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시간이 없습니다. 고향땅에 묻히고 싶습니다." (3)

  • 민병래 작가
  •  
  •  승인 2020.08.22 18:21

 

88세 폐암말기의 비전향 장기수 강담
“아내와 아이들을 볼 수 있을까요?”

8월 10일, 강담 선생님의 이야기로 14분의 장기수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나에겐 시간이 없습니다. 고향땅에 가고 싶습니다”라고 하셨던 강담 선생님은 모진 옥고의 후유증으로 병마에 시달려 오시다 결국 8월 21일 저녁 운명하셨습니다.

통일애국열사 강담 선생님의 장례는 민족통일장으로 8월 23일(일) 오후 4시, 국립중앙의료원 장례식장 207호에서 진행됩니다. 선생님의 장례위원회는 “코로나19의 급속한 창궐로 방역 수칙을 잘 지켜주시기 바라며, 기저질환이 있으신 분은 조문 자제를 부탁드린다”고 전했습니다. 강담 선생님은 금선사에서 영면에 드시게 됩니다.

부디 지금 있는 그곳은 좀 더 평안하길 간절히 바라겠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편집자 주]

강변이 어두워지자 "이제 바람이 차가워요, 들어가시지요"하고 정 원장이 권한다. 쿨룩쿨룩 밭은 기침이 나오고 가래도 끓는다. 의사 얘기로는 길면 반년이라고 했는데 올 1월에 말기 암 판정을 받았으니 이제 한 달이나 남았으려나, 요양원으로 돌아가는 길은 컴컴하다. 강담은 다시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아내가 집에 잘 가고 있는지 마음이 영 불안하다.

강담의 아내는 오후에 강담이 입소해 방도 안내받고 목욕도 할 무렵, 마당에서 잠시나마 친한 정원장에게 그동안 쌓인 얘기를 털어놨다.

"원장님에게 이 양반을 맡기게 돼서 정말 마음이 무겁네요. 어젯밤엔 말도 못할 정도였어요. 자다 말고 남편이 몸을 뒤척이며 지팡이를 찾는지 방바닥을 휘휘 젖더라구요. 이젠 혼자 일어나지도 못하잖아요. 갑자기 '나 좀, 나 좀' 소리치길래 그냥 들쳐 일으켜 화장실로 가는데 줄줄 흘러서 다 새는 거예요. 하도 변비가 심해서 관장약을 세게 썼더니 설사를 해대는데 기저귀는 풀어져 있고 난리도 보통 난리가 아니었어요.

할 수 없이 옷 다 벗겨 씻기고 기저귀 갈아입혀 눕혔더니 또 줄줄, 요도 다 젖고 방바닥까지 흘러내리고 내 옷도 손도 범벅이 돼가지, 그래 어떡해 다시 씻기구 요는 걷어서 백리터짜리 쓰레기봉투에 밀어넣고, 바닥은 걸레로 몇 번씩 닦고, 겨우 정리하니 손에서는 냄새가 진동하고 허리는 어찌나 아픈지.

아, 그런데 경대 위쪽에서 이 양반 칠순 사진이 떡하니 웃고 있더라구. 그래서 당신이 오만 정을 다 떼고 갈려구 작정했나 보네, 내가 막 성질을 하고 욕을 해 버렸지.

"가만히 듣고 있던 정 원장이 강담의 아내 손을 꼭 잡아준다. "고생하셨어요, 이제 저희가 잘 돌봐드릴게요"하며 다독인다. 그녀는 고맙다고 인사하면서도 얘기를 멈추지 않았다.

▲ 이명박 정권 규탄 집회에서 앞 줄 왼쪽 2번째가 강담 선생이다 [사진 : 강담제공]
▲ 이명박 정권 규탄 집회에서 앞 줄 왼쪽 2번째가 강담 선생이다 [사진 : 강담제공]

“우리 집이 11평이니 방이 거실이고 거실이 부엌이야 정말 코딱지 같은데 산송장이래도 사람 있을 때 하고 없을 때하고 같나. 이 양반 뇌경색 앓고서도 야간 경비 일을 쉬지 않았잖아. 아침에 퇴근할 때 맞춰 밥상 준비하고, 들어오면 '자기 왔어' 내가 살갑게 대해줬는데... 이제 그런 재미도 다 없어졌네.”

강담의 아내는 깊은 한숨을 내 쉰다. 오후 햇살은 '상록수'에 꾸물꾸물 비집고 들어왔다. 간간히 금강 쪽에서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이른 더위를 식혀주었다. "세상일이 묘해요" 들려주고 싶은 게 많아선지 그녀의 얘기는 계속되었다. 목욕을 마치고 거실로 나오는 강담의 모습을 창문으로 언뜻 보였다.

"이 양반이 2005년돈가? 며칠간 밥도 안 먹고 못 피는 담배를 피더라구, 그래서 내가 욕을 해댔지 뇌경색 앓는 사람이 담배를 피면 어떡하냐구, 그래도 담배를 안 끊는 거야. 그래서 뭔 일이 있나 속으로 나도 끙끙 앓았지.

근데 어느 날 저녁 먹고 이 양반이 출근했는데 일기가 보이더라구, 이 양반이 대단한 게 눈 침침해도 일기를 빼놓지 않고 써, 군사훈련 중단하라고 미군부대 앞에서 시위한 얘기, 국가보안법 철폐하라고 탑골공원에서 시위한 얘기, 민가협총회에 참석한 얘기, 별게 다 있어, 그런데 2차 송환인가에 신청하고 싶은데 15년이나 나이 많고 북에서 내려온 자기를 챙겨준 나를 생각하면 그럴 수 없다고 써 있더라구, 그래서 알았지. 이 양반이 이것 때문에 마음 고생하다가 담배까지 폈구나.

그래서 담날 아침 퇴근해서 왔을 때 내가 앉혀놓고 그랬어, 나는 괜찮으니 당신 북으로 가라, 고향 아니냐? 당신 맘 다 안다, 그랬더니 이 양반이 내 손을 잡고 연신 고맙다 고맙다 하는 거야, 60년간 기다렸을 북쪽 아내에게 "여보 나 돌아왔어, 고생 많았지..." 그 말 한마디만은 하고 싶다고 글썽이는데 그 모습이 짠하더라구, 사실 그날 난 속으로 서운했지, 펄쩍 뛰지는 않아도 당신 두고 내가 어딜 가냐 그런 소리 듣고 싶었는데...

▲ 강담 선생의 사모님 모습 강담 선생을 품어준 사모님은 한 많은 세월을 이야기하며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사진 : 민병래]
▲ 강담 선생의 사모님 모습 강담 선생을 품어준 사모님은 한 많은 세월을 이야기하며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사진 : 민병래]

그 다음 날부터 송환서류 낸다고 들떠서 움직이는 모습 보니 만 정이 떨어지더라구, 그때는 이 양반이 나를 두고 떠나겠다고 했는데 이제는 내가 이 양반을 여기로 떠나보낸 셈이 되었네..."

정 원장은 얘기를 듣다가 그녀에게 다가가 등을 어루만지고 가볍게 포옹을 했다. 그때 강담이 요양원 본채에서 휠체어를 타고 나왔다. 강담의 아내는 등을 돌려 눈물을 훔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보, 나 인제 올라갈게. 당신 여기서 마음 단단히 먹고 잘 있어. 당신은 이제 여기서 여생을 마쳐야 하고 나는 집에서 죽어야 해" 하고 강담에게 다짐하듯 얘기한다. 강담은 입을 벌린 채로 아내에게, 또 아내와 함께 배웅 와준 동지들에게 어서 올라가라고 손짓을 했다.

코로나로 모든 요양원에 면회금지 명령까지 내려진 상황이라 이날 올라가면 언제 만날지 모르는 기약 없는 이별이다. 하루하루 상태가 급격히 나빠지고 있는 상황이니...

그렇게 정원장에게 속마음을 쏟아놓고 떠난 아내를, 강담은 금강둑에서 있는 내내 걱정했다. 집에 잘 도착했는지, 자기가 없는 집에 냉기가 돌지는 않을지 못내 궁금하고 걱정이 됐다. 금강둑에서 요양원으로 돌아가는 길, 이제는 목소리를 들어봐야겠다고 번호를 누르다가 강담은 멈칫했다. 아무래도 "마음 단단히 먹고 있으라"는 구박이나 또 들을까 봐 통화 대신 문자를 보냈다.

"여보 북녀게 내 애들 선자, 길모가 당신 여생을 책임질 거니까, 내가 먼저 가도 너무 걱정 마" 그리고 한 문장을 더 보탰다. "그동안 고마웠고 사랑해"

요양원으로 돌아가는 길은 이제 깊고 깊은 어둠이다. 휠체어는 삐걱대며 조금씩 나아간다. 강담의 작은 어깨가 밭은 기침이 나올 때마다 들썩인다. 고개는 자꾸 옆으로 처지고... 어디선가 반딧불이 하나가 기울어지는 할아버지의 지친 어깨에 가만가만 내려앉는다.

▲ 통일운동 공로패를 받는 모습 민가협에서 통일운동 공로패를 받았다 [사진 : 강담제공
▲ 통일운동 공로패를 받는 모습 민가협에서 통일운동 공로패를 받았다 [사진 : 강담제공]

 

<못 다한 이야기>
1. 강담 선생이 광주교도소에 있을 때 지금은 고인이 된 전남대학교 임경순 교수가 면회도 오고 영치금도 넣어주면서 돌봐주었다. 출소할 때는 부인과 제자를 데리고 강담을 맞아주었고 본인 집으로 데려가 기거하게 하면서 직장을 알선해 줬다. 그래서 강담 선생은 처음에는 가구공장에서부터 일을 시작했다.

2. 강담 선생은 광주교도소에서 의료법 위반으로 구금되어 있던 의사와 친하게 지냈고 그의 소개로 건설회사 사장과 연을 맺어 모델하우스의 야간경비일을 했다. 이 회사가 부도난 이후에는 아파트 경비 그리고 성당의 잡부로 일을 했다.

3. 올 4월에 돌아가신 대전의 장기수 한 분이 요양원에 찾아온 극우세력 때문에 심신이 많이 허약해진 상태로 돌아가신 일이 있었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글 취지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일정하게 가명과 다른 지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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