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략외세도 국보법도 없는 세상에서 편히 쉬십시오

 

남정현 선생님!

끝내 선생님께서 먼저 가셨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도 아니면서, 그 방역수칙 때문에 선생님 입원하시고 병문안 한번 못한 채 슬픈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선생님 평생염원이셨던 시장원리가 아닌 사람중심 세상, 침략외세 없는 자주통일 세상을 끝내 못 보시고 병마를 이기지 못하셨습니다. 때로는 허약해 보이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또 다른 모습의 몸도 마음도 그 철저한 의식세계도 의연하셨는데 선생님 찾아뵙고 겨우 두 달 사이에, 사람들이 미처 깨닫지 못했던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셨습니다.

 

어떤 때는 하루에만 열 번 넘게 전화를 걸어 주시며 권 선생, 집주소좀 찍어줘요. 지금 바로 택시타고 갈 터이니까라며 그렇게 당장 만나고 싶고 말씀 나누고 싶어 하시던 선생님의 정이 철철 넘치던 모습, 이제는 옛이야기로 남게 되었습니다.

 

지난 1013, 가을 단풍이 곱게 물드는 날이었습니다. 둘은 반갑게 만났고 늘 다니던 산채정식집에서 밀린 이야기 나누며 점심을 같이했고, 선생님 집구경 특히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책 구경하며 기념촬영까지 하면서 동병상련 마음으로 병마를 이기고 좋은 세상 꼭 함께 보자고 다짐했었는데 선생님께서 먼저 가셨습니다.

 

돌이켜보니 우리들 만난 지가, 60년대 말쯤이니 50년이 지났습니다. 외세와 분단시대 누가 그 해악의 주범이고 침략자이고 가해자인지, 군사 쿠데타에다 유신독재까지 그 패악시대를 풍자하던 선생님 작품세계에 흠뻑 빠졌던 때였습니다. 구중서, 임헌영, 신상웅 당대를 풍미하던 문인들과 어울리며 헤어지기 아쉬워하던 시대였습니다. 불의와 모순에 맞섰던, 그리하여 그 부당한 권력의 긴급조치와 국가보안법등으로 여러해 핍박받고, 그리고 또다시 만나게 되었지요.

 

어느 때부터인가 선생님의 주옥같은 글을 읽던 제가, 수십년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조국통일을 위한 정치적 신념과 양심을 지켜온 비전향 장기수들 문제를 비롯한 양심수석방, 국가보안법 철폐, 공안기구 해체, 침략외세 철거, 자주통일문제 등을 <한겨레 신문>이나 <통일뉴스> 등에 쓰고 있었는데, 선생님께서는 마치 그 어떤 작품을 읽고 평을 하는 것처럼 전화를 걸어 격려해 주셨습니다. 6~70년대가, 제가 선생님의 독자였다면 90년 이후에는 선생님께서 저의 거친 글을 읽어주셨습니다. 뒤에 선생님과의 대화 속에서 왜 그러했는지 그 사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6.15남북공동선언이야말로 최고의 문학작품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7천만 민족을 감동시킨 이 선언을 지키느랴 아니냐는 통일과 분단, 애국과 매국을 가르는 시금석이라 하셨습니다. 선생님께서 추구하는 문학은 무엇일까- ‘인간을 사랑는 작업이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사람사는 세상을 잘 알아야 하고- 그 현실이란 정치.경제.문화 등 인간활동의 모든 것을 말한다 했습니다. 결국 문학예술은 사람 세상의 모든 활동의 반영이고 불의와 모순을 고발하고 광정

(匡正)하는 임무까지 있다할 터였습니다.

 

선생님은 언제나 새로운 질서에 대한 낙관론을 잃지 않으셨습니다. 오늘 눈앞의 질서가 시장원리라면 머지않아 인간원리로 전화될 것이라는 낙관론이었습니다. 실제로 코로나 바이러스가 오늘 신자유주의 세계화체제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조화를 이룬다는 시장논리는 오늘 전세계적으로 그 무슨 부양책이라하는 긴급재정정책 등으로 그들이 비웃고 있던 전체주의 국가에서나 하는 일들을 답습하고 있습니다. 아니, 그 신자유주의 종주국이며 그 무슨 민주주의 표본이라고 하던 나라가 오늘 민주주의 파산상태를 보여주고 있으며, 빈부격차.인종차별등 지옥편을 보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의 인간 원리, 사람 중심주의는 바로 우리 민족의 홍익사상, 동학의 인내천(人乃天)사상에서 찾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새로운 질서에로의 전화는 우리 민족 고유사상에서 뿐만아니라 현대의 사람중심사상에서 찾는데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낡은 질서에서 새 질서로의 전화는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들의 불의와 모순에 대한 투쟁은 필수요건이었습니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한, 정의와 평화를 위한, 침략외세 배격과 자주통일을 위한 빈틈없는 투쟁이 요구되고 있다 할 터였습니다.

 

끝으로 선생님께서는 식도락을 즐기셨습니다. 혜화동로터리 인근에 있는 손칼국수집은 옛날부터 유명하여 자주 들렸는데 지난 여름 어느 날 마침 황건, 노중선 선생님과 그 집에 계시면서 전화를 주시어 저는 서울대병원의 진료시간을 늦추면서 칼국수집으로 달려간 일이 있었습니다. 고양시 장흥면 울대리에 유명한 도토리묵집(맛도 잊지 못하여)의 교외 나들이를 하며(넷이서) 쫄깃, 쫄깃한 독특한 맛의 도토리묵 식도락을 즐겼고 도봉산 오봉의 위용을 감상하기도 했습니다. 우이동 4.19국립묘지 입구 단골 찻집을 찾아 식도락과 동지애와 한시도 늦출 수 없는 다짐의 시간을 갖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만남과 대화에서 또하나 주변사람들 주의를 끈 것은 선생님 글들속의 문장력 못지않게 논리성과 문법적 완결성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렇게 소중했던 시간은 이제 더는 가질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 선생님께선 국가보안법, 침략외세도 없는 세상에서 오랜 염원 기다리시며 편히 쉬시기 빌겠습니다.

 

20201022일 권오헌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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