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수후원회 전 부회장 김재선님의 글>
류종인 선생님께.
선생님께서 저희 곁을 떠나신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5주기가 됐습니다. 늘 선생님을 의지하며 살아왔던 저는 그때 모든 것이 무너진 느낌이었지요. 일반적으로 아직 재미있게 사실 연세인데, 너무도 황망해 세상살이 무상함을 깊이 느꼈습니다. 5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선생님 생전의 준수한 풍모와 정갈한 모습은 아직도 곁에 계신 듯 눈에 선하기만 합니다. 가신 뒤 해마다 동료 선후배 동지들이 많이 모여 선생님을 기리는 추모식을 거행했는데, 올해는 코로나 기승으로 공식적인 추모 행사는 하지 못할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 앞섭니다.
생전에 선생님은 저에게는 선생님일 뿐만 아니라 큰 형님이셨고 나이를 떠나 가장 가까운 벗이었습니다. 무지한 제가 세상 보는 안목이 요만큼이나마 깨인 것과 가장 진보적인 통일운동단체 양심수후원회 회원이 된 것도 다 선생님 덕분이었습니다. 지금도 갑갑한 현실에 부딪히면 선생님 생각이 많이 납니다. 선생님의 예측이 선견지명으로 남은 일화를 한번 소개합니다. 박근혜 집권 초기에 뜬금없이 임기를 채울 수 없을 것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요 하면서도 설마 했는데 몇 년 뒤 쫓겨난 것을 보고 참 신기한 일도 있구나 한 적이 있습니다.
선생님과 오랫동안 친분을 쌓으며 느낀 점은 순수하고 호방한 인품을 바탕으로 어디서도 기죽지 않고 언제나 당당하신 모습이었습니다. 대화할 때 상대가 이해되지 않는 주장을 하더라도 너그럽게 들어주시고 당신 주장을 강하게 내세우지 않아 상대방을 불편하지 않게 합니다. 아무리 어렵고 급한 상황에 직면해도 비관하지 않고 낙관적으로 사고하십니다. 특히 젊은 사람들과 소통을 즐기셔서 인기도 좋고 따르는 젊은이들이 많았습니다.
어부사 어느 구절에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으면 된다.' 라는 말이 있는데, 선생님의 대인관계와 일맥상통합니다. 맑으면 맑은 대로 흐리면 흐린 대로 상대의 무결점만 요구하지 않고 부족한 부분은 인내하며 융통성 있게 보듬어 옳은 방향으로 설득하는 품성을 가지고 계십니다. 옆에서 보면, 느슨해 보여도 신념이 강해 취중에도 신념이 흐트러지는 모습을 본 적이 없습니다.
선생님, 선생님께서 그토록 염원하시던 통일은 아직도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요원해 보입니다. 그러나 비관하지 않습니다. 역사는 분명히 진보하고 분위기도 유리하게 조성된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머지않아 조국통일이 이루어질 것으로 낙관합니다. 선생님 너무 외로워 마시고 편히 쉬십시오.
202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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