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시롱 감시롱

슬픈 생일날....

2009.05.28 17:02

양심수후원회 조회 수:1777

슬픈 생일날....
글쓴이 : 김혜순    
  엄마, 오늘은 슬픈 생일날이다.
왜?
엄마도 아프고 케잌도 안하고.
괜찮아. 엄마 서울가서 케잌 먹었어.
그런데 엄마 생일 선물 안사줘서 내 생일 때도 선물 안줘.
아니야....

엄마, 나 서점 들렸다 가도 돼?
그래, 너무 늦지는 말고, 아빠한테 연락해서 같이 차 타고 와.
알았어.

가을을 타나? 딸내미가 하교길에 밥먹듯 서점에 들러서 2~3시간씩 있다 오는 것이다. 허튼 데 눈길 두지 않고 책 보고 오는 것은 좋은데 가끔씩은 약속을 어겨가며 하는지라 훅타리기도 여러 차례였다. 그러더니 일주일 전부터는 그 동안 맡겨놓은 돈을 내노라 하고 심부름도 제법 해내며 용돈을 타내기 시작했다.
22일 드디어 결전의 날이 왔다.

지 아빠랑 찬바람을 잔뜩 몰고 들어오더니 머리맡에 포장된 책을 내려놓는다.
돈 버느라 행복할 시간이 없었던 어떤 사람이 4년간의 서울 생활을 접고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계룡산 갑사 부근의 시골로 내려가 사는 모습을 담은, <거 봐, 비우니까 채워지잖아>였다.
며칠을 골랐으나 뭘 사야할지 몰라 2층에 올라가 언니에게 물어서 샀다는 거다. 어쨌거나 나와 코드가 맞는 책이다. '콧날이 시큰해지고 눈이 ...'
그 밑에 낯익은 초록 표지가 있다. 문학과 지성사의 시집이다.
이건 그가 고른 것이리라. 목걸이는 안사주냐고 졸라대니 그 돈이면 옷 한 벌에 귀고리며 목걸이가 주렁주렁하겠다고 면박(?)을 주던, 그이의 숨결이 베인 시집.
내 생일날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낸 오빠, 후배들께 선생님께 이 시를 바칩니다.


저녁빛

붉은 저녁해 창가에 머물며
내게 이제 긴 밤이 찾아온다 하네......
붉은빛으로 내 초라한 방안의 책과 옷가지를 비추며
기나긴 하루의 노역이 끝났다 하네....
놀던 아이들 다 돌아간 다음의 텅 빈 공원 같은
내 마음엔 하루 종일 부우연 먼지만 쌓이고 ....
소리 없이 사그라드는 저녁빛에 잠겨 나 어디선가 들려오는 울먹임에 귀기울이네....
부서진 꿈들....
시간의 무늬처럼 어른대는 유리 저편 풍경들.......
어스름이 다가오는 창가에 서서
붉은 저녁해에 뺨 부비는
먼 들판 잎사귀들 들끓는 소리 엿들으며

잠시 빈집을 감도는 적막에 몸을 주네......


---저녁 어스름이면 우울증이 오는 너무나 이쁜 사람과
밤늦은 시각, 어떤 미녀 박사님과 술자리를 마치고 가로등을 벗삼아 추적추적 걸어갔을 오빠에게 심심한 위로가 되길 바라며 남진우 시집 <타오르는 책>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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