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향장기수 양원진 할아버지 “휴전 상태가 70년이나 갈 줄은 몰랐죠”

박은경 기자(경향신문)
비전향장기수 양원진씨(94)가 19일 서울 관악구 만남의집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비전향장기수 양원진씨(94)가 19일 서울 관악구 만남의집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

“1953년 7월27일 정전협정 발효 12시간 전에 비밀무전이 왔습니다. 당시 우리 부대엔 전화기가 없고 레시버만 있었는데 ‘최고사령관의 명령’이라며 들려오는 정전협정 준수사항 10가지를 부소대장이던 내가 직접 받아적었지요. 그땐 전쟁이 끝난 게 아니라는 게 못마땅했지만 문제를 풀 수 있는 앞길이 열릴 거라고 생각했지 이렇게 70년간 정전상태가 지속될 거라곤 상상도 못했어요.”

지난 19일 ‘정의·평화·인권을 위한 양심수후원회’가 운영하는 서울 관악구 ‘만남의집’에서 만난 양원진 할아버지(94)는 허리 통증으로 거동은 불편했지만, 기억력은 세세하고 또렷했다. 양 할아버지 개인과 가족사에 크나큰 상흔을 남긴 전쟁과 정전은 또렷하게 각인될 수밖에 없었다.

양 할아버지는 인민군으로 지원해 6·25에 참전했고 정전 후에는 북한에서 생활하다 대남공작원으로 남파됐다. 누나와 매형의 신고로 신혼여행 중 체포돼 29년 6개월간 복역했다. 북으로 송환을 원하고 있지만 복역 중 강요로 작성한 전향서가 족쇄가 돼 구순이 넘도록 가지 못했다.

1929년 전남 무안의 소주양조회사 사장 아들로 태어난 그는 신흥대학(현 경희대) 외교학과에 들어간 지 이듬해 6·25 전쟁이 발발했다. 양 할아버지는 전쟁 초기의 기억을 타임라인에 저장한 듯 끄집어냈다.

3년간 전투 끝에 정전이라니…전쟁이 끝난 게 아니라 못마땅했지만 곧 해결의 길이 열릴 줄 알았지, 70년이나 갈 줄을 몰랐어요

“작은누나가 결혼해 살던 서빙고동 판자촌 방에 더부살이하고 있었어요. 26일 학교에 가니 체육과 학생들이 학도호국단 완장을 차고 있더라고요. 27일 이태원 근처로 나갔는데 외국인들이 차를 타고 한강 이남 쪽으로 가면서 화폐를 막 뿌렸고 돈을 주우려고 사람들이 몰렸어요. 군중들을 찍으려는 외국 기자들인가 싶었죠.”

그는 그날 밤 12시쯤 강한 폭발음에 잠을 깼다. 누나와 매형, 젖먹이 조카가 용산에서 청량리쪽 철로의 빗물터널을 방공호 삼아 몸을 숨겼다.

“28일 새벽 2시30분쯤, 한강 인도교 쪽에서 폭발음과 번쩍이는 불빛이 났는데 자동차들이 라이트를 켜고 계속 그쪽으로 나가길래 폭파는 안됐구나 싶었죠. 잠시 뒤 철교 쪽에서 더 큰 폭음이 나더라고. 뜬눈으로 밤을 세우다 날이 밝아 나가보니 한강 인도교와 철교는 이미 끊겨있었어요.”

그날부터 서울의 모습은 바뀌었다. 용산 파출소 앞에는 인민군 탱크가 세워져있었고, 군수 물자 실린 열차가 한강 다리가 끊겨 되돌아왔다. 국방부 연병장 쪽에는 미군이 미쳐 가지고 가지 못한 C-레이션(전투식량)이 쌓여있었다.

그는 학교로 돌아갔다가 같은 해 7월 초 인민군에 입대했다. ‘네 것도 내 것도 없다’는 사회주의에 관심이 컸다.

양원진(94)씨가 19일 서울 관악구 만남의집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양원진(94)씨가 19일 서울 관악구 만남의집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후 3년간 이어진 전쟁에서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넘겼다. 1950년 9월15일 인천상륙작전 후에도 연대 무전기가 고장나서 통보를 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 해 9월26일이 추석날이었다. 그날 폭격을 맞았는데 근처 민가에 불이 붙었다.

“초가지붕이 그렇게 두꺼운 줄 그때 처음 알았어요. 불을 끄느라 얼굴도 군복도 숯검댕이가 됐고 개울가에서 옷을 빨고 있는데 피란민들이 남쪽으로 내려가더라고요. 영문을 몰랐는데 그날 저녁 온양전투에 들어가라는 비상소집령을 받았습니다. 젖은 군복을 그대로 입고 갔죠.”

감정에 무딘 편이라는 그는 평소에는 꽃을 봐도 별 감흥이 없었는데 온양전투로 가는 신작로에 핀 코스모스를 봤을 땐 “야 곱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고 한다. 온양전투에서 그가 속한 중대원 대부분이 전사했다.

전쟁과 분단이 없었다면 장가 가서 자식을 6명 정도 낳고 어머니 모시고 효도하며 살고 싶었어요

휴전 소식은 원산 부근 갱도에서 들었다. “수백, 수천 명이 전투로 목숨을 잃은 봉우리가 일순간에 포성이 멈추고 조용해지더라고요. 갱도 밖으로 절대 나오지 말라고 했지만 궁금해서 견딜 수가 있어야죠. 머리를 내밀어 보니 남쪽에서는 인민군 쪽으로 플래시를 비추며 환호성을 내고 있었어요. 정전이 허망했죠. 빨리 전쟁이 끝나 죽지 않고 살면 고향에 가려고 했는데 전쟁도 안 끝나고 고향에도 못 가게 됐으니 말이죠.”

정전 이후 그는 평안남도 대동군에 있는 정치군관학교에 들어갔고 이후 대남 공작원으로 활동했다. 1959년 남파돼 서울에 왔고, 이듬해 5월 결혼했지만 신혼여행 중 국가보안법 위반 등 혐의로 체포됐다. 양 할아버지는 수감 6년 뒤인 1966년 전향서를 작성했지만 총 29년 6개월간 수감생활을 하다 1988년 성탄절 특사로 출소했다. 수감 중 아내와는 헤어졌다.

전쟁과 분단이 없었다면 그의 질곡 어린 삶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난 큰 욕심이 없었어요. 출세를 위해서 공부하라고 하면 대학도 안 갔을 거에요. 그래도 전쟁이 없었으면 경희대 1회 졸업생이 됐을까 모르겠어요. 내 유일한 목적이라면 장가를 가서 자식들 많이 낳고 나를 위해 희생하신 어머니 모시고 사는 거였어요. 외롭지 않게 여섯 명 정도 낳아야겠다고 했었죠.”

정전 이후에도 70년이 넘도록 이어져 온 분단의 아픔을 몸소 경험한 그는 “가화만사성(집안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 된다)”를 강조하면서 “떨어지면 싸울 일이 생긴다”고 했다.

국군포로의 손녀이자 탈북해 한국에서 새로운 꿈을 꾸고 있는 권봄씨 얘기를 양 할아버지에게 들려주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줬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역사적 책임인데
그렇게 해주지 못해 후대들에게 미안하다.“

“포로들이 잡히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몸을 덜덜 떨어요. 안아주면서 ‘포로수용소로 갈테니 안심하라’고 했죠. 전장에서는 싸웠지만 동족이니까요. (권씨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다 알 수 없으니 함부로 얘기하기는 조심스러워요. 내 생각이 옳다는 생각으로 다른 사람에게 내 생각만 주장할 수 없는 것 아닙니까.”

양 할아버지에게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잊고 사는 청년세대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는 지 물었다. 그는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줬어야 하는 것이 역사 앞에 우리가 해야 할 책임이고 그래야 후대들이 잘 살 텐데 그렇게 못 해준 것이 미안하다”고 말했다. “남을 책망하기 전에 내가 더 치열하게 했어야 된다”면서 재차 “미안하다”고 했다. 전쟁과 분단 속에서 누구보다 치열한 삶을 살아냈지만 끝나지 않는 전쟁 앞에서는 미안함만 앞서는 듯했다.

 

북으로 송환을 원하는 양 할아버지에게 마지막 인사로 “다음 인터뷰는 평양 보통강 근처에서 하자”고 했다. 그러자 양 할아버지는 “보통강변이 우리 할머니 고향인데 거기서 할아버지와 나와 만나 결혼했다”면서 인터뷰 중 가장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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