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초 대!

 

 국가보안법피해자모임 총무 박창숙(부용) 동지의

출소( 10월 26일 징역 1년~집행유예 3년 선고)를

열렬히 성원해 주신 조국통일 운동원 동지들과 여

러 원로 어르신 선생님들을 이번주 토(10)요일 저

녁 5시(자택 1박 가능) 부터 대구지역 자택 부근 음

식점에서 모십니다.

 

 조촐한 식사와 약주도 나누시면서 여러 동지들의

덕담과 원로 어르신 선생님들께서 좋은 말씀도 계

십니다.

 

 특별히 그날 더욱 분위기를 빛내주실 분들께서는

시낭송이나 노래부르기.악기연주 등을 준비해서

오시면 좋고 이모 저모도 못하실 분들은 주류라도

가져오셔도 무방합니다.

 

 조국통일 운동에 더욱 더 분투하실 여러 동지들의

단결과 뜨거운 동지애를 다질 좋은 자리에 다함께

화목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으면 하오니 많은 참여

바랍니다.

 

 찾아오실 장소: 경북 대구 광역시 수성구 시지동

133 - 13 

tel. 053 ~ 793 ~ 5222번 '착한오리시대' 음식점

 

대구 지하철: 반월당역에서 2호선 ㅡ 고산역 하착

1번출구에서 우측 100미터 행보 고산농협 뒷편 건

 

 연락처: 010 - 7309 - 2322 박창숙(부용)

 

                011 - 461 - 4210 윤기하

............................................................................

 

 

라 쿠카라차---La Cucaracha -바퀴벌레



오늘은

우리들이 잘 알고 있는 중남미의 나라 '멕시코'의

현대사와

그들의 노래 [라 쿠카라차]에 대하여

좀, 긴 문장의 관련자료와 함께

Los mariachi(로스 마리아치)의 중창과

동영상을 올려 놓습니다.

노래감상과 해석,

'멕시코 농민혁명'의 이해에 도움이 되시길 바랍니

다.


한글로 번역하여 '병정들이 행진한다∼’로 시작되

는 노래

‘라 쿠카라차’는

80년대 초등학교 음악교과서에 정식 등록된 노래

이자

가요 테이프 맨 뒤에 ‘건전가요’자격으로 들어갔던

노래입니다.

이 노래는 '이탈리아의 밀바'나 '미국의 루이 암스

트롱' 등

전세계 수많은 나라에서 리메이크 되어왔지만

노래에 담긴 사연은 정작 잘 알려지지 않고있습니

다.

1910년 100만명의 피를 흘리게한 멕시코의 혁명에


혁명가요로 사용된 노래가 '라 쿠카라차'입니다.

당시 멕시코의 토지는 90%가 극소수의 지주에게

집중되어 있었고

굶주린 농민들이 독재정부에 반기를 들고 일어서

게됩니다.

이때 농민들이 피흘리며 부른 노래입니다.

멕시코 농민들 보잘것 없지만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바퀴벌레(cucaracha)에

스스로를 비유했습니다.

결국 이노래는 희망의 메세지를 담고 있는 것입니

다.

당시 농민을 이끈사람은Pancho Villa (판쵸비야)였

습니다.

Pancho Villa는

나중에 혁명의 동지로 같이 혁명군을 지휘하다가

부자들의 편으로 돌아서서 권력을 잡았던

Carranza(까란사)에게 암살 당합니다.

혁명가로 사용되었던 '라 쿠카라차'의 가사에 보면

여기 저기에 농민들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라 쿠카라차'라는 단어의 뜻은 '바퀴벌레'라고 합

니다.

하지만, 바퀴벌레라고 모두 같은 바퀴벌레는 아닙

니다.

혁명가요의 제목이 '바퀴벌레'가 된 것은

당시 혁명군인 농민군의 비참한 모습을 나타낸 것

이라고도 하고,

농민군을 돕기 위해

여인네들이

음식 바구니를 메고 걸어가는 모습을 나타낸 것이

라고도 합니다.

「라 쿠카라차」는

당시 '판초 비야'와 농민군의 혁명을 찬양하는 노

래였던 것입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19세기 말 동학혁명을 노래한

「파랑새」의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꽃에 앉지

마라'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판초 비야'는

우리나라로 치자면 '녹두장군 전봉준'보다는

'홍길동'이나 '임꺽정', '장길산'에 더 가까운 인물

입니다.

의적 타입이라는 겁니다.

'판초 비야'는 빚쟁이가 찾아와

밀린 빚 대신 누나를 내어놓으라고 하자

도끼로 빚쟁이의 발등을 찍어버리고 산으로 올라


20년 넘게 산적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빼앗은 돈과 물건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

눠줘

'가난한 사람들의 친구'라는 별명을 얻고,

독재정권 타도를 위해 노동자, 농민군을 훈련시킵

니다.

그러다 20세기 초 멕시코에 혁명이 발발하자

3천 여명의 군대를 조직해서 혁명군에 가담하고

스스로 '북부군 사령관'을 자임했습니다

'라 쿠카라차'는 1910년부터 1920년까지 진행되었


멕시코 혁명 당시 농민혁명군이 부르던 노래입니

다.

원래는 15세기말 '무어'인들을 축출할 즈음

자연발생적으로 만들어진 '스페인' 민요이지만,

'스페인'의 '라틴 아메리카' 침략과 함께 '멕시코'에

전래되었고,

수 세기를 지나는 동안 여러 '버전'이 생겨났습니

다.


현재 우리가 부르고 있는 '라 쿠카라차'는

멕시코혁명 당시 농민들에 의해 만들어진 노래가

원곡이며,

내용은 농민들의 일상생활에서부터

연애, 정치에 이르기까지를

뛰어난 해학과 풍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특히 남녀관계와, 압제자 '까란사'(Venustiano

Carranza)와

이에 대항하는 농민혁명군의 '판초 비

야'(Francisco Villa) 와

'사바타'(Emiliano Zapata)의 관계에 대한

해학과 풍자는 압권이라고 할 수 있고,

바로 이 때문에 일반 농민들에게뿐 아니라,

농민혁명군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었습니다.

제목 [라 쿠카라차]는 '스페인'어로 바퀴벌레라는

뜻인데,

여기에는 여러 가지 다른 해석들이 존재합니다
.
바퀴벌레와 같은 비참한 생활을 하는

멕시코의 농민을 비유적으로 표현했다는 해석이

있고,

멕시코의 전통 의상인 '판초우'를 걸치고

전통 모자인 '솜브레로'를 쓰고 무리를 지어가는

농민혁명군의 모습이 마치 떼를 지어가는 바퀴벌

레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해석과,

또 농민과 농민혁명군의 끈질긴 생명력을

잡아죽여도 끊임없이 나타나는 바퀴벌레에 비유해


붙여진 이름이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그러나 농민혁명군의 사령관인 '판초 비야'가 타고

타니는 자동차가

바퀴벌레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게

아직까지는 정설입니다.


'멕시코'는 '마야'문명과 '아스테크'문명의 발상지

로,

1521년 '코르테스'에게 정복당한 후 1821년 독립할

때까지

300년 동안을 '스페인'과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습

니다.

독립과 함께 공화정이 성립하였으나,

연방파와 중앙집권파의 내분이 수십 년간 계속되

었고,

그 여파로 미국과의 전쟁에 져서

1848년 영토의 일부

(현재 미국의 뉴멕시코, 아리조나, 캘리포니아,

네바다, 유타, 텍사스 등)를

미국에게 빼앗겼습니다.

또 1861년부터 1867년까지는 '오스트리아 합스부

르크'왕가의

괴뢰 황제인 '막시밀리언' 황제의 혹독한 통치를

받았고,

이어 등장한 '디아스'(Porfirio Diaz) 정권이

대지주들과 외국자본에 유리한 정책을 추진하자

1910년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1917년 멕시코 혁명의 승리로

토지개혁과 노동자의 권리를 인정하는 신헌법이

제정되면서

민주적 통치체제가 완성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

니다.

'멕시코'혁명은

대지주와 외국 자본의 이해에 충실하여

노동자와 농민을 수탈하던 대통령 '디아스'의 독재

체제를 무너뜨리고

반(半)식민지적 사회구조의 변혁을 목표로 발생하

였습니다.

1910년 '디아스'의 유임에 반대하는

자유주의자 '마데로'(Francisco Madero)가

북쪽의 농민군 지도자 '판초 비야'와,

남쪽의 농민군 지도자 '사파타' 등과 연합하여

이듬해 5월 '디아스'를 축출합니다.

그러나 혁명군은 토지개혁에 소극적인 '마데로'파


토지개혁에 적극적인 '사바타'파로 분열되었고,

이 틈을 타 1913년 2월 '우에르타'(Victoriano

Huerta)가

군사 쿠데타에 성공하여 반(反)혁명 정권을 수립하

지만,

이듬해 7월

'까란사'와 '오브레곤'(Alamos Obregon),

'판초 비야' 등이 동맹한

입헌파(立憲派) 혁명군과 '사파타'의 농민혁명군에

게 축출됩니다.

그러나 혁명파는

다시 지주와 민족자본가를 대표한 '까란사', '오브

레곤'파와

빈농을 대표한 '비야', '사파타'파로 다시 분열하여

내전에 돌입합니다.

'비야'와 '사바타'의 농민혁명군은

한때 멕시코의 전 지역을 점령하였으나,

노동자 계급의 지원을 받은 '까란사' '오브레곤'파


1915년 '셀라야' 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혁명의 주도권은 '까란사'와 '오브레곤'에게 넘어가


1917년 제헌의회에서 신헙법이 제정되면서

멕시코혁명은 막을내립니다.

제헌의회 당시 '오브레곤'은 급진파를 대표하여

제헌의회에서 지주들을 대변한 '카란사'와 맞서

신헌법에 노동자의 제권리(123조)와

토지개혁(27조) 등이 채택되도록 하였을 뿐 아니라

, “물 ·토지 ·지하자원은 본래 국가에 속한다”(27

조)는 조항과

“공공의 이익을 위해 사적 소유권을 제한할 수 있

다”(27조)는 조항을

규정하여 농토와 자본의 국유화를 가능하게 하였

습니다.

그러나 신헌법은

농민혁명군의 몰락과 미국과 유럽의 압력 등으로

1930년대에 가서나 제 기능을 할 수 있었습니다.

[라 쿠카라차]의 주인공 '판초 비야'는

1878년 6월 5일 '산후안 델리오 아시엔다' 빈농 가

정에서

5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본명은

'도로테오 아랑고 아람불라'(Doroteo Arango

Arambula)이고,

'프란치스코 비야'(Francisco Villa),

또는 '판초 비야'라고도 합니다

. 부모를 일찍 여의고 어려서부터 농장노동자로 일

하다가,

1894년 누이동생을 강간한 농장주인을 살해하고

'멕시코' 북부 산속으로 들어가 의적이 되었습니

다.

1910년 15명의 동지와 함께 혁명군에 참여해

'치와와'의 후방을 교란하는 '게릴라'전을 벌였고,

1913년 '우에르타'의 군사쿠데타 때 감옥에서 탈출

하여

잠시 미국으로 망명하였으나,

'마데로와 치와와' 주지사의 살해 소식을 듣고

8명의 동지와 함께 귀국하였습니다.


이후 '게릴라'전으로 백전백승하여 농민들의 영웅

이 되었고,

6개월 만에 1만 명의 병사를 거느린

북부지역 농민혁명군의 총사령관이 되었습니다.

1915년 '세라야' 전투에서 패배한 뒤

'카란사'를 도운 미국을 응징하기 위해

1916년 3월 9일 미국의 '콜럼버스'를 공격했고,

이로 인해 '퍼싱('John Joseph Pershing) 장군이 이

끄는

1만 2000명의 미국 기병대로부터

장장 10개월 동안 추격을 받기도 했습니다.

미국은 지금까지도 '퍼싱' 장군을 높이 평가해서

미사일에 그 이름을 붙여 '나토'에 베치하고 있습

니다.

퍼싱1, 퍼싱2 미사일이 바로 그것입니다.

'판초 비야'는 1920년까지 농민혁명군을 이끌었으

나,

1920년 '까란사'가 암살되고 '오브레곤'이 대통령이

된 뒤,

혁명군으로서의 삶에서 은퇴하였습니다.

그러나 1923년 7월 20일 '피'랄에서 암살당하였습

니다.

'멕시코'혁명의 또다른 영웅 '사파타'는

1879년 8월 8일 '멕시코' 남부의 '모랄로스'의 한

소농에서

10형제 중 아홉째로 태어났습니다.


1911년 '모랄로스'의 빈농들과 함께 농민혁명군을

조직하고,

'멕시코'혁명에 참가하였습니다.

'마데로'와 토지개혁 문제로 대립,

1913년 11월

빈농과 공동체농민에 대한 토지 재분배를 규정한

‘아얄라 계획’을 발표하고,

그 뒤 '마데로, 우에르타'(1854∼1916), '까란사',

로 이어지는

중앙정부에 대하여 무장투쟁을 계속하였습니다.

1914년 북부지역의 '판초 비야'와 연합,

'까란사'와 '오브레곤'에 대항하여

한때 수도인 '멕시코시티'를 점령하기도 하였으나,

이듬해 1915년 '까란사'파(派)의 반격으로 밀려나

고향인 '모랄로스' 지역을 근거로 '게릴라' 활동을

벌였습니다.


그러나 1919년 4월 10일

'치나메카' 농장에서 암살당함으로서

혁명군으로서의 삶을 마감하였습니다.

'사파타'가 주장했던 '사파티즘',

이른바 ‘공동체 자치주의’는

현재 '멕시코' 무장 혁명군인

'사파티스타(Zapatista, 사파타의 뜻을 따르는 사람

들,

부사령관 '마르코스'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인물)'로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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