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준하의 부활로 유신독재의 부활을 막으라

2012.08.25 20:32

anonymous 조회 수:2778

장준하의 부활로 유신독재의 부활을 막으라
<기고> 장준하 선생의 주검과 유신독재세력의 부활
2012년 08월 25일 (토) 11:39:07 한상권

한상권 (양심수후원회장)

 

유신시절 박정희 독재정권에 맞서 반독재‧민주화 운동을 펴다 의문의 주검으로 발견된 장준하 선생(1918-1975)이 정치적으로 타살됐음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단서가 나왔다. 장준하 선생 서거 37주기를 맞이하여, 장준하기념사업회는 장 선생의 유골을 파주시 통일동산에 조성중인 ‘장준하공원’으로 이장하면서 진행한 유골 검시결과와 사진을 8월 16일 발표했다.

유골로 말하다

유골검사를 진행한 서울대 의대 법의학 교수는 “머리뼈와 오른쪽 볼기뼈의 골절이 둔체에 의한 손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두개골 부위가 망치 같은 것으로 맞아 동그랗게 함몰돼 실족 등 자연적인 사고로는 발생할 수 없는, 인위적으로 만든 상처라는 점이 밝혀진 것이다.

장준하 선생 타살 의혹은 장 선생이 주검으로 발견될 당시부터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1975년 8월 장준하 선생 사망 당시 사인으로 지목된 ‘오른쪽 귀 뒤의 두개골 파열’은 단순 추락이 아니라 흉기에 찍힌 상처라는 의혹 등이 제기되었지만 사인을 정확히 확인할 수 있는 검시는 진행되지 않은 채 ‘실족에 의한 단순 추락사’로 결론이 내려졌고, 주검은 서둘러 매장됐다.

이후 선생의 사인을 밝히려는 노력이 몇 차례 있었다. 1994년 민주당이 진상조사위원회를 설치하며 사망원인 규명에 나섰으며, 2002년과 2004년 대통령직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문사위)도 장 선생의 사망 원인을 파헤쳤다. 하지만 결과는 모두 증거부족으로 인한 ‘진상 규명 불능’이었다.

의문사위가 ‘진상규명 불능’ 결정을 내린 것은 의학적 소견이 불충분해서라기보다, 장준하 선생이 타살됐다면 ‘누가, 어떤 이유로, 어떤 과정을 거쳐’ 그를 죽음에 이르게 했는지를 밝힐 증거를 찾아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장준하 선생의 삶과 투쟁

장준하 선생은 1918년 평안북도 의주에서 태어나 1944년 일본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학도병으로 중국에 끌려갔다가 이 해 7월 7일 서주에서 탈출을 감행해 동지들과 함께 6000리 장정에 올랐다. 일본군 점령지대를 뚫고 극한의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며 제비도 넘지 못한다는 파촉령을 넘어 이듬해 1월 31일 마침내 중경에 있던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도착했다.

그 뒤 광복군에 들어가 국내 진공작전에 참가하기 위해 중국 서안에서 미 정보기관(OSS)의 특수게릴라 훈련을 받던 중 일본이 항복함으로써 끝내 참전할 기회를 갖지 못하다가, 해방되던 해 11월 23일 임시정부 요인들과 함께 귀국하였다. 이로써 조국해방을 위한 그의 장정은 일단 끝이 났다.

6·25전쟁이라는 유례없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으면서, 장준하 선생은 민족의 올바른 미래를 모색하고자 1953년 피난지인 부산에서 월간 『사상계』를 창간했다. 그는 『사상계』를 기반으로 이승만독재에 항거하고 자유민권운동의 기수로 나섰다.

사상계의 정론은 여론이 되고, 여론은 거대한 힘이 되어 4·19혁명의 한 계기가 되었다. 그는 월간 사상계를 창간해 민주화 운동을 이끈 공로로 1962년 한국 최초로 막사이사이상 언론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박정희의 5·16군사쿠데타는 4·19혁명이 잉태한 민주주의를 ‘태아학살’하고 말았다.

총칼로 권력을 잡은 박정희 정권에 맞서 장준하 선생은 다시 민주주의의 투사로 나섰다. 1965년 굴욕적인 한일협정이 체결되자 이를 제2의 을사보호조약이라고 규탄하며 박정희가 내세운 민족주의는 사이비 민족주의라고 격렬하게 비난하였다.

1967년 4월 대통령 선거운동 중 국가원수모독죄로 구속돼 3개월간 투옥됐으며, 그해 6월 옥중출마로 서울 동대문을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장준하는 박정희정권을 과거 친일에 뿌리를 둔 반민족·반민주세력으로 규정하고, 민족민주세력의 대동단결을 통해 이들과 맞서 싸우고자 했다.

1972년 10월 17일, 7·4남북공동선언을 발표한 지 채 백일이 못 되어, 박정희 대통령은 통일에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유신헌법을 선포하였다. 이른바 한국적 민주주의를 확립한다는 미명하에 선포된 유신헌법은 박정희의 영구집권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것이었다. 민주헌정질서를 파괴한 유신체제에 맞서, 장준하는 재야의 지도자로 그리고 평화통일운동의 선봉장으로 나섰다.

1973년 12월 ‘개헌청원 백만인 서명운동’을 주도했고, 1974년 4월 긴급조치 제1호 위반으로 1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12월 지병 악화로 가석방됐다. 출옥 후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서한’ 등을 발표하는 등 민주화투쟁에 주력했다. 그리고 반 유신투쟁의 막다른 고비에서 1975년 8월 17일 경기 포천군 이동면 도평 3리 약사봉에서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박정희와 장준하의 대결, 일본군 장교와 광복군 장교의 대결

장준하 선생은 37번의 체포와 9번의 투옥을 무릅쓰며 박정희 독재정권에 저항하였다. 암울한 유신체제에 맞서 민주와 통일의 횃불을 치켜들고 거리로 나선 그를 국민들은 ‘재야대통령 장준하’라고 불렀다.

그는 “‘일본 놈 앞에서 자기 이름 바꾸고, 광복군은 씨를 말려 죽이겠다 한 사람이 어떻게 나라를 생각하겠느냐. 다른 사람은 다 대통령 자격 있어도 박정희는 자격 없다’” 라며 박정희 독재정권의 정당성을 끝까지 인정하지 않았다.

박정희가 혈서지원이라는 꼼수까지 써가면서 만주군관학교 2기생으로 자원 입학하여(1940.4.4.) 다카기 마사오(高木正雄)로 창씨개명을 하고 황군(皇軍)의 장교가 되었으며, 일본인보다 더 일본인답다는 감탄을 들으며 만주군관학교와 일본 육사를 거쳐 괴뢰 만주국의 군인이 되어 항일민족운동세력 탄압에 앞장섰기 때문이다.

박정희와 장준하의 대결은 일본군 장교와 광복군 장교, 독재와 민주주의, 분단세력과 통일세력의 대결이기도 했다.

박근혜 대선 후보 선출, 유신독재세력의 화려한 부활인가

지난 37년 동안 묻혔던 장준하 선생의 의문사가 사회적 쟁점으로 떠오르는 가운데, 8월 20일 유신독재시절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던 박근혜 의원이 18대 대통령 선거에 나설 새누리당 후보로 선출됐다. 유신독재세력의 화려한 부활이라 하겠다.

박 후보는 5년 전 경선 당시인 2007년 7월 11일 선생의 미망인 김희숙 여사를 방문해 “장준하 선생이 돌아가신 후에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들었는지를 생각하니 진심으로 위로 드린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장준하 선생이 목숨을 걸고 저항했던 5·16 군사쿠데타를 박 후보가 “구국의 혁명”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옹호하는 점으로 보아, 그의 위로발언이 진심에서 나왔다고 보기는 어렵다.

또한 박 후보는 장준하 선생 의문사 진상조사 요구에 대해, “진상조사위원회 현장의 목격자로 해서 조사가 그동안 이뤄지지 않았냐”라고 하거나, 후보 수락 뒤 기자회견에서 “과거로 자꾸 가려고 하면 끝이 없다”라고 발언하여, 모든 것이 이미 끝난 것으로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게다가 박근혜 후보는, 1974년 4월 유신반대 시위를 주도한 민청학련을 북한의 지원을 받아 배후에서 조종했다는 혐의를 씌워 긴급조치 및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몰아 구속 처형했던 인혁당 재건위 사건이 조작·과장되었다는 주장이 제기됐을 때도, 그 주장이 “가치 없는 것이고 모함”이라고 반박한 바 있다.

그러나 그의 주장과는 달리 인혁당 관련자들은 2007년 1월 23일 법원의 재심에서 모두 무죄판결을 받았다. 당시 중앙정보부가 도예종 등 23명이 북한의 지령을 받아 인혁당 재건위를 구성하여 학생들을 배후조종하고 국가전복을 꾀했다고 발표했지만, 조사결과 이를 입증할 증거는 어디에도 없으며, 범죄혐의는 모두 피의자 신문조서와 진술조서 등을 위조하여 조작하였음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인혁당 사건은 박정희를 정점으로 하는 유신정권의 조직적이고 계획적인 사법살인이었다. 당시 국제사회에서는 이들이 사형당한 1975년 4월 9일을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선포했고, 국내에서도 사법사상 가장 부끄러운 판결로 이 사건을 기억하고 있다.

뒤늦게나마 사법부에서 무죄 판결이 난 이상, 박근혜 후보는 역사와 국민 앞에 아버지의 죄과를 사과하고, 죽은 영령들과 그 가족 앞에 무릎 꿇고 사죄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박근혜 후보는 법원 판결 이후에도 자신의 발언을 사과하거나 철회하지 않고 있다.

장준하 선생의 부활은 유신독재세력의 부활을 막으라는 불호령

대통령은 취임에 즈음하여 “헌법을 준수하고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을 위해 노력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한다. 헌법정신에 따라 국가를 이끌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겠다는 다짐이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책임이 공동체가 합의한 최고의 가치규범인 헌법을 수호하는 것이다. 이에 비추어 볼 때, 박 후보가 과연 국가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갖추고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5.16 미화발언은 헌법정신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헌법 전문에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고 되어 있어,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짓밟은 5.16이 “구국의 혁명”될 수 없음이 자명하다. 또한 교과서에서도 5·16을 군사혁명으로 기재한 것은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정권 등 군사독재 시절에 국한됐을 뿐, 김영삼 정권 이후부터는 모두 쿠데타(군사정변)로 기록하고 있다.

이미 오래전에 5.16에 대한 역사적 판단은 내려졌다. 유신체제의 몸통이었던 박 후보가 5.16을 미화하여 헌법정신을 부정하고, 국가폭력에 대한 항의를 ‘모함’이라고 몰아 부치면서, 나라의 최고지도자가 되겠다고 나서니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다.

이번 장준하 선생의 부활은 유신독재세력의 부활을 막으라는 불호령이다. 그는 자신의 주검으로서 유신독재의 참혹함을 우리에게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일제시대에는 광복군활동을 한 독립운동가이며, 해방 후에는 이승만·박정희 독재정권에 치열하게 맞서 싸운 민주인사 장준하 선생의 억울한 죽음의 진상을 밝히는 일은 역사의 명령이며, 그에게 역사의 빚을 진 우리가 감당해야 할 시대적 소명이다. 이번 대선에서 유신독재세력의 부활을 막고 민주세력이 승리해야만 하는 또 하나의 이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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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한 글>

박한용, 2011.11.8. 「영원한 재야대통령과 일그러진 전쟁영웅-광복군 장교 장준하와 간도특설대 장교 백선엽의 ‘청춘역정’-」 노원도봉시민인문학강좌 발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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