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시롱 감시롱
2010.12.17 14:16

혜순이 아줌마

조회 수 5467 추천 수 0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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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니 2010.12.18 14:25
    이고 다닌 것들-

    들고 다니는 것보다 이고다니는 게 훨씬 편합니다.
    하교길에 집보다 먼저 보이는 팽낭케 밭으로 눈길을 주고 작은 그림자를 찾습니다.
    점 같은 엄마가 일어서기라도 할라치면 반가운 맘에 책보는 던져두고 밭으로 줄달음치면서 엄메~~하고 소마냥 먼 소리로 부릅니다. 반갑게 만난 힘으로 엄마가 따놓은 고추푸대를 거뜬하게 머리에 이고 비탈진 밭두둑을 내려온 지  어언 35년이 흘렀습니다. 깻단도 이고 내려오고 명밭에 나무들도 뽑아오고 고춧대고 콩이고 수도 없이 이고 다녔습니다. 산감을 피해 나무해서 이고 오다 들킬라치면 냅다 부려두고 도망치던 그길. 술뒤지로 온다기에 술동이를 이고 들로 산으로 튀던 나날들.....
    그러고 중학교에 교복입고 우아하게 입학했ㄴㄴ데 잘난 언니들은 읍내서 주말마다 놀고 나보고 집에가서 쌀이며 김치등을 갖고 오랍니다. 쌀도 이고 김치독(프라스틱으로 만든 공모양의 김치통-샘물에 담글 수 있게 고리도 달려있던)
    도 이고 주말마다 30분을 넘게 차기 닿던 남바까지 이고 다닌 지 6년.....
    아~~~ 동네 우물에서 물동이에다 물길어 오던 때가 있었어요. 공회당에 모여서 쑤군덕거리며 놀리던 동네 머시마들 피해 물 뚝뚝 흘리며 부끄러움도 질질 흘리며 가슴마냥 출렁거리던 물을  바가지를 얹어 겨우 다스리며 종종 달렸지요.
    그렇게 이고 다니는 게 생활이 되다보니 몸 속에 저장된 유전자는 잠시 도시생활을 하는 내 몸 속에 숨어있다가 무겁거나 부피가 큰 짐만 보면 돌쇠마냥 바로 머리를 빌려줍니다.
     
    옴시롱 출판 기념회날 서산 봉례언니가 떡을 해온다기에 마중은 나갔는데 남부 터미날 근처에 차 대기가 영 마뜩찮아 진로백화저메다 파킹을 하고 떡상자을 받아들었는데 참 난감하였습니다. 짐꾼 아저씨를 부를 수도 없고 짐꾼이 되고야 말았지요. 떡 한 말을 능숙하고 이고 한번 전화 했다하면 오래 붙잡는 명희 언니의 전화를 받아며 강남 한복판을 걷는 진도여자~~``참으로 토픽감아닌감요?????/
    봉례언니 감사행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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