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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 없는 길

2017.01.16 23:56

안병길 조회 수:8078

수년 전 선배 목사님 부부와 히말라야 안나프루나에 간 적이 있습니다.(소식지 230) 12일 동안 산에서 9일 밤을 잤습니다. 그 때 느낌은 여기를 또 오냐이었습니다. 청정지역을 오염시킨다는 생각, 5~6년 지나니 그 때 힘들었던 일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지난 1212일 고향마을 동생 현섭이와 둘이서 네팔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카트만두 장캠프에서 1, 다음날 네팔 국내선 비행기 야티항공으로 포카라로 향했습니다. 이때는 맨 오른쪽에 앉아야 창으로 들어오는 히말라야 산맥의 설산 풍경을 볼 수 있습니다. 맨 동쪽 편 칸첸중가에서 에베레스트, 마차푸차레, 짐을 부치려니 짐에 대한 표도 없이 그냥 놓고 타라는 겁니다. 포카라 공항에 내려짐을 찾는데, 기계나 자동차로 운반이 아닌 커다란 짐수레에 사람이 끌고 옵니다. 낯선 풍경이지 싶다가 이게 답이다 싶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시방 3차 산업시대에 거의 기계화로 가동되는 공장들에서 사람들은 밀려나고 쫓겨나 일자리 빼앗겨 비정규직으로 알바로 일할 공간을 찾지 못하고, 죽음으로 내 몰리는데, 밀려오는 4차 산업은 국내에서 10년 안에 1800만개 일자리가 인공지능이나 로봇이 대체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니 2025년 취업자 2561만 중 1807만 명(71%)이 일자리 대체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나니 산업의 기계화를 반길 일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포카라에서 택시로 나야폴까지 1시간 반 택시비 2천 루피인데 물론 흥정은 가능하여 더 달라하기도 합니다. 영리한 포터가 1800루피에 흥정, 나야폴로 향하는데 눈앞에 다가오는 마차푸차레(MBC)가 장관이고 금세 손에 닿을 듯합니다.

현섭아, 한나절이면 갔다 오겠지?”

그럼 한나절이면 충분하지에서 금방 갔다 오지.”로 바뀌어 갑니다. 이렇게 시각은 직선이고 곡선을 무시하고 맙니다. 왔던 경험에 우리는 저 산을 5일 걸어야 됩니다. 직선은 굽이치고 내려갔다 올라가는 걸음은 생략한 채 뻗으려 합니다. 우리네 삶이 이렇게 굴곡이 많은데 오늘 대한민국은 직선을 선호하고 곡선의 부드러움은 생략한 채, 세계 1등을 향하여 오직 직선입니다. 돌아가면 뒤처지고 꼴찌로 낙오되기에 직진입니다.

포터가 1800루피에 흥정해주어 내린 뒤, 100루피를 보너스로 주었습니다. 첫 날은 힐레에서 자기로 했습니다. 좀 더 가면 디케퉁가에서 자기도 합니다. 롯지(잠자는 집)라야 우리나라로 치면 헛간입니다. 물론 좀 더 좋은데도 있지만 벌어진 틈 사이로 밖에 보이기도 합니다. 이튿날 오를 계단은 6천 계단이라 들었습니다. 한국인이 헤아렸다나? 또 오게 되면 헤아리겠다던 그 계단, 쑥대 하나 꺾어들고 1백 계단 오르면 하나 꺾어 주머니에, 중간에 오른쪽을 보면 안나푸르나가 배꼼 하얀 얼굴을 내밀어 유혹합니다. 거기에서 차 한 잔, 거스름돈이 없어 그냥 오니, 주인할머니의 원더풀!

첫 계단을 밟기 시작하여 44백 계단을 오르니 1차 끝이고, 한나절 올라 점심입니다. 울레리(1960M)를 지나 면타리에서 점심 뒤, 오후 5시에 고라파니(2750M)에 도착해 바라본 안나푸르나의 석양이 장관입니다. 사진에 못 담은 아쉬움을 달래고, 비수기라서 우리가 롯지 한 채를 독점했습니다. 이튿날 새벽 포힐에 올라 아침 맞이하는데 그 보다 더 높은 산들도 이름이 없는데, 오직 푼힐 (3193M)만 전망대로 이름이 있습니다. 푼힐에서 맞는 해돋이는 탄성을 지르게 합니다. 해가 오르면 마차푸차레, 안나푸르나, 릴리기아, 울레리기아(서쪽)에 비치는 아침햇살은 온 산을 황금색 불길로 뒤덮습니다. 셋째 날부터 계곡을 걷게 되는데 천연자연의 힘입니다. 뒤돌아보면 걸어온 길이 보이지 않아 내가 걸어온 길이 맞나 싶기도 합니다. 촘농(2170M)에 가면 어서 오십시오. 반갑습니다. 김치찌개, 백숙 있습니다.’ 한글 간판이 반기는데, 군둥내 나는 김치를 넣고 그냥 끓이면 국, 참치 통조림 몇 조각 들어가면 김치찌개, 김치볶음밥도 됩니다. 재미있어 김치볶음밥을 시켰습니다. 한국에서는 버릴 것 같은 김치. 그래도 김치입니다. 전에 세어보았던 3200계단을 내려가니 세 살배기 어린여자아이가 나마스떼하기에 사탕을 두어 개 꺼내니 하나 더 달라고 합니다. 할머니 몫까지. 얼마나 귀엽던지, 시누와(2340M)에서 4일 째 잠자고, 데우랄리(3230M) 1,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MBC, 3700M) 점심 ABC로 향하는데, 고작 해발 430M2시간 넘게 걸어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 4130M)에 안겼습니다. 처음 왔을 때 하느님의 자궁으로 느꼈던 바로 거기에 섰습니다. 한층 더 감격에, 쌓여있는 만년 설, 계곡 만년설은 녹아내리느라 비명을 지르고, 5년 전 발을 닦을 때는 물에 얼음이 데그럭, 데그럭 했는데 오늘은 얼지 않았습니다. 식당에서 밥 먹을 때 추워 못 먹으니 식탁에 두꺼운 커튼을 치고 식탁 밑에 가스버너를 켜고 돈 받았었는데, 이번엔 그것 없이 먹었습니다. 이것이 온난화 덕인지,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하나 잊은 것이 있습니다. 둘째 날 440 계단 오르던 날 한국인 부부가 고라파니에서 내려오며 힘드시겠어요.” 라는 여인의 말이 귓가에 남았습니다. 자기들은 ABC에서 반대로 오고 있고, 우리는 그쪽으로 가고 있고, ABC에 오르기는 한 길이고 똑같은데 무슨 고생? 그 말에 약간은 언짢았습니다. 똑같은 길인데, 마치 자기는 쉽게 걸은 것 같은 말. 일본인 다섯 명을 만났습니다. 기껏 한 두 마디 일본어인 내가 그들을 활짝 웃게 했습니다. “니 빠다 몬로데스네!” 가장 일본적이라는 ! 아름답다.” 는 그 말에 작은 채마 전 찍고 있던 두 여인이, ABC에서 내려오는지 따듯한 햇볕에 감은 머리 말리던 아가씨도, ABC 내려오는 길 만났던 젊은 청년은 머리에 하트모양하며 코리아 사랑을 외칩니다. 히말라야로 가는 서울의 한걸음부터 ABC까지 그 누가 날 대신하여 걸어줄 수 없는 길, 오직 내가 걸어 발걸음 떼어야 하고 떼어야 가는 길!

하루 13천 걸음에서 많게는 3만 여 걸음(하산 시)까지 내가 걸었습니다. 우리네 삶도 다른 누가 아닌, 목사나 스님도, 정치인, 하느님도 아닌 내가 살아야지요. 내 인생은 예수님, 부처님도 아닌 나의 것입니다. 집을 떠나는 순간부터 돈, 버스, 비행기, , 물까지 네팔에서는 식당에서 물을 안줍니다. 홍차나, 밀크티 아니면 생수도 사먹어야 합니다. 안나프루나 산행은 돈에서 돈으로 끝나고, 계단에서 시작하여 계단으로 끝납니다. 9일 밤 산에서 지내며 걸은 계단은 약 10만 계단입니다. 누군가 첫 걸음을 걸었고, 산속마을 사람들끼리 다니던 그 길을 이제는 여행자들에게 내어주고 있습니다. 하늘 길도 누군가의 한 걸음부터 시작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그는 그의 걸음으로 그의 길을, 난 나의 걸음으로 나의 길을 끝없이 걸었습니다. 히말라야 안나프루나(4130M) 비를 머금은 먹구름은 무거워 산을 못 넘고, 새하얀 깃털 같은 흰 구름만 겨우 넘는 산. 가진 것 모두 내려놓아 가벼워져야 넘을 수 있는 산에서 내려와 오늘도 걷고 있습니다. 하늘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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