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부시네

저기 난만히 멧등마다

 

그날 쓰러져간

젊음 같은 꽃 사태가

 

맺혔던 한이 터지듯

여울 여울 붉었네

 

-<진달래> 부분

 

 

이땅의 4월은 기억할 날이 많은 달입니다.

4.3, 4.19, 4.9, 4.16.

30여년전 4월이 되면 시조시인 이영도의 시에 곡을 붙인 <진달래>가 교정에 울려 퍼졌습니다.

우리는 이산하 시인의 시를 노래로 만든 <잠들지 않는 남도><진달래>를 함께 부르며 질곡 많은 역사속에서 꽃잎처럼 스러져간 젊음을 추모하였고 정의와 진리를 위하여 하나뿐인 목숨까지 서슴없이 바친 선열들의 삶을 이어가겠다는 결의를 다지곤 했습니다.

그 시절 4월의 노래들과 한데 어울려 낭송되던 시 가운데는 신동엽의 시 <껍데기는 가라>가 있었습니다.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는 가라.//

 

피가 끓던 청년학도 시절에는 비겁한 자여 갈라면 가라의 적기가를 연상시키는 분노의 외침과 우금치 마루를 하얗게 물들였던 척양척왜의 함성이 들리는 듯한 시의 1연과 2연을 좋아했지요.

그런데 30여년의 세월이 흘러 다시 읽어보는 시인의 노래에서는 온 겨레의 간곡한 소망과 통일된 나라가 나아갈 길을 선각자 처럼 밝히고 있는 시의 3연과 4연이 깊은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이 곳에선, 두 가슴과 그 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中立)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죽산 조봉암이 단지 평화통일 주장만으로 사형을 선고받고 죽어갔던 그 시절에 시인은 중립국가로 남과 북이 하나되는 것을 기원하고 있습니다.

서로 다른 사상과 제도를 가지고 있는 남과 북을 하나로 합치는 통일은 연방제 방식일 수밖에 없겠지요.

그리고 현존하는 두 제도, 두 정부를 그대로 두고 통일된 조건에서, 통일국가가 강대국 중심의 그 어떠한 정치군사적 동맹에도 가담하지 않고 중립국가로 되는 것은 필연적인 것이며 또 가장 합리적일 것입니다.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 가슴만 남고./ ,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4연에서 시인은 탱크를 녹여 민족의 끊어진 혈맥을 이을 레일을 만들고, 칼을 녹여 보습을 만들 반전평화와 군축을 웅변하고 있습니다.

지금과 같이 남과 북이 방대한 무력을 가지고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것은 서로간에 오해와 불신을 조성하고 평화를 위협하는 화근으로 될 것입니다.

통일국가는 외래침략으로부터 민족을 지켜낼 수 있는 무력 이외에는 남과 북이 함께 전면적인 군축을 실시하여 반목과 대결, 동족상잔의 근원을 제거하여야 합니다.

동족을 향한 총부리를 거두고 국방비로 쓰이던 막대한 예산을 인민들의 생활향상과 경제번영에 돌린다면 남과 북 모두에게 좋은 일이 될 것입니다.

 

이렇듯 세월의 흐름에 따라 시가 주는 느낌과 감동도 다르게 다가오지만 청년시절이나 장년이 된 지금이나 변함없는 것은 이 시가 주는 낭송하는 맛입니다.

신동엽의 <껍데기는 가라>는 참여시 논쟁이 벌어졌을 때 소위 순수시가 내포하고 있는 허구성과 기만성을 통렬히 비판하면서도 민중시가 안고있는 시적 완성도의 미비 또한 못내 탐탁해하지 않던 시인 김수영마저도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절창입니다.

오늘의 시는 1행 가름과 쉼표, 마침표를 이용한 호흡의 완급, 리듬의 강약의 방법이 실로 절묘한 <껍데기는 가라>입니다.

이 시 또한 낭송해봐야 그 깊은 묘미에 빠질수 있습니다.

 

 

껍데기는 가라

                신동엽(1930~1969)  

 

껍데기는 가라.

사월(四月)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 곳에선, 두 가슴과 그 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中立)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 가슴만 남고.

,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1967)

 

                  2018429

 

             대구교도소에서 김 경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