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 권오헌 명예회장의 절필선언을 듣고

2012.06.23 14:24

anonymous 조회 수:4042

지난 6.3일 제2회 <6.15산악회 체육대회>에서 나는 권오헌 명예회장님과 잠시 환담을 나누다 뜻밖에 놀라운 통보(?)를 받았습니다. 한쪽 눈의 녹내장이 심해져 더 이상 글을 쓰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최근 융단폭격식으로 벌어지고 있는 마녀사냥식의 종북논란으로 진보세력이 커다란 위기에 빠져 있는 이때 명예회장님의 절필선언은 특히 우리 후원회로서는 마치 전쟁 중 커다란 무기를 잃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기회를 만들어 명예회장님의 건강에 대하여 좀 더 자세히 우리 후원회원들에게 알려야겠다는 생각과 더불어 또 현 시국에 대한 명예회장님의 생각도 듣고 싶어 6월 10일 여러 행사에 앞서 이른 아침 덕수궁 숲 속에서 조용한 대담을 갖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눈을 혹사시켰다가는 시력을 잃을 수 있어”




유영호 : 마침 6월 10일인 오늘을 포함하여 6월은 남쪽 사회에서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날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당장 오늘은 27년이나 군부정권에 맞서 거국적으로 항의한 1987년 6월 항쟁의 시작을 알리는 날이었고 결국 6.29 항복선언을 이끌어 낸 의미 있는 날입니다, 또 몇 일 뒤인 13일은 2002년 우리의 어린 소녀 효순, 미선양이 미군장갑차에 치여 죽임을 당한 날이기도 합니다. 당시 법원은 이러한 가해자 미군에 대하여 무죄판결을 내렸고, 우리 국민들은 모두가 하나되어 이러한 미군의 행패에 대하여 거족적으로 항의하게 되며 우리 땅에 주둔하고 있는 외국군 즉 주한미군에 대하여 주둔 57년 만에 하나가 되어 반대하는 계기가 되었죠. 그리고 앞으로 5일 뒤인 15일은 6월에 있는 기념일가운데 그 백미로 분단 55년 만인 2000년에 남과 북의 정상이 두 손을 맞잡고 6.15남북공동선언을 발표함으로써 우리에게 통일이란 당위가 막연함을 벗어나 실제적으로 가능하다는 청사진을 보여 준 날이기도 합니다.

권오헌 : 그렇습니다. 말씀하신 6월이 갖는 역사적 의미는 적지 않습니다. 분단체제를 악용한 독재체제에 준엄한 심판을 했고 60년 가까이 이 땅을 강점하고 있는 점령군대의 살인만행에 치를 떨며 민족의 존엄과 자주권의 절실함을 느끼게 했으며 불신과 대결시대를 끝장내고 화해와 단합, 교류와 협력으로 우리민족끼리 자주적 평화통일을 선언함으로써 민족적 자긍심을 갖게 했습니다.

유영호 : 어쨌든 이렇게 우리에게 의미 있는 6월의 첫 행사였던 지난 <6.15산악회> 제2회 체육대회 때 선생님의 절필선언에 많이 놀랐습니다. 그 정도로 건강이 안 좋으신가요? 아니면 다른 이유라도 있나요?

권오헌 : 제가 글쓰기를 줄여야겠다는 생각을 한 지는 몇 년이 되었습니다. 3년 전 오른쪽 눈의 녹내장 초기증상 진단을 받았고, 그 후 안압을 낮추는 약을 투약하는 등으로 그 증상이 빠르게 진행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눈을 너무 혹사시켜 결과적으로 시력감퇴로 이어지고 있음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저는 양쪽 눈의 시각 차가 있어 글을 읽고 쓸 때 한쪽 눈을 감고 다른 한쪽 눈으로 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눈이 점점 작아지고 감겨지는 증상도 있었습니다. 또한 쓰기나 읽기가 두 세시간 이어지면 시력이 약해져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기 까지 여러 시간이 걸리기도 한답니다. 아직 약하기는 하지만 시력이 있을 때 보호해야겠다는 생각에 절필을 굳히게 되었습니다.

유영호 : 그 정도로 눈의 건강이 안 좋으신지 몰랐습니다. 수많은 집회 참석은 물론 매달 있는 <6.15산악회>에서도 등산에 전혀 문제 없을 정도의 건강을 보이시기에 전혀 생각지도 않았는데 뜻밖의 소식이었습니다.

권오헌 : 아직 시력감퇴 외 다른 건강에 문제가 있지는 않습니다. 저는 컴퓨터로 글을 쓰지 않고 육필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부족하기 짝이 없기는 하지만 그 량이 적지 않습니다. ‘후원회소식’에 쓰는 글만 해도 매달 원고지 200매 분량이 넘습니다. 글 쓰는데 참고자료 정리 분량은 그 두 세배가 됩니다. 그 만큼 시간이 많이 걸리고 눈을 혹사시켜야 합니다. 이러한 작업이 결과적으로 시력장애의 요인이 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소식지의 ‘이런 일이 있었어요’는 90년대 이후 우리의 현대사 기록”



유영호 : 그 동안 후원회에서 한번도 거르지 않고 발행해온 ‘후원회소식’은 양심수후원회의 작은 역사이기도 했습니다. 또 이렇게 20년이 넘도록 쉬지 않고 기록된 사회운동단체의 소식지는 없는 상태에서 ‘후원회소식’은 나름대로 상당한 의미를 갖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에 중추적인 역할을 해오셨는데 아쉬움이 많겠습니다.

권오헌 : 그렇죠. 후원회가 조직되고 몇 해 뒤인 1992년 처음으로 소식지가 발간되었는데 그 뒤 매달 쉬지 않고 나왔습니다. 또 소식지의 여러 항목 중에서 ‘우리의 주장’과 ‘이런 일이 있었어요’는 매달 있었던 정치사회적 현안에 대한 운동적 관점과 또 사회운동사적으로 있었던 중요한 사건들을 목록화하여 감옥에 있는 분들이 밖의 상황을 좀 더 자세하게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기록한 것입니다. 소식지의 이러한 기록은 20년 넘게 90년대 이후 나름대로의 우리 현대사를 기록한 것으로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작업해 왔다 하겠습니다. 이것을 더 이상 직접 하지 못하게 되어 안타깝지만 후원회 사무국과 편집위원 등 훌륭한 역량이 있어 손색없이 이어갈 것입니다.



“양심수후원회는
‘사상, 양심의 자유’와 ‘비전향장기수’로 시작”


유영호 : 그러게요. ‘후원회소식’은 20년 넘게 남쪽의 사회운동을 세세하게 기록한 것으로 우리 운동사에 있어서 자료적 가치도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시작된 민가협양심수후원회의 처음 시작은 어떤 계기와 목적으로 시작된 것인가요? 저야 민가협양심수후원회에 늦게 결합한 사람으로 그 시작에 대하여서는 세세하게 잘 알지 못하고 있답니다.

권오헌 : ‘민가협양심수후원회’는 1988년 말 당시 남민전 사건 구속자들을 비롯하여 모든 시국사범과 일부 장기구금양심수들이 대부분 출소했지만 약 170여명의 비전향장기수들이 출소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의 석방과 후원을 위하여 1989년 3월 창립되었답니다. 지금이야 이런 분들에 대한 시각이 상당히 변하였지만 당시 군사정권 하에서 이들을 양심수로 규정하고 석방운동과 후원을 한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수십 년 옥고를 치르면서도 자주통일에 대한 자신들의 정치적 신념과 양심을 지켜왔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이들을 양심수로 규정하는데 전혀 주저할 일이 없다고 본 것이죠. 양심수후원회의 이러한 결단이 그 뒤 기독교인권위, 불교인권위, 천주교인권위 등도 잇따라 이들을 양심수로 규정하였고, 마침내 국제사면위원회까지도 이분들이 양심수임을 인정하고 석방을 촉구하는 계기가 되었답니다. 결국 우리의 이러한 선도적 활동이 국가보안법 폐지와 사상/양심의 자유 등 인권운동의 보편성 확대와 자주적 평화통일운동에도 한 획을 그은 셈이죠.

유영호 : 결국 양심수후원회의 주요 목표가 되었던 모든 양심수의 석방과 후원이라는 활동 외에 또 하나의 커다란 기여는 비전향장기수 송환운동이라고 생각하는데 당시 그 운동을 맨 앞에서 진두지휘하신 선생님께서 그것에 대하여서도 이야기 좀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권오헌 : 비전향장기수 송환운동은 제네바협정에 따른 전쟁포로의 국제법상 권리와 인도주의와 동포애 정신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인민군 종군기자로 참전했다 체포된 리인모 노인은 휴전협정 당시 전쟁포로로서 당연히 송환되어야 했지만 오히려 국가보안법과 사회안전법 등 반인권 반통일 악법으로 수십 년 감옥에 갇혀 있다가 1989년 사회안전법이 폐기되면서 풀려났습니다. 리인모 노인은 스스로 전쟁포로임과 제네바협정정신에 따라 송환할 것을 주장하게 되었습니다. 이러 나라 안팎에서 북녘고향으로의 송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그러다가 리인모 노인이 1993년 3월 뇌출혈로 건강이 극히 악화되었을 무렵 양심수후원회를 비롯한 인권/종교단체들이 송환추진위원회를 결성하는 등 구체화되었습니다. 당시 김영삼정권이 새로 들어섰고 또 통일원장관으로 진보적인 한완상교수가 임명되면서 사회적 논란에도 불구하고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첫 송환이 이루어졌고 그 뒤 1995년 똑 같은 인민군출신으로 포로교환에 포함되지 못했던 김인서, 함세환, 김영태선생의 송환운동이 다시 시작되었지요. 이러던 중 1998년 반세기만의 실질적인 여야정권교체가 있었고, 1999년 모든 비전향장기수들이 감옥에서 나오게 되면서 송환운동은 위 세분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그 범위가 ‘모든 비전향장기수’로 확대된 것입니다. 이러한 노력들이 결국 비전향장기수 송환문제를 규정한 <6.15남북공동선언> 제3항을 이끌어 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2000년 9월 2일 63명의 비전향장기수가 신념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유영호 : 분단된 우리사회의 특성상 ‘비전향장기수’라는 말 자체는 결국 ‘사상, 양심의 자유’와 그것을 결정적으로 억압하고 있는 ‘국가보안법’이라는 두 문제와 결부되지 않을 수 없고, 또 이러한 것은 결국 통일운동이라는 형태로 나타날 수 밖에 없다고 봅니다. 그런가 하면 우리사회에서 최근 심화되고 있는 사회적 양극화라는 문제를 무시하기에는 쉽지 않다고 봅니다.

권오헌 : 맞습니다. 우리 사회구성원이 지향하는 진보적 가치를 크게 두 가지로만 꼽는다면 ‘자주통일’과 ‘평등세상’이라 하겠습니다. 먼저 오늘의 분단체제는 우리민족의 의지가 아닌 외세에 의해 강제된 것으로 ‘외세와 분단’ 을 ‘자주와 통일’로 극복해야 할 민족적 과제를 안게 되었죠. 바로 자주통일은 우리민족이 선택할 최고 최선의 가치입니다. 또한 1987년 6월항쟁을 통해 얻어진 절차적 민주화 이후 거대한 노동자대투쟁을 통해 그 싹을 보았으며, 최근 신자유주의 세계화 체제로 편입되면서 사회적 양극화 등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양극화를 극복하며 평등세상을 이루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역시 커다란 진보적 가치입니다. 당시 80년대 말 이러한 시대사적 요구 속에서 출범한 양심수후원회는 당면한 민족적, 사회적 모순극복이라는 진보적 가치를 온 몸에 품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활동해 왔다 할 것입니다.



“‘종북’이란 말은 보수세력이 아닌 진보세력 내에서 먼저 나온 말”



유영호 : 앞서 말씀하신 것에 따를 때 ‘사상, 양심의 자유’를 지키며 살아 온 양심수들을 적극적으로 후원하는 단체로써 최근 우리사회의 모든 이슈들을 삼켜버리고 있는 종북논란에 대하여 한 말씀 해주시죠.

권오헌 : 본래 ‘종북’이란 말은 2001년 민노당에서 사회당 쪽에 통합을 제안했을 때 사회당이 그것을 거부하면서 그 이유로 만든 용어입니다. 그 뒤 2008년 심상정, 노회찬, 조승수가 민노당을 탈당하며 진보신당을 만들 때 자신들의 탈당 명분으로 다시 제기한 것이죠. 이처럼 ‘종북주의’란 말은 진보세력 내부에서 통일운동세력을 비판하면서 제기된 용어인데 수구세력은 이를 놓칠 리 없고 이제는 검찰의 공소장에도 버젓이 올라오는 웃지 못할 천박하고 반북대결적 용어로 변한 것입니다.

유영호 : 그렇다면 결국 보수세력은 진보세력내의 분열과 갈등을 비집고 들어와 커다란 성과물을 얻은 꼴인데, 그건 그렇고 일단 보수, 진보 어디에서 주장했건 ‘종북주의’라는 것에 대하여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권오헌 : 최근 벌어지고 있는 집권세력의 종북논란과 그것을 앞세운 국가관 검증 주장은 집단 히스테리증상으로 번져 중세의 마녀사냥이나 1950년대 미국의 메카시즘을 방불케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색깔론은 정치권으로 비화되어 사상을 검증하는 방법으로 북핵, 북인권, 3대세습 등에 대하여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는 의원은 ‘국가관이 의심스러운 사람=종북좌파’라고 하기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은 사상, 양심의 자유, 특히 내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반인권/반민주적, 전체주의적 발상으로 이승만독재와 박정희 유신독재의 망령이 되살아난 착각이 들게 합니다. 한 인간의 사상과 국가관을 검증한다는 것은 독재시절에나 있었던 정말 무서운 발상입니다. 이승만 독재시대 진보당 조봉암 당수도 평화통일론을 주장하다 국가관, 사상검증으로 사법살인 당했고, 박정희 유신독재체제에서 인혁당재건위사건 관련자들도 결국 반북대결적 유신체제의 국가관에 따른 사건조작으로 죽임을 당했습니다. 양심수후원회는 이러한 반인권, 반통일 악법과 그 행패에 맞서 싸워오고 있습니다.



“종북이란 말은 그 동안 있어왔던 남북간의 합의를 무시하는 처사”



유영호 : 최근 종북논란이 마녀사냥식으로 벌어지면서 이명박정권 아래서 경색되어 왔던 남북관계는 거의 회복할 수 없을 만큼 망가져 버렸습니다. 북에 대하여 비판적인 태도를 갖지 않는 사람이 남쪽에서는 살아 남을 수 없게 만든다는 것은 결국 그 동안의 남북간 합의를 파기하는 것이며 북을 흡수통일하겠다는 발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권오헌 : 사실 종북이라는 말 자체가 민족에 대한 모독적인 말이라고 봅니다. 지금 보수세력이 말하는 종북이란 맹목적으로 북을 따른다고 해석 할 수 있는데 현재 남쪽에서 활동하는 통일운동세력 가운데 이렇게 맹목적으로 북을 따르는 단체나 활동가들은 없습니다. 특히 7.4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 6.15선언, 10.4선언 시대 이를 실천하려는 모든 활동은 공동선언 이행의 애국애족운동이지 종북이란 말 자체가 있을 수 없죠.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공직자 모두가 공동선언에 따라 행동한 것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남과 북 사이에 같은 주장이 나올 수 있습니다. 가령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 이것 모두 남북이 합의한 통일원칙인데 이것을 우리가 쓴다고 종북이라고 몰아 붙이면 말이 안됩니다. 또 남북기본합의서에서 가장 중요한 합의가 남과 북 서로의 정치체제나 사회제도에 대해서 인정하고 존중한다고 하였는데 북의 체제나 제도를 비판하지 않는다고 종북으로 몬다면 합의자체를 무시하는 것입니다. 현재 보수집권세력은 북핵, 인권, 세습문제에 대하여 비판적이지 않다면 결국 그는 종북주의자라고 주장하는데 이것은 두 가치 측면에서 잘못된 것입니다. 첫 번째 남과 북은 서로의 체제와 제도를 인정하고 존중하기로 했기에 상대내정에 관여해서도 안되고, 두 번째로 근대사회 인권개념으로 어느 누구도 인간 내면의 양심에 대하여 강제할 수 없다는 원칙이 있습니다. 따라서 북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강제한다는 것은 결국 남북관계를 파탄시키겠다는 것이며, 근대 시민사회를 전근대 사회로 되돌려 놓겠다는 위험한 발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현재의 종북논란에 통합진보당 진상조사위원회가 일정부분 역할”



유영호 : 그렇다면 현재 벌어지고 있는 종북논란이 폭발적으로 확대되기까지에는 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경선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진상조사위원회의 발표시점인 것 같습니다. 이번 사태도 마치 지난 날 사회당과의 통합논의나 민노당 분당사태 때처럼 진보세력의 일부가 다른 한 편을 종북세력으로 공격하면서 보수세력이 이를 더욱 확대, 왜곡하여 진보세력 전체를 고립시키려 했던 것과 결과적으로는 유사성이 있지 않습니까?

권오헌 : 저 역시 이번 종북논란에 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 진상조사보고가 본래 의도와 무관할 지라도 일정부분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진상조사위의 조사는 본래 윤금순-오옥만 두 후보의 문제에서 시작되어, 이영희-노항래 후보로 까지 이어진 것이며, 그것도 온라인투표가 아닌 현장투표에서 문제가 제기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진상조사위의 발표는 이 문제들에 대한 구체적 부정사례는 내놓지 않고 오히려 비례대표 경선후보 전체로 확대되었으며 현장투표 보다 온라인투표가 부실, 부정인 것으로 부각되었습니다. 조사 범위와 대상이 모두 바뀌고 확대된 꼴이죠. 또한 조사결과는 당대표에게 보고서로 제출되기 전에 언론에 발표하는 등 당 스스로 해결해야 할 정치력 부재로 여론몰이를 불러 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진상조사결과 발표를 위한 기자회견은 5월 2일 있었는데 이미 그 날짜 조간신문인 한겨레신문에는 이것이 기사화되었고 다른 보수언론들은 더욱 부풀려지고 있었습니다. 뒤에 드러났듯이 부실, 부정에 대한 구체적 실사나 의혹에 대한 당사자들의 해명도 없이 ‘총체적 부실, 부정선거’로 발표되고 이는 다시 보수언론 및 일부 진보언론에서 조차 그것이 왜곡, 확대되어 ‘부정선거=당권파=경기동부연합=종북세력’이란 프레임을 만들 수 있게 도와준 꼴이 되었죠. 결국 ‘통합진보당=부정선거당’으로 만들어 벌임으로써 이러한 선입관을 더 이상 걷어 들일 수 없도록 만든 것입니다. 한편 한겨레, 경향, 오마이뉴스 등 일부 진보언론들 조차 5월 2일 진상조사위의 부실, 부정사례들에 대한 5월 8일 이른바 당권파 측이 제안해 개최한 청문회에서 소명자료로 해명된 사례를 거의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들 언론들도 정론지로서의 언론의 분분인 사실보도와 공정보도를 외면하고 어느 한쪽 입장을 대변한 셈이었지요.


“명확한 진상규명과 그에 따른 채임만이 유일한 해결책”



유영호 : 저 역시 권선생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하지만 이미 사태는 너무도 거대하게 커져 버렸고 결국 보수세력의 목적은 이번 통합진보당 사태를 이용하여 커져가는 자주통일운동세력의 단결력을 분쇄하고 이들을 대중과 분리시켜 놓음으로써 결국 이번 겨울 대선에서의 야권연대를 붕괴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으로써 궁극적으로 자신들의 재집권을 노리는 것입니다. 이런 급박한 정치 스케줄로 볼 때 이번 사태를 어떻게 해결하는 것이 가장 올바른 것인지 쉽게 답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또 여기에 많은 명망가들과 심지어 진보인사들 조차 일단 급한 불부터 끄고 가자는 식으로 이석기, 김재연의 선사퇴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난 6월 6일 사회 각계원로 78인의 징계연기의견을 낸 적이 있지 않습니까?

권오헌 : 예, 그렇습니다. 사회원로의 의견에 저도 동참을 했고 의견서 발표 기자회견에서 여는 말을 했습니다. 그날 있었던 사회원로의 의견은 대략 다음과 같이 요약됩니다.

“진보정당답게 문제를 수습하려면 무엇보다도 진실에 기초해야 합니다. 당의 진상 조사 발표가 부실함을 인정하고 혁신비대위 산하에 2차 진상조사특위가 구성되어 6월말까지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로 했으면 진실이 규명될 때까지 징계를 연기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선 진실규명, 후 책임자 처벌이 원칙이라 믿습니다. 진보정당은 사람과 동지를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정치적 타살 행위가 되는 제명 처분은 열 번 백 번 신중해야 할 것입니다. 왜곡된 진실에 의해 일시적으로 통합진보당에 부정적 여론이 형성되었다면 진실을 바로 잡아 땅에 떨어진 당의 명예를 회복하는 것이 먼저 할 일입니다. 제명이라는 극약 처방은 사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고 극한 대결만을 불러 올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주장이 결코 책임을 회피하자는 소리가 아닙니다. 명확한 진실규명과 그에 따른 책임이 제기될 때만이 모두가 인정하며 진보운동 전체의 단결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결국 이렇게 해야만 비가 온 뒤 땅이 굳어지듯 우리 진보운동세력의 시행착오도 극복될 수 있는 것이며 단결력도 더욱 커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수구세력의 종북논란, 결국 반북대결의 심판대상이 될 것”



유영호 : 이번 통합진보당 사태를 계기로 수구세력의 종북논란이 확대 재생산되며 12월 대선에서의 야권연대에 우려의 목소리도 있습니다.

권오헌 : 그렇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실제로 종북소동은 그 대상이었던 통합진보당을 넘어 민주통합당으로까지 번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천박한 소동이 진실을 가릴 수는 없습니다. 새누리당 이명박정부의 이 같은 색깔론은 대통령 측근비리, 민간인 불법사찰을 비롯한 민생파탄, 민주주의 압살, 반북대결 행패 등 저들의 실정과 부정을 왜곡 은폐하려는 측면이 많습니다. 진보, 민주개혁진영에 종북은 없으며 6.15선언과 10.4선언 이행 등 화해와 단합, 평화와 통일에 대한 민족적 염원과 지향이 있을 뿐입니다. 오늘의 유권자들은 6~70년대 체육관 선거의 국민이 아니고 냉정한 현실인식과 합리적 판단을 하는 각성된 주권자들입니다. 동족을 상대로 긴장만을 조성하는 이명박 새누리당의 반북대결, 흡수통일 망상에 공명할 국민은 없습니다. 종북소동과 국가관을 앞세운 유신독재의 망령에 맞서 진보 민주개혁세력은 작은 차이를 극복하고 연대와 단결로 잃어버린 정의와 평화, 자주통일 시대를 반드시 이루어 내야 할 것입니다.




“당분간은 글쓰기는 쉬지만 현장활동은 더욱 열심히 할 것”





유영호 : 마지막으로 선생님께서 눈의 건강을 위하여 일단 글쓰기를 안 하기로 하셨는데 그렇다고 다른 건강은 양호하셔서 제가 볼 때 선생님 성격상 결코 쉬지는 않을 실 듯합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지 궁금하네요.

권오헌 : 저는 4년 전 양심수후원회 회장직에서 물러나면서 한 말이 있습니다. “양심수후원회의 회장은 임기가 있어야 하지만 인권운동과 자주통일 운동은 만기가 있을 수 없다”고. 힘 있는 사람은 힘으로, 돈 있는 사람은 돈으로 자신의 능력에 따라 할 일을 다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눈이 나쁘면 발로 뛰어야 하고, 눈의 건강이 나아지면 또 원상복귀 해야 되겠지요. 위에서 말했던 이 땅에 사는 사회구성원으로서 민중과 역사가 요구하는 진보의 가치실현에 작은 힘이지만 보태고 싶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로 바쁜 핑계로 미루어 왔던 감옥에 갇혀 외롭게 투쟁하고 있는 양심수들을 찾아보고 싶습니다. <끝>




*2012년 6월호 소식지에 들어가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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