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가협양심수후원회·옴시롱감시롱 공동답사 안내문

양심수후원회 2011.10.04 14:41 조회 수 : 2730

안녕하십니까?

단풍이 물들고 수확하기에 좋은 10월입니다. 일교차가 심한 요즈음 무탈하신지요.

양심수후원회와 오감시롱이 공동으로 오는 11 5() 6() 양일 간 충청북도 괴산과 보은 으로 가을답사를 떠납니다. 이와 관련하여 답사지역에 대해 간단히 소개말씀 드리겠습니다.

 

1. 괴산

 

1)송시열의 신도비와 묘소

 

1-1-1. 송시열은(1607-1689) 인조, 효종, 현종, 숙종 대에 걸쳐 활동한 학자이며 정치가입니다. 송시열은 충청북도 옥천군 이원면 용방리 구룡촌 외가에서 진사 송갑조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자는 영보(英甫)이며 호는 우암(尤庵), 화양동주(華陽洞主)입니다.

 

1-1-2. 학문적으로 조광조, 이이, 김장생으로 이어지는 기호학파의 학통을 이어받은 송시열은 조선 후기의 지배적인 정치 철학을 정립한 당대 최고의 학자였습니다. 그의 이름은 조선왕조실록에서 3,000번이 넘게 언급됩니다.

 

1-1-3. 노론의 영수인 송시열은 1689(숙종 15) 세자책봉을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고 숙종의 노여움을 사서 제주도로 유배되었으며, 국문(鞫問)을 받으러 서울로 압송되던 도중 정읍에서 사약을 받고 죽었습니다.

 

1-1-4. 당초 수원 무봉산에 있었던 우암 무덤은 1757(영조 33) 청천면 청천리로 이장됩니다. 이로써 이곳은 화양동과 함께 노론들의 정신적 고향이 됩니다. 묘소 입구에는 정조 어필(御筆)로 쓴 유명조선국좌의정우암송선생지묘(有明朝鮮國左議政尤庵宋先生之墓)’ 신도비(神道碑)가 있는데, 이는 1779(정조 3)에 세운 것입니다.

 

 

2)화양구곡과 화양동서원 그리고 만동묘

 

1-2-1. 화양동계곡은 화양천 맑은 물을 끼고 산속으로 10리쯤 뻗어 있습니다. 옛사람들은 이 골짜기를 금강산 남쪽에서 으뜸가는 산수라 일컬었습니다. 화양천은 흘러 달천으로 가고, 달천은 다시 남한강에 합류되어 한강까지, 서해까지 갑니다.

 

1-2-2. 화양동계곡이 유명한 것은 화양구곡으로 대표되는 자연경관 덕분만이 아니라, 송시열이 벼슬에서 물러난 후 이 골짜기에 들어앉아 글을 읽었으며, 그가 죽은 다음 그를 제향(祭享)하는 화양서원 그리고 만동묘가 있기 때문입니다.

 

1-2-3. 자신을 주자에 비유했던 송시열은 주자의 무이구곡(武夷九曲)을 본떠서 화양동계곡의 볼 만한 곳 아홉 군데에 이름을 붙이고 화양구곡(華陽九曲)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명나라의 마지막 황제인 의종(毅宗) '비례부동(非禮不動)' 4자의 필적을 구하여 화양계곡의 암벽에 새겨놓고, 친히 '대명천지 숭정일월(大明天地崇禎日月)'이라 글자를 새겨 존명대의(尊明大義)의 근본도장으로 삼았습니다[5 첨성대(瞻星臺)].

1-2-4. 1689(숙종 15) 왕세자 책봉을 둘러싼 논란 끝에 남인이 집권하게 됨에 따라[기사환국] 제주도로 유배되었다가 서울로 압송 도중 사약을 받고 죽은 송시열은 1694(숙종 20) 노론이 다시 실권을 잡으면서[갑술환국] 복권됩니다. 이때부터 전국 44 곳에 그를 배향하는 서원이 세워지는데, 사액서원(賜額書院)만 해도 37곳에 이릅니다.

 

1-2-5. 그 가운데서도 송시열의 수제자인 권상하(權尙夏정호(鄭澔) 등 노론계 관료와 유생들이 1695(숙종 21)에 세운 화양동서원이 가장 대표적인 서원으로 노론사림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화양서원의 위세는 날로 더하여 국가로부터의 토지와 노비 등 물질적 지원은 물론 노론관료나 유생의 기증에 의하여 서원 소속 토지가 크게 늘어났습니다. 이후 화양서원은 점차 민폐를 끼치는 온상으로 변해가서, 제수전(祭需錢) 징수를 빙자하여 각 고을에 보내는 화양묵패(華陽墨牌)는 토색질하는데 쓰이다보니 협박장의 대명사가 되다시피 하였습니다.

 

1-2-6. 만동묘(萬東廟)는 임진왜란 때 조선을 도와준 데 대한 보답으로 명나라 신종(神宗=만력황제)과 명나라 마지막 황제인 의종(毅宗=숭정황제)을 제사지내기 위해, 1704(숙종 30)에 화양동(華陽洞)에 지은 사당입니다. 해마다 만동묘에서 제사를 지낼 때는 전국의 유생 수천 명이 모여들었고 일 년 내내 선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1-2-6. 만동묘가 노론(老論)의 소굴이 되어 상소와 비판을 일삼았고, 비용을 염출하기 위해 양민을 토색하는 등 민폐가 심하자, 대원군이 서원을 철폐할 때 헐어버리고 신주와 편액(扁額) 등은 서울 대보단(大報壇)의 경봉각(敬奉閣)으로 옮겼습니다. 뜰에 있는 만동묘정비(萬東廟庭碑)는 일본인들이 글자 획을 쪼아 알아볼 수 없게 만든 후 땅에 묻었던 것을 1983년 홍수 때 찾아내어 옛 자리에 세워 놓은 것입니다.

 

 

2. 보은

 

1)법주사

 

2-1-1. ‘부처님의 법이 머문 곳이라는 이름을 가진 법주사(法住寺) 553(진흥왕 14)에 의신(義信)이 창건하였고 하였고, 그 뒤 776(혜공왕 12)에 진표(眞表)가 중창한 미륵신앙의 중심 사찰입니다. 국보나 보물 말고도 법주사에서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아온 것이 입구의 오리숲 길입니다. 참나무와 소나무, 전나무 들이 우거져 하늘을 가린 이 숲은 길이가 오리가 된다고 하여 오리 숲입니다.

 

2-1-2. 오리 숲을 빠져나가 수정교를 건너고 금강문 천왕문을 차례로 들어서면 호서제일가람(湖西第一伽藍) 법주사 경내입니다. 속리산 자락에 들어 있는데도 절 자리가 평평하고 너른 터 안에는 팔상전(국보 55), 쌍사자석등(국보 5), 석연지(국보 64)와 대웅보전(보물 915), 사천왕석등(보물 15), 원통보전(보물 916), 마애여래의상(보물 216) 등 국보와 보물이 널브러져 있습니다.

 

2)동학 전적지

장내리(帳內里) 동학교도 집결지/동학농민군 북실전투지/동학농민혁명기념공원

 

2-2-1. 1893년에 있었던 동학교도들의 보은집회는 본격적인 농민전쟁을 예고하는 사건이었습니다. 이 해 3 11일부터 4 2일까지 척왜양창의(斥倭洋倡義:일본과 서양의 침략을 물리치고 의로움을 떨친다)’의 기치아래, 보은장터인 장내리로 동학교도와 농민들이 구름과 안개가 메워지듯이 매일 각처에서 몰려와 무려 2 3천여 명이 모여듭니다.

 

2-2-2. 보은 집회를 계기로 지금까지의 교조의 억울한 죽음을 풀어달라는 교조신원운동에서 반외세·반침략의 기치를 내건 본격적인 농민혁명운동으로 발전한 것입니다. 당시 보은 관아 삼문 밖에 내붙인 격문에는

 

지금 왜양(倭洋)의 도적떼가 나라 한복판에 들어와 크게 어지럽힘이 극에 이르렀다.우리 수만 명은 힘을 모아 죽기를 맹세하고 왜양(倭洋)을 타파하여 나라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하니

 

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동학은, 장내리 취회(聚會)을 계기로, 교조신원(敎祖伸寃)과 포교허용을 요구하던 종래의 종교운동 차원을 넘어, 일본과 서양의 침략세력을 배척하는 정치운동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3)삼년산성

 

2-3-1. 삼년산성은 신라시대의 산성이며 우리나라 산성을 대표할 만한 대단한 석축산성으로 성을 다 쌓는데 3년이 걸렸대 해서 삼년산성이라 불립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삼년산성은 신라 자비왕 13(470)에 쌓았고 소지왕 8(486)에 이찬 실죽을 장군으로 삼아 일선(지금의 구미시 선산읍 일대)의 장정 3,000명을 징발하여 개축하였다고 합니다.

 

2-3-2. 보은은 대전 청주 상주 영동으로 연결되는 요지로서 삼국시대 백제와 신라가 영토를 다투던 분쟁지역이었습니다. 신라는 상주 사벌성을 점령하고 보은으로 나와 백제의 남진에 대비하여 이 성을 쌓았습니다. 이 때는 백제가 한성에 도읍을 두고 있었는데, 이후 백제가 웅진(공주)으로, 사비(부여)로 천도한 후에도 삼년산성은 신라가 서쪽의 백제에 대비하고 고구려의 남진을 저지하면서 서북지방으로 나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전초기지였습니다. 즉 보은 지역의 확보는 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루는 데 가장 중요한 토대가 되었습니다.

 

2-3-3. 진흥왕 15(554)에 백제 성왕이 대가야군과 연합하여 관산성(지금의 옥천)으로 쳐들어오자 처음에 고전하던 신라군은 삼년산군에서 출병한 군사의 응원으로 성왕을 죽이고 백제 군사 3만 명을 전몰시켰습니다. 관산성 싸움의 승리로 신라는 그전 해 나제동맹을 깨고 백제로부터 빼앗은 한강 하류지역 지배를 굳혀 삼국통일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여기서도 삼년산성이 백제 공격의 최전방 거점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상에서 알 수 있듯이, 화양서원과 만동묘가 있는 괴산은 노론사림들의 정신적 지주인 우암 송시열의 숨결이 배어 있는 곳이며, 미륵신앙의 근거지인 법주사와 대규모 동학집회가 열렸던 보은은 도탄에 빠진 세상을 구원한다는 메시아사상이 스며있는 곳입니다. 좀 더 자세한 설명은 답사현장에서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2011 10 4

 

민가협양심수후원회장·옴시롱감시롱회장 아룀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권오헌의 가려졌던 통일여정> 문집 주문 안내 양심수후원회 2023.12.26 143
103 10월산행과 월례강좌 안내합니다. 양심수후원회 2011.10.12 3767
102 한미FTA 저지 긴급 국민행동 관련 일정 file 양심수후원회 2011.10.12 2790
101 감옥 인권 개선을 촉구하는 인권·사회 단체 기자회견 양심수후원회 2011.10.12 2942
100 [10/13] 구럼비 살리기 시민행동 file 양심수후원회 2011.10.11 2389
» 민가협양심수후원회·옴시롱감시롱 공동답사 안내문 file 양심수후원회 2011.10.04 2730
98 [10/4]10.4선언 발표 4주년 기념 평화통일축전 file 양심수후원회 2011.09.26 2528
97 [10/8] 5차 희망버스 '가을소풍' file 양심수후원회 2011.09.23 4585
96 [10/1] 강정마을 생명평화축제-울지마 구럼비 힘내요 강정 file 양심수후원회 2011.09.22 2346
95 9월 월례강좌가 열립니다. 양심수후원회 2011.09.22 4054
94 [풍성한 한가위] 마음에 밝은 달을 띄웁니다. file 양심수후원회 2011.09.09 2558
93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어머니께서 소천하셨습니다. file 양심수후원회 2011.09.05 2238
92 [알림] 9월 5일(월)-7일(수)까지 여름 휴가로 사무실 빕니다. 양심수후원회 2011.09.02 3086
91 2011년 양심수 전국면회 공동행동 시작합니다. file 양심수후원회 2011.08.29 2421
90 [제주 강정마을] 8/27~ 9/4까지 3차 집중 방문 양심수후원회 2011.08.26 3456
89 [8/29-9/2] 양심수 면회투어 참가 제안서 file 양심수후원회 2011.08.26 2291
88 8월 25일 전국여성농민대회가 서울시청에서 열립니다! file 양심수후원회 2011.08.19 2099
87 8월 27일, 4차 희망의 버스에 함께해요~!! file 양심수후원회 2011.08.17 2322
86 8월 20일 전국노동자대회, 희망시국대회에 함께 합시다! file 양심수후원회 2011.08.17 2158
85 [615통일산악회 4주년 기념 등반] 8월 산행을 안내합니다. 양심수후원회 2011.08.17 3678
84 정리해고공동투쟁단 24시간 노숙 농성 file 양심수후원회 2011.08.16 2404

CLOSE

회원가입 ID/PW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