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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윤봉길 의사가 테러리스트인가?
[뉴라이트는 어떻게 역사를 왜곡했나]<3> 항일 민족독립운동에 대한 서술
한상권 덕성여대 사학과 교수 친일·독재미화와 교과서개악을 저지하는 역사정의실천연대 상임대표
1. 기본 입장
뉴라이트 교과서의 '항일 민족독립운동의 전개'(112~133쪽) 서술은 간략하며 단조롭다. 기존의 교과서보다 그 비중이 크게 줄었는데, 이는 일제시기 역사서술이 지나치게 항일운동사 중심이며, 독립운동사는 이미 많이 언급되었다고 보고 상대적으로 소략하게 다루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교과서가 견지하는 민족독립운동에 대한 기본입장은 다음 세 가지이다.
첫째, 민족의 독립운동이 개인의 자유나 인권보다 하위개념이다. 뉴라이트 교과서는 현행 검인정 교과서가 민족주의적 입장에 지나치게 경도된 나머지 민족독립운동 서술을 사실보다 부풀렸다고 본다. 민족독립운동의 역사를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민족감정에 치우쳐 사실을 왜곡 또는 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민족적 편견'을 바로잡기 위해 교과서는 "민족중심의 역사관을 누그러뜨리려고 애썼으며", "'우리 민족' 대신에 '한국인'을 역사적 행위의 주체로 설정하였다."(5쪽). 개항 이후 130년간의 역사를 "자유와 인권을 갈망하고, 자신의 사회적 경제적 처지를 개선하고자 노력하는 보통사람들의 역사"(5쪽)로 파악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처럼 민족보다 개인을 중심으로 하는 역사서술이 "기존의 역사 서술에 비해 꽤 큰 변혁"(5쪽)이기는 하나, 이러한 관점이 식민지지배라는 특수한 역사적 경험을 한 우리 역사에도 적합한지는 의문이다.
잘 알다시피 일본 제국주의 지배는 근대 사회의 핵심 가치인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부정하였으며, 조선인의 정체성, 존엄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조선인은 일제 파시즘의 폭력정치에 의해 일체의 권리가 무시되었고 복종과 굴욕의 노예적 상태를 강요당했다. 극심한 경제적 불평등과 이에 따른 민족적 차별과 억압, 배제가 구조적으로 확대・재생산되고 있는 식민지시대에서 민족문제야말로 조선사회를 이해하는 데 가장 본질적인 개념이 아닐 수 없다. 진정한 의미의 근대 시민정신이라고 할 수 있는 개인의 자율성은 독립 이후 일제의 식민잔재를 극복하는 민주화투쟁과정을 통해서 비로소 획득되었다. 개인의 자유와 인권의 신장은 민족의 독립이 있어야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둘째, 민족독립운동이 연합국의 반파쇼연합전선의 하위개념이다. 우리 민족의 독립은 독립운동세력이 전취(戰取)한 것이 아니라 연합국이 '선물'로 준 것이라는 입장이다. 이처럼 외인론(外因論)을 취할 경우, 민족독립이 미소 강대국의 승리에 힘입어서 주어진 것이기에, 독립 이후의 상황이 미소 연합국의 힘덕에 국제적으로 제약, 규정, 좌우되는 것 또한 당연하다는 타율론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민족해방이 전적으로 연합국에 의해 주어진 것이라는 '타율적 해방론'은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역량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 민족의 힘에 의한 독립운동은 절대로 불가능하였다는 입장에 따를 경우, 자주적인 힘으로 민족독립을 추구한 독립전쟁은 역량을 헤아리지 않은 무모한 투쟁이 된다. 교과서는 이러한 시각에 따라, 무장투쟁론을 배격하고 외교지상주의에 근거하여 활동을 벌인 이승만에 대해서는, "그는 유럽 신문들에 일본의 만주침략을 고발하는 글을 기고함으로써 국제연맹 회의에 참석한 각국 외교관과 언론인들 간에 반(反)일본 여론을 환기하고 한국의 독립에 대한 우호적 관심을 조성하였다"(127쪽)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반면, 김구에 대해서는 "한인애국단을 조직하여 항일 테러 활동을 시작하였다"(129쪽)라 하여, 역사학계에서 의열투쟁이라 부르고 있는 이봉창과 윤봉길 의사의 의거를 테러리스트의 테러활동으로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경교장 연못가를 산책 중인 김구 선생 ⓒ뉴시스 |
▲사형 집행에도 의연했던 의병들. 26일 순천대학교 홍영기 교수 등 사학과 교수들에 따르면 일제는 1909년 9월1일부터 같은 해 10월30일까지 전라도와 그 외곽지대에서 항일의병 초토화 작전을 진행했다. ⓒ뉴시스 |
▲ 백범 김구 선생의 사저이자 대한민국 임시 정부 마지막 청사인 경교장이 광복절인 지난 8월 15일 오후 시민들에게 복원현장이 공개되고 있다. ⓒ뉴시스 |
▲독립기념관의 독립선언도. 독립기념관에 전시된 민족대표 독립선언도. 민족대표들은 1919년 3월 1일 서울 종로 태화관에 모여 독립선언식을 갖고 세계 만방에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였다.ⓒ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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