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를 위하여 | ||||||||||||||||||||||||||||||||||||
<기고> 대선에서 민주화세력이 산업화세력과 사활을 걸고 싸워야 하는 이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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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권(덕성여대 사학과 교수)
올해는 6월민주항쟁 25주년이면서 10월유신이 일어난 지 40년이 되는 해이다. 게다가 총선과 대선 등 두 차례 선거가 있어, 6월민주항쟁의 이념을 계승하는 민주화세력이 10월유신이 불가피했다고 주장하는 이른바 산업화세력과 한판 승부를 겨루어야만 하는 운명의 해이기도 하다. 오는 12월 19일에 있을 18대 대통령선거는 우리사회가 정치적 민주화를 넘어 사회적 경제적 민주화로 나아갈 수 있을지 여부를 가늠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사회적 양극화의 심화에 의해 사회경제적 민주화의 동력이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대선에서 민주진보세력이 패배할 경우, 이후 민주화의 확장에 타격을 입을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우리 자신의 선택에 따라 민주주의가 진전 또는 퇴행할 것이며, 또한 그에 따라 삶의 내용 또한 달라질 수밖에 없기에, 2012년은 역사적으로 참으로 중요한 해이다.
1987년 6월민주항쟁으로 해방 이후 반세기 가량 지속되어 온 권위주의체제가 종식되었다. 광주학살을 자행한 전두환 신군부세력에 대한 전 국민적 저항이었던 6월항쟁은 멀리는 갑오농민전쟁과 3.1독립운동 그리고 4.19혁명, 가깝게는 박정희 유신독재에 저항한 부마항쟁과 전두환 군사독재에 저항한 광주민중항쟁 등 우리역사에 면면히 흐르는 반봉건·반외세·반독재 저항정신을 계승한 역사적인 민중항쟁이었다. 6월항쟁의 승리로 군부독재세력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몰리게 되었다. 그러자 군부독재세력은 ‘산업화’라는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내 언론에 퍼뜨리기 시작하였다. 신민주공화당의 김종필 총재가 독재는 잘못이지만 산업화의 공로는 인정해야 한다는 근대화의 공과론을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해방 직후 친일파가 반공세력으로 변신하여 살아남는데 성공했던 것처럼, 군부독재세력 역시 산업화세력으로 탈바꿈함으로써 기사회생할 수 있었다. 이후 이들은 산업화세력 대 민주화세력이라는 프레임을 구사하면서 반독재, 반독점 민주화운동을 지속적으로 무력화시켜왔다.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G. Lakoff)식으로 말하면 일종의 프레임 전략을 구사한 것이다. 레이코프의 프레임이론에 따르면, 전략적으로 짜인 틀(frame)을 제시해 대중의 사고 틀을 먼저 규정하는 쪽이 정치적으로 승리하며, 이를 반박하려는 노력은 오히려 프레임을 강화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2월 취임사에서 지난 10년 '이념의 시대'를 청산하고 새로운 '실용의 시대'로 나가겠다고 선언하였다. 건국 60년의 산업화와 민주화를 기반으로 ‘선진화’를 이루어야 하며, 이제는 투쟁의 시대를 끝내고 동반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대통령이 말하는 이념의 시대=투쟁의 시대 10년이란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집권기를 가리킨다. 군부독재를 종식시키고 절차적 민주주의를 수립한 공로가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지난 10년을 ‘잃어버린 10년’으로 파악하는 대통령의 역사인식은 뉴라이트의 4단계 발전론에 기반을 둔 것이다.
뉴라이트의 주장과는 달리, 대한민국이 제헌헌법을 통해 표방한 민주주의는 단순한 미국식 자유민주주의(liberal democracy)가 아니었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미국식 자유민주주의보다 훨씬 더 한국적 현실을 반영한 역사성이 있는 민주주의인 것이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일제하의 민족운동이나 해방 이후의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꾸준히 발전되고 숙성되어온 역사적 실체로서 이해해야 한다. 우리의 민주주의 전통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민주공화국 수립을 향한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이해해야 한다. 이는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하나는 3․1운동을 분수령으로 인류가 추구해야 할 보편적 가치가 가시적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3․1운동 이후로 정의, 인도, 자유, 평등 등이 시대이념으로 등장하였다. 한용운이 조선독립의 이유로 “자유는 만유(萬有)의 생명”이라고 천명했던 것도 이런 시대정신의 표현이었다. 다른 하나는 1917년 러시아 혁명의 영향으로 모든 사회세력들이 자신을 자각하고 자아실현이라는 공동 이상을 표출하였기 때문이다. 민중은 민족적 해방을 요구하는 이상, 노동자는 계급적 해방을 요구하는 이상, 여성은 성적 해방을 요구하는 이상을 분출하였다. 그리고 스스로의 투쟁을 통해 억압으로부터 벗어나려 하였다. 노동자는 계급적 자각을 통해 노동권 생존권 확보를, 민중은 민족적 자각을 통해 국권회복을, 여성은 성적 자각을 통해 여성해방을 위한 투쟁을 시작하였다. 3․1운동을 직접 체험하였던 청년 김산은 “그 사람들은 자유를 구걸하지 않았다. 그들은 치열한 투쟁이라는 권리를 행사하여 자유를 쟁취하였다”라고 시대분위기를 전하였다. 이처럼 개인이 자신의 인격을 자각하고 자유와 평등이 시대정신이 된 사회분위기 하에서 왕정복고사상은 발붙이기 힘들었다.
해방 공간에서 민주주의는 민족주의와 대칭되는 진보적인 구호였으며, 그 내용은 미국식 형식적·정치적 민주주의와는 다른 사회·경제적 민주주의였다. 해방 이후 대한민국의 이념적 토대가 되었던 것은 바로 임시정부를 비롯하여 일찍이 독립운동세력이 끈질기게 추구해 왔던 공화주의와 민주주의의 이념이었다. 뉴라이트는 대한민국의 국제(國制)가 정치적으로 자유민주주의, 경제적으로 자유시장 체제를 기본으로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제헌헌법을 기초한 유진오박사는 대한민국은 “정치적 민주주의와 함께 경제적, 사회적 민주주의를 입국의 기본으로 채택하였다”고 하였다. 자유방임주의를 배격하고 사회적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경제적·사회적 민주주의를 대한민국의 근본이념으로 채택했다는 것이다. 제헌헌법은 형식적·정치적 민주주의가 경제적 약자의 경제적 불평등을 해결하지 못한다고 보고, 실질적·경제적 평등을 지향하는 사회민주주의를 채택하였다. 헌법이 지향하는 민주주의는 사회적 약자의 자유를 보장하는 정치적·사회적·경제적 민주주의였다. 대한민국은 출범부터 자본주의의 폐해를 막기 위해 사회복지국가를 지향한 것이다. 정부수립 당시 ‘경제적 민주주의의 수립’은 ‘우리나라 헌법의 가장 큰 특징’으로 불렸는바, 제헌헌법은 전문에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케 하며 각인의 책임과 의무를 완수케 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라고 천명, 근본적인 헌법정신부터 균등경제를 추구하였다. 제헌헌법을 기초한 유진오박사는 우리 헌법의 기본이념이 경제적·사회적 민주주의라고 하였다.
이명박정부 들어 친일·독재세력을 산업화세력으로 미화하고, 민주주의를 냉전반공주의로 축소·왜곡하는 그릇된 역사인식이 우리 사회에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일본 극우세력의 한국판이라 할 수 있는 뉴라이트가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고, 조중동 등 수구·냉전 언론과 어용관변 단체가 그 논리를 확산시키며, 교과서 집필기준 개정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정부가 나서서 정책적으로 지원해주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더욱 우려스러운 일은 보수 세력의 여망을 안고 대권 주자의 행보를 가속화하고 있는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후보의 역사인식 역시 현 정부와 마찬가지로 퇴영적이라는 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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