는 것은 물론, 어깨띠를 붙이고 지하철을  돌아다니면서 대시민 통일운동을 하시는 모습을 보 면서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고개가 숙여 진다. 80세를 넘은 할아버지가 말이다! 

우리 자연을 사랑하고 환경을 애호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선생님이야말로 참된 애국자라고 생각한다. ‘애국’이란 다름 아닌 우리 땅을 사랑하고 우리 자 연을 아끼는 것부터 시작된다.  

돈을 위해 우리 자연을 훼손시킨 이명박 같은 정 치가들은 다 매국노다.  

또한 ‘통일’을 외치면서 길에 쓰레기나 담배꽁초 를 막 버리는 운동권사람들을 보면서 늘 한심하다. 영식 선생님은 자연을 너무나 사랑하시는 나머지  낙성대 마당을 아름답고 아기자기한 정글로 만들어 놓으셨다. 

또한 동지애가 넘치는 분이시기도 하다. 외로움을 많이 타는 사람은 사랑이 깊은 사람인  것 같다. 영식 선생님이 딱 그런 분이다.  언제 낙성대에서 선생님들과 같이 빵을 먹고 있었 을 때 이야기다. 덜 먹었는데 ‘그만 먹어’라며 남아 있는 빵을 부엌에 가져가서 숨겨 버리셨다.  영식 선생님은 부드럽고 맛있는 것이 있으면 이가 

안 좋으신 박희성 선생님을 위해 늘 챙기신다. 이제까지 말씀드린 것은 많이 알려진 영식선생님  모습이지만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온천 마니아’라는 것이다. 몇 년 전, 같이  온천에 갔을 때는 안 들어가시겠다고 고집 부리시 는 것을 ‘돈이 아깝다’고 겨우 설득해서 들어가시게  했다. 

이제는 나오기로 한 시간이 돼도 안 나오셔서 찾으 러 갈 정도다. 그땐 무려 5시간씩이나 온천욕장에 들 어가 계셨다! 선생님, 걱정되니까 적당히 하세요~ 

참 건강하시던 영식 선생님이 요 몇 년 건강이 안  좋아지셔서 많이 걱정했는데 “이제 ‘고비’를 넘었으 니까 몇 년 더 건강하게 살겠다.”고 하신다. 

늘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셔서 어 디 아프시면 병원도 다니시고 고혈압 약도 잘 챙겨  드시고 검사도 꼭 받겠다고 이 자리에서 약속해 주 십시오! <손녀 리정애가 본 할아버지 김영식 선생님> 

진도기행을 갔을 때다. 때는 5월, 유채꽃이 지천 이었다. 그걸 보신 선생님이 나를 툭툭 치셨다. 누가  데려다 주는 사람만 있으면 씨를 받아다 기름을 짜 시겠다고. 실행하기가 어렵겠다 싶어 웃고 말았는 데 저녁 때 쑥을 한가마니 해오셨다.  

진도 쑥은 육지 떡집에서 최고로 치는 상품. 또 어 떤 기행 때는 미나리를 한 주먹 해 와서 나눠주셨다.  그 부지런함을 아무도 따를 수 없다.  

후원회회원 중 한 분이 무명천으로 만든 한복에  그림을 그려 전시회를 열었다. 선생님과 함께 전시 회에 갔는데 자꾸 한복을 사주시겠다고 맘에 드는  것을 골라보라신다.  

보통 100만원 정도 하는 한복을 사주겠다고 그 뭉 툭한 손으로 잡고 카운터로 데려갔다. 에고, 선생님  아니라고 하면서 손사래를 쳐도 막무가내셨다.  

차마 살 수는 없었지만 그 마음을 헤아려보았다.  우리 것에 대한 애착도 강하시고 한복에는 고향. 가 족 냄새가 날 거라고. 특히 여성에게 입혀보고 싶은  거라고. 이번 기회를 빌려 알고 싶은 대목이다.  

기행에 젊은 친구들이 오거나 낙성대에 방문을 하 면 복사지에 쓴 글을 봉투에 담아 정중히 건넨다.  대부분 우리나라의 역사와 근현대사에 대한 당신 의 생각을 써놓은 것이다. 얼마나 답답했으면 이런  식으로라도 말하고 싶어 할까.  

그래서 선생님의 말은 일상적이지 않다. 피를 토 한다. 시간은 흘러가지 세상은 자꾸 거꾸로 가는 듯 하지 선생님의 답답함은 더 커지는 듯하다.  

결국 미스코리아처럼 띠를 두르고 지하철로 거리 로 나섰다. 그러다 종종 사람들과 시비가 붙기도 하 다. 그만 둘 법도 한데 멈추지 않으신다. 그게 선생 님이다. <김혜순 _ 회원> 

8 내가 본 김영식 샘

기쁜 일이 있었어요 

양원진 선생님 미수(米壽)를 축하드립니다

류제춘 _ 회원  

님을 외면하셨다. 선생님은 외 

롭지만 그러나 강건하게 삶을  

개척해 오셨고 지금도 성성한  

노장으로 후배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신다. 

선생님 미수 축하드리고요, 선 

생님이 그토록 바라고 모두가  

숙원하는 통일된 세상이 올 때  

우리 모두 축하잔치 다시 하기 

로 해요. 사랑합니다. 

다음은 인터넷 언론 <통일뉴스>에 올라온 글입니다. 

2016년 9월 8일은 장기수 양원진 선생님이 88세 되 는 날, 이른바 미수이시다. 역사기행팀 옴시롱감시 롱(회장 김길자)이 하루 앞당겨 7일 명동보리밥에서  조촐한 축하연을 마련했다. 세월의 무게는 어쩌지  못하신지 최근 더 어깨가 구부정해지셨지만 백발 의 모습이 아름다운 그야말로 미수라는 표현이 어 울리신다.  

양심수후원회 권오헌 명예회장님과 회원들이 왔고  범민련남측본부 이규재 의장님을 비롯한 회원들이  모였다. 그리고 멀리서 선생님을 아는 사람도 와 주 

셔서 30여명의 축하객이 마음을 모아 선생님의 생 신을 받들었다. 선생님의 귀한 수양딸인 강태희 언 

니가 집안 초상으로 생신자리에 빠졌는데, 언니가  함께 했더라면 선생님의 표정이 더 환한 미소로 물 들지 않을까 싶어 아쉽기도 하였다.  

양원진 선생님은 전남 신안군에서 태어나셨다. 서 울에서 학교에 다니고 거주하던 중 전쟁이 발발하 여 인민군으로 입대하셨다. 정전 후 평남 남포시 공 장에서 일하시다가 소환되셨다. 그리고 약사 분을  

만나 결혼하고 신혼여행을 하던 중 체포되셨다고  한다. 이 때부터 선생님의 굴곡진 투쟁의 삶은 시작 되신 것 같다. 29년 6개월의 옥살이. 그 후 88년 12 월 21일 출소하셨지만 체포과정에도 그랬듯이 출소  후에도 가족 특히 하나뿐인 혈육인 누님마저 선생 

-2016년 88세가 된 장기수 양원진 선생의 자서 전 ‘곡절 많은 한 생을 살아오며’를 연재한다. 이  자서전은 김익 전 양심수후원회 사무국장이 지난 해 가을부터 올해 봄까지 일주일에 한번 정도씩  양원진 선생을 만나 살아온 이야기를 듣고 그 내 용을 정리한 것이다. 곡절 많은 한 생을 살아온 양 원진 선생의 과거사를 통해 독자들은 우리 민족 의 근현대사 속에서 민족의 운명과 개인의 운명 이 어떤 관계에 있었는지를 생생하게 접할 것이 다. 이 연재는 매주 토요일에 게재된다.

10 기쁜 일 | 양원진선생님 미수 축하드립니다 11 

 ● 소식 

홍순석님의 출소를 환영합니다 

지난 8월 27일 새벽5시, 소위 국정원 내란음모사건 으로 구속된 홍순석님이 3년 말기를 채우고 당당히  출소했다. 전주 전주교도소 앞에서 ‘이석기의원 내 란음모사건’ 피해자 한국구명위원회 주최로 ‘홍순 석동지 출소환영대회’가 진행되었다. 권오헌 양심 수후원회 명예회장, 한상렬, 김창한(민중연합당상임 대표), 정진우목사 등 환영사가 홍순석님의 출소인 사가 있었고 환영문예 공연 등이 있었다. 홍순석님 은 구속 당시 통합진보당경기도당 부위원장이었다. 

2003년 당시 국정원이 발표한 내란예비음모 사건 은 불법대선개입으로 조직해체의 궁지에 몰린 국정 원과 박근혜정부의 대국민 사기극, 조작극이며 국 

정원을 앞세워서 하는 짓을 보면 통합진보당을 과 녁 삼아 이 땅의 민주 진보세력을 말살하려는 시도  비판을 받았다.  

당시 통합진보당 홍성규 대변인은 “결국 검찰은  권력 앞에 무릎을 꿇고 굴종을 선택했다”며 “오직  법에 따라 판단하는 검찰로서 ‘공정성’과 ‘중립성’을  모두 내던진 결정”이라고 비난했다. 그리고 “최소한 

의 상식과 이성을 촉구했던 시민들의 기대를 무참하 게 정면으로 짓밟았다”며 “박근혜 독재정권의 시녀 로 전락한 검찰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힌 바 있다. 

홍순석님이 출소하고 현재 9년을 선고받은 이석 기 의원을 비롯하여 5명의 양심수들이 수감 중이다. 

● 기고 

권오헌 _ 명예회장

세상과 철저히 격리된 ‘사회배출’ 북 종업원들 

북 해외식당 종업원 기획탈북 의혹사건 해결을 위한 1인시위 민족 최대 명절 추석연휴가 끝나가고 있다. 온 나라가 부모형제 가족 친척을 찾아 이른바 민족 

대이동으로 야단법석이었다. 마치 귀소본능인 것처 

그런데 이렇게 즐거운 명절을 맞고서도 가족 친척 들이나 정든 고향을 찾지 못하는, 그래서 명절이 더 욱 가픔아픈 사람들이 있다. 바로 분단과 전쟁을 겪 

‘북 해외식당 종업원 기획탈북 의혹사건 해결을 위 한 대책회의’(이하 대책회의)가 8월22일부터 9월 9일 까지 추석전 가족면담과 변호인 접견 등을 요구하 는 2차 1인시위에 돌입하였다. 민가협양심수후원 회는 첫날인 22일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권 오헌 민가협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 장기수 박희성  

선생님과 김영식 선생님이 1인시위에 동참하였다.  점심시간을 이용한 1인시위는 지나가는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며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뜨거운 8월의  폭염도 아랑곳하지 않고 기획탈북 의혹을 알리고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1인 행동이었다. 

권 명예회장은 “북 종업원들이야말로 가장 가혹 한 인권침해를 당하고 있다”며, “사실관계를 분명히  밝히고 만약에 범죄사실이 밝혀진다면 엄중처벌하 고 종업원들을 가족들에게 돌려보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확고한 입장”이라고 말했다. 

한편, 30여개 단체들로 구성된 대책회의는 이날부 터 추석을 앞둔 9월 9일까지 통일부 앞에서 1인시위 를 진행하고 각 지역별로 변호인단 초청 간담회, 9 월 1일 교회협 인권센터 주관 목요기도회 등을 추진 하였다. 

럼 그렇게도 분주했던 일상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저마다 가슴부푼 설레임으로 고향길을 재촉했었다. 

추석은 또한 결실의 계절이다. 

땀흘려 애써가꾼 한 해 농사가 익어가는 절기이다.  햅쌀로 송편을 빚고 햇곡 햇과일로 조상들께 차례 를 지내며 오랜만에 한자리한 반가운 얼굴들과 명 

절음식을 나누면서 밀린 이야기로 평화롭고 행복한  웃음판을 벌인다. 수천년 이어오는 우리민족 고유 의 전통의식이고 도덕예절이며 몸에 밴 풍습들이다. 

으면서 남북으로 흩어져 살며 애타게 가족 친척을  그리워하는 이산가족들이다. 

이렇게 가족들이 남북으로 갈려 고통을 겪는 사람 들 가운데는 전쟁시기도 자연재해도 아니면서 인위 적으로 가족들과 생이별되어 어디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생사조차 알 수 없는 고립무원의 북 해외식 당 종업원(북 종업원)들이 있다. 

이들 북 종업원들은 지난 4월 8일 통일부 당국의 이 른바 ‘집단 탈북자’로 발표된 뒤 일사분란한 입국과 

12 기고 | 세상과 철저히 격리된 ‘사회배출’ 북 종업원들 13 

정, 전례없는 신속한 입국발표, 석연찮은 탈북동기,  국정원 직원의 개입설 등으로 ‘기획탈북의혹’이 증 폭되고 있었다. 

그리고 입국 4개월이 지나고 있었지만 정부당국의  입국발표 말고는 그들이 신병이나 직접 의사는 철 저히 숨겨지고 있었다. 북측의 가족면담 요구도 변 호인들의 접견 요청도 거절당했으며 인신보호법에  따른 인신보호구체청구 법정에도 나오지 않았다.  유엔인권 최고사무소, 국가인권위원회, 국책기관인  통일연구원 북한인권연구센터 등의 면담요청 등도  모조리 거부당했다. 

그리고 탈북자들에게 적용되는 일정기간 북한이탈  주민보호센터(옛 합동신문센터) 조사를 마치면 북한 이탈 주민정착지원센터(하나원)으로 옮겨 사회적 응교육을 받게 되는 통상절차도 어기고 하나원에  보내지 않기로 했다고 발표했다.(상세내용 통일뉴스  2016. 7. 15 참조) 

이처럼 북 종업원들에 대한 물샐틈 없는 격리 차단  조치들은 ‘기획탈북의혹’을 넘는 실제상황인 것으 로 믿게 하는데 부족함이 없게 했다. 그리고 만에 하 나 사실이라면 국가기관이 개입된 반인권 반인륜  범죄로 정부당국의 사죄와 피해배상 본국(가족)으 로의 송환,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책이 뒤따르지 않 을 수 없을 터이었다.  

그런데 지난 8월 들어 이 ‘기획탈북의혹사건’에 변수 가 생겼다. 북 종업원들이 당국의 조사를 마치고 사 회로 내보냈다는 정부발표가 있었고 북 식당지배인  ‘ㅎ’씨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사무실을  방문하는가 하면 <한겨레신문>에도 전화를 걸어와  

이른바 ‘탈북이후’의 동태를 말하는 등 ‘탈북사건’의  주모자로 지목된 당사자가 ‘기획탈북의혹’을 제기한  단체와 언론사를 보란 듯이 휘젓고 다닌 것이다. 

한 마디로 ‘기획탈북의혹’을 해소하고 자진탈북을  확신케하려는 시도로 보였다. 과연 이같은 사태가  정부당국의 의도대로 ‘의혹’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인 가. 아니면 ‘의혹’을 심화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언론보도를 중심으로 사실관계를 알아보기로 한다. 

먼저 북 종업원들의 사회배출 발표이다. 

지난 8월 16일 통일부당국자는 “탈북경위 등에 대 한 유관기관의 조사를 마친 류경식당 종업원 13명 은 지난 주 (8월 7일~13일 추정) 1주일에 걸쳐 순차적 으로 사회로 배출됐다”며 “그 밖에 구체적인 사항 은 신변보호를 위해 공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아 시아경제 8.16) 이들은 보호센터에서 그룹으로 나눠  

나온 것으로 알려졌으며 한 곳에 집중된 것이 아니 라 전국 각 도시에 분산된 것으로 알려졌다고 언론 들은 보도했다. 국정원도 같은 날 ‘사회배출’ 사실 을 확인하고 ‘신변안전’을 이유로 그 밖의 동태에 대 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한편 ‘집단탈북’ 주모자로 알려진 북 식당지배인  ‘ㅎ’씨는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사회배출  여종업원’에 대한 통일부 발표와 국정원 확인 내용 을 재확인하면서 특히 사회배출된 북 여종업원 12 명 가운데 1명이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 는 “내 새끼(그는 여종업원들은 자기 식구인양 그렇게 불 렀다) 중 하나가 속을 썩인다. 울화통이 터진다. (나 머지는 연락이 가능한데) 한 새끼가 잠적했다”고 충격 적인 말을 했다.(한겨레신문 2016.9.3.) 

이어 “몇몇은 연락이 되고 어디 있는지 알고 있다. 

속 썩이는 하나는 기다려 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여성 종업원들이 보호센터에서) 나온지 얼 마 안돼 다들 불안해 하고 있다. 보호센터에서 (민변 을 종북이라고 비난했기 때문에) 민변을 만나면 부모들 이 죽는다고 생각해서 극히 밖에 나오는 걸 두려워 한다. 공개되는 걸 무서워한다.”고 설명했다.(한겨레  같은 날 보도) 

정부당국의 이같은 사회배출조치는 시민사회가 제 기한 ‘기획탈북의혹’을 해소하고 특히 민변의 변호 사접견 요청에 대한 법적 근거를 없애는 효과를 노 린 것으로 이해된다. 바로 북 종업원들은 자유의사 에 따라 탈북했고 탈북자들이 통상적으로 거치는  

보호센터조사(정착교육포함)를 마쳤기에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자유인이 되었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 고 사실상 구금시설인 보호센터에서 사회배출 되었 기에 변호인 접견이나 인신보호구제 청구대상자가  아니라는 것을 선포한 셈이다.  

그러나 이같은 조치로 ‘기획탈북의혹’이 해소되었 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정부당국의 자가당착일 뿐 이다. 그 이유를 알아보자. 

먼저, 북 식당지배인 ‘ㅎ’씨 말고는 종업원 어느 누 구도 자진탈북했다고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다음으로 이들 북 종업원 12명의 행방이나 자유의 사는 여전히 사회로부터 격리차단되고 있다. 당국 에서 북종업원들과 그 가족들의 신변안전을 이유로  공개할 수 없다는 것은 궤변에 지나지 않는다. 이미  지난 4월 8일 정부는 북 종업원 13명과 그 가족들의  신변안전 따위는 전혀 무시하고 신속하게 이들의  탈북사실을 사진과 함께 공개했었다. 

또한 왜 자진탈북했다는 사람들을 사실상의 구금 

시설에서 전례없는 4개월이 넘게 수용하고 있었단  말인가. 북 식당지배인 ‘ㅎ’씨를 제외한 종업원들은  ‘매우 불안해하는’ 또 다른 보호센터에서 감시와 통 제를 받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미 탈북자들의 증언으로 알려졌듯이 보호센터에 서는 밀폐된 독방과 CCTV로 감시를 받으며 허락없 이 독방에서 나올 수 없고 가족이 탈북했어도 만날  수 없으며 조사기간 운동시간도 허용되지 않는 것 으로 알려졌다. 또한 자백을 강요받고 거짓말 탐지 기를 사용하는 등 공개된 구금시설인 경찰서, 유치 장, 검찰이 관리하는 구치소, 교도소보다 더욱 밀폐 된 시설이다. 이런 시설이었기에 유우성 서울시 공 무원 간첩조작사건 등 많은 탈북자 간첩사건이 조 작되었고 이들이 최종 무죄 서고를 받은 바 있다. 

새로 옮겨진 곳이 또다른 보호센터인 조사와 감시  통제장소가 아니란 것을 정부당국이 현실로 보여주 지 않는 한 기획탈북의혹은 해소가 아니라 더욱 심 화될 수 밖에 없다 할 것이다. 

다음으로 북 식당지배인 ‘ㅎ’씨의 돌출행동의 의도성이다.  ‘ㅎ’씨는 8월 17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 변)을 방문했고 8월말엔 <한겨례신문>과의 전화인 터뷰를 하는등 ‘기획탈북의혹’을 제기하고 보도한  단체나 언론사에 거침없이 접근했다, 여기에서는 이 미 보도된 <한겨례>와의 인터뷰 내용중 앞에서 밝 힌 ‘사회배출’부분을 제외한 ‘ㅎ’ 씨 말과 ’북-종업원 집단탈북‘사건을 잘아는 소식통, 그리고 <한겨례>의  판단기사 등을 종합하여 알아보기로 한다 

먼저 국정원직원의 탈북개입문제이다. 

“국정원직원이 6만위안을 줘 북한 종업원 탈출시켰 

14 기고 | 세상과 철저히 격리된 ‘사회배출’ 북 종업원들 15 

다“ (한겨례신문 2016.9.3) 

기사제목만으로도 북 종업원의 집단탈북에 국정원 이 개입되였음을 시사하고 있다. 

북-종업원의 기획탈북의혹은 처음부터 국가기관의  개입설에서 비롯되였다. 그런데 이 기사제목은 탈북 의혹을 넘는 실재성을 받침하게 되었다. 

기사는 ‘북한 해외식당종업원 13명이 국가정보원  요원에게서 6만위안(1000여만원)을 받아 말레이시 아 비행기표를 구매한 것으로 들어났다’’이들이 4 년여 북한식당 근무중 알게 된 이 국정원요원은 ‘제 3국을 통해 가라’며 탈출방법도 알려준 것으로 나타 났다. 이 국정원직원은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에도  자주 찾아 갔다는 것이다‘ (한겨례 인터뷰 기사) 

“13명이 말레이시아 공항에 내려 한국대사관에 들 어갔다가 당일 바로 공항으로 이동하는길에 말레이 시아 특수경찰로 보이는 30여명이 호위해 줬다고  한다. (한국)여권이 마련되여 있었고 공항에서 출국 심사 없이 비행기에 탄 것으로 알고있다” (탈북사건  잘아는 소식통) 

다음으로 탈북배경, 입국과정에 대한 ‘ㅎ’씨의 발언이다 <한겨례>가 “정부는 북한식당에 대한 ‘대북제재’ 때 문에 집단탈북했다고 했는데?”라는 질문에 ‘ㅎ’씨 는 “무슨 상관이 있나, 우리는 그렇게(무관하다고) 생 각하지만 (남한의)어르신(윗분)들은 그렇게 (대북제 재와 관련상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ㅎ’씨는 정부의 입국사실공개에 대해서도 “여기 들 어왔는데 공개 시켜놨다. 우릴 공개할줄 몰랐다. 하 필이면 왜 우리만 공개하냐고 생각했다, 처음엔 괘 

씸했다. 이제는 좋게도 생각하려고 한다. 조국통일  위해서 했다고 생각한다. 북이나 남이나 정치 이기 는 사람 있나?”고 정치적으로 이용되였음을 밝혔다. 

<한겨례>에 따르면 ‘ㅎ’씨는 탈북이유나 과정에 대 해 물을때마다 “아무것도 말할게 없다.” “시간이 지 나면 다 밝혀진다”고 말했다고 한다. 

다음으로 ‘ㅎ’씨와 북-종업원들과의 관계이다. 

그는 앞에서도 밝혔드시 북-여종업원들을 ‘내 새 끼’라고 불렀고 일행 모두를 포괄해 ‘우리 집’이라고  표현했다. 또한 “애들은 (나를) 믿으니까 따라왔다.  부모보다 지배인을 따라왔다는게 이해안되지 않 냐?”며 줄곳 여성종업원에 대한 자신의 장악력을 강 조했다. 또한 “내 새깨들을 못 만나게 할꺼면 북한 으로 돌려 보내 달라고 할꺼다”라고 까지 했다. 

이상이 <한겨레신문>이 보도한 (9.3일자) 북-식당지 배인‘ㅎ’씨와의 전화인터뷰 내용중 일부이다. 그런 데 ‘ㅎ’씨의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문제가  있다. 그는 시민사회가 제기한 ‘기획탈북의혹사건’ 의 피해자가 아니다. 바로 ‘ㅎ’씨는 정부당국의 입장 을 대변할수 있는 이른바 ‘집단탈북’을 주도한 인물 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주장하는 말속에는 눈여겨 볼 내용들이 있다. 앞에서 기술한 ‘국정원개입부문’ ‘탈북동기’ 그리고 북-여종업원들과의 관계이다. 

차례로 그 의미를 새겨보기로 한다. 

먼저 이른바 ‘집단탈북’에 국정원이 개입했음을 확인케 했다.  ‘ㅎ’씨는 국정원직원이 탈북여비는 대주었지만 그 를 포함한 종업원들은 자진탈북했음을 알리려 했을

수 있다. 

그러나 사전에 기획되지 않고서는 바로 그날 비행 기를 타게 하고 말레이시아한국대사관에 다녀나왔 으며, 한국여권을 준비할수는 없을 터이였다. 이 사 실 하나만으로도 ‘기획탈북의혹’을 사실로 확인하 는데 충분하다 할것이다. 

다음으로 ‘탈북배경’과 ‘여종업원들’과의 관계이다. 정부당국은 지난 4월8일 ‘집단탈북’을 발표하면서  ‘대북제재로 식당이 어려워서’‘한류등 남한사회를  동경하여 귀순’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ㅎ’씨는 “제 재”와는 관계 없다고 했고, 동경하여 귀순이 아닌  ‘다들 돈 많이 벌어 집에 가자고 했는데’라고 했다  ‘ㅎ’씨는 여종업원들이 부모보다 자기를 따를 정도 였다며 ‘내 새끼’‘우리집’이라 했다. 여종업원들이  지배인과의 이같은 관계 때문에 ‘나를 믿고 따라왔 다’고도 했다. 지배인-종업원 관계를 강조하여 부모 형제를 떠나온것을 변명한 것으로 보여진다. 그러 나 오히려 그런 관계를 악용 종업원들이 맹목적으 로 따라오게 했다고도 유추할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 인터뷰기사 가운데 충격적인 데가 있다. ‘ㅎ’씨가 말하는 여종업원 1명이 잠적했다는 부문과  ‘내 새끼들을 못만나게 할거면 북한으로 돌려 보내 달라고 할꺼다’라고 한 말이다. ‘집단탈북’이 동경 하여 ‘귀순’했다는 정부발표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내용이다. 

이렇게 ‘의혹사건’은 실제 상황으로 다가가고 있지 만 정부당국은 여전히 입을 다물고 진실규명을 하 지 않고 있다. 그리하여 이 중대한 반인권 반인륜 범 죄사건을 미궁속에 빠지게 하고 있다. 그러나 손바 

닥으로 해를 가리울수는 없다. 새벽을 이기는 어둠 도 없다. 이들 종업원들이 자유롭게 사회에 나와 속 마음을 털어놓지 않는한 보호센터와 다름없는 구 금, 감시, 통제하에 있는 것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 다. 그래서 민변에서도 ‘인신보호구제청구소송’이  

각하된데 대해 9월19일 재판부에 항고했다. 

세계인권선언은 ‘모든 사람은 생명. 자유및 신체의  안전에 대한 권리와(3조).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고문을 받게 하여서는 아니되며 잔인하고 비인도 적. 그리고 비열한 처우나 처벌을 받게 하여서는 안 된다(5조). 라고 규정했다. 

또한 ‘가족은 사회의 자연적, 기본적인 단체로서 사 회와 국가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16조 3항)했고, ’사 람은 누구나 자유롭게 자기의 의견을 가지고 이를  발표할 권리를 가진다. 이 권리는 간섭없이 의견을  가질 자유와 어떤 방도를 통하여서나 국경의 제한 을 받음이 없이 정보와 사상을 탐구, 입수, 전달하는  자유를 포함한다‘고 했다. 

<한겨례>가 보도한 익명요구의 소식통은 “여성종 업원들이 방송등 언론에 나올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국가기관이 연출하는 이같은 언론공개로는  진실과 사실을 밝힐수 없다. 정부당국은 늦었지만  이제라도 이 의혹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그에 따 른 책임자처벌, 가족과의 재결합, 재발방지대책을  세워야 할것이다. 

그리고 그 이전에라도 가족면담, 변호인 접견, 자유 롭게 법정에 설수 있게 해야 한다. 그리하여 반인권,  반인륜의 오명을 벗어야 할것이다. 

16 기고 | 세상과 철저히 격리된 ‘사회배출’ 북 종업원들 17 

● 미주 소식  

사드 말고 평화, 깨어있는 민중의 힘으로! Angie Kim

 

성주군민들이 다 들고 일어났는데도 야당은 사드반 대 당론조차 못 정하고 여소야대 정국에서도 여전 히 새누리 이중대 노릇만 하면서 정권교체 타령만  하고 있으니 한숨만 나옵니다. 

믿을 건 분노하고 단결된 민중의 힘뿐임을 성주군 민들의 투쟁에서 다시 한 번 봅니다. 

 

깨어있는 민중의 힘이 대안입니다. 

성주군민들 힘차게 응원합니다!! 

한반도 사드배치 결사반대! 

대한민국 어디에도 미국 사드 필요없다! 을지프리덤가디언 중단하라! 

사드 말고 평화, 사드 말고 남북대화! 

민족대단결 연석회의로 사드배치, 전쟁위기 막 아내자!!! 

오늘도 시위를 마친 후 다 함께 손을 잡고 둥글 게 서서 세계평화와 전쟁반대 그로 인해 고통받 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특별히 한반도 평화와 남 북통일을 염원하는 기도와 반전노래를 부르며  

시위를 마무리 했습니다. 

8월 26일, 성주 사드반대 전국촛불대회에 연대하여  백악관 앞에서 사드반대 시위를 했습니다. 여름 끝 자락이지만 워싱턴 한낮은 여전히 불볕더위, 뜨거 운 땡볕을 살짝 피해 오늘은 백악관 오른쪽 나무 그 늘 밑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함께 연대한 카톨릭워커 동지들과 오며가며 관심을  표명하는 전 세계에서 온 관광객들에게 사드배치 와 한미군사훈련(UFG, 을지프리덤가디언)으로 인한  

미제 전쟁광들과 그 하수인 박근혜 정권은 사상 최 대의 한미군사훈련을 벌이며 한반도 전쟁위기를 고 조시키고 있는 가운데, 북의 SLBM(핵잠수함발사미사 일) 실험 성공으로 사드가 무용지물임이 입증되었 습니다. 

사드배치를 강요하는 미국은 배치 예산조차 배정되 어 있지 않다고 합니다. 천문학적인 사드배치 비용 은 고스란히 국민들의 고혈에서 착취되겠지요. 사 

장민호·김은경두분선생님의한가정이루심을진심으로축하드립니다! 

신랑 신부 인사말 

존경하는 조국통일운동의 대 원로 선생님, 동지 

들, 깊은 감사의 마음 담아 큰절 올립니다.(장민호) 

존경하고 사랑하는 장기수 어르신분들, 통일 운 

동 선배 동지 모든 분들,고맙습니다. 보내주신 모 

든 성원 담아 조국통일의 그날까지 더욱 열심히 사 

랑하고 투쟁하겠습니다!(김은경) 

한반도 전쟁위기에 대하여 유인물을 나눠주며 알려  주었습니다. 이라크 미디어에서 온 Imad가 취재를  하고 뉴욕에서 온 Abdul Sohail이 컬리지뉴스신문 에 싣겠다면서 취재를 했습니다.  

드반대 없이 정권교체만 얘기하는 것이 얼마나 허 상인지.. 미제는 여당이든 야당이든 친사드 정권을  세우겠지요. 그러므로 새로 교체되는 정권이 친사 드 정권인지 반사드 정권인지가 또한 중요한 민주 주의의 문제일 수밖에 없습니다.  

일심회 간첩조작 사건으로 7년을 복역하고 미 국으로 추방되신 통일 운동가 장민호 선생님과  미주 민가협 양심수 후원회 워싱턴 지부 김은경 님이 지난 9월3일(토) 백년가약을 맺었습니다. 

멀리 타주에서 찾아와 주신 통일 운동 원로 어 르신들 및 미주 민가협 양심수후원회 동지들의  축복속에 조촐하지만 의미있는 혼례식을 올렸 습니다. 

18 미주 소식 19 

뜨거운 마음 담아 축하의 말씀을 드립니다. 

 ● 보고 

원불교 재비 전달식이  

낙성대 만남의집에서 있었습니다.

원불교가 1916년 박중빈 대종사의 큰 

깨달음이 있은 후 올해 원불교 100주년 

이 되었습니다. 원불교는 100주년 기념 

대회에서 근대와 현대로 넘어온 100년 

의 역사속에 억압받고 소외되고 죽음으 

로 내몰렸던 영혼들을 위로하고 치유하 

며 화합의 길로 함께 가고자 ‘둥근 빛으 

로 다시 오소서’ 라는 큰 주제로 특별 천 

도재를 49일 간 지내드리게 되었습니다.  

모아진 재비(헌금)는 전액을 이 영령들의 이름과 원 

선생님들의 빛나는 활동소식을 놓치지 않고 지켜보 면서도 그 흔한 인터넷 인사 한 번 전해 드리지 못한  채 스스로를 부끄러워하던 어느 날 참으로 너무도  기쁜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 누구보다 분단조국 현실을 아파하셨기에 민족적  양심으로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정당한 활동이 었지만 국가보안법이란 올가미에 걸려 모진 세월을  겪으신 지난 일들과 마침내 그 기나긴 철창 속 높은  담을 나오시게 되었지만 그 무슨 출입국 관리법 따 위로 팔십이 넘으신 홀어머님 손 한 번 잡아드리지  못한 채 이역 땅으로 내쫓긴 그 분노의 사연마저도,  

그러나 오늘은 잠시 뒤로 하고 너무 좋으신 분들의  한 가정 이루심에 가슴 속 깊은 뜨거운 마음 담아 축 하의 말씀을 드립니다. 

두 분 선생님의 만남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여러 골짜기 물들이 한 곳으로 모이고 있듯이 조국 사랑 길에 뜻있는 사람들이 뜻있는 곳에 함께 하는  것 또한 필연이었습니다. 

스스로 겪으셨기에 더욱 절감하셨던 고국에서의 양 심에 따른 활동으로 고난당하고 있는 양심수들에,  국경과 인종을 넘는 정의 평화 인권 등 보편가치 실 현에 헌신하시는 모습이 언제나 존경스러웠습니다. 

무엇보다 외세에 의해 갈라진 땅 동족대결을 강요당 하고 있는 현실, 그 모든 악의 근원 외세에 맞서 자주 통일과 평화번영을 위한 치열한 활동에서 두 분 선 생님의 하나됨은 엄청난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언제까지나 건강하시고 서로 존경하며 뜨겁게 사랑 하시고 두 분 가정에 평화와 행복이 가득하시길 손  모아 빌겠습니다. 

2016년 9월 3일 서울에서 권오헌 드림 

100년 역사 속에서 희생된 일제강점기 희생영령, 한 국전쟁 희생영령, 산업화 희생영령, 민주화 희생영 령, 재난재해 희생영령들을 위로하면서 세상을 아 픔을 함께 나누고자 하는 분들이 함께 하였습니다.  

이렇게 3월 13일 1재를 시작으로 특별천도재 기간 인 지난 49일 동안 정성스레 천도재식에 참여하며  

 

불교의 이름으로 사회 환원하는 과정에 민가협양심 수후원회도 선정되었습니다.  

9월 13일 12시, 재비 전달식에는 원불교 정상덕 사 무총장, 이기묘 서울강정평화영화제 사무총장. 이 기동 대표가 참석하였고 양심수후원회에서는 안병 길회장 권오헌명예회장 류경완부회장 류제춘사무 

국장이 함께 한 가운데 1천만원 기금이 전 달되었습니다. 함께 하는 식사에는 박희성  양원진 김영식 양희철 장기수선생님과 김 련희님도 함께 담소하며 만남의 의미를 새 겼습니다. 

원불교의 귀중한 재비 좋은 일에 잘 쓰겠습 니다. 

20 보고 | 원불교 재비 전달식 21 

● 보고 

“그 삶이 영광이자 고통이었다” 

-‘만남의집 거주 통일애국열사 합동추도식’ 개최 - 

<통일뉴스> 이계환 기자 

생은 <나는 조선노동당원이오>라는 수기를 냈으며,  정순택 선생은 “1921년 5월 8일 충북 진천에서 송강  정철의 13대손으로 태어났다”며 소개되었다. 

계속해서 리종환 선생은 “2000년 9월 2일 비전향 장기수로 북송됐다가 약 8개월 만인 2001년 4월 30 일 79세에 별세”했으며, 김선명 선생은 “43년 10개

월을 수감해 세계 최장기수”였으며, 문상봉 선생은  “1946년 중국 팔로군에 자원입대해 조선인들로 구 성된 인민해방군 166사에 배치돼 국민당군과 전투” 했으며, 그리고 정순덕 선생은 “1963년 입산 13년  되던 해 지리산 내원골에서 토벌대와 전투 중 다리 

분들과 북녘으로 가셨다가 돌아가신 분들”이라면 서 “이들 9명은 규정성을 갖는 게 아니라 만남의집 에서 직접 모셨던 분들로 상징성을 갖고 계신 분들” 이라며, 이날 합동추도식이 9명으로 한정된 것에 대 해 설명했다.  

특히 그는 “비전향장기수가 갇혀 있었기에 양심수 후원회가 생겼고 이 분들의 석방운동 

과 후원과정에서 ‘만남의집’을 만들게  되었다”면서 “그리하여 ‘만남의집’은  

비전향장기수들과 후원회원들이 특수 

한 인연을 맺게 되는 공간이었고 분단 

시대 자주통일의 염원과 지향 속에서  

혈연관계 못지않은 인연과 연고를 갖 

게 되었다”며, 비전향장기수와 후원회 

원들과의 특별한 관계를 소개했다. 

권 명예회장은 “이러한 인연이 있기에 선생님들을  누구보다 가까이 모시면서 정들었던 관계를 영원히  소중히 간직하려고 다시 모였다”면서 “정세가 어렵 

24일 오후 서울 행운동 소재 양심수후원회 ‘만남의 집’에서는 특별한 추도식이 거행됐다. 다름 아닌 ‘만 남의집 거주 통일애국열사 합동추도식’이 열린 것. 

‘만남의집’에 거주했다가 세상을 뜬 장기수들을 합 동으로 추모한 것이다. 금재성, 최남규, 정순덕, 정 순택, 문상봉, 이종, 이종환, 김석형, 김선명 등 모두  9명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 중 앞의 다섯 명은 ‘만남 의집’에 기거하다 별세했으며 뒤의 네 명은 2000년  송환된 이후 북측에서 타계했다. 

이날 추도식은 안병길 양심수후원회 회장의 인사말 로 시작됐으며, 첫잔돌리기 순서에는 권오헌 명예 

회장, 김지영 전 부회장, 김호현 전 회장, 안병길 회 장 등이 함께 나섰다. 

이어, 9명의 고인들에 대한 약력 소개가 진행됐다. 이정태 운영위원이 이종, 최남규, 김석형 선생을, 유 영호 운영위원이 금재성, 정순택, 이종환 선생을, 그 리고 김길자 운영위원이 김선명, 문상봉, 정순덕 선 생을 각각 나이 순으로 소개했다. 

금재성 선생과 최남규 선생은 북송되기 이전인 1998 년 8월 17일과 1999년 12월 11일에 각각 운명했으 며, 이종 선생은 “1995년 첫 시집 <독방>을, 1997년 에 두 번째 시집 <독방2>를 출간”했으며, 김석형 선 

에 총상을 입고 체포”됐으며, 등등의 파란만장한 약 력이 소개되자 ‘만남의집’의 분위기가 엄숙해지기  시작했다. 

다음으로, 추도사가 이어졌다. 

권오헌 명예회장은 “오늘 추모하는 9명의 양심수는  그 삶이 영광이자 고통이었다”며 “그러나 통일조국 을 못보고 돌아가셔서 애석하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이미 세상을 떠난 모든 비전향장기수들이 당 연히 추모의 대상이지만 오늘 모시는 분들은 ‘만남 의집’에 계셨다가 돌아가셔서 직접 장례를 모셨던  

지만 선생님들의 뜻을 이어받아 통일조국에 이바지 하겠다”고 다짐했다. 

계속된 추도사에서, 통일광장의 김교영 장기수는  “오늘 가장 기쁘고도 슬픈 날이다. 애국하는 사람들 이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 살아온 사례가 없다”, 이 규재 범민련 남측본부 의장은 “목숨을 바쳐 투쟁해  온 선구자들의 뜻을 이어받지 못하고 그에 상응하 는 일들을 못하고 있어 부끄럽다”, 한충목 진보연대  상임대표는 “선생님들의 뜻을 이어받아 10월 5-6 일에 있을 남북해외연석회의 준비모임에 참석해 가 장 빠른 시일에 연석회의 소집을 결의하고 실현하 고자 한다”며 각각 추도와 결의를 다졌다. 

22 보고 | 만남의집 거주 통일애국열사 합동추도식 23 

이어, 양희철 장기수는 ‘추모’라는 추도시를 통해  “통일을 이루려고 분투하셨고/목숨마저 던지셨던  님들의 모습/그 자랑찬 업적 그 행적은/잊혀지지 않 고 추도합니다”며 낙성대 ‘만남의집’에 낭랑히 울려  퍼지게 낭독했다. 

 ● 기고 

양심수후원회의 오랜 후원회원 

들인 김혜순 부회장, 모성용 전  

부회장, 이정태 운영위원이 나 

서 살아생전에 고인들과 함께  

지낸 나날들을 회고하며 각자의  

특별한 인연이나 에피소드 등 

을 소개하는 ‘고인을 추모하며’ 

순서에서는, 참석자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표했다. 

류경완 부회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추도식은 주최  측인 양심수후원회 회원들을 비롯해 통일광장, 민가 협, 범민련 남측본부 등 회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엄 숙하고도 진지하게 진행됐다. 

<통일뉴스 이계환 기자의 9월 25일 기사 전재> 

과는 극과 극의 인생가치를 남기셨습니다. 사대매 국노와 그 후손들은 한 세기가 가까워오는 오늘에 도 씻을 수 없는 치욕으로 인간이 아닌 동물적 가치 만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의 열사분들은 나날이  

빛을 더해가는 영생의 영마루에 계십니다. 민족의  절반을 강대국에 팔아 버린 오늘날의 매국노들 역 시 선열들의 뒤를 따르는 우리들과 달리 영원한 인 간 쓰레기장에 남겨 질 것입니다. 

혁명선열들은 정의와 양심의 전설적 실천가들이셨 습니다. 정의와 양심은 참다운 인생관의 본질적 징 표입니다. 근로하는 대중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입 장과 태도는 정의와 양심을 평가하는 기본 척도입 니다. 혁명선열들은 준엄한 싸움의 길에 나서지 않 는다고 그 누구도 비난하지 않을 때 조차 스스로 고 난과 위험이 이어지는 투쟁의 길에 나서시었습니다.  

개별적 인간으로서의 세상을 홀연히 떨쳐버리시고  이름 없이 그 누구도 모르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 길 을 걸으셨습니다. 사랑하는 혈육들의 이름 한번 불 러 볼 기회도 없이 민족을 위한 투쟁에 자신을 떳떳 

면 손쉽게 내일을 이어갈 수 있었을 때 조차 신념의  원칙, 낙관의 원칙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그 불굴 의 신념과 낙관은 사상적 원리와 동지적 의리에 기 초한 대오의 원칙적 단결의 기초가 되었고 용맹과  투지의 희생적 헌신을 낳는 요람이 되었습니다. 그  불굴의 신념과 낙관은 오늘의 우리들이 선생님들을  이해하고 존경하며 따르는 기본 징표입니다. 

혁명선열들은 통일되고 부강한 조국을 만들려는  우리 새 세대들의 희망의 상징이시고 삶과 투쟁의  영원한 스승들이십니다. 역사의 실재는 진리를 대 변합니다. 오늘의 변화된 현실로 과거를 본다고 해 도 역사의 기록은 결코 달라지지 않습니다. 더럽고  

추악한 반동의 과거는 왜곡과 부정의 대상이 되지 만 정의롭고 시대발전에 부합된 역사는 세월이 흐 를수록 영광스러운 가치를 더해 갑니다. 선생님들 이 생전에 쌓으신 업적과 함께 실천으로 보여주신  

불변의 신념과 원칙성, 고결한 양심과 동지적 의리 는 우리 새 세대들이 이어 가야 할 귀중한 자양분입 니다. 통일조국의 미래가 가까워 오고 있는 오늘, 우 

자주통일위업에 바쳐진 고귀한 생애는 영생합니다 정경학 

하게 바치셨습니다. 그 위대한 삶에는 누구보다도  강한 가족애와 민족애가 깃 들어 있음을 오늘의 우 리들은 잘 압니다. 그 위대한 양심의 실천은 인류사 에 유례없는 가장 고결하고 숭고한 인간다움의 전 

리들은 선생님들이 그토록 안기고 싶으셨던 위대 한 어머님들의 품, 순간도 잊을 수 없으셨던 그리운  사람들을 우리가 떳떳이 찾아 뵈올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절박한 의무감으로 마음을 다잡습 

남 모르는 들가에 남 모르게 피는 꽃처럼 소문 없이  조용히 개인적 삶의 모든 것을 통일조국의 미래를  위해 서슴없이 바치신 혁명선열들의 고귀한 삶은  우리 민족이 승승 장구하고 융성발전 할수록 새 세 

대들의 마음속에 정의와 사랑의 불길을 더더욱 세 차게 지펴 올릴 것입니다.  

혁명선열들은 시대와 역사의 선각자들이셨습니다.  시대와 민중을 이끄는 주류는 저절로 생겨나는 것 

이 아니라 미래를 앞서가는 분들에 의해 유행되어  따르게 됩니다. 사대와 매국으로 이어진 치욕의 역 사를 끝장낼 수 있었던 전환의 시기에 자주통일이  곧 민족의 자주적 융성발전의 출발점이 된다는 것 을 자각하신 혁명선열들은 남 먼저 그 길에 나서시 어 전 민족을 통일에로 이끄시는 투쟁대오의 기관 차로 한생을 바치셨습니다. 역사발전의 합법칙성 과 민족 자주의 시대적 흐름을 역행하고 강대국의  먹이사슬에 민족의 운명을 내 맡긴 역사의 반동들 

형이셨습니다. 

혁명선열들은 신념과 낙관의 투사들이셨습니다. 스 스로 선택한 믿음은 인간 삶의 생명선입니다. 미래 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오늘의 헌신이 있고 열정과  낭만의 정신력이 발현됩니다. 혁명선열들은 목숨이  경각에 다달은 위험속에서도 자주통일위업의 정당 성과 미래의 승리를 확신하며 결코 투쟁의 길에서  물러서지 않으셨습니다. 조금만 물러서거나 회피하 

니다. 선생님들의 고귀한 삶이 영원히 빛을 내도록  새 세대로서의 시대적 의무를 희생적으로 실천할  것입니다. 

2016년 9월 21일  

정경학 올립니다.

24 기고 | 자주통일위업에 바쳐진 고귀한 생애는 영생합니다 25 

● 연재-도성기행  

발로 읽고, 눈으로 듣는 서울 이야기 (3) 

춘원 이광수의 마지막 거주지, 효자동 가옥 춘원 이광수의 마지막 거주지, 효자동 가옥 

유영호 _ 운영위원 

다. 상해로 찾아온 허영숙과의 애정 도피여행을 떠나고 안창호의 만류 에도 불구하고 결국 1921년 그녀와  함께 귀국하여 결혼하였다. 당시 이 광수는 여러 글에서 귀국하면 징역 을 살 것처럼 썼으나 허영숙과 함께  온 그는 간단한 조사만 받았을 뿐이 

현재 한정식집으로 이용 되고 있는 춘원 이광수의  종로구 효자동 가옥 

지난 8월 <한국문인협회>에서 육당 최남선과 춘원 이광수의 문학적 업적을 기려 ‘육당 문학상’과 ‘춘원문학상’을 제정하려다 문단 안팎의 거센 반발로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뿐만 아니라 현재 영화 <밀정>이 대단한 인기 속에 방영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이와 연 관된 곳을 찾아가 보았다. 바로 종로구 효자동 175-1에 위치한 춘원 이광수의 가옥이다. 

이곳은 현재 <연정>이란 한정식집으로 이용되고 있는데, 여기가 바로 춘원 이광수가 해 방 전후의 시기에 살던 집이다. 그는 이곳에서 해방을 맞이 했으며, 1949년 2월 7일 반 민특위에 의해 체포된 곳도 바로 이곳이다. 또 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 12일 그를  북으로 데려가기 위해 북의 혁명시인 리찬이 찾아 온 곳이기도 하다. 

춘원 이광수는 당시 홍명희, 최남선과 더불어 ‘조선의 3대 천재’라 불렸다. 소위 그런 천 재가 해방정국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곳에 머물며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그가 살았던  이 집을 바라보며 70년 전으로 돌아가 그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보고자 한다. 

허영숙, 그녀는 총독의 밀정인가? 

그는 일본 유학생시절 2.8독립 

선언문을 기초하고, 직후 상해 

로 건너가 임시정부에 참여하 

는 등 나름대로 민족주의적 성 

향을 잃지 않았지만 3.1운동 

이 일제의 폭압으로 좌절되자  

조선의 천재라는 그 역시 제국 

주의 권력 앞에서 무너지고 만 

다. 그리고 5월 허영숙과 결혼식을  

올렸고, 9월에는 사이토총독과의  

면담을 갖는 등 화려하고 세속적인  

출세가도의 길에 들어섰다. 그리하 

여 결국 이듬 해 자신의 변절을 상징 

하는 <민족개조론>(1922)을 발표하여 조선청년들을 분노케 하 였다. 이러한 정황으로 인하여 소설가 박종화는 이광수의 변절 은 총독부의 밀정으로 파견된 허영숙때문이라는 논란을 제기 했고 이것은 여전히 지금도 논쟁 중이다. 하지만 나는 허영숙이  

밀정이든 아니든 관계없이 이광수의 변절은 이미 그 전부터 그 의 삶 속에 내포되어 있었다 

그는 1905년 을사늑약 직후 일본 유학시절부터 그런 경향을 보 여왔다. 일본 군국주의의 사상적 토대를 제공했으며, 조선침략 의 선동가로 알려진 후쿠자와 유키치에 대하여 이광수는 그야  말로 “하늘이 일본을 축복해 내린 위인”이며, 자신 또한 ‘조선의  후쿠자와’를 꿈꿨다고 말했다. 이미 그에게 일본은 연민의 대상 이며 조선의 희망이었을 뿐이다. 그런 이광수에게 허영숙이 없 었더라도 나는 그의 친일행위는 이미 예약된 것이라고 확신한 다. 그러했기에 “조선놈의 이마빡을 바늘로 찔러서 일본 피가  나올 만큼 조선인은 일본 정신을 가져야 한다”는 말을 할 수 있 었던 것이다. 그는 더 이상 이광수가 아니라 천황의 신민인 고야 마 미타로(香山光郞)로 살았던 이광수 

1929년 어느 미국인과 찍은 이광수(오른쪽)와 허영숙 (가운데) 가족사진 

1922년 5월호 <개벽>에 실린 이광수의 ‘민족개조론’

26 도성기행 | 춘원 이광수의 마지막 거주지, 효자동 가옥 27 

백범 김구의 원본이 이광 수의 첨삭으로 윤문된 채  출간된 <백범일지>초판 본(1947.12) 

해방 후, ‘친일옹호론’을 창시하다 

이랬던 이광수에게 조선의 해방은 어떠한 의미로 다가왔을까? 아마도 지옥같았을 것이 다. 해방이 되자 거세게 몰아치는 친일청산의 폭풍을 피해 일체의 작품활동을 중단한 채  봉선사에서 약 1년 간 은둔하였고, 1946년 5월 전처를 버리고 온갖 비난과 의심 속에서  재혼한 허영숙과 이혼을 한다. 이에 대하여 서울신문은 “장차 이광수가 전범으로 걸려 들 때를 걱정하여, 자식과 재산의 보호를 위해서 취하는 잇속 빠른 길이 아닌가 보고 있 다.”(1946년 6월 13일자)며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어쨌든 그는 미군정 속에서 발 빠르게 정세를 파악했다. 아직 좌우대립의 혼돈의 상태 에 있던 1947년 그는 도산안창호기념사업회를 통해 <도산 안창호>를 집필하였으며, 백 범 김구를 찾아가 그가 기록해 둔 항일일기를 자신이 편집하게 해달라고 한다. 이런 그 의 행동이 자신에게 방패막이 될 수도 있다고 판단한 듯하다. 이런 이광수의 행동에 대 하여 심산 김창숙은 노발대발하였다. 친일파의 더러운 손으로 중요한 광복사료들을 더 럽혔다는 것이다. 어쨌든 백범이 한자로 쓴 항일투쟁의 일기는 이렇게 이광수의 손을  

거쳐 한글로 우리 앞에 원문의 대대적인 첨삭과 ‘나의 소원’이란 명문을 새로 달고 <백 범일지>로 재 탄생된 것이다.  

그리고 한 해 뒤 그가 내린 결론은 자신의 친일행위를 합리화하 

는 방식을 통해 정면돌파할 것을 결정 하였다. 미군정의 후원  

속에 친일파들을 그대로 온존시키는 정책을 편 이승만정권 하 

에서의 반민특위란 그에게 우스워 보였던 듯싶다. 그가 자신의  

친일행위를 정당화할 뿐만 아니라 청산 자체를 거부하는 논리 

로 집필한 <나의 고백>(1948.12)은 여전히 친일청산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주요논리로 등장하고 있다. 결국 그는 1949년 2월 7 

일 반민특위에 의해 문학예술인 제1호로 체포되지만 불과 한달  

도 못돼 석방되고 말았다. 

한편 1906년 이광수와 함께 일본의 다이세이 중학(大成中學)에 

서 함께 수학한 것을 계기로 무척 가까웠던 벽초 홍명희와는 참 

으로 대조적이다. 일본 유학시절 둘 모두가 조선의 근대화를 꿈 

1948년 12월 친일옹호 

론을 위하여 출판된 이광 

수의 <나의고백>(왼쪽)과  

1949년 2월 반민특위에  

체포된 이광수의 모습

꿨으나 세월이 흐를수록 이광수는 친일로, 홍명희는 항일로 서로 다른 길을 걸었다. 이 와 관련된 유명한 일화가 있다. 이광수, 최남선, 최린 등이 창씨개명을 하기에 이르자 홍 명희는 한용운을 찾아가 “여보게, 만해. 이런 개같은 놈들을 봤는가?”하고 울분을 토로 했다. 이에 한용운은 “이보게, 벽초. 그놈들은 개같은 놈들이 아닐세.”라고 대답했고 무 슨 소리냐고 따져묻는 홍명희에게 “개는 절대 주인을 배신하지 않으니 저놈들은 개만 도 못한 놈들이 아닌가? 개가 자네 말을 들었으면 무척이나 섭섭해했을 걸세.”라고 했 다. 이에 홍명희도 수긍하고 개에게 사과를 읊조렸다고 한다. 

결국 홍명희는 1948년 단독정부수립에 반대하여 남북협상회담에 참가하기 위하여 북 으로 갔다. 그리고 떠나며 문중인사를 올릴 때 “이승만이가 김일성 반절만 되어도 안 가 겠습니다”라고 한 말은 여전히 회자되고 있는 말이다. 결국 홍명희는 이승만을 반대하 며 북으로 갔고, 그의 친구 이광수는 이승만의 보호아래 무사히 살아남게 된 것이다.  

해방 후 이광수가 효자동에 살 때 보여줬던 그의 모습은 마치 우리현대사의 축소판 같 은 느낌이 든다. 해방-친일청산-좌우대립-단독정권-전쟁-분단 이 모든 것을 상상하 게 만드는 참으로 슬픈 역사를 지닌 곳이다. 

28 도성기행 | 춘원 이광수의 마지막 거주지, 효자동 가옥 29 

6.15산악회 산행기 

산들의 바다에 솟은 강씨봉을 오르다

따르릉.. 요란한 벨소리에 잠이 깼다. “아! 몇시지?” 눈을 비비면서 시계를 봤다. 오늘은  산행이 있는 날이다. 산행이 있는 주엔 바쁜 일정들을 싹싹 옮기거나 미루고 참석하지만  그마저도 쉽진 않다. 영림이와 행여나 늦을까 부랴부랴 짐을 챙겨 약속장소로 갔다.  

언제나 수고하시는 김재선 산악대장님과 김태형, 박희성 선생님이 웃음 지으면서 반 겨주신다. 정감있고 포근한 특유의 끈끈함이 있어 오랜만에 뵈면 더 반갑고 얼굴 안보 이는 사람들의 안부를 묻고 하다가 늦게 온 분들과 인사를 하면 산악회라기보다 학창 시절 동아리같은 느낌이다. 

버스를 타고 복잡한 도시를 지나서 경기도 가평쯤을 왔을 때, 갑자기 웅장하게 들어 

정선용 _ 회원 

치는 산세와 계곡 그리고 그사이에 마치 경춘선을 타고 팔당을 지나갈 때의 그 상쾌함 과 같은 탁 트이게 드러나는 풍경에 다들 차창 밖 비경들을 정신없이 바라본다. 이럴 때  한 컷 담는다면 천진난만한 아이같이 들뜬 마음들이 됐을 거라 여겨진다. 거대한 자연 이 주는 감동을 어찌 다 표현할 수 있으랴. 

한참 굽이굽이 돌며 빽빽한 숲과 계속 사이를 들어가니 드디어 휴양림 입구에 도착했 다. 여기 휴양림 시설이 경기도 최고는 물론 전국적으로 손가락에 겹치는 곳이라 그런 지 깔끔하고 저렴하고 좋아서 예약이 수개월 전부터 차있을 정도로 인기가 많다는 설 명을 들었다. 시설물들을 천천히 들여다보니 가족단위로 다시 찾아오면 좋겠다는 생각 이 들었다. 조림을 잘 가꾸고 유지해서 나무들이 너무 실해서 삼림욕을 하기에도 딱 좋 고 접근성도 좋으니 인기가 많으리라. 입구에 모여서 기념사진을 몇 장 찍고 산행을 시 작했다.  

강씨봉(830m)의 유래는 논남기 계곡 상류에 강씨들이 모여 살아서 부르게 되었다는  설과 강씨성을 가진 궁예 부인이 폭정을 피해 골짜기에 살았다는 설이 있으나 펑정 가 평계곡 끝자락과 휴양림시설, 피톤치드 음이온 샤워 삼림욕을 할 수 있으며 분단의 아 픔이 서린 단 하나의 한북정맥(문수령~강씨봉~도봉산~장명산)을 만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자연휴양림 오르는 길이 왼쪽으론 논남기 계곡길과 오른쪽으로 쭉쭉 하늘 높이  솟은 숲길이었는데 우린 숲길로 올랐다.  

A코스로 오르다가 삼거리 갈림길이 나오자 이제부터 힘이 든다는 대장님 얘기가 들 렸다. 요즘 통 운동은커녕 몸관리를 못해 살짝 조심스런 감이 들었지만 반가운 분들과 의 대화를 하면서 오르니 지친감도 덜하고 산행의 묘미가 아닌가 한다. 자연을 접하고  실수를 벗하는 산행도 산행이지만 사람을 만나고 소담스런 얘기를 나누는 것도 6.15산 악회만의 강점이다.  

건강얘기, 안부, 집안대소사, 가족사, 역사, 과거사, 지역풍물과 식물, 양초... 이렇게 1시 간쯤 올랐을까? 도성고개를 오르기 위한 숲길엔 직선 고개가 나오고 잠간 평지가 나왔 다가 구릉지가 나오는 아기자기함이 있어 지루함을 느끼진 못했으나 무더운 날씨 탓에  몸의 무게감을 느꼈다. 자작나무 숲에서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지라 잠깐 휴식을 하며 감 자 가져온 음식으로 요기를 하고 물을 나눠 마시면서 담소를 나누다가 다시 출발을 했 다. 이날 날씨도 그랬지만 자작나무 숲을 지나서부터 가파르게 고각도로 오르는 데크  깔린 계단 길은 허벅지 근육에 압박이 고스란히 전해질 정도로 강했다. 맨 선두에 앞장 서 가시는 류종인 선생님은 시종일관 싱글벙글 미소에 지팡이를 척척 짚으시며 유연하 게 속도를 내며 가셔서 여러 차례 간극차이로 만류를 할 정도로 왕성함을 자랑하였다. 

기분이 좋으면 촉새(어린 딱따구리)가 되는 영림이가 선생님에게 물어본다. “선생님 저희들도 이렇게 힘든데 힘들지 않으세요?”

30 6.15산악회 산행기 | 산들의 바다에 솟은 강씨봉을 오르다 31 

“저는 항상 통일의 마음으로 오릅니다.” 

물푸레나무 숲을 지나 억새밭길 나오기 전에 다시 한 번 쉬었다 갔다. 경사길이 너무  가팔라서 무더운 날씨에 금방 지친 이유다. 높게 뻗은 잣나무 위를 보니 아직 채 영글지  않은 머루가 잔뜩 걸려있었다. 가쁜 숨을 고르게 다독이니 솔바람 내음이 전해졌다. 오 늘 오랜만에 참석한 부부 내외분이 드디어 비장의 무기를 꺼내셨다. 저 엄청난 배낭 안 에서 앞으로 뭐가 나올지 궁금했다. 

다시 출발을 해서 구성고개를 찍고 가니 강씨봉이 눈에 들어오는 지근거리이다. 하지 만 오르막 내리막이 반복되어서 잠시 올랐다 내려가면 있는 짧은 능선 오솔길에서 쉬 었다 가다를 반복했다. 

산행한지도 어느덧 점심 무렵쯤이 되었고 날씨 탓에 조금씩 쉬어가는 것인데 영림 이가 이틈을 놓치지 않고 명랑쾌활하게 “선생님들, 이 선달에게 배낭 값을 주세요”하 며 손바닥을 내밀고 농을 걸었다. 까르르 웃음이 쏟아졌다. 양희철 선생님과 야생초와  약초를 얘기하면서 가다가 솔솔 산 밑에서 능선으로 올라오는 산바람을 자연에어컨 이라 더위에 잔뜩 데워진 산악대원 분들의 땀을 식혀주니 상쾌한지라 너른 웃음을 짓 는다. 다들 천진난만해지고 아이처럼 웃고 떠드는 모습, 우리 산악회의 모습이기도 하 다. 하하하. 

능선 길을 오르락내리락 하다가 도착한 강씨봉은 정말 놀라웠다. ‘산들의 바다’라는 생 각이 들었다. 봉우리와 봉우리가 좌우로 즐비하고 뒤엔 경기 1,2봉이 딱 버티고 저 북으 로도 연이어 줄줄이 펼쳐진 이 장관을 보면서 오르면서 힘들었던 것들이 모두 사라졌다. 

산악대장님이 이리저리 봉우리들을 지팡이로 가리키면서 하나하나 해설을 해주신 다. 사방이 좌우전으로 탁 트였고 능선로 주변에 봉우리들이 무슨 산들인지 설명을 들

 

으니 조망이 너무 좋아서 다들 연신 감탄사가 여기저기서 나왔다. 

관음산, 연인산, 경기도 고봉인, 영지산, 가리산, 광덕산, 청계산, 운악산, 석종산, 화악 산, 애기봉, 촉대봉 넘어 멀리 개성의 산까지도 보인다. 포천시 일동면과 시가지 전경도  한눈에 들어오니 역시 한 폭 정맥의 경관이 괜히 나온 것만은 아니었으리라. 

이 멋진 조망감을 더하려고 정상 주변에 나무들을 조경했다고 한다. 워낙 주변에 명 산들이 많아서 강씨봉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기자기하고 편한 산림조경 그리고 정 상에서 한눈에 보는 경치 때문에 최근에야 알려졌다는 대장님의 설명을 다 듣고 우린  정상 기념촬영을 했다. 조금 오른 고개로 가는 어느 바람 잘 부는 능선에 터를 잡고 내 려와 점심을 먹었다. 요것저것 각자 싸온 여러 가지 음식들을 함께 나눠먹는 것도 즐거 운 산행의 장점이다. 식사와 담소를 나누고 충분하게 쉼터에 하산하는 길에 깃발을 들 고 다니던 래곤이 형님에게 사고가 났다. 

굵은 모래가 벌겋게 드러난 내리막길에서 미끄러지면서 발목이 뒤틀린 것이다. 다른  분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형의 성품을 아는지라 계속 갈 수 있다고 고집을 피우 는 산행이 잠시 멈춰지고 오랜만에 참석하신 양희철 선생님의 침술을 다들 신기한 듯이  지켜보았다. 한 능선쪽 걸음을 한 게 탈이되 잔뜩 홍게 등딱지 마냥 부어있었다. 

선생님의 침술 덕분에 붓기는 가라앉고 다시 계곡 길을 향해 하산을 했다. 하산길은  조심해야 하는데 답사까지 다녀오고 남들 챙기다가 자기는 못 챙기는 형을 농으로 골 려주었다. 오똑 고개엔 작은 광장처럼 군인들이 길을 넓적하게 닦아 놓아서 하산길이  평안했다.

32 6.15산악회 산행기 | 산들의 바다에 솟은 강씨봉을 오르다 33 

왼쪽으론 계곡물이 우렁차게  

흐르고 바위가 제법 그럴 듯하 

다 여길 때쯤 들여다보니 지자 

체 산림과에서 만든 안내판이  

있었다. 

효자소 / 암수바위 / 동자소 /  

두꺼비바위 / 캄바위 / 연화소 

사연과 민담을 담은 얘기가  

곳곳에 있어서 그야말로 전설  

따라 삼천리란 생각이 들었다.  

B코스를 탔던 경완형님이 선생님들 마중물 삼아 올라왔다. 형님이 오전에 사람들이 와 서 라이벌을 하며 놀다가 갔다고 하는 제법 널직한 소를 봤다. 강씨 부인이 시름을 달랬 다던 연화소였다. 일행들을 데리고 첫 산행에 참가한 박교일 자평통 대표 형님과 옷을  벗고 멱을 감았다. 이 가뭄에도 물이 제법 깊어 사람 키를 훌쩍 넘는다. 깨복쟁이들처럼  

깔깔거리며 더위를 식히는데 버스까지 어여 가자는 말에 차가운 계곡물을 나왔다. 오늘은 하산길이 길어져서 산상 강의는 못하고 곧바로 식당으로 갔다. 이미 예약을  한 젓갈정식 밥집에서 정태 형님의 사회로 9주기를 맞아 그동안 노고가 많았던 대표님 들과 선생님들의 인사와 소감을 들었다. 아마 금강산에 이어 백두산까지... 처음부터 지 금까지의 변천 모습이 한눈에 그려졌다. 

영림이와 나도 호명을 받았다. 

“여기선 나이대로 본다면 막내급이지만 저의 동지들 젊습니다. 제가 고참급이죠. 이  시간에도 싸우고 있고, 감옥에도 많이 갇혀 있습니다. 또 이곳에 함께하고 싶은 마음을  전하는 동지 들도 많지요. 동지들 대신해서 간다는 마음으로 참석하는데 호사를 누리 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울 때도 있습니다. 우리 동지들과 환수복지당에 많은 관심 부탁 드립니다.” 

둘이 얘기해서인가 많은 박수를 받았다. 여러 가지 생각에 찡한 무엇이 솟구치고 눈 물이 그렁거려 밖으로 나와서 담배를 피면서 짐짓 딴청을 부렸다. 

돌아오는 길은 다들 고단했던지 잠을 청하는 분들이 많았다.  

만남과 설레임이 있고 멋진 자연 풍광만큼의 사람 내음을 가진 산악회 9주년을 늦게 나마 축하드립니다. 가는 길 험난해도 그 어떤 고통과 애로가 따르더라도 조국통일 그날 까지 변하지 않는 한마음, 한길에서 백두산 종주까지 함께였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비전향장기수 양희철 선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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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6.15산악회 산행기 | 산들의 바다에 솟은 강씨봉을 오르다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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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양심수 현황 37 

● 전국 양심수 면회 공동행동 

국가보안법 철폐하고 양심수를 석방하라!! 

자회견과 면회를 시작으로 수도권, 대전, 군산, 전 주, 광주, 부산, 울산을 돌고 9월2일 대구에서 기자 회견과 면회를 마치고 해단식을 끝으로 일정을 마 감했다.  

첫날은 서울구치소 앞에서 선포 기자회견과 면회 

문하였다. 셋째날은 전주교도소 앞 기자회견과 면 회 후 광주교도소로 이동하여 양심수를 면회하였으 며, 넷째날은 부산구치소로 이동 후 기자회견 및 면 회를 하고 울산구치소 양심수를 만났다. 마지막날 은 비바람이 부는 궂은 날씨에도 대구교도소 앞에 

2016 추석맞이 전국양심수면회공동행동(이하 공 동행동)이 4박5일의 일정으로 전국을 돌았다. 행사 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된 사람과 노동운동과  민중운동으로 구속되어 감옥에서 외롭게 추석을 맞 

이하는 양심수에게 힘을 주고, 양심수 인권 문제의  심각성과 감옥 인권실태 파악하여 이를 알리며 개 선을 촉구하기 위한 목적으로 마련되었다. 공동행동은 8월29일, 서울구치소 앞에서 출발기 

를 시작으로 서울남부구치소 수원구치소 등 수도권 지역 구치소를 돌며 양심수 면회를 진행하였다. 둘 째날은 대전교도소 앞에서 기자회견 및 면회, 군산 교도소 면회. 전주에 있는 세월호남문농성장을 방 

서 기자회견 및 면회를 하고 해단식을 끝으로 4박5 일의 공동행동을 성과적으로 마감하였다. 공동행동의 전일참가자는 양심수후원회 안병길  회장, 박희성 선생님, 이정태 운영위원이 함께 하였

 

 

 

공동행동-서울29일에서 부산1일오전까지 공동행동-울산구 부산구 

38 전국 양심수 면회 공동행동 39 

 

고 구속노동자후원회 배미영 사무국장, 배소영 전  사무국장, 백형근 회원이 참여하였다. 그리고 국가 보안법피해자모임 윤기하 법률위원이 참가하였으 며 애국촛불연대 홍순창 님이 함께 하였다. 8명의  전일참가자들은 뜨거운 날씨에도 투쟁열의를 불태 우며 서울에서 부산까지 교도소와 구치소를 돌며  소측 관계자들과 인권투쟁을 벌였으며 양심수들과  따뜻한 만남을 가졌다. 부분일정참가로 양심수후원 회 권오헌 명예회장과 김영식 선생님, 류제춘 사무 국장은 4일차 저녁 대구로 가서 합류하였다. 해단식  후 양심수후원회와 한국진보연대 연대사업위원장 

공동행동-대구교도소 

은 안동교도소를 방문하여 전식렬 전 한국진보연대  문예위원장을 면회하고 서울로 돌아왔다. 

그동안 대전양심과인권나무와 경북양심수후원회  등 일정참가 재정후원 숙소지원 식사지원 그리고  마음으로 함께해주신 단체 개인께 감사인사 드립니 다. 그리고 한 분씩 있는 교도소 양심수는 이후에도  면회 진행합니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2016 추석맞이 전국양심수 면회 공동행동 양심수후원회 

안하던지.. 구치소 측과 상의하여 다시 면회를 했다.  전태삼씨는 집시법으로 벌금 300만원 나왔는데 항 소 안하고 구치소 노역을 하면서 한위원장을 볼 생 각이란다.  

아무튼 정신없이 서울구치소 면회 끝내고 기자회견  마친 뒤 서울 남부구치소로 향했다. 다른 한 팀은 안 양, 수원구치소로 갔다. 남부구치소(서울 천왕동)에  도착하니 알바노조위원장 박정훈씨가 대한민국 상 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승소했단다. 2014년  서울 남부구치소 수감 중 대상포진에 걸렸는데 당 시 구치소 측 의료진은 얼굴과 머리에 수포증상이  있는 박정훈씨에게 ‘니조랄(비듬제거 샴푸)’로 씻으 라 했단다. 정훈씨 말로는 구치소에서 깨끗이 씻고,  청결하지 않으면 좁은 공간에 냄새 때문에 씻지 말 라해도 씻게 된다는 것이다. 구치소에서 출소한 뒤,  최근 신체감정을 통해 대상포진 증상으로 밝혀져  승소한 것이란다. 부산교도소 폭염 속 2명 사망으로  올해만 25명이 수감시설에서 사망했다. 그 중 20명 이 병으로 사망했는데 수감시설의 열악한 의료 환 경 개선이 절실히 필요하다. 남부구치소는 공안수 에 대한 탄압도 거세다는데 기자회견 하는 중에 구 치소 직원이 다른 이에게 ‘저 사람들 일당 받고 저런 다.’는 말을 들은 전국철거민 연합 어머니들과 회원 

세워 철거민들을 살해했을까? 그 뒤 김석기는 죄 값 을 치르기는커녕 승승장구하여 인천공항사장까지  하다가 국회의원까지 출마하려는 파렴치한 짓거리 까지 서슴지 않는게 명바기 박그네 정권이다.  

대전에서는 ‘인권과 나무’ 양심수 후원회 이병구  사무처장에게 해마다 하룻밤 신세를 진다. 대전구 치소 앞 10시 기자회견에는 지역 단체와 노조원들 이 많이 와주었다. 기자회견 뒤 점심을 사주시어 호 남에 가서 전라도 음식 맛보자는 의견은 끝이었고  군산으로 향했다. 익산을 거쳐 자동차 전용도로를  달리는데 바람이 장난이 아니다. 태풍처럼 나뭇잎 이 바람에 덮쳐온다. 내가 일하는 예산에 내려가보 니 엉망이었다. 그날 바람이 무척이나 세게 불었던 게다.  

군 산구치소는 직원들이 가족과 같이 대해주어 편 했고, 구속 노동자들을 잘 보살펴 달라는 부탁을 남 기고 전주 세월호 남문 농성장 방문했다. 농성장지 기 채주병님을 만나 환담을 나누고 다른 한명 이종 화 시인 안부를 물으니 상태가 좀 심한편이란다. 이 종화 시인을 처음 만나게 된 것은 제주 서귀포 강정 마을이다. 이 시인은 전주 버스 파업 때 감옥에 갇히 고, 제주 강정 해군기지 반대에 참여. 자기 승용차까 

● 2016 추석맞이 전국 양심수 면회 공동행동 참여기 

안병길_회장 

들이 다부지게 따지자 구치소 직원 정00는 얼굴이  하얗게 되고, 민원실은 한동안 난리 북새통이 되었 다. 결국 직원이 사과하고 보안 계장까지 사과로 마 무리는 되었으나 전철연이 어느 단체이던가? ‘철거 

지 가져가 3년을 살았다. 전주에 가면 ‘성!’ 이라 불 러주며 참 반기던 사람이었는데 수개월 전 뇌출혈 로 쓰러져 병원 입원 중이다. 국가보안법으로 옥살 이 했던 김00씨가 저녁 겸 막걸리 전문집으로 초대 

8월 29일 서울구치소 앞 면회 및 기자 회견으로 시 작되는 4박 5일 일정에 전일 참가하기로 하고 서울 구치소로 향했다. 민노총 한상균 위원장 면회 예약 이 10시 50분에 가능하여 전태일 열사 동생 전태삼,  

나, 구노회 의장, 조영건님, 민가협 어머니 정순녀 

님. 시간이 다 되어 찾으니 태삼씨는 기자회견장에  가있고, 조영건님은 아직 오시는 중. 정순녀님은 다 리가 불편하시어 걸음이 더디시다. 시간은 다 되어  예약한 내 이름을 계속 부르고 나는 이리저리 찾으 러 다니느라 정신 나갔다. 한 위원장에게 얼마나 미 

민’ 자기가 살던 보금자리를 돈 없는 서민이라는 이 유 하나만으로 국가가 용역철거반을 앞세워 탄압하 고 불에 태워 죽이고(용산 살인사건), 용산의 남일당  자리는 아직까지 비어있어 주차장으로 쓰였다. 그 런데 무엇이 그리 급하다고 명바기는 김석기를 앞 

했는데 역시 음식 맛은 호남이던가. 너무 미안스러 운 대접을 받았다.  

전주교도소와 광주교도소 끝나고 부산으로 향했다.  철도 휴양소 컨테이너에서 1박 인데 송도해수욕장

40 전국 양심수 면회 공동행동 참여기 41 

에 있어 밤바다 파도를 마음껏 보듬을 수 있었다. 9 월 1일 부산구치소 앞 기자회견은 구치소 공간이 좁 아 주차를 다른데 하고 보안과 계장이 사복을 입고  와 한동안 실랑이를 벌이니 자기 딴에는 정복을 입 고 맞으면 위화감이 생길까봐 사복을 입었다니 너 그러이 품고가야지. 부산은 면회시간이 7분이라지 

장을 봐달라고. 어느 정도 싸우다 끝내려니 했는데  배국장이 강단지에 밀어붙여 총무과장 만나니 총무 과장이 ‘내 생각이 소장생각’이라며 안된다 한다. 3 층에 있는 소장실을 향하여 어느새 2층 계단까지 갔 으니 구치소 직원들이 가로막고 난리다. 1시간 가까 이 농성하다가 보안과장이 3층 소장실로 올라가는  

● 감옥에서 온 편지 ●

최승환 님의 편지 

민가협양심수후원회 앞 

만 잘되어 넉넉한 시간을 얻어냈고, 갇혀있는 최승 환님은 처음 보지만(민주노총 부산본부) 한총련 의장 도 했었다 하여 오래 만난 사람 같았다. 부산에는 나 의 길벗 김홍술 목사가 있다. 불러내어 기자회견 함 께하고 점심을 같이 했는데 김목사는 세월호 농성 장 광화문에서 무기한 단식 때 ‘언제까지 할거냐?’ 묻는 내게 ‘죽을 때까지’ 했다. 우연히 만난 제주 강 정 해군기지 직원들 아파트 건설 저지 정문 앞에서 는 개의 혀처럼 벌어진 운동화에 비가 추적추적 오 는데 비닐로 감고 다니기에 물으니 “바자회에서 1 만원 주고 산거” 란다. 안돼보여 전선 동줄을 구해 다가 송곳으로 꿰매어 주니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이번에 만나니 아직도 꿰매어준 운동화를 신고다닌 다 한다. 김목사는 노숙자들과 같이 살고 있다. “애 빈교회” 가난한 삶을 사랑하는 교회로 가난한 삶,  가난한 영성, 가난의 복음이라 교회 차에 써 붙이고  학교 급식 끝난 뒤, 잔반을 가지러 떠났다. 가난한  영성이라니 자본주의에 대한 가장 큰 무기라 생각 된다. 예수의 영성이 그렇지. 필자도 청년 시절, “여 우도 굴이 있고 공중 새도 깃들일 곳이 있지만 사람 의 아들은 머리 둘 곳조차 없다.”던 가난한 떠돌이  젊은이에게 끌려 이렇게 잘 살고 있다.  

오후 울산 구치소 면회는 프렌트 노동자가 다수였 고 그 중 한명은 누가 면회를 하여 불가하다고 나와  구노회, 배미영 사무국장이 앞서서 나서 같이 끝내  면회하고 말았다. 보안계장이 통사정한다. 자기 입 

것을 보고 우리의 승리로 보았는데 역시 해결되어  면회를 다하니 울산 노동자들이 고무되어 박수로  환영한다. 울산 노동자 보는 순간 눈물이 왈칵. 먹고  살자고 일하는데 그 어린 노동자를 감옥에 가두고  재벌에게는 어마어마한 특혜에 광복절특사까지 자 

행하는 박그네는 아니다.  

얼마 전 광주에 있는 김홍렬님을 생각하면서도 눈 물이 난 적 있는데 왜 감옥이 존재해야 하는지. 감옥  없는 세상이 무릉도원이요 극락, 하나님의 나라요  민이 주인 된 세상 아닌가! 이 글을 쓰는 이 순간도  감옥에 갇혀있는 님들의 얼굴을 떠올리면 맘이 그 렇습니다. 돈이 아니고 양심이 존중 받는 사회. 양심 과 도덕과 윤리가 살아 춤추는 세상. 우리가 꿈꾸어 야 할 세상입니다. 노동자 짓밟고 양심을 무너뜨리 는 여기는 헬지옥! 

보잘 것 없는 놈 그래도 구치소에 갇혀있다고 감옥이지만 추석이라도 마음 편히 보내라는 마 음으로 먼 길 마다않고 부산구치소로 달려와 주셔서 다시 한 번 정말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민가협 그리고 양심수후원회는 예전에 나름 자주 뵈어왔습니다. 

제가 2001년 한총련 의장을 했었는데, 그 때 집회나 행사 때마다 민가협 어머님들이 어찌나 그 렇게 신경써주시고 아껴 주셨는지^^ 그런 보살핌 덕분에 지금은 민주노총 부산본부에서 사무 처장을 맡고 있고, 경찰의 억지 연행과 검찰의 무리한 기소를 1심에서 8개월을 받고 법정구속 되어 지난 6월 29일 부산구치소로 와서 지금껏 지내고 있습니다. 

‘양심수’! ‘탄압 그리고 고귀’를 내포한 단어라 생각합니다. 

최근 들어 양심수를 바라보는 교도관과 재소자들의 시선이 많이 좋지 않음을 느끼는 것도 사 실입니다. 그럴수록 더 열심히 활동하고 투쟁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됩니다. 

부단히 갈고 닦아 웃는 얼굴로 출소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9월 4일 부산구치소에서  

최승환 드림 

42 감옥에서 온 편지 43 

존경하는 권오헌 회장님께 

● 감옥에서 온 편지 ● 윤경석 님의 편지 

안녕하십니까? 

● 감옥에서 온 편지 ● 이상호 님의 편지

회장님 안녕하십니까? 안동교도소 윤경석입니다. 

격무에 바쁘신 회장님께서 이 곳까지 다녀가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방안에 가만히 앉아 있다가 먼 길을 찾아오신 회장님을 뵙자니 죄송한 마음 금할 길이 없습니다. TV나 신문에서나  뵙던 분을 직접 뵙고 나니 초면이었지만 동네 어르신 같은 인자하심에 마음으로부터 포근함을  느꼈고 대단한 일을 하고 계신다는 생각에 너무나 존경스러웠습니다. 사실 드릴 말씀도 있고  해서 생각도 많이 하고 나갔는데 정작 뵙고 보니 무슨 말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이다가 시 간이 다 되어 그냥 돌아왔습니다. 

교도소 생활을 하면서 공안사범으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는 설명한해도 알 것이라 생각합 니다, 회장님을 비롯해서 양심수후원회가 공안사범들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고 신념을 지키는  일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는 전국의 양심수들이 공감할 것입니다. 인간 개개인의 신념이  

모두 다르겠지만 많은 양심수들이 생사를 위해 자신의 신념을 바꾸지는 않으리라 봅니다. 어 차피 자신이 선택한 길이고 이 길에서 죽는다 해도 후회는 없습니다. 

회장님 제가 몇 년 전에 심장에 문제가 있어 외부병원에 나가 심장조형술을 받다가 조형제 부 작용으로 인하여 심장 쇼크가 왔고 그로 인해 현재까지 우측 팔 다리가 마비되어 하루 종일 누 워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글 쓰는 것도 왼 손으로 쓰자니 글씨가 너무 엉망이고 해서 양해의 말 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회장님. 이제 얼마 있으면 추석입니다. 담 안에서 맞이하는 추석이 우리들에게는 아무런 의미 가 없지만 금년에는 회장님께서 다녀가시고 힘과 용기를 주셔서 그 어느 해보다 뜻 깊은 추석 을 보낼 것 같습니다. 회장님께서도 금년에 추석만큼은 모든 근심걱정 내려놓고 전국의 양심 수들의 몫까지 다하여 즐겁고 행복한 한가위 보내시길 진심으로 기원드립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16. 9.4. 윤경석 올림. 

※ 태국, 홍콩, 중국에서는 송지훈이라는 이름으로 살았습니다. 

추석을 맞으며 우천 중에 대구까지 먼 길 다녀가신 모든 선생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면회규정으로 문 밖에서 뵌 선생님들과 직원의 만류에도 접견실에 들어오셔서 투명창에 손을  대어 온기를 전해주시고 안부의 말씀을 주신 권오헌 명예회장님 정말정말 감사드립니다.  

송구하게도 안병길 회장님은 얼굴이 많이 타기도 하셨고 여러 선생님들과의 인사로 분주하여  한 눈에 알아 뵙지를 못해 죄송했습니다. 

내란조작사건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고, 추석공동면회 전에 출소하는 동지를 그 전에 면회하 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따뜻한 동지애를 같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계기 때마다 면회 오시는 이정태 동지에게도 이 기회를 빌어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면회 전 날 양심수후원회 소식지를 받았습니다. 류종인 선생님, 김찬호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 다. 두 선생님 추도사를 읽으며 안 쪽의 가슴이 적셔졌지만 다른 한 쪽의 가슴은 더 옹차지는  걸 느낍니다. 사형수로 무기수로 20년 넘게 독방에서 수갑차고 고문 공작에도 양심과 신념을  지켜오신 선생님들의 정신은 유한한 육신과 달리 ‘신념의 화신’으로 영생의 정신을 남겨주신  선생님들의 정신으로 사상정신을 강화하는 체험의 시간이 되도록 힘쓰겠습니다. 

좋은 추석 명절이 되시길 바랍니다.  

이상호 올립니다. 9.4 

44 감옥에서 온 편지 45 

안녕하십니까? 

● 감옥에서 온 편지 ● 강명환 님의 편지 

양심수후원회 동지들에게! 

● 감옥에서 온 편지 ● 김근래 님의 편지

저는 도시빈민 노점상 단체 활동을 하다가 인천구치소에 3번째 구속 수감되어 있는 강명환입 니다.  

이제야 모든 재판이 끝나서 시원섭섭한 마음을 뒤로 한 채 홀가분한 마음으로 민가협 동지들 에게 소식을 전합니다. 

먼저 끊임없는 민가협 동지들의 관심과 배려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항소심에서 6개월 감형되어 1년형을 선고받고 내년 5월 중순경에 사회에 복귀할 수 있을 것 같 습니다. 그저 먹고 살겠다고 발버둥 치며 외치는 소박한 몸짓만으로도 구속을 시키는 이 국가 에 대한 믿음과 희망은 절벽인 것 같습니다. 

추석연휴가 코앞에 다가왔지만 먹고 살기 힘든 서민에게는 고단한 삶의 연속이지 그다지 즐겁 지만은 않은듯 싶습니다. 

언제쯤 기본적 욕구인 먹고사는 것들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고 맘 편하게 두 다리 쭉 뻗고 살아 갈 수 있는 날이 오련지.. 

지난 번 출소 후 구노회 배소영 배미영 동지와 구노회 사무실을 방문하여 인사를 드렸는데 민 가협 동지들에게 찾아뵙지 못한 점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거듭 고맙다는 말씀 전합니다. 

이번에 출소하게 되면 꼭 찾아뵙고 인사 올리겠습니다. 

민가협양심수후원회 안병길 회장님과 회원 동지들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면서 이만 줄이겠 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16년 9월 11일 

인천에서 명환 올립니다. 

감사와 존경의 마음으로 인사드립니다. 

3년의 징역살이를 마치고 9월 29일 새벽에 가족과 동지들 곁으로 돌아갑니다. 

새로운 투쟁의 현장 또한 시련과 난관이 많겠지만 민중과 동지들이 있어 희망을 품게 되고 승 리하리란 믿음이 확고합니다. 

그동안 보내주신 격려와 지원, 동지애적 사랑에 머리 숙여 깊이 감사드리며 변치 않는 의리로  늘 함께 하도록 하겠습니다. 

아울러 의연히 징역생활을 견뎌내고 있는 모든 동지들의 건강과 건투를 기원합니다. 

2016년 9월 18일 

안양에서 김근래 드림 

46 감옥에서 온 편지 47 

● 감옥에서 온 편지 ● 

김덕용 님의 편지 

양심수후원회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추석면회때 멀리까지 와주신 한기명 회장님, 권오헌 명예회장님, 류제춘 사무국장님, 이정태  위원님 감사드립니다. 비가 오는 속에서도 우비를 입고 행사에 참석하신 모습들을 보니 든든 함이 느껴졌습니다. 모두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제가 청구한 경비처우급 상향조정 소송의 심리기일이 확정되었습니다. 

사건: 2016구합1402 경비처우급 상향조 

정 불허취소 

원고: 김덕용 

피고: 대구교도소장 

일시: 2016. 10. 7. 14:20 

장소: 대구지방법원 신별관 303호 법정 

대구교도소로부터 제가 제기한 소장에  

대한 답변서를 받았고 이에 반박하는 답 

변서를 다시 제출하였습니다. 제가 소송 

을 제기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국가보안 

법 수용자에 대한 경비처우급 조정에서 

의 차별시정을 위한 것입니다. 

제가 공식적으로 대구지방 교정청에 행정심판을 청구하고, 행정소송을 법원에 제기한 근본 목 적은 저에 대한 차별대우와 불이익의 철폐목적 뿐만 아니라 전체 국가보안법 수용자에 대한  어떠한 형태의 차별도 없어야 한다는 문제제기입니다. 

귀찮다는 이유로 그냥 넘어간다면 다른 분들 뿐만 아니라 이후 국가보안법으로 감옥에 수용되 는 분들에게 계속 같은 형태의 차별과 불이익이 계속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행정소송을 제기한 후 소장을 작성하고 대구교도소의 답변서를 받는 과정에서 경비처우급 조 정의 문제가 무엇인지? 국가보안법 수용자에 대한 경비처우급 조정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 는지? 제 경비처우급 조정에 대한 결정을 누가 어떤 의도로 결정하였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 감옥에서 온 편지 ●

애초에는 기록으로 남긴 후 추후에 정식으로 국가보안법 수용자 탄압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려  했습니다. 그래야 왜? 누가? 이런 식의 결정을 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소송을 정식으로 제기하자 오고가는 답변서 속에 대부분의 실체가 확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만족합니다. 애초의 목적을 소송도 하기 전에 달성했다는 생각입니다. 처음에는  그저 헌법소원으로 가는 징검다리 역할 정도로만 행정소송의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그런데 하나하나 포기하지 않고 꼼꼼하게 문제를 짚어나가자 지금 같은 처지와 상황에서도 실 체를 법원기록으로 명확하게 남길 수가 있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패배적으로 수세적인 입장을 가져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새삼 깨닫는 계기였 습니다.  

심리를 한 번도 진행하지 않았지만 즐거운 마음입니다. 이미 얻을 것은 모두 얻은 상태입니 다. 앞으로의 심리에는 3년만의 바깥구경, 소풍으로 생각하고 즐거운 나들이로 다녀올 생각 입니다. 

모든 분들도 절대로 물러서거나 포기하지 마십시오. 

2016. 9. 19 대구교도소에서 

김덕용 올림 

48 감옥에서 온 편지 49 

이런 일이 있었어요 

 2016년 8월 활동 

상은 양심수여야 한다’를 민중의 소리에 기고. 소식 

1일 

11일 

●용산 국방부 앞에서 시링  미 미사일방어청장 방한 규 탄 기자회견(권오헌) 

●미주양심수후원회 김인숙 님이 방한 중 전북 김제에서  ‘만남의집’으로 풍천장어를  

보내오심. 감사합니다! ●종로 탑골공원 앞에서 ‘국 가보안법 철폐와 양심수 전 

●전북 익산시 주현교부에서 ‘비전향장기수 김찬호 선생 추모식이 진행되다. 후원회소식 298호 실림 

2일 

●낙성대 만남의집 재산세(건축물분, 주택분) 납부 하다. 

3일 

●북한산 금선사에서 ‘김선분선생 1주기 추모식. 소 식지 298호 실림(권오헌,모성용,이정태,박윤경,리정애, 류제춘) 

●오후, 서울대병원에서 투병중인 백남기농민 병문 안(권오헌,이규재,정현찬,김영호) 

4일 

●국가보안법철폐, 양심수 전원석방을 위한 민가협  1084회 목요집회(권오헌 외) 

●소위 국정원 내란음모조작사건으로 전주교도소 에 국가보안법으로 수감중인 양심수 홍순석님 면회 하다(안병길) 

5일 

●<민중의 소리>청탁원고. ‘광복절 사면의 우선대 

지 298호 실림(권오헌) 

●국가보안법으로 광주교도소에 수감중인 양심수  강영수님 면회하다(안병길) 

6일 

●강북구 번동으로 박정숙선생님 찾아뵘(권오헌,황 건,박윤경) 

7일 

●강남 내곡동 국정원 앞에서 ‘북 해외식당종업원  진상규명 촉구 청문회, 민권연대 주최, 권오헌 여는 말, 김련희 증언(김영식,박희성 김련희,권오헌) ●낙성대 ‘만남의집’에서 제 8차 민가협양심수후원 회 운영위원회가 열리다. 안병길 김혜순 도상록 김 재선 이정태 김길자(위임) 류제춘 참석하여 월례강 좌와 8월 일정에 대한 논의를 하다. 

10일 

●용산 남영동 ‘슘’에서 ‘한국진보연대 후원의  밤’(권오헌,류경완,이정태,류제춘) 

●한국진보연대 후원의밤 ‘슘’에서 추석맞이 전국 양심수 면회행동 2차회의(이정태 류제춘) 

●전국의 양심수 47명에 영치금보내드리다 

원석방을 위한 민가협 1085 

회 목요집회 (권오헌 외) 

●민중연합당 전당대회 축하영상 보냄(권오헌) 

12일  

●세종로 정부청사 앞에서 ‘북 식당종업원 가족면 담, 변호인접견 촉구 기자회견(권오헌 박희성 김영식  이정태 류제춘) <사진1> 

●관악구 보라매병원으로 박정덕선생님 문병. 선생 님은 신장이 좋지 않고 속이 메스꺼워 발이 붓고 하 는 증상이 있어 11일 입원.(김영식,박희성,권오헌)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창립 30돌 기념출 판 기념회 -조계사 전통문화예술 공연장 (박희성, 권오헌) 

13일 

●광화문 미대사관 앞에서 범민련 남측본부,양심수 후원회 공동으로 ‘남북해외 연석회의 성사, 평화협 정체결 촉구대회’ 진행. 이적목사의 평화협정촉구,  

실천단 대표 이성우 결의발언 등(권오헌 외) ●용산철도회관, NK투데이 주관 ‘김련희 평양아줌 마 토크’(권오헌 외) <사진2> 

사진 1 사진 2

50 이런 일이 있었어요 51 

 

14일 

●여의도 63빌딩 민중연합당 2기 출범 전당대회(권 오헌 외) 

민노총 중회의실에서 열리다. 18일  

사진 3 

22일 

●광화문 미 대사관 앞 ‘한반도 전쟁위기 높이는 ‘을 

지 프리덤 가디언 연습중단 촉구 기자회견(권오헌  

사진 4 

(김영식,박희성,권오헌,류제춘) 

23일 

●광화문광장 ‘남북대화 촉구, 한반도 평화를 위한  전국대표 1000인 원탁회의’(권오헌 외) 

●마포구 합정동 음식점에서 옴시롱감시롱 주선  ‘오병철선생님 81세 생신축하모임(모성용, 김길자, 김 혜순, 나정옥, 양호철, 양인철, 권오헌, 신현부, 정훈철 등) 

15일  

●혜화동 대학로에서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 회주최 ‘광복 71돌 한반도 평화와 자주통일을 위 한 8.15민족대회’-마치고 보신각까지 행진. 소식지  298호 실림(권오헌, 김영식, 박희성, 안병길, 김재선, 유영 호, 박창숙, 류제춘 외) 

17일 

●‘추석맞이 전국양심수면회 공동행동’ 전체회의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 ‘사드 한국배치 저지 전국 행동 발족 대표자회의 및 기자회견’(권오헌 외) ●종로 탑골공원 앞에서 ‘국가보안법철폐와 양심수 전원석방을 위한 민가협 1086회 목요집회’(권오헌, 김재선 외) <사진3> 

20일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 고 박형규목사 빈소 문상  (권오헌 외) 

21일 

●6.15한마음통일산악회- 경기도 가평 강씨봉 등 산. 6.16산악회 발족9주년 약식행사. 소식지 298호  실림 

외) <사진4> 

●통일부 앞에서 ‘북 해외식당 종업원 기획탈북의 혹사건 진상규명 촉구 1인시위 본 소식지 299호 실 

사진 5

●용산 국방부 앞에서 ‘사드배치, 제3부지 제안, 주 민 분열시키는 국방부 규탄 기자회견 (권오헌 외) 

24일 

●서울 남부검찰청 앞, <노동 

자의 책> 국가보안법탄압 저지  

공동행동 주최 <노동자의 책> 

에 대한 국가보안법 탄압 중단  

촉구 기자회견. <사진5> 

●권오헌 명예회장, 노동자의  

당 대표, 철도노조 대표 등 발 

언- 마치고 공동행동투쟁계획  

등 논의하다. 

52 이런 일이 있었어요 53 

25일 

●종로 탑골공원 앞에서 ‘국가보안법철폐와 양심 수 전원석방을 위한 민가협 1087회 목요집회’ (권 오헌 외) 

26일 

●밤 12시, 이른바 ‘이석기내란음모사건’ 피해자 홍 순석 만기출소 마중차 전주로 떠남 (권오헌 외) 

27일 

●새벽 5시 전주 전주교도소 앞에서 ‘이석기의원 내 란음모사건’ 피해자 한국구명위원회 주최로 ‘홍순 석동지 출소환영대회’가 진행되다. 권오헌, 한상렬,  김창한(민중연합당상임대표), 정진우목사 등 환영사,  

홍순석 출소인사, 환영문예 공연 등 진행(권오헌) ●더불어민주당사에서 농성중인 세월호 가족들과  백남기농민 대책위 관련자지지, 격려 방문하다.(권 오헌) -새누리당사 앞 천막농성장도. 

●낙성대 ‘만남의 집’에서 민가협양심수후원회 8월  월례강좌 열림. “비전향장기수 김영식선생님 살아 오신 길” 조명. 김동원 감독 진행. 소식지 298호에  실림 

29일 

●’2016년 추석맞이 전국양심수면회 공동행동’ 서 울구치소 양심수면회와 기자회견, 남부구치소 면회 와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수도권 구치소 면회진행하 다(권오헌,안병길,박희성,이정태,류제춘) 

30일 

●2016 추석맞이 전국 양심수면회공동행동  오전 대전교도소 기자회견 및 면회, 오후 군산교도 소 양심수 면회(박희성,안병길,이정태) 

●‘만남의집’의 전화요금 등 공과금을 납부하고 장 기수 선생님 등 후원금을 보내드리다. 

31일 

●’2016년 추석맞이 전국양심수면회 공동행동’ 전 주교도소 앞 기자회견 및 면회, 오후 광주교도소 양 심수 면회하다(안병길 박희성 이정태) 

*자세한 내용은 본 소식지 299호 참고 

후원회원 가입 및 후원금 자동이체(CMS) 신청해 주세요 

* 노조나 단체 이름으로도 후원하실 수 있습니다.  

■전화 (02) 874-4063 ■전송 (02) 888-4470, 010-5219-9117 

■E-mail : yangsimsu0@gmail.com  

성명 

소속 

전화 번호 

주소 

전자 우편 

회비 약정액   매월 1만원   매월 2만원   매월 3만원   매월 5만원   기타 ( )원 

계좌 번호: 은행: 예금주: 

출금 일자   매월 10일   매월 20일  

위 기재하신 주소로 매달 양심수후원회 소식지를 받아보시겠습니까? 

□예 □아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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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아니오

* 후원을 하시면 기획재정부 소득공제 규정에 의거하여 연말 소득공제를 받으실 수 있습니다.  * 개인신상정보의 비밀은 철저히 지킵니다. 

* 후원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54 55 

● 재정보고 — 2016년 8월 

단위 : (원) 

 수입 내역 수입 총액 8,132,086 현 금 265,000 

CMS 2,085,000 

미주지부 1,408,914 

SC지로 30,000 

농 협 470,000 

하 나 30,000 

국 민 550,000 

차입금 3,000,000 

회비수입계 7,838,914 

전월이월 293,172 

 지출 내역 지출 총액 7,326,503 양심수 관련 양심수 영치금, 소식지 발송, 면회사업 등 1,176,070 

출소장기수 관련 만남의집 운영비, 출소 장기수 관련 지원 1,666,003 

소식지 관련 소식지 제작 및 발송 1,231,690 

사무국 활동 상근일꾼 활동비(활동비, 상여금, 보험) 1,250,000 

연대사업 기자회견, 집회, 연대단체 분담금 등 1,186,800 

교통・통신 인터넷, 전화 및 통신 요금 등 197,160 

회원사업 및 운영 회원 경조사비, 회원사업, 이체 수수료 등 618,780 

김련희 특별사업  

7,838,914(수입) - 7,326,503(지출) + 293,172(전월이월금) 차기 이월액  805,583

열심히 회비를 내주시는 회원님께 감사드립니다.  

지로로 회비를 내주시는 회원님들께 부탁드립니다.  

은행납부 시 지로용지에 성명을 정확하게 기재해주시기 바랍니다.  

성명을 확인할 수 없어 소식지에 올리지 못하는 경우가 있으니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유엔기구에 전달하겠습니다.

민가협양심수후원회 (우) 08802 서울시 관악구 남부순환로 247길 14-3(행운동 1690-141) 만남의 집 전화 (02) 874-4063 | 전송 (02) 888-4470 | 홈페이지 www.yangsimsu.or.kr | E-mail : yangsimsu0@gmail.com 

● 회비를 내주신 분들 - 2016년 8월 

* 정성어린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강대준 10,000 강순례 10,000 강순영 10,000 강순희 50,000 강응길 10,000 강호민 10,000 고대립 10,000 고재형 10,000 고제헌 20,000 공진하 20,000 구본승 5,000 구선희 10,000 권기순 10,000 권미경 20,000 권오헌 50,000 권장희 10,000 권정기 10,000 권처흥 10,000 김경구 5,000 김경중 10,000 김광선 20,000 김광태 10,000 김교영 이해옥 20,000 김기수 지명순 20,000 김길자 50,000 김난영 10,000 김대봉 5,000 김덕진 10,000 김동만 10,000 김동원 200,000 김력균 5,000 김명호 20,000 김미령 10,000 김민제 30,000 김병관 10,000 김병철 10,000 김선영 5,000 김성영 10,000 

김성옥 10,000 김성철 10,000 김수진 5,000 김애숙 10,000 김영규 20,000 김영호 10,000 김은정 20,000 김인순 10,000 김재현 20,000 김재홍 고현희 50,000 김정라 20,000 김정현 5,000 김제영 10,000 김종일 10,000 김진양 10,000 김창수 5,000 김충례 30,000 김태상 5,000 김한상 10,000 김현식 10,000 김혜식 10,000 김혜정 5,000 김홍섭(사업자) 10,000 김효숙 30,000 김희찬 5,000 나명주 10,000 노혁 30,000 류경완 안현숙 30,000 류동수 10,000 류예선 10,000 류제춘 10,000 모두리세미 30,000 모아라 10,000 모지희 10,000 문일승 10,000 민기채 10,000 박강혁 10,000 박귀선 5,000 

박귀영 10,000 박금란 10,000 박기동 50,000 박동기 10,000 박선후 10,000 박세용 5,000 박수분 10,000 박숙현 20,000 박재만 10,000 박진도 10,000 박태동 20,000 박현숙 10,000 박현희 10,000 박형성 5,000 박희성 10,000 배춘실 20,000 백설애 10,000 백승호 10,000 서승종 10,000 서은성 10,000 설혜경 10,000 성영미 10,000 소미영 10,000 손영주 10,000 손일순 20,000 손혜련 20,000 송록희 10,000 송무호 10,000 송우엽 10,000 송정순 민상호 30,000 신귀영 10,000 신동숙 20,000 신동현 신재웅 20,000 신미순 20,000 신용승 10,000 신준호 10,000 심주이 10,000 안관혁 10,000 

안동석 5,000 안샘 10,000 안영봉 10,000 안은숙 10,000 안인숙 5,000 양인철 10,000 양해용 10,000 여혜정 10,000 오경희 10,000 오윤석 10,000 오은결 10,000 유기수 10,000 유기진 30,000 유상영 30,000 유성경 20,000 유승옥 30,000 유영호 10,000 유종인 10,000 윤규승 10,000 윤민례 10,000 윤민례 10,000 윤주미 10,000 윤진실 10,000 윤현숙 65,000 윤형근 5,000 이경도 10,000 이경미 20,000 이경자 20,000 이남현 30,000 이내관 10,000 이덕우 10,000 이명래 10,000 이미선 10,000 이미숙 10,000 이미숙 10,000 이미애 10,000 이병민 이지은 30,000 이봉재 10,000 

이봉주 윤노숙 20,000 이상준 10,000 이상희 10,000 이상희 10,000 이선아 5,000 이성형 50,000 이수호 10,000 이순실 10,000 이승미 10,000 이승헌 5,000 이윤 10,000 이윤섭 이정희 30,000 이윤성 20,000 이재성 30,000 이정규 10,000 이정규 10,000 이정섭 10,000 이정숙 50,000 이지아 10,000 이창규 10,000 이창기 20,000 이창희 10,000 이현근 김혜순 30,000 이호승 10,000 이호중 10,000 인미화 10,000 임소희 5,000 장경욱 100,000 장희자 10,000 전미라 10,000 전형범 20,000 정관호 10,000 정동익 10,000 정동희 10,000 정만기 5,000 정명숙 20,000 정봉주 30,000 정종만 10,000 

정향숙 10,000 정향숙 10,000 정훈철 10,000 조규응 10,000 조동문 10,000 조봉기 10,000 조숙희 10,000 조순덕 10,000 조진숙 10,000 조철호 20,000 주칠규 10,000 지상철 김연숙 20,000 진영배 10,000 최광운 10,000 최대식 10,000 최민 5,000 최보경 10,000 최선희 10,000 최옥순 10,000 최은선 10,000 최은선 10,000 최진수 20,000 최화섭 10,000 편상범 20,000 한상권 20,000 한상권 20,000 한영선 30,000 한용숙 10,000 허행란 10,000 홍세희 5,000 황철우 20,000 황해평 5,000 황현승 20,000 미주  

LA, W DC, Phila, Chicago  1,408,914 

자동이체 하실 분은 아래 은행을 이용해주세요 

 

국민은행 006-01-0601-098 권오헌 양심수후원 농협 053-01-112692 권오헌양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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