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를 위하여

2012.09.18 13:37

anonymous 조회 수:2618

민주주의를 위하여
<기고> 대선에서 민주화세력이 산업화세력과 사활을 걸고 싸워야 하는 이유
2012년 09월 14일 (금) 17:22:06 한상권 tongil@tongilnews.com

한상권(덕성여대 사학과 교수)


   
▲ 전국언론노동조합, 참여연대 등이 2010년 5월 서울광장에서 ‘표현의 자유수호 문화제’를 열었다. [통일뉴스 자료사진]

올해는 6월민주항쟁 25주년이면서 10월유신이 일어난 지 40년이 되는 해이다. 게다가 총선과 대선 등 두 차례 선거가 있어, 6월민주항쟁의 이념을 계승하는 민주화세력이 10월유신이 불가피했다고 주장하는 이른바 산업화세력과 한판 승부를 겨루어야만 하는 운명의 해이기도 하다. 오는 12월 19일에 있을 18대 대통령선거는 우리사회가 정치적 민주화를 넘어 사회적 경제적 민주화로 나아갈 수 있을지 여부를 가늠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사회적 양극화의 심화에 의해 사회경제적 민주화의 동력이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대선에서 민주진보세력이 패배할 경우, 이후 민주화의 확장에 타격을 입을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우리 자신의 선택에 따라 민주주의가 진전 또는 퇴행할 것이며, 또한 그에 따라 삶의 내용 또한 달라질 수밖에 없기에, 2012년은 역사적으로 참으로 중요한 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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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스크를 쓰고 집회에 참여하는 것을 금지하는 이른바 ‘신지호법’을 반대하는 네티즌들이 2008년 12월 신지호(한나라당, 도봉갑) 의원 사무실 앞에 모여 마스크를 쓴 채 침묵시위를 벌였다. [통일뉴스 자료사진]

1987년 6월민주항쟁으로 해방 이후 반세기 가량 지속되어 온 권위주의체제가 종식되었다. 광주학살을 자행한 전두환 신군부세력에 대한 전 국민적 저항이었던 6월항쟁은 멀리는 갑오농민전쟁과 3.1독립운동 그리고 4.19혁명, 가깝게는 박정희 유신독재에 저항한 부마항쟁과 전두환 군사독재에 저항한 광주민중항쟁 등 우리역사에 면면히 흐르는 반봉건·반외세·반독재 저항정신을 계승한 역사적인 민중항쟁이었다. 6월항쟁의 승리로 군부독재세력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몰리게 되었다. 그러자 군부독재세력은 ‘산업화’라는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내 언론에 퍼뜨리기 시작하였다. 신민주공화당의 김종필 총재가 독재는 잘못이지만 산업화의 공로는 인정해야 한다는 근대화의 공과론을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해방 직후 친일파가 반공세력으로 변신하여 살아남는데 성공했던 것처럼, 군부독재세력 역시 산업화세력으로 탈바꿈함으로써 기사회생할 수 있었다. 이후 이들은 산업화세력 대 민주화세력이라는 프레임을 구사하면서 반독재, 반독점 민주화운동을 지속적으로 무력화시켜왔다.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G. Lakoff)식으로 말하면 일종의 프레임 전략을 구사한 것이다. 레이코프의 프레임이론에 따르면, 전략적으로 짜인 틀(frame)을 제시해 대중의 사고 틀을 먼저 규정하는 쪽이 정치적으로 승리하며, 이를 반박하려는 노력은 오히려 프레임을 강화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산업화 대 민주화 프레임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는 뉴라이트세력이 이후 등장하였다. 이들은 대한민국 60년사를 '건국의 시대'(1948~1960), '산업화의 시대'(1961~1987), '민주화의 시대'(1988~2007)로 구분하고 2008년 이후를 '선진화의 시대'로 설정하였다. 그리고 건국의 시기에 이승만 정부, 산업화의 시기에 박정희 정부, 민주화의 시기에 노태우 정부, 선진화의 시기에 이명박 정부를 각각 자리매김하였다.

뉴라이트는 건국→산업화→민주화→선진화의 4단계 발전론에 입각하여, 산업화세력이 민주화운동의 밑거름이 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산업화가 되었기에 중산층이 형성되었고 이들이 1987년 6월민주항쟁에 대거 참여하면서 민주주의가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선 산업화, 후 민주주의’ 도식으로, 이에 따르면 노동자나 농민 등 민주화운동세력이 아닌 독재자나 재벌이 민주화에 기여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뉴라이트가 제시한 단계적 발전론은 허구에 불과하다. 민주화와 산업화는 선후관계로 분리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선 성장, 후 민주화’ 담론은 비현실적 논리이며 비상식적 도식이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이들은 사실상 민주화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민주주의의 발전과 경제성장은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양자의 병행 발전은 사회적 비용을 덜 들일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하다. 민주화를 통해 사회구성원의 동의와 자발성을 촉진하는 사회 환경이 조성되면 노동생산성이 높아지고 사회적 비용이 감소한다. 경제발전이라고 할 때 외형적인 경제성장의 속도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지속가능성, 내적 토대의 안정성도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특히 민주화의 뒷받침이 중요하다. 민주주의 없는 경제발전은 정치, 사회적으로도 문제이지만, 경제적으로도 문제를 야기한다. 왜곡된 분배구조는 궁극적으로 경제발전을 저해하며, 그 지속가능성을 위협한다. 극단적인 사회적 불평등이 경제발전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역사적 상식이다.

민주화와 산업화를 분리해서 보는 뉴라이트 입장에는 다분히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다. 산업화가 되어야 민주화가 된다는 논리가 성립된다면, 산업화를 일구었다고 주장하는 박정희 독재정치 하에서 자행된 각종 불법적인 압수, 수색, 구금, 연금, 고문 등의 인권탄압과 초법적인 납치, 테러, 암살 등 야만적인 폭력들이 모두 민주화를 위해 불가피했던 것으로 합리화된다. 또한 박정희 정권시기에 자신들의 생존권 확보, 또는 경제민주화나 사회변혁을 위해 희생한 노동자 농민들 투쟁의 역사는 무의미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뉴라이트는 산업화 시기 이른바 민주화운동으로 자처한 좌익 세력들의 발호가 산업화의 걸림돌이 되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한국 현대사에서 민주화운동은 경제상 비용손실만 초래하여 산업화와 경제성장에 장애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식민지시기 항일독립운동이 근대문명화의 길로 발전하는데 걸림돌이 되었다는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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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10월 국가보안보안법으로 구속된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최한욱 집행위원장의 부인(왼쪽)이 상복 차림에 쇠사슬을 온몸에 두르고 아이와 함께 행진하고 있다. [통일뉴스 자료사진]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2월 취임사에서 지난 10년 '이념의 시대'를 청산하고 새로운 '실용의 시대'로 나가겠다고 선언하였다. 건국 60년의 산업화와 민주화를 기반으로 ‘선진화’를 이루어야 하며, 이제는 투쟁의 시대를 끝내고 동반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대통령이 말하는 이념의 시대=투쟁의 시대 10년이란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집권기를 가리킨다. 군부독재를 종식시키고 절차적 민주주의를 수립한 공로가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지난 10년을 ‘잃어버린 10년’으로 파악하는 대통령의 역사인식은 뉴라이트의 4단계 발전론에 기반을 둔 것이다.

이명박정부와 뉴라이트는 역사인식 면에서 일란성쌍생이다. 이는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에서 잘 드러난다. 2011년 8월 9일 교과부가 “2009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사회과 교육과정”을 고시하면서, 개발 연구진도 모르게 ‘민주주의’란 용어를 모두 ‘자유민주주의’로 수정하였다. 비난 여론이 빗발치자 교과부는 “일부 심의위원들과 역사학회 전문가들의 요구를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교과부가 말한 ‘역사학회’는 뉴라이트 계열 인사들이 대거 포진한 ‘한국현대사학회’였다. 이에 대해 교육과정 개발을 담당한 ‘역사 교육과정 개발정책 연구위원회’ 위원들은 성명을 내고, “‘민주주의’는 그 자체로서 충분한 개념이며 가능하면 그에 대한 제한이나 수식을 피하는 것”이 좋으며, “현행 교육과정에서도 초⋅중⋅고교 한국사의 단원명과 성취기준에 모두 ‘자유민주주의’ 아닌 ‘민주주의’를 그 내용으로 삼고”있으므로, “시민 사회와 학계의 충분한 토론과 합의를 거치지 않고서는, 지금까지 헌법정신에 따라 수행되어 온 역사 교육의 핵심 개념을 변경할 수 없다”고 반박하였다.

그러나 교과부는 작년 12월 30일 ‘고등학교 한국사 집필기준’을 확정 발표하면서, “자유민주주의, 한반도 유일한 합법정부, 독재 관련 표현 등은 중학교 집필기준과 동일한 원칙에 따라 서술하였다”라고 밝혀, 8월 9일 발표한 중학교 역사교육과정과 11월 8일 발표한 중학교 역사 집필기준에 대해 역사학계가 시정을 촉구한 내용을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 결국 “대한민국의 국가 정체성이 ‘자유민주주의 체제’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명시할 것”이라는 뉴라이트 계열의 한국현대사학회의 건의를 교과부가 전격적으로 수용 고시하면서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가 중학교 사회과 교과서와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 처음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자유민주주의는 2차 세계대전 후 냉전 상황에서 미국 중심의 자유자본주의 체제를 정당화하는 체제수호의 이념으로 널리 사용되고 전파되었다. 서구 자유민주주의의 주요 내용은 보통선거제도, 정당제도, 대의제, 언론집회결사의 자유, 국가권력의 제한, 개인주의, 다원주의, 시장주의, 재산권의 강조 등이다. 그러나 뉴라이트가 말하는 자유민주주의는 개인의 자유와 자율을 존중하고, 다원성과 다양성의 존중을 기본으로 하는 리버럴 데모크라시(liberal democracy)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민주주의에 담긴 개혁성과 혁명성을 탈각시키기 위해 민주주의에 ‘자유’를 덧씌워 민주주의를 옥죌 뿐이었다. 뉴라이트는 자유를 반공으로, 민주주의를 반공주의와 동일어로 오용하여, 자유민주주의를 ‘냉전반공주의’와 같은 의미로 쓰고 있다.

그 증거로 뉴라이트 자신들이 쓴 글에서 “이승만의 정치이념은 자유민주주의를 기본으로 하였다.”라고 주장하여, 발췌개헌과 사사오입개헌 등 불법적인 개헌으로 자유민주주의를 짓밟으면서 12년간 장기 집권한 이승만을 자유민주주의의 토대를 닦은 인물로 미화하였다. 다 아다 시피 이승만은 독재정치와 부정선거로 일관하다가 4.19혁명을 통해 권좌에서 쫓겨났다. 4.19혁명 당시 구호는 “민주주의를 사수하자!”였으며, 이승만 독재정권을 물리친 4.19혁명은 한국인이 스스로의 힘으로 자발적으로 전취한 자유민주주의혁명으로 인식되었다. 이처럼 전혀 자유민주주의적이지 않은 이승만을 뉴라이트가 자유민주주의자라고 하는 추켜세우는 까닭은, “자유민주주의에 철저했던 만큼, 그는 철저한 반공주의자였다.”라는데 있다. 이처럼 반공주의와 자유민주주의를 동일시하는 뉴라이트에게 있어, 자유민주주의는 반북·멸공주의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단지 반공주의가 갖는 부정적이고 진부한 뉘앙스를 자유민주주의가 갖는 긍정적 뉘앙스로 대체해보고자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뉴라이트는 자유민주주의를 냉전반공주의로 치환하면서 고유의 성역을 만들었다. 이들은 반북주의에 입각하여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찬양하고 독재정권을 미화한다. 그리고 의회정치를 부정한 이승만의 독재, 초헌법적인 박정희의 유신쿠데타가 북한공산집단으로부터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변호한다. 자유민주주의는 반북과 멸공을 통한 수호의 대상이지, 결코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계승하면서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가야할 민주주의로 간주되지 않는다. 대한민국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면서 더 민주화된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가자는 주장을 하면,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체제부정론, 혹은 북한식 인민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친북용공론으로 몰아가 탄압하였다.

뉴라이트의 자유민주주의는 반공주의를 기본 동력으로 하며 억압과 배제를 기본 속성으로 하는 전투적 민주주의다. 체제수호 이데올로기가 인간의 사고는 물론 역사의 진실까지도 지배한다.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인 사회구성원 개개인의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부정하고, 지배체제에 무조건 복종하기를 요구한다. 내 편이 아니면 적이며, 적과는 사생결단의 한바탕 싸움도 불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저러한 적대범주를 제멋대로 설정한 다음, 누구든지 이 범주에 든다고 추정되면 설사 헌법의 틀 안에서 합법적으로 행동하더라도 관용의 손길을 거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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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5월 광주 전남대학교에서 금남로까지 범민련은 제 시민사회단체와 대학생들과 함께 민주주의 등을 요구하며 '5.18 자주통일대행진'을 진행했다. [통일뉴스 자료사진]

뉴라이트의 주장과는 달리, 대한민국이 제헌헌법을 통해 표방한 민주주의는 단순한 미국식 자유민주주의(liberal democracy)가 아니었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미국식 자유민주주의보다 훨씬 더 한국적 현실을 반영한 역사성이 있는 민주주의인 것이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일제하의 민족운동이나 해방 이후의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꾸준히 발전되고 숙성되어온 역사적 실체로서 이해해야 한다. 우리의 민주주의 전통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민주공화국 수립을 향한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이해해야 한다.

오랜 역사 동안 한국 사회에서 중요한 정치적 담론으로 자리 잡고 있었던 이념은 공화주의와 균등 즉 평등주의였다. 1919년 3.1운동 직후 출범한 상해 임시정부는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하고, 국무원 선거를 한데 이어 전문 10조의 대한민국임시헌장을 심의·통과시켰다. 임시헌장은 1조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라 하여, 왕정복고를 거부하고 인민이 주인인 민주공화국을 선포하였다.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헌법은 이후 여러 차례(1925, 1927, 1940, 1943, 1944) 개정되었지만, 민주공화국을 지향하는 원칙은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이러한 전통은 1948년 제헌헌법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1조)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2조)라 하여, 민주공화국 및 인민주권을 선포하는 데로 이어졌다. 이처럼 식민통치기에 인민주권과 민주공화국에 대한 합의, 즉 군주주권과 왕정복고에로의 반동적인 흐름이 형성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세계사적으로도 주목할 만한 일이다.

이는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하나는 3․1운동을 분수령으로 인류가 추구해야 할 보편적 가치가 가시적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3․1운동 이후로 정의, 인도, 자유, 평등 등이 시대이념으로 등장하였다. 한용운이 조선독립의 이유로 “자유는 만유(萬有)의 생명”이라고 천명했던 것도 이런 시대정신의 표현이었다. 다른 하나는 1917년 러시아 혁명의 영향으로 모든 사회세력들이 자신을 자각하고 자아실현이라는 공동 이상을 표출하였기 때문이다. 민중은 민족적 해방을 요구하는 이상, 노동자는 계급적 해방을 요구하는 이상, 여성은 성적 해방을 요구하는 이상을 분출하였다. 그리고 스스로의 투쟁을 통해 억압으로부터 벗어나려 하였다. 노동자는 계급적 자각을 통해 노동권 생존권 확보를, 민중은 민족적 자각을 통해 국권회복을, 여성은 성적 자각을 통해 여성해방을 위한 투쟁을 시작하였다. 3․1운동을 직접 체험하였던 청년 김산은 “그 사람들은 자유를 구걸하지 않았다. 그들은 치열한 투쟁이라는 권리를 행사하여 자유를 쟁취하였다”라고 시대분위기를 전하였다. 이처럼 개인이 자신의 인격을 자각하고 자유와 평등이 시대정신이 된 사회분위기 하에서 왕정복고사상은 발붙이기 힘들었다.

대한민국임시헌장은 민주공화국을 선포한데 이어, 3조에서 “대한민국의 인민은 남녀 귀천 및 빈부의 계급이 없고 일체 평등임”이라 하여, 새로 건국할 민족국가의 기본 방향이 평등사회 건설에 있음을 선언하였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공화주의의 전통을 이어 균등, 평등, 재산의 공공성을 강조하였으며, 인민의 기본권을 자유보다는 ‘균등의 원칙’에 두고 있었다. 임시정부는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를 통해 균등한 사회를 달성하고자 하였다.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란 빈곤으로부터의 자유 등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데 보존되어야 할 최소한의 존엄성과 관련된 사회경제적 권리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민주주의이다. 임시정부의 정강과 헌법의 이념을 제공한 조소앙(1887-1958)에 따르면 우리는 고래로 이러한 이념과 질서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으며, 새로운 국가 건설에서 사회민주주의적 이념이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이라고 역설하고 있다.

이러한 정신적 전통은 유학과 실학에서도 찾을 수 있으며, 민족해방운동의 전통이 이러한 생각을 더욱 확고하게 만들었다. 강자를 존중하고 약자 보호를 거부하는 제국주의 원리는 분명 자본주의와 통하는 것이었다. 이에 맞서는 독립운동의 정신은 일본인의 침탈에서 조선인을 해방시키는데 그치지 않고 강자의 침해로부터 약자를 보호하는 방향을 중시하고 있었다. 1930년 이후 중국 관내(關內)에서 활동하던 주요 독립운동단체 간에 이념적 차이는 없었으며, 그 이념을 건국강령(建國綱領)이 대변하였다. 건국강령에서 밝힌 삼균주의(三均主義)가 평등사회 구현을 위해 제시된 구체적 실천방안이었다.

건국강령은 대일 선전포고를 앞둔 시점에서 모든 독립운동세력이 합의한 미래사회의 준칙이었다. 인간의 기본권인 자유와 평등을 기본원리로 하여 작성된 건국강령은 정치적 평등[均權], 경제적 평등[均富]과 함께 교육의 균등[均智]을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을 보장하기 위한 3대 기본권리로 간주하였다. 정치적 평등이 다수의 의사에 의한 국민의 자치 즉 국민주권을 의미하는 것으로 자유에 가까운 개념인 반면, 경제적 평등과 교육의 균등은 평등에 가까운 개념이었다. 건국강령은 중소기업만 사영으로 하고, 토지혁명을 통해 문란한 사유제도를 국유제도로 환원하고, 대생산기관‧대기업을 국유화 하며, 광산‧어업‧농림 등 자원성(資源性) 기업과 운수산업‧은행‧전신‧교통 등 국가기간 시설을 국유화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토지의 국유와 대기업의 국유화 방침이 가능했던 것은 좌우파의 구별 없이 독립운동의 공통이념으로 정착하였기 때문이다. 주목할 점은 1948년에 제정된 제헌헌법의 기초위원이던 유진오박사가 헌법을 기초할 때 참고한 10가지 문서 가운데 임시정부의 건국강령도 포함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민족해방운동의 전통이 제헌헌법에 직접 영향을 끼쳤음을 알 수 있다. 이상에서 볼 수 있듯이, 뉴라이트처럼 자유민주주의 개념을 배타적으로 사용하여 개항 이후부터 오늘날에 이르는 민주주의 운동의 역사를 파악할 경우, 우리나라 근·현대 민주주의운동의 풍부하고 다채로운 역사를 제대로 포괄할 수 없다.

                                                          4.

   
▲ '민주주의 사수' 바람은 정치권에도 강하게 불었다. 2010년 2월 서울역에서 진행된 ‘이명박 정권 규탄대회’ [통일뉴스 자료사진]

해방 공간에서 민주주의는 민족주의와 대칭되는 진보적인 구호였으며, 그 내용은 미국식 형식적·정치적 민주주의와는 다른 사회·경제적 민주주의였다. 해방 이후 대한민국의 이념적 토대가 되었던 것은 바로 임시정부를 비롯하여 일찍이 독립운동세력이 끈질기게 추구해 왔던 공화주의와 민주주의의 이념이었다. 뉴라이트는 대한민국의 국제(國制)가 정치적으로 자유민주주의, 경제적으로 자유시장 체제를 기본으로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제헌헌법을 기초한 유진오박사는 대한민국은 “정치적 민주주의와 함께 경제적, 사회적 민주주의를 입국의 기본으로 채택하였다”고 하였다. 자유방임주의를 배격하고 사회적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경제적·사회적 민주주의를 대한민국의 근본이념으로 채택했다는 것이다.

제헌헌법은 형식적·정치적 민주주의가 경제적 약자의 경제적 불평등을 해결하지 못한다고 보고, 실질적·경제적 평등을 지향하는 사회민주주의를 채택하였다. 헌법이 지향하는 민주주의는 사회적 약자의 자유를 보장하는 정치적·사회적·경제적 민주주의였다. 대한민국은 출범부터 자본주의의 폐해를 막기 위해 사회복지국가를 지향한 것이다. 정부수립 당시 ‘경제적 민주주의의 수립’은 ‘우리나라 헌법의 가장 큰 특징’으로 불렸는바, 제헌헌법은 전문에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케 하며 각인의 책임과 의무를 완수케 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라고 천명, 근본적인 헌법정신부터 균등경제를 추구하였다. 제헌헌법을 기초한 유진오박사는 우리 헌법의 기본이념이 경제적·사회적 민주주의라고 하였다.

제헌헌법이 수용한 사회민주주의는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것을 국가권력의 책임으로 규정하고, 사회적 약자의 생존권 보장과 자유·평등·정의의 실현을 목표로 한다. 그리고 사회적 정의, 사회적 안전, 사회의 통합을 이념적 지향으로 삼는다. 사회적 정의란 법적 평등을 기회의 균등을 통하여 보충하여 시민들이 기본적으로 보장된 자유를 현실적으로 향유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사회적 안전이란 개인의 능력만으로 어찌할 수 없는 개인의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전제들 즉 사회보험, 노동력 보호, 가정의 보호 등을 창출 또는 확보해주는 것이다. 사회의 통합이란 사회 경제적으로 필요한 자들을 보호하고 지나친 사회적 차이를 균형화 시켜 사회를 통합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민주주의의 이념을 구현하기 위해, 제헌헌법에는 사회적 시장경제질서 확립, 사회적 약자의 사회적 기본권의 보장, 사회적 강자의 재산권의 자유제한 등이 수용되어 있다.

사회주의체제에 대항하기 위해 시장경제체제를 이식하려는 미군정의 점령정책에 맞서, 대한민국은 사회(통합)국가의 원리를 채택하였다. 사실상 북유럽 복지국가-사회적 시장경제-사회민주주의의 모델을 반세기 전부터 이미 상세하게 천명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한편으로는 국민주권주의와 3권 분립의 틀 속에서 사회권과 복지국가 개념을 폭넓게 부여한 바이마르헌법의 영향을 받은 결과였다. 그러나 제헌헌법은 바이마르헌법에 비해 국가의 역할이 훨씬 더 크고 평등주의 요소도 강하다. 중요산업 국유화 조항(87조)이나 노동자의 사기업이익 분배균점권 조항(18조) 등이 그러하다. 따라서 억압과 착취로부터 벗어나려는 민족해방운동의 전통이 있었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는 “우리 헌법의 경제 질서는 사유재산제를 바탕으로 하고 자유경쟁을 존중하는 자유시장 경제 질서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이에 수반되는 갖가지 모순을 제거하고 사회복지·사회정의를 실현하기 위하여 국가적 규제와 조정을 용인하는 사회적 시장경제질서로서의 성격을 띠고 있다.” “우리 헌법은 자유시장 경제 질서를 기본으로 하면서 사회국가 원리를 수용하여 실질적인 자유와 평등을 아울러 달성하려는 것을 근본이념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판단하였다. 경제 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자유와 창의로 형성되는 것을 일차적으로 하나, 경제를 개인과 기업에만 맡겨둠으로써 발생하는 소득불균형, 경제력 남용, 경제주체간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국가가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도록 하여 경제에 관한 국가의 보충적 역할을 인정함으로써, 헌법이 예정하고 있는 시장은 ‘자유주의 시장’이 아니라 ‘조정된 시장’으로서 ‘사회민주주의 시장’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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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개혁진영의 대통합을 최종 목표로 한 ‘민주통합시민행동’이 2009년 9월 창립했다. [통일뉴스 자료사진]

이명박정부 들어 친일·독재세력을 산업화세력으로 미화하고, 민주주의를 냉전반공주의로 축소·왜곡하는 그릇된 역사인식이 우리 사회에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일본 극우세력의 한국판이라 할 수 있는 뉴라이트가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고, 조중동 등 수구·냉전 언론과 어용관변 단체가 그 논리를 확산시키며, 교과서 집필기준 개정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정부가 나서서 정책적으로 지원해주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더욱 우려스러운 일은 보수 세력의 여망을 안고 대권 주자의 행보를 가속화하고 있는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후보의 역사인식 역시 현 정부와 마찬가지로 퇴영적이라는 점이다.

박근혜 후보는 박정희를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한 일에 대해서는 ‘역사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위협적이고 감정적인 반응을 나타냈던 반면, 일본 우익의 사관을 방불케 한다는 평을 받은 뉴라이트 ‘대안교과서’에 대해서는 출판기념회 참석해 “청소년들이 왜곡된 역사 평가를 배우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전율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걱정을 덜었다”라는 축사를 하였다(2008.5.26.). 그는 최근 대선주자 초청토론회에서 "5·16이 오늘의 한국이 있기까지 초석을 만들었다고 본다. 아버지로서는 불가피하게 최선의 선택을 한 게 아닌가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미 2007년 대권 도전 때에도 5·16군사쿠데타를 “구국의 혁명”이라며 민주주의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발언을 하여,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고 되어 있어, 이승만 독재에 대한 국민의 저항권을 인정하였다. 이로 볼 때, 독재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짓밟은 5.16이 “구국의 혁명”될 수 없음이 자명하다. 이승만 독재와 박정희 군사쿠데타를 찬양하는 행위는 헌법정신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범죄인 것이다. 또한 역사교과서에서도 5·16을 군사혁명으로 기재한 것은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정권 등 군사독재 시절에 국한됐을 뿐, 김영삼 정권 이후부터는 모두 쿠데타(군사정변)로 기록하고 있어 5.16에 대한 역사적 판단은 이미 오래전에 내려졌다.

대통령은 취임에 즈음하여 “헌법을 준수하고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을 위해 노력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한다. 헌법정신에 따라 국가를 이끌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겠다는 다짐이다. 이는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책임이 공동체가 합의한 최고의 가치규범인 헌법을 수호하는 것임을 말해준다. 이에 비추어 볼 때, 민주적인 헌정질서를 물리력을 동원하여 뒤엎은 5.16군사쿠데타를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라며 헌법유린을 정당화하는 박 후보가 과연 국가 최고지도자로서의 자질을 갖추고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박근혜 후보는 8월 20일 새누리당 대통령후보로 선출된 직후 후보수락연설에서 “국민대통합의 시대”를 열어가겠다고 선언한데 이어, 다음날 김해 봉하마을을 찾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역에 참배하고, 그 다음날은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 5.18국립묘지, 전태일 재단을 차례로 방문하였다. 이에 대해 박 후보 캠프측은 ‘분열된 대한민국’, ‘일부를 위한 대한민국’이 아니라 ‘100% 대한민국’, ‘하나 된 대한민국’을 위해 다양한 계층을 포용하고 함께 손을 잡기 위한 노력이라고 하였다. 조중동 등 수구언론 역시 국민대통합을 위한 광폭행보라면서 대대적으로 보도하였다.

그러나 친일분단세력과 군부독재세력 등 수구·냉전세력을 지지기반으로 하는 박근혜 후보의 민주화세력 방문은 프레임 경쟁에서 자신의 약점인 민주주의를 선점하겠다는 의도에서 나온 제스처일 뿐이다. 산업화는 이미 선점했으니 이번 기회에 민주화세력과 화해하는 모습을 보여 대통령이 된다면, 모든 억압, 착취, 배제, 차별 등에 대해 저항해온 민주주의의 자랑스러운 전통까지 장악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항일독립운동이 추구했던 공화주의와 평등주의의 정신은 사라지고 약육강식의 자유방임주의가 판을 칠 것이다. 그리고 민주주의는 제헌헌법이 수용했던 사회적·경제적 민주주의로의 확장은커녕 자유민주주의의 외피를 쓴 냉전반공주의로 축소·왜곡될 것이다. 참으로 민주주의의 절체절명의 위기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채 100일도 안남은 대선국면에서 민주화세력이 이른바 산업화세력과 사활을 걸고 싸우지 않으면 안 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 원고는 9월 말 발간예정인 <역사교육> 가을 호와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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