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기자회견 한 번 하기 힘드네..."

2009.05.20 21:15

양심수후원회 조회 수:4330

"아! 기자회견 한 번 하기 힘드네..."
<취재수첩> '고무줄 잣대'로 기자회견마저 막는 경찰
2009년 05월 20일 (수) 17:05:26 박현범 기자 cooldog893@tongilnews.com
   
▲20일 오후, 민생민주국민회의(준) 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들이 경찰의 '좌파단체, 상습시위꾼 2,500명 검거' 방침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아! 기자회견 한 번 하기 힘드네..."

서울 미근동에 위치한 경찰청 정문 앞에서 열려 온 시민사회단체들의 각종 기자회견은 이제 30미터 가량 떨어진 민원봉사실에서 해야 할 판이다. 장소를 옮기더라도 '조건'은 또 있다. 구호를 외쳐선 안 되고, '정치적 발언'을 해서도 안 된다. 경찰의 '기준'에선 그렇단 얘기다.

지난 4일 경찰청 앞에서 '경찰 과잉진압 규탄 기자회견'을 한 6명이 '불법집회 주동자'로 지목돼 경찰에 연행된 이후, 20일 같은 장소에서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500여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민생민주국민회의(준) 등 단체들이 경찰의 '좌파단체, 상습시위꾼 2,500명 검거' 방침을 규탄하는 '21세기판 긴급조치, 블랙리스트 부활 규탄 기자회견'에서다.

지난번처럼 연행자가 발생하지는 않았지만, 이날 기자회견도 참가자들보다 2배 이상이 많은 경찰병력에 겹겹이 에워싸인 채 힘겹게 진행됐다. 경찰병력에 밀려, 카메라 기자들과 기자회견 참가자들 간 거리는 1미터 남짓이었다.

   
▲경찰병력에 밀려, 카메라 기자들과 기자회견 참가자들 간 거리는 1미터 남짓이었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기자회견 개최를 막는 경찰의 이유는 전번과 같이 '횡설수설'이다. "정당한 기자회견을 하려는 데 왜 막냐"고 참가자들이 따져 묻자 한 현장 지휘관은 "여기 기자들이 어딨냐? 기자회견과 집회를 구분하는 기준이 뭐냐"는 황당한 답변을 해 주변을 아연실색케 했다.

이 현장 지휘관과 곽정숙 민주노동당 의원, 한국진보연대 황순원 민주인권국장이 입씨름을 벌이고 있는 것을 찍기 위해 <KBS>, <OBS> 등 방송 카메라 기자는 물론 일간지와 인터넷 언론사의 카메라 기자들이 좁은 공간에서 몸을 맞대고 비지땀을 흘리고 있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기자회견을 가로막는 이유를 묻는 한 참가자에게 "기자회견이 열리게 되면 기자들이 (통행을) 방해할 것이 예상되니까 여기서(민원봉사실 앞) 하라"고 말하기도 했다.

경찰 측에서 말하는 '통행방해'라는 이유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경찰청 정문 앞과 민원봉사실 앞의 인도 폭은 다르지 않다.

또 전번과 같이 이번에도 정작 시민들의 '통행'을 막은 건 경찰병력이었다. 경찰 측은 1시로 예정된 기자회견 전 이미 100여 명의 병력을 정문 앞쪽에 배치해 놨다. 시민들은 경찰 측이 열어주는 한쪽 귀퉁이를 통해 지나가야 했다. 15분여 간의 실랑이 끝에 정문 앞에서 시작한 기자회견에 참가한 이는 20여 명. 이들을 둘러싸고 인도 위를 메운 경찰병력은 세 배가 많은 60여 명이었다.

자연 "당신들만(경찰들만) 없으면 통행에 아무런 방해가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경찰병력이 인도를 메우고 있어 하는 수없이 도로까지 나가 영상촬영을 하던 한 방송국 카메라 기자는 도로에서 나오라는 경찰 관계자와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경찰은 이날 기자회견을 '불법집회'로  간주해 기자회견 참가자들을 에워쌌다.[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 경찰병력이 인도를 가로막아 경찰청 앞 길을 지나는 시민들은 한쪽 귀퉁이를 통해야 했다. [사진-통일뉴스 박현범 기자]
경찰이 '자의적 판단'으로 기자회견을 '불법집회'로 간주하는 것도 되풀이 됐다.

경찰은 기자회견이 시작되자 '구호를 외치고 정치적 발언을 한다'는 이유로 기자회견을 '불법집회'로 간주, 곧장 해산명령을 내렸다. 참가자들은 "기자회견에서 정치적 발언을 하지 말라는 게 말이 되냐?" "구호는 기자들이 외쳐 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며 따졌다. 지난번 기자회견에서 경찰 측은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미신고 집회는 막아야 한다"고 자의적으로 규정하기도 했었다.

경찰이 기자회견을 제재하고 나서는 것은 이처럼 법적 근거가 뚜렷하지 않은 '자의적 판단'인대다, '고무줄 잣대'이기도 하다.

보수국민연합 등 보수단체 회원 120여 명이 지난 8일 스티븐 보스워스 미 대북정책 특별대표의 방한과 관련해 서울 도렴동 외교통상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할 때 1-2미터 길이의 각목이 달린 피켓 30여 개를 들고, 1시간가량 구호를 외치고 함성을 질렀지만 경찰은 별다른 제지를 하지 않았었다.

경찰은 최근 들어 진보성향 단체들이 주최하는 대부분의 집회신고를 '불허'한 데 이어 이처럼 기자회견마저도 형평성에 어긋나게 대해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에 재갈을 물리려고 한다'는 비난을 자초하고 있다.

"침묵을 강요하고 반대를 말하지 못하게 하는 사회, 지금 우리는 그래서 새로운 긴급조치시대, 공포정치의 시대를 우려한다."(기자회견문 중)

   
▲ 이날 참가자들은 기자회견이 끝나고 나서야 겹겹이 에워싼 경찰병력 밖으로 나올수 있었다.[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박현범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53 “전쟁을 부르는 한미군사훈련 중단하라” 양심수후원회 2022.03.28 108
152 민족의 염원인 자주평화통일이 이루어지길 바라면서! file 양심수후원회 2022.03.29 112
151 ‘이 땅은 미국의 전쟁기지가 아니다!’ file 양심수후원회 2022.03.31 106
150 제주 구럼비, “첫 함선은 미국의 핵 항공모함이었다” [2022 자주평화원정단-1일차] 제주서 출정 선포식 file 양심수후원회 2022.04.11 92
149 “한미전쟁연습 중단하고, 미군 세균실험실 폐쇄하라!” [2022 자주평화원정단-2일차] 미군 세균무기실험실 폐쇄 행진 file 양심수후원회 2022.04.11 94
148 “우리 국민의 생명과 삶의 터전을 빼앗는 미군을 반대한다!” [2022 자주평화원정단-3일차] 김해‧김천 미군기지 반대 투쟁 file 양심수후원회 2022.04.11 87
147 “이 땅의 민중들이 아파하는 이 곳이 바로 우리나라의 중심이다” [2022 자주평화원정단-4일차] 소성리, 캠프캐럴, 캠프워커 file 양심수후원회 2022.04.11 84
146 군산에서 중국까지 전투기로 15분, 한반도가 미군의 전초기지가 되고 있다 [2022 자주평화원정단-5일차] 확장되고 있는 군산미군기지 file 양심수후원회 2022.04.11 102
145 미국에게 짓밟힌 땅, 평택에서 자주를 외치다 [2022 자주평화원정단-6일차] 세계 최대 해외 미군기지 평택‧오산 file 양심수후원회 2022.04.11 134
144 한반도 곳곳 미군의 전쟁기지 현실을 목도하다 [2022 자주평화원정단-7일차] 동두천‧의정부, 용산 file 양심수후원회 2022.04.11 105
143 "오늘 평화의 걸음이 일파만파로 커질 것" 6.15남측위 등, 한미연합군사연습 중단 집중행동 file 양심수후원회 2022.04.11 197
142 민주노총지지 재미협의회 “윤석열 정부, 노동개혁 정책 수립하라” file 양심수후원회 2022.04.18 115
141 북침 전쟁연습 당장 멈추라! 권오헌 / (사)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 file 양심수후원회 2022.04.18 127
140 10만 명 참여한 ‘이석기 전 의원 사면복권’ 탄원서, 청와대에 전달 file 양심수후원회 2022.04.18 153
139 “이 땅은 미국의 전쟁기지가 아니다” file 양심수후원회 2022.04.24 176
138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된 남북경협사업가 김호씨 석방 촉구 기자회견 양심수후원회 2022.04.28 229
137 경찰, 정부출범 직후 '평양공민 김련희' 압수수색 file 양심수후원회 2022.05.14 158
136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된 대북경협사업가 김호의 아버지 김권옥 양심수후원회 2022.05.16 137
135 효순미선 20주기 촛불정신 계승! 6.11 평화대회 참여를 제안합니다 양심수후원회 2022.05.17 145
134 조국통일촉진대회 준비위, ‘바이든 방한 규탄 기자회견’ 개최 file 양심수후원회 2022.05.25 152

CLOSE

회원가입 ID/PW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