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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헌 민가협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이 지난 12월26일 오후 서울 강북구에 위치한 자택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임화영 기자

권오헌 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 “양심수와 국정농단 범죄자가 한 감옥에 있을 순 없다”  

권종술 기자 epoque@vop.co.kr    발행 2018-01-01 10:42:25     수정 2018-01-02 10:12:44 

                                          
“2017년은 촛불항쟁으로 정권을 바꾼 뜻 깊은 한해였으며, 사대매국 범죄자를 감옥에 보낸 해였다. 따라서 적폐청산이 이뤄져야하는 해이기도 하다. 지금 문재인 정부가 잘하고는 있지만 아직도 남은 과제가 있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생각하는 목요집회 참여자의 입장에서는 국가보안법, 양심수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는 문제에 대해 제기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 취임, 광복절, 추석, 성탄절, 연말 등 양심수 사면은 시간이 갈수록 의미가 퇴색될 수밖에 없다. 양심수는 많고 적은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부당한 권력에 맞서 싸운 사람들, 민중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투쟁을 하다 구속된 사람들, 양심수들이 지금 국정농단 사대매국 범죄자들과 같은 감옥에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모든 양심수들이 빨리 나와야한다.”

지난 12월28일 서울 종로 탑골공원 앞에서 열린 1151회차 ‘국가보안법 철폐와 양심수 전원 석방을 위한 목요집회’에서 권오헌 민가협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은 “양심수들이 지금 국정농단 사대매국 범죄자들과 같은 감옥에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면서 ‘양심수 전원석방’, ‘배제없는 양심수 석방’을 민가협 어머니들과 함께 촉구했다.

“부당한 권력에 맞서 싸운 사람들,
민중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투쟁을 하다
구속된 사람들, 양심수들이
지금 국정농단 사대매국 범죄자들과
같은 감옥에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추운 거리를 울렸던 권 회장과 어머니들의 호소에 문재인 정부는 끝내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지난 2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2018 신년 특별사면 실시’를 발표했지만 그 명단 속에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과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등 양심수는 포함되지 않았다. 심지어 사면 가능성이 거론되던 제주해군기지 저지 투쟁, 밀양 송전탑 투쟁과 관련된 이들도 배제됐다.

지난 12월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앞에서 열린 '제 1150회 양심수 석방과 국가보안법 철폐를 위한 목요집회'에서 양심수후원회 권오헌 명예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지난 12월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앞에서 열린 '제 1150회 양심수 석방과 국가보안법 철폐를 위한 목요집회'에서 양심수후원회 권오헌 명예회장이 발언하고 있다.ⓒ김슬찬 인턴기자

“모든 양심수들이 빨리 나와야한다”는 일념으로 1993년 9월23일부터 시작된 ‘국가보안법 철폐와 양심수 전원 석방을 위한 목요집회’에 거의 매주 빠지지 않고 참여하고 있는 권 회장의 마음은 그 누구도보다 아쉬웠다. 그 이전부터 꾸준히 양심수 석방과 후원활동을 해온 권 회장에겐 아쉬움을 넘어 과연 촛불 이후 무엇이 달라진 것인지 분노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이런 현실은 ‘국가보안법 철폐와 양심수 전원 석방을 위한 목요집회’가 김영삼 정권을 지나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 시대와 이명박 박근혜 시기를 넘어 문재인 대통령 집권기까지 24년 넘게 이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시대가 바뀌었다고 하지만 양심수는 여전히 감옥에 있고, 이들을 가두는 무기가 됐던 국가보안법은 여전히 건재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국가보안법이 건재하고, 감옥에 여전히 양심수가 갇혀있는 현실은 ‘폐암 4기’ 투병중인 그가 여든이 넘는 나이에도 목요집회는 물론 수많은 집회현장에 빠지지 않고 나가게 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 그를 만나 인권과 민주주의 그리고 자주와 민주, 통일을 위해 걸어온 지난 팔십년의 시간과 앞으로의 바람에 대해 들었다.

2017년 7월 폐암 4기 진단
“움직일 수 있는 한 앞으로도
열심히 움직이자는 각오로 산다.
양심수후원회, 국가보안법 폐지, 목요집회 등
평화통일 행사는 늘 안 빠지려 한다”

권 회장이 폐암4기 진단을 받은 건 지난 2016년 7월이었다. 진단 결과 이미 많이 암이 전이된 상황이었지만, 다행히 이후 검진에선 더 확산되거나, 진행되지는 않는 상황이라고 한다. “나이가 이미 여든이 지났다. 삶에 대한 큰 욕심이 있거나, 하진 않는다. 살아온 삶에 대해서도 내 스스로 힘닿는 데까지 노력을 했다고 자부하고, 만족한다. 그럼에도 암 4기라는 이야기를 들으니 살아온 삶을 이제 조금씩 제대로 마무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움직일 수 있는 한 앞으로도 열심히 움직이자는 각오로 산다. 글 쓰는 활동은 조금 줄였지만 양심수후원회, 국가보안법 폐지, 목요집회 등 평화통일 행사는 늘 안 빠지려 한다.”

권오헌 민가협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이 지난 12월26일 오후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자택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권오헌 민가협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이 지난 12월26일 오후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자택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임화영 기자

권 회장은 거리에 직접 나서는 실천적 활동 이외에도 그동안 써온 글들을 모아 지난 2017년 10월 ‘양심수도 국가보안법도 없는 세상’, ‘자주없이 통일없다’, ‘살아온 발자취 역사가 되어’라는 제목을 달아 세권의 책으로 출간했다. 이번에 낸 책은 지난 1991년부터 2002년까지의 글을 추려서 펴낸 ‘인권을 다지며 자주통일의 길로’에 이어 2002년부터 2017년까지의 글을 모은 두 번째 책들이다. 이 책 서문에서 권 회장은 “우리 사회에는 서로 양립할 수 없는 용어와 기구가 있다. 한편에는 부당한 권력과 국가보안법·국가정보원·공안검찰·보안수사대가 있고, 다른 한편에는 촛불시민과 정의·평화·인권·평등 등이 있다. 이 대립 사이에서 양심수가 생겼다. 양심수는 바로 불의와 모순, 특히 부당한 권력과 사회정의 실천 과정의 산물이다. 양심수는 개인이나 소수 이익이 아니라 다수의 이익, 공동선을 위해 양심에 따라 활동하다 구속된 의인들”이라고 말했다.

“양심수는 바로 불의와 모순,
특히 부당한 권력과 사회정의
실천 과정의 산물이다”

‘양심수’라는 용어와 개념에 대해 여러 의견이 있지만 권 회장의 양심수 정의는 그 어떤 학자들의 의견보다도 분단과 국가보안법이라는 한국적 모순에서 비롯된 양심수 문제의 성격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의 이런 정의는 1937년 충남 홍성의 농촌지역에서 태어나 한국전쟁과 4.19혁명, 5.16쿠데타, 유신과 1980년대 민주화 투쟁 현장, 오늘의 양심수 석방, 국가보안법 폐지 투쟁으로까지 이어지는 한국현대사의 질곡을 몸소 헤치며 살았던 그의 삶과 투쟁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초등학교 밖에 나오지 못한 권 회장이지만 저산아 처한 고난의 시대를 학교삼아 공부하며 얻은 것이다.

“식민지 시절 농촌 어디나 마찬가지였듯이 나도 가난한 환경 속에서 배우기 힘들었다. 그래서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못했다. 더구나 부모님을 일찍 여의면서 학교를 다닐 형편이 아니었다. 결국 내가 살아온 과정과 내가 처한 사회적 조건이 내 교육의 현장이 됐다. 이것을 통해 사회와 역사를 보는 시각을 배우고 책을 읽으며 익혔다. 학교에 들어가진 못했지만 나름 공부하려고 애를 썼다. 중학교에 들어간 동창 책을 가져다 보면서 공부도 했고, 보통고시(공무원시험) 강의록 등을 통해 공부를 하기도 했다.”

권오헌 민가협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이 지난 12월26일 오후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자택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권오헌 민가협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이 지난 12월26일 오후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자택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임화영 기자

한국전쟁이 휴전 상태에 들어가면서 그는 일종의 농촌 청소년 운동인 4H운동에 함께했다. 농촌계몽운동인 4H운동은 Head(두뇌), Heart(마음), Hand(손), Health(건강)의 첫 글자를 따 부른 것이다. 농사 개량, 생활 재건 등 농촌 환경개선 활동을 하던 권 회장은 1958년 군에 입대했다. “입대 전에 장준하 선생 등이 내던 ‘사상계’를 57년부터 구독했다. 그 이전에도 ‘신세계’, ‘학원’ 등과 같은 잡지도 봤고, 당원은 아니었지만 진보당 기관지 ‘중앙정치’도 읽었다. 당시 ‘중앙정치’에 실렸던 조봉암 선생의 ‘평화통일에의 길’을 읽은 기억도 난다. 자유당 일당 독재에 대한 분노를 품고 있었던 시기다. 그리고 입대 뒤에 비밀 학습 비슷하게 ‘망향’이라고 조직을 만들기도 했다. 그 조직이 들통이 나서 조사를 받았는데 마침 나를 조사하는 이가 문학을 좋아해서 ‘현대문학’ 책을 사주고 무마시키기도 했다. 활동이라는 게 심각한 건 아니어서 커지진 않았다.”

농촌운동을 하던 시골청년이 노동현장을 만나고
혁신정당인 통일사회당에 입당에 입당하다

그는 군대에서 1960년 4.19 혁명과 5.16쿠데타 등 격변기를 지켜봐야했다. 제대 뒤 고향으로 돌아온 권 회장은 농촌 사회운동을 결심하고 1961년부터 1964년까지 농촌 사회운동에 나섰다. 마을회관도 짓고, 농촌에 구매부를 만드는 등 당시로선 선진적인 사업도 추진했다. 하지만 농촌 운동에서 한계를 느꼈던 그는 새로운 길을 떠나게 된다. 충북 단양에 한일 시멘트 공장이 건설되고 있었다. 아는 사람 소개로 현장에서 일하게 된 것이다.

“농촌 출신인 나로서는 새로운 세계를 만났다. 당시는 일을 하기 위해 도시로 농촌에서 몰려들던 시기다. 단양에 와서 공사 현장에 오니 일종의 인력시장 비슷한 것이었는데 새벽 3시에 일어나서 나가지 않으면 일을 못할 정도로 경쟁이 치열했다. 힘겨운 노동이지만 일하겠다고 모인 이들이 수천 명이 됐다.”

단양에서 일하다 서울로 올라온 그는 장준하, 함석헌 선생 등을 뵙고, 토론회 학술 발표회 교육 등을 쫓아다니며 공부를 했다. 그리고 한편으로 서울과 지방을 오가며 건설 장비 관리 일을 하게 됐다. 그러다 혁신정당인 통일사회당에 68년 입당하게 됐다.

“우연히 제천의 충북시멘트 현장에서 인텔리 노동자를 만나게 됐다. 박정희 쿠데타 때문에 학교서 쫓겨나 아는 이 소개로 현장에 일하고 있었던 교수였다. 그 사람을 만나서 얘기를 나눠보니 생각이나 사회를 보는 눈이 맞아 친해졌다. 그 분이 정치를 해보라면서 통일사회당 김철 선생(김한길 전 의원 부친)을 소개해줘서 만나게 됐다. 당시 통일사회당은 1961년 창당했다가 5.16으로 해산된 뒤에 1965년 재건한 상황이었다. 군사 정권하에서 유일한 혁신정당이라고 할 수 있고, 모인 이들의 사상적 폭도 넓었다. 김철 선생은 국제국장으로 활동하면서 주로 일본에 있어서 당시에 구속이 안됐다. 김철 선생이 주축이 돼 노동당 계열 등이 참여하는 중도좌파 성향의 국제 정당 연합체인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애 참여해 활동하기도 했다. 빌리 브란트 등 국제 인사 등과도 교류했다.”

임헌영의 소개로 시작한 남민전 활동
구속돼 3년4개월 복역한 뒤 출소한 그는
감옥에 남은 남민전 동지들을 도우며
삶의 전환점을 만났다

권 회장은 통일사회당에 있으면서 문화국장, 서울제1지구당 위원장 등으로 활동했다. 그리고 1972년 국제사면위원회(엠네스티) 한국지부 결성과, 1974년 유신에 맞서기 위해 결성된 민주회복국민회의에서 활동하던 권 회장은 경향신문 기자 출신인 임헌영의 소개로 1977년 남조선민족해방전선(남민전)에 참여하면서 삶의 전환점을 맞게 된다.

“당시는 통일사회당 당원 신분을 가지고 있던 상황이어서 말하자면 이중생활을 했던 것이다. 유신 체제라는 중요한 모순 속에서 이걸 해결 않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비상수단으로서 남민전을 생각했다. 우선 과제가 유신체제를 무너뜨리는 것인 만큼 남민전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그리고 민족자주민족해방, 반외세민족자주, 반파쇼민주화 등 남민전의 주요 강령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그러다가 1979년 구속이 돼 3년 4개월 살고 1983년 2월 출소했다. 출소한 뒤에는 남민전 구속자 가족들을 챙기고, 감옥에 남은 동지들의 석방운동에 힘을 쏟았다. 내가 제일 짧게 형을 받았고, 나머지는 5년, 7년, 15년, 무기 이렇게 받은 상황이기 때문에 열심히 옥바라지를 하는 건 어쩌면 너무나 당연했다.”

남민전 관련자들을 중심으로 ‘장기수가족운동협의회’가 꾸려졌다. 1985년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를 세우는데 큰 역할을 한 그는 공동의장을 맡았다. 민가협은 학생운동을 하다 구속된 학생학부모협의회, 민주열사유가족협의회, 장기수가족협의회, 민주인사가족운동협의회, 노동자농민구속자가족협의회 등이 모인 단체였다.

민가협 활동은 그동안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던 비전향 장기수 문제를
인권문제로 제기하며 공론화시켰다

민가협 활동은 그동안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던 비전향 장기수 문제를 인권문제로 제기하며 공론화시켰다. “남민전 구속자들이 풀려나면서 이른바 시국 사범들은 다 풀려났다. 하지만 나오지 못한 이들이 있었다. 이들은 빨치산 출신으로, 또는 간첩 사건으로 수십년간 옥고를 치르던 비전향 장기수들이었다. 정치적 신념 때문에 풀려나지 못하고 있는 이들을 양심수로 규정하고, 활동을 펼쳤다. 1989년 ‘민가협양심수후원회’를 결성하고 장기구금자 260명의 석방과 후원을 위한 운동과 면회, 편지, 영치금, 자매결연사업을 펼쳤다.”

비전향 장기수 문제가 공론화되기 시작하면서 이들이 분단 구조의 희생자임을 깨닫게 됐다. 그리고 이분들을 석방시키기 위한 운동은 자연스럽게 분단 극복과 자주 통일 운동으로 밀접하게 이어졌다. 인권운동이면서 동시에 통일운동의 성격도 갖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비전향 장기수 석방과 후원에 대해 처음엔 운동진영 내에서도 주저하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기독교, 불교, 천주교 인권위 등에서 양심수로 규정하는 등 비전향 장기수를 일반 사회가 공유하게 됐다. 석방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국제엠네스티의 요구도 나오면서 결국 현실이 됐다. 처음엔 노약자 고령자 순으로 몇 사람 나오다가 드디어 1999년 전원 석방이 됐다. 그리고 인민군 종군기자 출신인 리인모 노인이 김영삼 정부 시절 송환이 1993년 3월 성사되면서 송환의 길도 열렸다. 그러면서 이후에도 대대적인 송환 운동을 추진하고 노력한 끝에 2000년 9월 63명이 송환됐다.”

하지만 국가보안법이 가진 위력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다. 달리진 것으로만 알았던 세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지금도 이런 상황은 변화가 없다. 세월이 가면서 국가보안법과 관련한 상황이 조금씩 나아지기도 하고, 또 나빠지기도 하지만 근본적 변화는 없다. 지난 2004년 여의도에서 국가보안법 폐지를 외치며 단식 농성도 했지만, 당시 열린우리당 정권의 의지가 부족과 한나라당의 결사적인 저지에 막혀 끝내 무산됐다. 국가보안법이 얼마나 생명력이 질긴지, 13년이 지난 지금 문재인 정부에선 폐지 또는 개정이라는 말조차 꺼내는 걸 어려워한다. 국보법 폐지 투쟁이 얼마나 험난한 길인지 보여준다.”

“문재인 대통령이 한상균 전 위원장과
이석기 전 의원을 사면하지 못할
이유가 대체 무언가?”

권 회장은 ‘촛불 혁명’ 이후에도 국가보안법 폐지와 양심수 석방이 추진되지 않고 있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촛불 집회 당시 대표자 회의에서 제가 국보법과 양심수 문제는 적폐 중에 적폐라며 여러번 제안했지만 이런 내용은 본대회에 담기지 못했다. 사전 집회에서만 다뤄졌을 뿐이다. 분단이라는 적폐와 국가보안법이라는 적폐를 없애고, 양심수를 석방하는 것이야 말로 촛불 정신으로 반드시 실행해야 하는 중요한 과제다. 하지만 최근까지도 양심수 석방과 국보법 폐지 등은 단 한마디도 안 나오고 있다.”

지난 2017년 6월7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함세웅 신부, 민가협, 민변, 구속노동자회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와 각계 원로들이 양심수 석방 추진위원회 발족 기자회견을 진행 권오헌 민가협 양심수후원회 회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지난 2017년 6월7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함세웅 신부, 민가협, 민변, 구속노동자회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와 각계 원로들이 양심수 석방 추진위원회 발족 기자회견을 진행 권오헌 민가협 양심수후원회 회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권 회장은 특히 문재인 정부가 사면하지 않고 있는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과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은 반드시 사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2014년 민중총궐기에 대한 책임을 지고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이 감옥에 가있다. 이 사건은 그 뒤 백남기 농민 사망 등으로 이어진다. 2천만 노동자를 대표해 갇혀있는 것이다. 이석기 전 의원 같은 경우는 대법에서 내란음모는 무죄가 됐고, 지하혁명 조직 RO는 없다고 판결났다. 내란 음모 없이 선동으로만 징역 9년을 선고한 건 법리적으로도 맞지 않는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다뤘다면 입건조차 힘든 사안이다. 만약 이적표현물 소지 등이 인정됐다 해도 최근 추세는 집행유예 또는 이적의 목적이 없으면 무죄가 선고되는 양상임에도 매우 이례적으로 중형을 선고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한상균 전 위원장과 이석기 전 의원을 사면하지 못할 이유가 대체 무언가?”

문재인 대통령을 향한 아쉬움은 이뿐만이 아니다. 국가보안법과 양심수 석방과 관련한 이런 태도는 남북관계에서도 그대로 보이고 있다는 권 회장은 “현재의 남북관계, 한미관계를 보면 박근혜 이명박 정부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꼬집었다. “문재인 정부는 북핵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북핵문제’는 용어부터가 잘못이다. ‘북핵문제’가 아니라 ‘한반도’, ‘코리아 반도’의 핵문제다. 남이나 북이나 모두 핵을 만들 수도 저장할 수도 없도록 한 9.19 성명을 통해 보이듯 한반도 비핵화 문제인 것이다. 한반도에 핵을 먼저 들인 건 미국이다. 지난 1991년 핵을 가지고 나갔다고 주장하지만 확실한지 확인은 불가하다. 한미연합훈련이라는 명목으로 북침훈련을 하며 각종 핵전략 장비를 한반도에 들인다. 핵으로 북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핵은 70년 넘는 북을 향한 적대정책과 핵 압살의 산물이다. 이런 현실은 무시한 채 북핵문제라 지칭하며 그것을 해결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권 회장은 특히 집권 초기 문재인 대통령의 선택을 아쉬워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뒤 한반도 평화를 말하긴 했지만 이를 위한 구체적 움직임은 없이 한미동맹 강화를 통한 북핵문제 해결만 강조해왔다. 권 회장은 “이런 말은 박근혜 정부에서나 할 이야기”라며 “그 뒤로 미국하자는 대로만 끌려가고 있다. 처음부터 이 문제는 북미간의 문제라고 선을 긋고, 우리는 남북 관계 해결에 힘을 실어야 했다. 처음부터 한미동맹 강화, 북에 대한 제재 압박을 이야기하고 나니 선택할 카드가 별로 없이 미국에 끌려가기만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문재인 대통령 스스로도 말했듯이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따르면 된다.
평화를 만들고, 전쟁을 막으려면
당장 남북 관계부터 개선해야 한다”

그렇다면 남북의 평화를 위해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일까? “문재인 대통령 스스로도 말했듯이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따르면 된다. 안되면 특사라도 보내서 남북관계를 개선해야 한다. 평화를 만들고, 전쟁을 막으려면 당장 남북 관계부터 개선해야 한다. 남북관계 개선은 미국도 뭐라 못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하고 곧바로 그런 행보에 나섰다면 미국이나 다른 나라에서도 방해하지 못했을 것인데 첫 단추를 잘못 꿰서 너무 아쉽다. 지금이라도 빨리 공동선언 정신을 따라서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종북 논리가 여전히 위력을 발하고, 국가보안법 폐지와 양심수 석방이 철저하게 외면받고, 박근혜 정권 시절과 달라진 것 없는 남북관계는 이런 목소리들을 끊임없이 외쳐온 진보정당의 시련과 맞물리며 아쉬움을 더한다. 통합진보당이 해산되면서 자주와 통일의 목소리는 작아졌다. 얼마 전엔 통합진보당 출신의 민중당 윤종오 원내대표가 결국 선거법 위반 유죄 판결을 받고 의원직을 상실했다. 1950년대 후반 진보당 기관지 ‘중앙정치’를 구독하고, 또 1960년대 통일사회당에서 중요한 활동을 하며 진보정당 역사의 산증인이라고 할 수 있는 권 회장이기에 이런 시련이 더욱 아리게 다가온다.

권오현 민가협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 취임 직후인 지난 2013년 2월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에서 열린 '대통령 취임, 양심수 석방과 사면-복권을 촉구하는 각계 인사 선언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권오현 민가협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 취임 직후인 지난 2013년 2월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에서 열린 '대통령 취임, 양심수 석방과 사면-복권을 촉구하는 각계 인사 선언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1956년에 진보당이 해산되고 조봉암 당수가 1959년에 처형됐다. 1960년 5.16쿠데타 이후 혁신 정당들이 해산, 사법 처리되기도 했다. 앞서 1948년 국가보안법이 제정되면서 국가보안법이 정한 대통령의 단체해산권에 의해 정당과 사회단체 등이 해산되면서 남로당 등 혁신 진보정당들이 불법화된 예도 있었다. 그리고 이런 탄압은 통합진보당 해산과 윤종오 의원의 유죄판결로까지 계속 이어진다. 권력이 끊임없이 진보정당과 세력들을 탄압하는 것은 반대세력 탄압은 물론 사회 진보에 대한 기득권의 거부 반응,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자주 통일 운동으로 나아가려는 것을 방해하려는 의도가 함께 있다. 지금의 진보정당을 향한 탄압이 문재인 정부로부터 시작한 것이라고 보긴 어렵지만 문재인 정부가 자주 통일 운동에 대한 탄압을 막지 못한 건 사실이다. 진정 민주세력이라면 이런 탄압에 맞서 함께 싸우고, 엄호해야하지만 그렇지 못하다. 2013년 이석기 전 의원 구속동의안 처리 당시 민주당과 정의당 등도 박근혜 정권과 함께했다.”

“통합진보당에 찍힌 ‘부정선거당’이라는
부당한 낙인이 없었다면 지금쯤 제1야당으로까지
성장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한국 사회의 정치풍토에
획기적 전환을 이뤄냈을 것이다.
때문에 나는 당원은 아니었지만,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그러면서 권 회장은 다시 한 번 통합진보당 해산을 너무나 가슴 아파 했다. 그는 통합진보당 해산엔 지난 2012년 찍힌 부정선거의 낙인도 한몫을 했다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부정은 다른 사람들이 저질러 놓고, 이석기 전의원 등에게 떠 넘겼다. 그래 놓고 그들은 지금도 떵떵거리며 국회의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런 일이 없었다면 통합진보당은 지금쯤 제1야당으로까지 성장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한국 사회의 정치풍토에 획기적 전환을 이뤄냈을 것이다. 때문에 나는 당원은 아니었지만,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그렇게 분노하고 안타까워하기에 그는 지금도 여든을 훌쩍 넘긴 나이지만 목요집회를 비롯해 거리의 투쟁 현장에 빠지지 않는다. 그리고 삶을 통해 익히고, 투쟁을 통해 배워온 역사의 가르침대로 앞으로도 꾸준히 현장에서 그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몸이 아프다 보니 자신 있게 무얼 하겠다고 약속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움직일 수 있는 한은 이제까지 해왔던 양심수 문제, 국보법 폐지, 인권 민주주의를 위한 활동에 힘을 쏟을 것이다. 우리 민족의 자주성과 평화적 통일에 위해서라면 혼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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