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에서 온 편지] 이병진님의 편지

2014.06.23 21:15

양심수후원회 조회 수:1428

이병진님의 편지


김익 사무국장님께

-1993년 평양방문을 회상하며-

집필문 발송을 불허한 전주교도소의 행정처분이 부당하다고 대법원에서 판결하였습니다. 1993년 평양에 방문했던 소회를 회상하며 쓴 글을 국가보안법 위반에 해당된다고 강제 조치 했는데, 그런 교정당국의 행위가 불법임이 명백히 드러났습니다. 행정당국이 국가보안법을 가지고 국민들의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탄압하고 억압화고 있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준 사례입니다.

이번 재판을 포기하게끔 압박하려고 인천보안수사대가 감옥을 압수수색하였고 법무부는 변호인 접견을 불허하였고 집중적인 서신검열로 저를 위축시키려 했지만, 양심수후원회 장기수 선생님들 김익 사무국장님의 도움으로 승리하게 되어 기쁘고 감사드립니다.

저는 북이 ‘준전시’를 선포했던 1993년과 극적으로 북-미합의가 이루어졌던 1994년 두차례 평양을 비공개로 다녀왔습니다.

냉전질서가 해체되고 새롭게 형성되고 있던 국제질서와 한반도의 정세변화를 직접 보고 듣기 위하여 평양을 다녀왔습니다.

그때의 경험 가운데 1993년 처음으로 평양을 방문하면서 느꼈던 소감을 그때 당시를 회상하며 솔직한 감정을 표현했는데, 그것을 북을 찬양고무하는 행위로 간주하고 발송금지시켰지요.

벌써 20년이나 지난 일을 가지고도 국가보안법 운운하며 출판을 막으려는 것을 보면서 여전히 냉정질서의 틀에 갇혀 퇴행하고 있는 모습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이번 재판에서 사법부가 내린 판단의 의미를 잘 헤아려서 공안적 시야에만 사로잡혀 국민들의 자유로운 사고와 의식의 발전을 억압하려는 국가기관의 통치행위를 반성하고 바꾸는 기회가 되어야겠습니다.

저는 당시 저의 신변안전을 걱정하던 조국평화통일위원회의 권고와 유학생이라는 신분 때문에 비공개로 평양을 다녀왔을 뿐이지, 평양방문목적에 무슨 특별한 의도와 음모가 있어서 비공개방문을 한 것은 아닙니다.

당시에는 나의 학문적 성취와 성숙함이 부족하여 여러 미숙함도 있었기 때문에 그런 부분들에 대해 좀 더 연구하고 완성하여 방북사실을 공개하고 공론화할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6자회담의 9.19합의가 미국의 방해로 틀어지고 북이 핵실험을 하면서 북의 진위를 듣기 위해서 해외에서 북측인사들을 만났는데, 그 일을 빌미로 저는 ‘간첩’으로 몰려 갑자기 감옥에 갇혀 참담한 심정이었습니다.

북측도 저의 갑작스러운 ‘간첩’혐의에 많은 의구심을 가졌을테고 남북관계의 신뢰에도 영향을 주었으리라 봅니다.

저는 저의 진정성을 통해서 저 개인의 학자적 자존감과 명예를 세울 뿐만 아니라 남북의 신뢰를 쌓기 위해서라도 제 사건의 ‘진실’을 밝히고자 노력하였습니다.

그러나 재판과정은 동요하는 가족들과 천안함 침몰 사건에 따른 반북여론과 감정 때문에 저에게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재판절차의 형식이 저를 짓눌렀지요.

그런 억눌림과 간절함으로 글을 썼는데 그 글조차 발송불허하는 국가기관의 폭력과 횡포에 깊은 상처를 받았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사법부에서 그런 국가기관의 부당함을 바로 잡아주었고, 저의 생각과 고민 그리고 희망을 이야기 할 수 있게 되어 기쁘고 설레입니다.

저 역시 이번 판결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고 보다 성숙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분발할 것입니다.

좁고 답답한 감옥에 갇혀 지내는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절망하지는 않습니다.

감옥에 갇혀 있던, 밖에 있던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은 민족의 평화와 통일 그리고 인민들의 행복입니다.

우리민족은 역사적으로 일본제국주의에 의한 식민지배를 당했고 그런 불행의 씨앗은 외세의 간섭과 지배에 맞설 힘이 없었기 때문이었으므로 그런 역사적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늘 생각합니다.

이와 같은 바람과 염원은 사상과 이념, 종교를 떠나 남과 북 그리고 해외의 동포들이 갖고 있는 공통의 것이라 확신합니다.

나는 나를 감옥에 가둔 보수정권에 대해서 불편한 감정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적대하지 않습니다. 저는 저의 사례를 통해서 ‘간첩’이 아닌데도 ‘간첩’으로 몰아가는 식의 통치방식은 결국 우리사회에 극도의 불신감과 불안을 조성하므로 보수정권에도 별 도움이 안 되고 민족전체의 이익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입니다.

저는 이번 사법부의 판단에는 그런 깊은 뜻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북쪽의 벗들도 1993년에 준전시를 선포한 상황에서도 전쟁을 막고 민족의 화해를 위해서 나를 초청했던 그 순수한 열정과 민족애를 잊지 말고 지금의 위기를 민족의 파멸이 아닌 민족의 단결과 평화를 만드는데 더 큰 힘을 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곧 <작은책>에서 나의 첫 평양방문기의 글이 출판될텐데, 저의 글이 남과 북이 화해와 평화를 만드는데 작은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나는, 1993년에 첫 평양을 방문할 때나 2014년에 감옥에서 그 경험을 공개하는 지금이나 항상 민족의 화해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장기수선생님들과 양심수후원회 동지들에게 나의 이런 마음이 전해지길 바랍니다.


이병진 올림

2014년 6월 18일


보태는 글

연합사진 보도자료 보았습니다.

기자회견문을 읽으시며 고생하신 김익국장님께 진심으로 감사인사드려요.

사모님께도 안부인사 전해주세요.

민족을 사랑하는 그 순수한 마음에 고맙고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다음 기회에는 함께 면회 오셔서 인사 나누면 좋겠습니다.

두분의 행복을 축복드려요.


병진 올림

2014년 6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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