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국노들이 지배하는 나라의 노예들!

 

작금의 나라 돌아가는 꼴을 보면 여기가 인간이 살고 있는 땅인지 아니면 금수들이 사는 곳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인간이 살고 있는 땅에서 인간의 냄새는 사라지고 오로지 사람이 아닌 동물들의 모습만 보이는 것 같아 한스럽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시대의 공통점이 여럿이겠으나 하나를 꼽아 보자면 백성들(인민)은 보이지 않고 독재자 한 사람만을 위한 시대였다. 1인만을 위하여 한 국가가 존재하였던, 오직 박정희 단 한 사람을 위하여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그렇게 작동하고 있었고, 2016년 시방의 대한민국이 또 그렇다. 한 나라의 존재 이유는 자국민의 인간 존엄을 지켜가기 위함이지 권력자 한 사람만을 위함은 아니다. 일제 식민지를 벗어난 지 70년이 넘었건만 아직도 우리는 식민잔재를 지우지 못하고 일제에 충성을 부추기고, 혈서까지 써가며 일본 천황에게 목숨 걸었던 일본군 장교를 반신 반인 이라며 섬기다 못해 그의 딸을 대통령 자리에 까지 앉혀놓았다.

그 결과를 보고 있는가? 그 아픔을 느끼고 맛보고 있으신가 묻고 싶다. 아버지에게서 보고 들은 게 백성을 밑에서 떠받들고 보살피는 게 아닌, 위에서 제 혼자 천상천하 유아독존으로 군림하려고 하니 나라가 시끄럽다. 또한 한국사를 국정화 하겠다는 오만과 아집에서 출발하여 지난 2015 12 28일에는 일본군 성노예(위안부)문제를 피해자인 할머니들과는 상의 한마디 없이 협상타결을 발표했다. 그것도 최종적이며 불가역적이라고! 일제 앞잡이들이 일제에 붙어 먹으며 처녀 공출 실적 올리려 혈안이 되어 촌구석까지 샅샅히 뒤졌다. 조선처녀들을 속이고 거짓으로 꾀어 일본군 성노예로 송출에 앞장섰던 면장, 이장, 구장의 부역자들이 처벌받지 않고 고스란히 살아남아있는 여기. ! 우리의 나라 대~한민국이 자랑스럽다.

12살 소녀 정소운 할머니, 15살에 끌려갔던 이용수 할머니는 대만으로 끌려가면서 금지되어있는 배 밑창 화물칸에서 일군에서 유린당하기 시작하여 대만 도착 후, 저항하자 전화기 코드로 전기고문 당하여 몇 차례나 실신했었다는 것을 지난 1 14일본군 성노예 한일 협의 무효 시국회의에서 들었다. 할머니가 끌려가기 3년 전, 1941년 관동군 사령부는 조선총독부에게 도라지 꽃 2만개를 주문했는데 도라지 꽃은 16~19살 조선 처녀를 부르는 암호. 오지 산간까지 이 잡듯 뒤져 가난했지만 건강한 아이를 선별했는데 서울 방산국민학교 일본인 교사는 제가 가르치던 반에서 어린아이 6명을 보냈다 한다. 군인 29명당 처녀 1. 한 일본인 노무동원업자(요시다 세이지) 1942~45년까지 제주 등지에서 조선인 5천 여명을 사냥했다고 실토했다. 중국 훈춘으로 끌려가신 김군자 할머니는 일본장교 요구를 거절했다가 오른뺨을 얻어맞아 고막이 찢어졌고, 정서운 할머니는 강제로 모르핀 주사 맞고 하루에 30, 많게는 100명까지 받아냈다 한다. 모르핀주사도 소용없다 싶으면 거적에 싸다 내다버려졌다는 이옥분 할머니의 증언. 중국 무단강 전선으로 끌려갔던 강일출 할머니는 장티푸스에 걸려 고열이 나, 받지 못하자 군용 트럭에 실려 산속에 버려져 일본군이 짚으로 덮고 태우려는 순간 천우신조로 조선인이 나타나 목숨을 건졌다. 일본군이 패전하자 증거 없애려 학살은 물론이요, 방공호에 모아놓고 폭탄을 터트렸고, 고향에 보내준다며 배에 실었다가 배를 폭파하기도 했다.

경남 남해소녀 박숙이 할머니는 조개를 캐다가 끌려갔다. 고향에 돌아와도 청나라에 끌려갔던 조선 처녀처럼 화냥년이라는 손가락질뿐이었다. 12~ 소녀가 생전처음 낯선 남의 나라에 끌려가 생전 보지도 못한 일본군에게 짓밟혔던 심정을 우리는 얼마나 공유하고 있는지! 성노예 문제 피해자가 수용할 수 있는 안이어야 한다 3년 동안 지저귀던 그네는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이라고. , 그녀는 철면피! 아베는 성노예는 전시하에서 보편적인 여성의 인권이다.” 라며 진심 어린 사죄와 책임 의식 없이 문제의 해결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아주 열등한자이다. 여기에 동조한 그네도 우열자다. 이런 우열자들이 일본과 한국을 지배하고 있다. 1213차 수요집회에 나오신 김복동 할머니는,

 우리 할머니들이 아무 힘이 없다고 해서 한마디 말도 없이 두 정부가 오고 가고 합의됐다고 하는데 세상에 그럴 수가 있습니까? 우리는 절대적 반대입니다. 우리는 구걸하기 싫어요. 돈 없이도 살 수 있어요.”

29일 조태열 외교부 2차관이 연남동 쉼터에 찾아오자 유희남 할머니가 하신 말씀이 크게 울린다. 당시에는 일본의 식민지였으니 아기들을 돌보아 줄 조선이라는 국가도 없었다고 치자. 시방 현재는 자국민을 보호해야 할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조선이라는 국가가 정치를 잘못하여 꽃다운 처녀 아기들이 사냥 당하듯 끌려가 일군의 정액받이 노릇하다 모진 목숨 끊지 못하고 숨죽여 살아왔다. 역사에 묻힌다 싶어 증언하고, 인간으로써 존재감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온 할머니들에게 그네 정권은 합의를 통하여 무엇을 얻었는가. 아베는 두 번 다시 이 문제로 일본에 시비 걸지 말 것”(불가역적) ”일대사관 앞 소녀상을 치워라” 2015 12 29일 아베는 합의 바로 다음 날, “어제로써 모두 끝이다. 더 사죄도 않는다.” 이런 안에 좋다고 사인한 게 이 나라의 그네정권이다. 열린 입이라고 정부가 최선을 다한 결과에 대해 무효와 수용불가만 주장한다면 어떤 정부도 까다로운 것에는 손을 놓게 될 것이라며 되려 겁을 주고 있다.

아베가 식민지배 사과나 법적 책임, 불법성 인정 없었음에도 그네의 정권은 아베의 사죄와 반성이라고. 아베는 일본정부의 책임 통감은 말하지만 법적 책임은 부인하고 있다. 지난해 6 12일 워싱턴 포스트 인터뷰 기사에서 그네의 뜬금없는 낙관론, “위안부 문제가 상당한 진전이 있었고, 현재 협상의 마지막 단계에 와있다” 6 11일 에는 도쿄에서 한일 간 국장급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박정희의 1965년 한일협정 때, 미국에 건너가 미국의 압력에 따른 것이었다.‘ 1951 9 15애치슨 미국무 장관이 시볼드(주일미국대사) 앞으로 시급히 한일관계를 정상화 하라는 훈령을 보냈다” 25일에는 총사령부가 재일 조선인의 법적 지위 문제를 한국 의무부와 협의하라고 일본 정부에 지시한다. 애치슨 미국무 장관이 시볼드에게 한일관계 정상화 지시를 내린 1951 9 15일은 한일관계와 동아시아 전후질서를 결정지은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이 체결된 지 1주일이 지난 시점이다. 원래 그 강화조약에는 한국이 연합국(전승국)의 일원으로 참가하게 되어있었으나 막판에 일본 쪽 요구로 제외됐다.’( ‘~’는 한겨레 참조)

당시 3억 달러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은 미국이었다. 한일 국교정상화는 미국의, 미국에 의한 미국을 위한 정치적 담합 이었듯 이번의 최종적, 불가역적담합 뒤에도 한일 삼국 군사동맹을 겨냥한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이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는 점은 50년 전 담합을 그대로 베낀 것이다. 박정희는 1965 5월 미국 방문에서 국제적 연환을 떠난 우리만의 독존이나 변명은 없다고 협정을 마친 뒤, 대국민 특별 담화에서 말했고 그네는 지난해 10월 미국으로 건너가 오바마와 정상회담 뒤 아베와 11월에 만났고, 그 뒤 그네는 한일관계 개선과 대능적 견지에서 이해해 달라 11 28일 대국민 메시지에서 말했다. 지난해 그네의 성노예 합의에 대한 미국의 얘기를 들어보자. 백악관 국가보좌관 한일 양국의 정부가 민감한 과거사 이슈인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합의를 도출한 것을 환영한다오바마, “정의로운 결과를 얻어낸 박의 용기와 비전을 높이 평가한다. 미국은 합의 이행을 도울 것. 타결은 북한 핵실험이라는 도전에 대한 한일 공동 대응능력을 강화시켜 줄 것이다.” 여기에 반기문까지 찬양하는 것을 보면 역겹다. 역사를 국유화, 사유화 할 수 있다는 그네의 무지와 오만이 제 자신은 복면 뒤에 숨고 똘마니들 시켜 맺은 협정. 애초에 무효다. 일본군 성노에 전쟁, 국가범죄는 정당성 없는 권력이 협상하는 게 아니다.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도 갖춘 정부가 여성 인권의 말소를 복전해야 한다. 이 글을 써내려 가며 부끄럽고 할머니들 이야기 쓰자니 가슴이 먹먹하고 눈물이 흐른다. 군수품 취급 받았던 일본군 성노예로 끌려갔던 할머니 뵈니 눈부십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