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왜냐면] 공덕을 쌓으려는 재물은 깨끗해야 한다 / 한상권

등록 : 2012.10.22 19:37
수정 : 2012.10.22 20:02



 지난 15일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가 정수장학회와 문화방송(MBC)의 언론사 지분 밀실 매각 계획에 대해 자신이 관여할 일이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박 후보는 “(정수장학회가) 지역발전을 위해 좋은 일을 하겠다는 것을 가지고 야당이나 저나 법인이 이래라저래라 할 아무 관계가 없다”며 “제가 관여할 일도, 간섭할 일도 아니다”라고 정수장학회 문제에 선을 그었다. 문화방송과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이 불법 장물을 마음대로 처분해, 박근혜 대선 승리를 위해 부산·경남 지역에 선심성 복지사업을 벌이겠다는데도 자신과는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이어 21일에 연 기자회견에서는 “정수장학회는 부일장학회를 승계한 것이 아니라 헌납받아 새로 만든 것”이라며, 박정희 정권의 부일장학회 강탈 자체를 부인하는 입장을 밝혀 유족들을 분노케 하고 있다.

이러한 박근혜 후보의 태도는 세가지 점에서 문제가 있다. 첫째, 법원 판결 내용을 왜곡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2월24일 서울중앙지법 민사17부(재판장 염원섭)는 정수장학회의 전신인 부일장학회 설립자 김지태씨의 재산 헌납이 박정희 정권의 강압에 의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국가의 강압에 의해 김지태씨가 5·16장학회(현 정수장학회)에 주식을 증여하였지만, 주식반환과 국가배상 청구권의 시효가 지났으므로 재산이나 손해배상을 해달라는 청구는 기각한다는 것이 판결 요지이다. 그동안 정수장학회 쪽은 “강제로 빼앗은 것이 아니다”라며 부인해 왔지만, 법원이 재산 헌납 과정에 박정희 정권의 강압이 있었다는 유족 쪽의 주장을 받아들임으로써, 정수장학회는 법률적으로도 불법적으로 강탈한 ‘장물’임이 확인됐다.

둘째, 정수장학회의 언론사 지분매각 추진 움직임을 정당한 재산권 행사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어느 물건에 대해 소유권을 주장하려면 두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하나는 초기 소유물에 구현된 정의이고, 또 하나는 소유물 전이에 구현된 정의이다. 첫번째 조건은 돈을 벌 때 사용한 자원이 애초에 합법적인 소유물이었는가를 묻는다. 훔친 물건을 팔아 큰돈을 벌었다면 그 돈을 가질 자격이 없다. 두번째 조건은 시장에서 자유로운 교환 또는 다른 사람이 자발적으로 건네준 재물로 벌었는가를 묻는다. 두 질문에 모두 그렇다고 답변할 수 있다면 현재의 소유물을 가질 자격이 있으며 어느 누구도 소유자의 동의 없이 그것을 빼앗을 수 없다.

셋째, 정수장학회가 언론사 지분매각을 통해 지역발전을 위해 좋은 일을 하겠다는데 굳이 이를 문제 삼는 것은 정치공세에 불과하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불가에 삼보정재(三寶淨財)라는 말이 있다. 주는 사람의 마음과 받는 쪽의 마음 그리고 주고받는 물건 이 세가지가 모두 청정해야 온전한 보시가 된다는 것이다. 공덕을 쌓으려는 재물이 어디에 내놓아도 떳떳한 청정한 물건이어야 하며, 그렇지 않은 재물로는 공덕을 쌓은 것이 아니라 업보의 악연만 맺게 된다. 아무리 좋은 목적이라도 수단이 정당하지 않으면 정의롭지 못하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불교 신자인 박근혜 후보는 명심해야 할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5·16장학회에 ‘음수사원’(飮水思源)이란 휘호를 남겼다. 우물물을 마시기 전에 우물을 판 사람의 수고를 기억하라는 뜻이다. 박근혜 후보가 진정으로 아버지의 뜻을 계승하려 한다면, 5·16장학회의 모태가 되는 부일장학회를 만든 김지태씨 일가족이 ‘재산권의 사회적 의무성’을 실천한 공익정신을 마음에 새겨, 정수장학회 매각 기도를 포기하고 사회에 환원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한상권 역사정의실천연대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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