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의 집 거주]통일애국열사 기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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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념과 의지의 강자!! 불굴의 통일애국열사들이시여!! 

통일된 조국에서 영면하소서!!Image 1.jpg                            

    금재성선생님.png  최남규선생님.png  김석형선생님.png

    김선명선생님.png  리종선생님.png  리종환선생님.png

    조창손선생님.png  정순택선생님.png  정순덕선생님.png 

    문상봉선생님.png  홍경선선생님.png  김도한선생님.png  

    류운형선생님.png  고성화선생님.png   Image 1.jpg

 

 

                                   ▶ 추도사 

   자주통일의 염원을 안고 한 생을 보내신 선생님들

                                                                                     

                                    권오헌 ()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

 인연(因緣)이란 말이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연분 또는 사람이 상황이나 일, 사물과 맺어지는 관계입니다. 비슷한 일로 연고(緣故)라는 말도 있습니다.  혈통 성분 또는 법률 따위로 인연을 맺는 관계입니다.  사람들은 부모 형제같은 혈연관계 말고도 그러한 가족 못지않게 특별한 인연으로 가족 이상의 인간적 관계를 맺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하여 그러한 인연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 자기 삶의 한 부분이 되어 마음속 깊이 남아 있게 됩니다.  

오늘 ()정의·평화·인권을 위한 양심수후원회 회원들이 그러한 특수한 인연으로 존경하고 사랑하며 끈적한 정을 맺었던 분들을 추모하게 되었습니다.

이분들은 분단시대의 아픔을 대신했던 비전향장기수들이었고 평생을 자주통일의 염원으로 치열한 삶을 살아오시며 혹은 가시밭길을 혹은 영광의 길을 걸으셨기에 통일애국열사로 추앙받으셨습니다.

비전향장기수, ()양심수후원회, ‘만남의 집이란사람과 단체가 머물 곳은 바로 이분들과 회원들이 특별한 인연을 맺게 된 조건이었고 자주 민주 통일이란 시대의 요구를 공유하면서 혈연이상의 동지적 관계로 잇게 한 요소로 되고 있었습니다.

비전향장기수가 갇혀 있었기에 양심수후원회가 생겼고 이 분들의 석방운동과 후원과정에서 만남의집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만남의집은 비전향장기수들과 후원회원들이 특수한 인연을 맺게 하는 공간이었고 분단시대 자주통일의 염원과 지향 속에서 혈연관계 못지않은 인연과 연고를 갖게 되었습니다.

()정의·평화·인권을 위한 양심수후원회는 1989년 비전향장기수의 석방과 후원을 목적으로 출발하여 창립 10년 만에 250여명 전원을 석방시켰으며 200092일 비전향장기수 63명의 1차 송환운동을 주도했습니다.  이같은 석방과 송환을 이루는 데는 이분들을 양심수로 규정한 일과 떼어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바로 분단조국의 자주통일을 위해 수십 년 옥고를 치루면서도 정치적 신념과 양심을 지켜왔기에 양심수로 규정했으며 이를 계기로 국내 인권단체와 국제사면위원회도 비전향장기수들을 양심수로 규정, 방운동과 송환운동에 함께 했었던 것입니다.

만남의 집은 수십 년 옥고 끝에 감옥문을 나왔지만 가족도 가실 곳도 없었던 비전향장기수들의 머무는 곳으로 19891016일 처음으로 구로동 만남의 집을 마련했습니다.  그 뒤 구로동(91.4.6)으로강북구 수유동(93.3.14)을 거쳐 오늘의 낙성대 만남의 집으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94.5.11)  물론 이밖에도 봉천동 만남의 집’ ‘낙성대 만남의 집이 별도로 운영되었고 1999년 비전향장기수 전원석방되면갈현동 만남의 집도 모금하여 마련했었습니다.

낙성대 만남의집은 여러 가지 특별한 사연을 갖고 있습니다.  ()양심수후원회 부회장이셨던 김지영 원장께서 비전향장기수 선생님들의 안전한 생활을 위하여 보금자리로 ()양심수후원회에 넘겨주셨습니다.  선생님들의 특별한 신분으로 전셋집을 자주 옮겨야 했었는데 이 곳으로 옮긴 이후에는 내 집처럼 공안들의 접근도 금지되었습니다.  그러나 19947월 원인모를 화재로 2층이 모두 불타고 재난을 당했지만 후원회원들의 헌신과 후원으로 한 달 만에 집수리를 마치고 거창한 새집들이를 할 수 있었습니.(94.8.25)

오늘 후원회원들이 모시는 선생님들은 어떤 규정성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 곳에서 공동체 성원으로 함께 하셨고 오랜 옥고의 후유증과 노환으로 세상을 떠나가셨습니다. ‘갈현동 만남의 집에 계셨던 선생님이나 지방의 대전 사랑의 집’, 대구 민들레집’, 광주 통일의 집에 계셨던 선생님들 중에도 평생 염원인 통일세상을 보시지 못하고 별세하신 분들이 많습니다. 그 가운데 많은 분들은 북녘으로 송환되어 사시다가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또한 ()양심수후원회가 양심수로 규정하고 석방운동을 했던, 이미 세상을 떠나신 모든 비전향장기수들이 당연히 추모의 대상이지만 오늘 모시는 분들만남의 집에 계셨다가 돌아가시어 직접 장례를 모셨던 금재성, 최남규, 정순택, 정순덕, 문상봉, 고성화, 김도한, 선생님과 송환되어 북녘으로 가셨지만 남의 집의 상징이셨던 리 종, 김석형, 리종환, 김선명류운형, 홍경선, 조창손 선생님만으로 제한하게 되었습니다.

선생님들은 이미 세상을 떠나신지 오래되었습니. 이제는 보내드리는 슬픈 시간이 아니라 평생을 자주통일을 위해 험한 길을 살아오셨던 조국사랑 정신을 기리고 배우며 못다하신 민족적 과제를 다짐하는 시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선생님들 한분한분의 살아오신 길은 한두 권의 책으로도 다 담아낼 수 없을 것입니다.  신념의 강자불굴의 애국투사로 불리는 강한 모습 못지않게 누구보다 따뜻하고 정이 넘치는 분들이셨습니다. 불의와 모순에는 한 치의 틈도 없이 엄격하셨지만 사람에 대한, 민중에 대한 한없는 애정이 바로 선생님들의 한생을 규정하게 하였습니다.  여기서 선생님들을 기억하는 단 한 가지 씩만을 떠올린다면, 금재성 선생님은 낙성대 만남의 집에 오시기 전, 임은영 후원회원이 신접생활하는 좁은 공간에서나마 마치 시아버지처럼 모셨던 터라 서로의 인간적 정이 두터웠습니다.  청진교원대학 교수이셨던 최남규 선생님은 언제나 내 고향은 청진(또는 명천) 내 고향으로 보내달라!” 하셨지만 6.15공동선언이 있기 6개월 전에 별세하시어 안타까웠습니다.  정순택 선생님은 공안기구의 생명을 빌미로 한 강제전향 행패를 규탄하여 <한겨레신문>에 두 번이나 광고를 내어 강제전향은 전향이 아니다!“고 하셨으통일합시다국가보안법 철폐어깨띠를 하고 전국곳곳을 다 다니셨습니다.  정순덕 선생님은 낙성대 만남의 집에 계시면서 비전향장기수 선생님들을 극진히 모시면서 뇌졸증으로 오랜 투병을 하시다 돌아가셨습니다.  리종 선생님은 처음으로 구로동 만남의 집에 오신 이후 2000년 송환되어 가실 때까지 만남의 집을 지키는 가장 연세가 많으신 선생님이셨습니다.  한없이 자애로우셨지만 역사의 반동에는 결코 용서치 않는 엄격한 성품이셨습니다.  김석형 선생님은 원칙론의 실천자, 신념의 강자로서 전형적 모습이셨고 서울대 팀에 의해 발행된 증언록 나는 공산주의자올시다의 주인공이셨습니다.  리종환 선생님은 김선명 선생님과 함께 최장기수이셨지만 1993년에 먼저 출소하시어 옴시롱감시롱회원들의 절대적 존경과 사랑을 받으신 정이 철철 넘치신 분이셨습니다.  김선명 선생님은 1995년에 출소하시면서 세계 최장기수로 기네스북에 올랐고 출소환영식과 관련 성대 만남의 집이 경찰에 포위당하는 행패가 자행되기도 했습니다.

 

선생님들이시여!

오늘 저희들은 선생님들을 기리고 추모하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마음과 뜻이 만나는 필연성으로 인연을 맺고 그런 연고가 있기에 선생님들을 누구보다 가까이 모시면서 정들었던 관계를 영원히 소중히 간직하려고 다시 모였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선생님들의 평생염원이셨던 자주통일로 가는 길이 아직도 험난하기만 하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오늘의 통일정세는 사대매국세력의 외세공조와 동족대결정책이 위험수위를 넘어 이제는 일촉즉발의 위기로 치닫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민족은 숱한 외세침략을 당했지만 끝내는 침략자를 물리치고 민족적 자존과 전통문화를 지켜낸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8천만 우리겨레는 반드시 외세의 지배와 간섭을 물리치고 조국의 자주통일세상을 이뤄낼 것입니다.

언제나 남은 사람들에게 힘을 주시고 편히 잠드시길 빌겠습니다.

                                                                                                                               권오헌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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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선생님들을 추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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