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로 다 안을 수 없는 선물같았던,

낙조속에 사랑을 기억하다



이 여행에서 사람들은 몇번이고 물었다.

진도하면 무엇이 떠올라요?

 

나에게 진도는 아리랑을 떠올리게 한다. 진도아리랑.

이번 여행 때문에 떠오른 아리랑 한소절을 불러보고 싶어졌다.

 

      '서산에 지는 해는 지고 싶어 지느냐. 날 두고 가신 임은 가고 싶어 가느냐.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DSC06245.JPG


DSC06249.JPG

 

 

5월4일과 5일. 옴시롱감시롱 64차 기행은 목포 진도 여행이었다.

'진도, 목포의 속살을 느끼다' 라는 제목을 덧붙인 꽤많은 사람들이 함께가는 단체여행이었다.

진도 토요민속공연 관람, 운림산방, 남도석성, 목포 유달산, 갓바위 등 많은 일정이 있었다.

 

다 좋았다.

마치 너무나도 아름다운 여인을 소개받고 이미 호감을 느꼈는데, 중매쟁이가 시간이 없다며 그 여인의 앞태를 돌려세우고

뒤태를 돌려세우며 감탄케 하고, 낙조를 보았을 때는 중매쟁이 없이 잠시 나눈 대화에

'이런 아름다운 여인이 내 앞에 와있다니..' 하는 두근거림과 압도감을 느끼는 그런 기분이었다. 

 

처음 만났지만 너무 예뻐서 먼저 손을 잡고 싶은 기분을 느끼게한 그런 마음같은 일정은 '세방낙조'였다. 

붙잡아 두고 싶도록 아름다운 해가 사람들의 경탄과 아쉬움속에 바다속으로 서서히 가라앉듯 지고 있었다.

필경 다음날이면 다시금 솟아날 해이건만 그 따뜻한 붉은 울음에 나또한 아쉬움에 그 얼굴을 두눈속에 가득 담을 수 밖에 없었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 발병이 난다고 짚신짝으로 땅을 치며 울더니

 다음날 노을을 보고 '그 사람도 뭐 가고 싶어 갔는가. 지도 슬펐을것이여.' 하고 오히려 그 사람을 마음으로 위로하고

자기 자신을 달래는 우리 한민족의 미련을 그 노을 속에서 읽었다면 내가 너무 잔망스러운 것일까.

이래서 우리 한민족은 어떤 슬픔에도 굴하지 않고 질기게 기다리는 질경이같은 민족성의 민족이라 일컬어 졌는지도 모르겠다.

 

낙조를 아쉬움속에 보내고 밤에는 진도가 본가인 회원님의 집에서 밤새 잔치같은 시간이 있었다.

민속 공연장에서 곱게 한복을 입은 공연자들과의 춤도 쑥쓰러워 사리던 사람들이었으나, 노래방 기계로 멍석을 깔아주자

그야말로 그 집은 한밤의 잔칫집이 되었다.

 

DSC06333.JPG DSC06337.JPG DSC06338.JPG DSC06342.JPG DSC06343.JPG DSC06344.JPG DSC06345.JPG DSC06350.JPG

 

나는 장기수 어르신들이 그렇게 끼가 많으신 분들인줄 몰랐네~

지나간 옛노래를 불러 미안하다고 하면서도 노래순서를 기다리고 눈을 감고 열창하는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감옥에서 보낸 젊은 시절, 다시 꺼내어 방안에 풀어놓을 수 있으면 그들은 분명 가무에 능한 한민족의 풍류를 발산하리라.

양원진 선생이 줄을 서서 노래 부를 차례를 기다리고, 늘 굳은 얼굴이었던 김영승 선생이 춤을 추고, 사흘전 풍을 맞아

몸이 불편하다면서도 누구보다 흥겹게 어께를 흔드는 강담 선생 등등을 보며 문득 그들의 잃어버린 보석같은 청춘과 그리고

그 억압의 시간들도 앗아가지 못한 '그들 핏속에 흐르는 한민족의 흥' 이라는 것에 왠지모를 한과 속상함과 반가움이 밀려왔다.

 

흥겨운 시간이 끝나고 다음날이 왔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겨우 13척의 배로 왜군을 크게 무찌른 명량대첩이 있었던 진도 대교에 들렀다.

 

DSC06481.JPG

  

진도대교 밑에는 '통일기원 국조(國祖)단군상' 이 있었다.

임진왜란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명나라로 가는 길목이라며 조선을 우습게 알고 쳐들어왔지만, 막상 7년간의 우리 조선 한민족의 저력과 저항은 일본의 내노라하는 참전 귀족들을 굶겨죽이고 물에 빠뜨려죽이고 결국 왜나라의 중심지를 오사카에서 지금의 동경으로 바뀌게 만들었다.

 

만일 그 왜구들이 우리 국조 단군자손의 굳은 심지와 강한 저항을, 그리고 저 물살에 몰살당할 줄 진작에 알았다면 감히 침범해왔을까. 그날의 피맺힌 조선시대 임진왜란의 승리의 함성과 왜구들의 절규가 이곳까지 들리는 듯하다.

 

최근 고궁박물관이나 세종문화회관은 '일본관광객에 대한 배려'라며 임진왜란이라는 명칭도 지우고 있지만, 실제 일본이라는 정식 이름은 1900년대가 되어야 등장하며 당시 왜군은 일본군이 아닌 '천하군'이라는 명칭이었다. 세종문화회관 등에서 지운 '임진왜란' 당시의 기록에 대해 '일본' '일본군' 이라 하는 것은 오히려 역사기록에 맞지 않는다. 당시 왜구의 침략에 목숨을 바친 우리 조상들은 역사기록으로 왜구’ ‘임진왜란이라 하였는데 왜 후손들은 그 조상의 기록을 왜곡하는지 안타까울 따름이다.

 

 DSC06565.JPG

 

 

마지막 일정으로 유달산에 올라 아직도 전쟁이 끝나지 않은 조선을 지키기 위해 팔을 펼친'서울과 다른 이순신 장군'의 동상을 보고, 사진기록 속의 일제의 만행에 분개하고, 품삯을 주지 않는 양반의 횡포로 병든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청년의 넋이 바위가 되었다는 갓바위를 보았다.

 

정말 목포와 진도는 너무 보여줄 것이 많은 미녀와도 같았다.

하지만 너무 짧은 만남이기에 그저 한번 휘두른 치마폭의 향기만 느끼고 돌아가는 아쉬운 기분이었다.

언젠가.... 긴 시간 목포-진도와 데이트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와서 더 많이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매일 뜨고 지는 해조차 그리움과 잊었던 사랑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던...

아름다운 추억과 시간을 함께 할 수 있도록 배려해준 진도 공무원분들과 아름다운 홍주 칵테일을 가르쳐주신 어머님께

감사드리며, 언젠가 다시 함께 떠날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글쓴이
468 [양심수] 박창숙님, 이창기님의 서신 file 2012.08.22 2147 양심수후원회
467 [장기수] 김수룡 선생님이 돌아가셨습니다. file 2012.01.16 2142 양심수후원회
466 [후원회] 늦은 여름 휴가로 사무실 쉽니다. file 2012.08.29 2138 양심수후원회
465 [양심수] 도한영님의 편지 2012.03.08 2136 양심수후원회
464 [양심수] 장민호 님의 편지 file 2013.01.07 2131 양심수후원회
463 철탑, 2012년 한국 노동자의 마지막 비상구 file 2012.12.27 2114 양심수후원회
462 [후원회] 이명박정부 들어 호황을 누리는 친일·독재 기념사업 2011.12.15 2107 양심수후원회
461 [후원회] 가을 역사기행-충주 file 2012.11.05 2106 양심수후원회
460 [후원회] 6월 월례강좌 진행했습니다. file 2013.06.24 2103 양심수후원회
459 [후원회] 소위 ‘왕재산’ 조작 사건 관련 1인시위 file 2012.02.23 2082 양심수후원회
458 [장기수] 문상봉 선생님, 이사하셨습니다. file 2012.01.31 2082 양심수후원회
457 [감옥에서 온 편지] 이병진님의 편지 2013.09.14 2081 양심수후원회
456 [후원회] 감옥인권실태보고서 및 구금시설 교정관련 법규집 발간 file 2012.11.29 2080 양심수후원회
455 [후원회] 5.18재단과 협약식을 진행했습니다. file 2012.03.19 2072 양심수후원회
454 [양심수] 이병진님의 편지 2012.04.29 2067 양심수후원회
453 [감옥에서 온 편지] 김덕용님의 편지 2013.09.25 2059 양심수후원회
452 [민가협] 900회 국가보안법 철폐와 양심수 석방을 위한 목요집회 file 2012.08.23 2056 양심수후원회
» [오감시롱 기행기] 한팔로 다 안을 수 없는 선물같았던, 낙조속에 사랑을 기억하다 - 정찬희 file 2013.06.24 2055 양심수후원회
450 [양심수] 남경남, 박용, 김학현 님의 편지 2012.04.12 2054 양심수후원회
449 [후원회] '고난함께'에서 새해인사 왔습니다. file 2012.02.03 2052 양심수후원회

CLOSE

회원가입 ID/PW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