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혈병 등 산재 소송서 삼성, 법원 제출자료 불응 83%

등록 :
2016-09-26 07:10
수정 :2016-09-26 10:01


전체 77건 중 12건만 제출해
“자료 이미 폐기” “영업비밀” 이유
삼성 쪽 “법정 보관기간 지나”


백혈병 등 삼성반도체 노동자의 직업병과 관련한 산업재해 소송에서 삼성은 법원이 제출을 요청한 자료 10건 중 8건꼴로 공개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25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신창현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이 진행한 삼성반도체·엘시디(LCD) 생산 공장에 관한 10건의 산재 소송을 분석한 결과, 법원이 재해자의 업무환경을 파악하기 위해 삼성 쪽(삼성전자·삼성디스플레이·삼성에스디아이)에 자료 제출이나 답변을 요청한 건수(사실조회와 문서송부촉탁)는 모두 77건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삼성 쪽이 자료를 제출한 경우는 13건으로 17%에 그쳤다. 나머지 64건(83%)은 아예 답변하지 않거나 자료 일부만 공개했다.


자료 제출을 거부하는 이유로는 “관련 자료를 폐기했다”(24건)는 게 가장 많았다. 12건에 대해선 “사건과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고, 7건은 “영업비밀에 해당한다”며 제출하지 않았다.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은 경우도 21건이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116조는 “재해자가 보험급여를 받는 데 필요한 증명을 요구하면 사업주가 그 증명을 해야 한다”고 돼 있다.


삼성은 법원이 문서송부촉탁에 이어 문서제출명령까지 내려도 일부 자료를 공개하지 않았다. 삼성전자 건강연구소가 작성한 반도체 엘시디 공장의 안전보건에 관한 연구보고서가 대표적이다. 건강연구소가 임직원 건강과 관련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면서 확인한 유사질병(혈액암) 발병사례와 ‘엘시디 제조공정 사용물질의 노출관리기준 연구'에 대해 법원은 문서제출명령을 내렸지만, 삼성은 “산재를 입증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업무와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며 거부했다. 또 삼성반도체 엘시디 공장의 안전보건 실태에 관해 수행한 연구목록을 요청했지만 답변하지 않았고, 관련 논문인 ‘반도체 사용 시너의 구성성분에 관한 연구'를 법원이 전문을 제출하라고 명령했지만 초록만 냈다. 재해자가 업무 중에 취급한 화학제품의 제품명과 성분도 대부분 비공개 결정했다. 법원이 자료요청에 이어 독촉장까지 보냈지만 1년간 무응답으로 버티기도 했다.


고용부도 마찬가지였다. 법원이 삼성반도체 노동자의 산재 소송과 관련해 고용부와 산업안전보건공단 등에 답변 혹은 자료 제출을 요청한 건수는 35건인데 이 가운데 10건(29%)에 대해서만 답변하거나 자료를 제출했다. 나머지 25건(71%)은 “사업장(삼성) 영업비밀에 해당한다”는 이유 등으로 제출하지 않았다. 고용부가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작성한 삼성반도체 공장의 '안전보건 진단보고서'는 법원이 7차례나 제출을 요청했지만 모두 “(삼성의) 경영상 비밀이 포함돼 있다”며 제출을 거부했다. “보고서가 공개되면 향후 사업장이 감독 및 안전진단 과정에서 협조를 꺼리게 되며” “사업장의 안전보건상 경쟁력과 이미지가 저하된다”는 게 이유였다.


신창현 의원은 “기업의 자의적 잣대인 ‘영업비밀’이 산재 근로자의 권리 보장보다 우선시돼왔음이 드러난 것”이라고 비판했다. 유엔 인권이사회도 지난 15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정기회의에서 ‘유해물질 및 폐기물 처리 관련 유엔 인권 특별보고관의 한국 방문 보고서'를 공식 채택하며, 삼성의 반도체 직업병과 관려해 “삼성전자는 생상공정에 유해물질이 전혀 사용되지 않는다는 주장을 하면서도 이를 정당화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삼성 쪽은 “법원이 제출명령을 내린 문서 가운데 보유한 문서는 모두 제출했고, 법정 보관기간이 지나 존재하지 않는 경우에만 제출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