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에서 온 편지] 정경학님의 편지

2014.09.07 18:09

양심수후원회 조회 수:1587

정경학님의 편지


안녕하십니까?

추석을 맞으며 사회적으로나 지리적으로 먼 길을 찾아와 주신 양원진, 박희성 선생님들과 김익, 리정애 분들께 고마움의 인사를 드립니다.

지팡이로 걸으시는 불편한 몸으로 아무 일도 못하는 젊은이들을 격려해 주시려고 방방곡곡의 감옥들을 방문하시는 노투사 선생님들께 참으로 송구스럽고 죄송스럽습니다. 따뜻한 축복의 미소로 인사를 건네주신 권오헌 명예회장 선생님과 박창숙님 그리고 송우엽 동지를 비롯한 모든 분들께도 글로써 보답의 인사를 드립니다.

짧은 면회시간임에도 저만 버릇없이 장황하게 늘어놓아 크게 무례했습니다. 장기간의 침묵을 덜어내느라 자신을 다잡지 못했던 순간이였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남 먼저 추석명절의 진미가 가슴 가득 채워졌던 행복한 순간이기도 하였습니다.

마음속 깊이까지 헤아려지는 김익 사무국장님과 리정애님과도 따뜻한 얘기 못나누고 대신 다음 기회를 염두에 두어야 하여서 참 미안하고 허무하였습니다. 머지 않은 장래에 아무런 제한없는 환경에서 진종일 웃음꽃을 피울 수 있으리라고 스스로 위안해야 했습니다. 한울타리 안에 있으면서도 인사조차 나눌 기회가 없는 노수희 선생님과 김덕용 동지들과도 밖에서 함께 할 그날을 그려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감옥이란 최하층 인민의 막다른 골목입니다. 권력에 밟히고, 가난에 쫒기고, 사치와 쾌락에 빠져 넋을 잃은 사람들이 인간이하의 권리와 압제 속에 신음하는 생지옥입니다. 특히 정치적 반동과 불의에 항거하고 사회의 진보와 약자의 삶을 위해 싸우려는 이른바 정치범-양심수들은 어김없이 극형과 중형을 받게 되고 감옥안에서도 특별한 인격적 모욕과 가혹행위에 시달립니다. 하물며 엠네스티와 같은 국제적인 조직까지 생겨났겠습니까!

그만큼 감옥은 반동과 정의가 마주치는 시대 정의의 최전선이고 정치범으로서의 수용과정은 오히려 반동권력과 그 하수인들에 대한 체험적 이해와 분격이 사회의 어느 구석에서보다도 갑절로 쌓여지는 과정입니다. 물론 그 축적의 과정에는 법리에 적용되는 극단의 악법들과 그에 따른 각종 소송절차들 그리고 감옥안에서의 형집행 전과정이 복합적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여러 교도소, 구치소들에서 폭로되는 최근의 비인간적 사건들은 반동권력과 그 기계적 하수인들이 거리낌없이 설쳐대는 무자비한 만행장소가 바로 감옥이라는 것을 적나라하게 실증해줍니다. 보안관찰법으로 담장없는 감옥을 밖에서도 공공연히 운영하는 21세기의 인간생지옥-인권생지옥-정의와 양심의 생지옥을 세계의 눈 앞에 펼쳐 보이고 유엔을 비롯한 국제기구들의 책임있는 결단을 받아내야 하며 이런 생지옥 말소를 위한 세계적 “아이스 바스켓” 같은 운동도 벌어져야 합니다.

세월이 흐르고 계절이 바뀐다고 미래가 오는 것이 아니라 시대가 진보하고 정의가 확장되어야 미래가 열립니다.

구시대의 잔여물인 악법들이 사라지면 일제의 패망으로 친일부역이 끝나고, 독재시대의 끝장으로 파쑈의 하수인들이 더는 생겨나지 않았던 것처럼 그 법에 생존의 운명을 맡기고 인권탄압의 범죄자로 내몰리는 제2의 이근안 같은 사람들도 더는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일제시기나 독재시절에도 ‘국가’와 ‘법’ 집행을 위해 숱한 순결한 사람들이 악행을 저지르고 시대가 진보하자 죄인으로 징벌되었으며 후손들에게도 사회적 양심의 저주를 피해다녀야 하는 치욕의 유산을 물려주게 되었습니다.

인격의 가치와 인권의 평등을 자각하고 주장하며 그를 위해 싸우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그 때문에 정의와 진보가 하나하나 이루어져 온 것은 지나온 인류역사의 부정할 수 없는 진리의 기록입니다. 떳떳이 공개할 수 있는 정당한 인생관을 순간순간 되새기며 굳건히 하고 그 인생관을 스스로의 양심으로 결단코 지키려 한다면 어떠한 고난과 시련도 웃으며 즐길 수 있습니다. 왜냐면 그 인생관은 정의의 미래를 위하여 개인의 생명과 행복을 깡그리 바쳐야만 지킬 수 있는 삶의 최고 가치를 담보하기 때문입니다. 미래의 정의로운 주인공들에게서 정의인, 인간다운 사람으로 사랑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바로 오늘의 가장 큰 행복이고 끝없는 용기와 투지의 원천이 됩니다. 항일혁명열사들과 통일선열들의 한 생은 그러한 인생관의 귀감입니다. 이 인생관에는 과학적인 진리와 실천속에서 얻은 체험이 깃들어 있고 지켜주려는 책임과 헌신, 정직과 신뢰를 본질로 하는 가장 고상한 인간사랑의 원칙도 들어 있습니다. 이 인생관이 안겨주는 신념의 눈, 의지의 눈, 사랑의 눈에는 약자들의 웃음이 넘치는 미래가 현실로 보입니다. 웃으며 죽음도 고난도 맞받아 나가는 이러한 존엄높은 사람들을 돈에 팔려다니는 너울 인간들이 어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세월과 함께 신체는 노쇠하고 힘은 작아져도 옳고 그름의 잣대는, 정신력과 함께하는 신념은 늙지 않습니다. 오히려 무한의 완성으로 톱아 오릅니다. 그만큼 이기적 탐욕과 사치, 추잡한 쾌락과 협잡, 배신과 아부의 인간들에 대한 배척과 증오는 그만큼 더 커 갑니다.

용서한 악, 징벌되지 않은 악은 되살아납니다. 안정된 권좌를 위한 넬슨 만델라의 화해, 용서가 남아공의 악을 되살려 놓았고 민중이, 노동자 대투쟁이 열어준 민주주의의 대문으로 들어선 첫 민주정부가 정치세력의 안정을 위해 화해·용서한 독재의 악이 오늘 역사를 되돌리려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본받을 선열들의 전통이 있고 이어가야 할 통일과 번영의 진로가 있으며 그 길로 추동하는 반동의 심화되는 압박이 있기에 시대는 결코 오늘에 머물려 있지 않을 것입니다.

새날의 추석때에는 통일혁명의 원로 선생님들과 고마운 후원회 모든 분들까지 함께 즐거운 추억의 시간을 보내게 될 것입니다.

겨울 추위 이기실 준비 잘 하시고 건강하고 따뜻한 겨울 보내시기 바랍니다.


대구에서 경학 올립니다. 2014.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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