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옥고 마친 장민호 씨를 조국에 살며 노모를 모시게 하라
국가보안법을 건 강제퇴거, 반인권 반인륜 야만행패



권오헌 (민가협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


다가오는 출소일
나는 여전히 갇혀 있으리
교도소 담장 따라 이어진 기나긴 철조망
조국강토 가로지른 채
반백년 세월마저 가둬버려
멈춰선 형기 마칠 길 없으리(이하 생략)


10월23일로 7년 형기를 마치게 되는 이른바 ‘일심회사건’의 마지막 출소 양심수 장민호 씨가 10월3일자 <자주민보>를 통해 발표한 ‘출소일(出所日)’이란 제목의 시(詩) 앞부분이다. 그는 미국시민권을 가졌기 때문에 그리고 국가보안법을 어겼다는 또 다른 결정적 이유로 출입국관리법에 따라 7년 넘게 손꼽아 기다린 82살의 어머니 품이 아니라, 아무 연고도 없고 가고 싶지도 않은 미국으로 강제퇴거 통보를 받고 있었다.

법무당국자의 통보대로 장민호 씨는 23일 형기를 마쳤지만 대전교도소에서 청주외국인보호소로 강제 이송 당했다. 감옥과 다름없는 이름만의 보호소였다. 이날 가족·친지들의 면회도 투명 플라스틱 사이로 이야기를 나누어야 했다. 형기를 마친 자유인으로써 누려야할 모든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 출입국관리법에 따라 ‘강제퇴거대상자’로서 조사를 거쳐 강제퇴거 여부를 가리게 될 것이다.

장민호 씨가 법무부당국자로부터 강제퇴거 통보를 받은 때는 지난 5월이었다. 본인과 가족들은 법무부와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이 같은 통보 내용의 부당성을 지적하고 노모와 함께 조국에서 살게 해줄 것을 호소하였으나 긍정적인 답변을 듣지 못했다. 한마디로 ‘국가보안법 위반 장기복역수’였기 때문이었다.

그에게 국가보안법 위반혐의 멍에를 씌워지게 된 것은 이른바 ‘일심회사건’이다. 2006년 10월 장민호 씨를 비롯한 이 사건 관련자들은 이른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되어 법정에 세워졌었다. 그리하여 2007년 대법원 최종판결에서는 이적단체구성·가입죄, 일부 간첩죄, 회합통신죄 등의 검찰상고가 기각되었고 검찰의 피의자 진술조서 등도 임의성과 신뢰성을 인정할 수 없으며 디지털 저장장치에서 출력해 유죄입증자료로 삼은 문건에서도 일부만 인정하고 대부분 무죄선고를 받았던 사건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7년이란 장기형을 선고 받은 것은 분단의 비극적 현실과 국가보안법이 살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전혀 예기치 못했던 또 다른 국가권력에 의한 형벌사태에 대처하여 인권사회단체들이 나서게 되었다. 지난 10월18일 민가협양심수후원회와 구속노동자후원회를 비롯한 15개 인권·노동·종교단체로 구성된 ‘공안탄압반대 양심수 석방과 사면·복권을 위한 공동행동’(양심수석방공동행동)과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 인권단체연석회의 등은 장민호 씨 가족과 함께 국가인권위원회에 ‘강제퇴거저지 긴급구제’ 신청서를 냈다. 또한 22일엔 법무장관과 면담을 신청하여 대신 나온 관계자에게 ‘강제퇴거’의 부당성을 제기하고 본인이 살고 싶은 곳에 살 수 있게 할 것을 촉구했다. 이어 23일엔 본인과 가족들이 출입국관리소에 ‘보호명령서’에 대한 ‘일시 해제’ 조치를 청구하였다. 그러나 어느 한 곳도 신통한 답변은 없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긴급구제발동’을 하지 않은 채 일반 ‘진정’으로 받아들였고 법무부 당국자는 (국가보안법의) 복역연수를 들며 쉽지 않음을 토로했다. 출입국관리소 또한 보호의 일시해제청구에 긍정적인 답변을 피했다.

과연 법무부 당국자가 말하는 강제퇴거와 관련 관련법과 규정은 요지부동인 것인가. 그렇지 않다. 출입국관리법 자체의 특례조항도 있거니와 보다 더 본질적인 것은 본인 의사에 반하여 강제퇴거라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짓밟는 반인권 반인륜 야만행패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는데 있다. 그 이유를 들기로 한다.

첫째, 사람은 누구든지 자신이 살고 싶은 곳에서 살 수 있는 권리가 있다.

헌법 14조는 ‘거주이전의 자유’를 규정하고 있다. 이는 국민이 원하는 곳에 주소와 거소를 설정하고, 이전할 자유뿐만 아니라 출국의 자유와 외국체류를 중단하고 자국으로 돌아올 수 있는 입국의 자유도 포함된다. 비록 장민호 씨가 미국시민권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다시 국적취득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

세계인권선언에서도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어떤 나라(자국을 포함한)에서든지 떠날 수 있으며 또는 자국으로 돌아올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3조2항)고 했다.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에서도 “모든 사람은 자국을 포함하여 어떤 나라로부터도 자유로이 퇴거할 수 있고”(12조2항) “어느 누구도 자국에 돌아올 권리를 자의적으로 박탈당하지 않는다”(12조3항)고 했다. 이러한 규정들은 하나같이 ‘누구든지 자신이 살고 싶은 곳에서 살 수 있는 본연의 권리’를 말하고 있다.

다음으로, 국가보안법의 죄를 범했다 해서 감행하려는 강제퇴거의 부당성이다.

출입국관리법은 제46조가 규정한 강제퇴거의 대상자 ①항외에 ②항의 제2호에서 규정한 강제퇴거의 대상으로 형법상의 살인, 강간, 강도, 절도죄, 성폭력 범죄, 마약 관련 범죄, 폭력행사, 보건범죄 등에 국가보안법 위반죄를 끼워 넣었다. 바로 강제퇴거 대상자에 각종 강력범죄에 ‘국가보안법 위반의 죄를 범한 자’를 포함시켰다.

수없이 항변해 왔듯이 국가보안법은 일제의 식민지 지배수단의 잔재이면서 냉전시대의 산물이다. 제정될 때부터 오늘까지 국민다수가 폐지를 주장해오고 있으며 유엔인권이사회를 비롯한 국제인권단체들이 한결같이 폐지를 권고해오고 있는 반인권, 반민주, 반통일 악법이다. 이 법으로 수많은 사람이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고 수많은 사람이 부당하게 감옥을 살았다. 조봉암 진보당 당수, 조용수 민족일보 사장, 최백근 혁신정당 지도자, 이른바 인혁당재건위 조작사건으로 사법살인당했던 사람들이 재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수많은 간첩조작사건들이 무죄판결 받고 있다. 국가보안법으로 사형언도를 받았거나 중형을 받았던 사람들이 뒤에 대통령이 되고 국무총리, 장관, 국회의원이 되고 있었다.

이 같은 악법으로 억울한 옥고를 치룬 사람과 강력범, 파렴치범죄자를 한데 묶어 강제퇴거 대상으로 규정한 출입국관리법이나 그 시행규칙은 법으로서의 가치를 이미 잃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 법규를 적용하여 장민호 씨를 강제퇴거하려는 시도는 당장 중단해야 한다.

다음으로, 행복추구권의 침해이다.

모든 사람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헌법 10조). 장민호 씨는 백보를 양보하여 국가보안법을 실정법으로 인정한다 해도 선고된 형기를 마친 자유인이 되었다. 국가권력이 자유인이 된 장민호 씨가 어느 누구에게도 어떠한 피해를 주지 않으며 주거지선택을 통해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려는 것을 가로막는 것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해치는 반인권행위이다.

마지막으로, 인도주의 문제이다.

장민호 씨에게는 어머니와 누님 한 분이 유일한 혈육이다. 평소 어머니께 효성이 지극했고 어머니 또한 아드님을 극진히 사랑했다. 어머니는 올해 82살 고령인데다 아드님사건을 겪으며 정신적인 공황장애를 비롯한 여러 가지 노인병을 앓고 있다. 의지할 데도, 생활능력도 없는, 오직 아드님과 함께 지낼 소원으로 7년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한 모자관계를 얼굴한번 못 본 채 강제로 갈라놓으려는 당국의 조치는 인도주의와 천륜에 반하는 야만행패이다.

출입국관리법에 체류허가의 특례(제61조)나 출입국관리법 시행령 76조 체류허가의 특례에서도 장민호 씨가 국내에 체류할 수 있는 요건이 갖추어져 있다. 바로 대한민국의 국적을 20여년 넘게 갖고 있었고 위에서 말했던 80고령의 노모와의 인도주의 문제가 그것이다. 법무당국은 이 특례조항만으로도 장민호 씨의 강제퇴거 시도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

한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는 데는 구성원들의 합의로 마련된 법규를 따라야 한다는 것은 틀리지 않다. 그러나 그러한 법규는 사람이 만든 것이다. 완벽할 수가 없다. 더구나 모든 사물은 끊임없이 변화 발전한다. 사회발전과 시대의 변화에 따라 법과 제도도 변해야 한다. 그리고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지키는 수단이어야 한다. 그래서 국가보안법은 없애야 되고 장민호 씨는 그가 원하는 태어나고 자란 조국에 살며 늙고 병든 어머님을 돌볼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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