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에서 온 편지] 박정훈님의 편지

2014.10.03 13:41

양심수후원회 조회 수:1258

박정훈님의 편지

양심수후원회 동지들에게


오랜만에 소식 전합니다.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야간집회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이 나면서 여러 동지들이 그동안 중단되었던 재판들을 다시 받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다행히 위헌판결 덕분에 우리에게 유리한 결과가 있지 않았을까 기대해 봅니다.

저도 갑자기 재판이 잡혔었는데 무려 2009년과 2010년 사건이었습니다. 바로 용산참사 투쟁이었습니다. 2009년 7월 20일(정확한 날짜인지는 모르겠네요) 용산참사가 일어난지 반년이 지났는데도 열사들은 차가운 냉동고에 갇혀 있었지요. 유가족과 많은 시민사회는 이들의 죽음이 왜 일어났는지 진실을 밝히라고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지금의 세월호 정국과 똑같은 상황이었습니다.

이날 순천향병원에서 유족들과 시민들은 열사들과 함께 거리로 나가고자 했으나 완전무장한 경찰들에 의해 제지당했습니다. 영정은 깨어지고, 그동안의 투쟁으로 몸이 성치 않았던 유족들은 다시 경찰과 몸을 부딪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바리케이트로 사용한 순찰자 위로 유족들이 올라갔고 저 역시 함께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함께 올라가 열심히 싸웠습니다.

4년만에 재개된 재판에서 검찰은 구형 2년을 이야기 하였습니다. 다행히 많은 동지들의 탄원서와 지지로 지난 9월 16일 10월에 2년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습니다. 물론 제가 대선에 개입한 국정원장과 비슷한 정도의 형을 받았다는 것이 납득이 되지 않아 항소를 하기로 했습니다.

이번의 재판을 통해서 미래의 내가 후회할 일은 하지 말자는 결심을 했습니다. 만약 제가 용산과 관련하여 어떠한 재판도 받지 않았다면 과거의 용산투쟁을 방기한 저 자신을 부끄럽게 여겼을 겁니다. 그리고 지금의 세월호 투쟁을 보면서 제대로 대응하지 않는다면 미래의 우리가 반드시 후회하고 부끄러워 할 날이 오리라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 끝에 편안한 감방생활을 청산하고 다소 불편한 생활을 선택했습니다. 처음에 재소자들 사이에서 녹아들어가 그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감옥을 바꿔보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어느 정도 성과도 있고, 주변의 많은 분들이 저를 믿어주고 신뢰한다는 생각으로 소박한 행동을 시작했습니다. 방사람들 그리고 운동시 만나는 다른 방의 재소자들과 이야기한 내용과 3개월 정도의 경험과 각종 사례들을 바탕으로 구치소 내의 문제들을 추렸습니다. 가장 심각한 것은 취침조명등이었습니다. 대부분 수면장애를 겪고 있었는데, 구치소내에서는 안대조차 판매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다음으로 ‘시계’문제도 운동장에 시계가 없어 30분 운동시간을 둘러싸고 몇분이라도 빨리 끝내려는 직원들과 정확한 시간을 요구하는 재소자들간의 마찰이 늘 있었습니다. 돈이 없는 재소자들은 1만6천원 정도 하는 손목시계를 구입할 수도 없었지요. 재소자들에게 이런 내용을 문제제기 할 생각이라고 하니 모두가 ‘꼭 바꿔달라’라며 지지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혼자만의 문제제기는 한계가 있어 집단으로 소장면담과 인권위제소를 해보자고 제안했으나 재소자들은 부담을 느꼈습니다.

가석방과 분류심사 교도소 이감에 있어 불이익을 받을까 두려웠던 겁니다. 제가 참으로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했던 것이지요. 고작 1년6월 받은 저야, 그리고 오랜 활동을 했던 터라 가석방 몇 달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저의 문제제기는 그저 좋은 의견 정도로 받아들여지고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채 유야무야 됐습니다.

사실 저는 양심수로 인정받아 구치소 측에서도 최대한의 존중을 해주고 그런 구치소 직원들의 태도 때문에 동료재소자들에게도 존중을 받으며 편안하게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재소자들은 쉽게 만날 수 없는 계장과 거의 1달에 1번 이상씩 만나 티타임을 가졌으니 재소자들은 제게 이런저런 문제들을 해결해 달라고 부탁했지요. 방의 하수구를 고치는 것도 제 이름으로 신청하기를 바랬습니다. 저는 이 생활에 안주하면서 적당한 수준에서 이런저런 작은 문제들을 해결하면서 편안하게 지냈던 겁니다. 재소자들 사이의 위계질서가 주로 ‘돈’을 위주로 짜여 있는데 저는 정치적으로 피라미드의 상층에 있었던 겁니다. 게다가 돈 없고 힘 없는 ‘절도’, ‘보이스피싱 인출’, ‘노숙자’들은 이 피라미드의 밑바닥에서 저를 비롯한 회장님들의 눈치를 보며 생활했던 것입니다. 이 같은 질서는 제가 거부한 군대의 병영질서와 같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제가 이 감옥에서 위계질서의 편안함 속에서 알량한 권력을 휘두르고 있었던 겁니다.

마침 조익진 동지를 비롯해서 전국의 양심수들이 감옥의 인권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투쟁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상황속에서 저의 안락함이 점점 가시방석처럼 느껴지기 시작했고 내가 왜 감옥에 와 있냐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결정적으로 150만원의 자건거를 훔쳐 들어 온 절도범과 80억을 챙기기 위해 고의부도를 낸 사람과 함께 있으면서 입방거부를 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영치금이 없어 쥐죽은 듯 일만 하는 청년과 당연하다는 듯 일을 시키는 회장님을 지켜보며 편안히 살아갈 수는 없었습니다. 물론 제가 방장이 돼서 방의 분위기를 바꿔보기도 했지만 근본적으로 이 권력관계를 바꿀 수는 없었습니다. 감옥에서 또 한번의 병역거부를 한 셈이지요. 이 소극적인 저항이 오직 저 자신의 마음만을 편안하게 하겠지만 여기서 할 수 있는게 이 정도인 것 같습니다. 지금은 조익진 동지가 이야기 하던 삼각거울과 CCTV가 있는 조사방에 홀로 앉아 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정말 최악의 환경이지만 마음만은 편안하고 가볍습니다.

이곳에서는 그 어떤 것에도 매이지 않고 이것저것 감옥의 문제들을 바꾸는 시도를 해보려고 합니다. 겨울철 목욕(온수) 횟수의 증가와 출정시 신문을 들고가게 해달라거나 지금까지 재소자들에게 들었던 내용들을 끊임없이 이야기 할 생각입니다. 마침 9.29에 약 2달 전에 냈던 인권위 면담신청이 진행됩니다. 단식은 하지 않지만 나름대로의 저항과 불복종행동을 이어가며 열심히 투쟁하고 있는 동지들을 지지하겠습니다.

모두 몸 건강하길 바랍니다.

2014.9.28

박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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